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 - 관리되는 민주주의와 전도된 전체주의의 유령
셸던 월린 지음, 우석영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국의 대표적인 정치철학자이자 프린스턴 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바 있는 쉘던 월린의 이 책을 일독했습니다. 3일에 걸쳐 약 15시간을 할애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이해가 미진한 부분이 있어서 조만간 다시 읽어봐야 될 것 같습니다. 분량은 대략 480여페이지 입니다. 전체적으로 번역의 문제는 없어 보였는데요. 다만 원문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국역으로 된 문장도 대체로 길어서 속독을 하는 경우에도 문장의 의미가 자주 손실되어 다시 뒤로 가서 읽어야만 했습니다. 이해력이 부족한 제 개인의 문제겠지요.

부제에서 명확히 밝히는 바와 같이 현재 미국 정치의 본질이라고 여길만한 ‘관리되는 민주주의와 전도된 전체주의’ 를 중점으로 글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 책은 현재 미국 민주주의의 거의 대부분의 병폐와 문제점을 서술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높은 평가를 주고 싶습니다. 단순히 열거하는 수준을 벗어나 그것의 근거와 배경을 아주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는데요. 독자들에게 이에 대한 폭넓은 정보를 제공한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이 글에 들어가 있는 용어들은 저자인 월린의 독창적으로 만든 정치사회학적 개념이라 부를 수 있을텐데요. 우선 전도된 전체주의는 과거 히틀러의 나치즘과 무솔리니의 파시즘으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전체주의적인 개념이 아니라 앞뒤가 바뀌어 여기서 전도란 본래의 의미로 해석되기 어렵고 매우 편의적으로 변질된 개념인데요. 전도된 전체주의는 기성 체제의 전복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로비시트들을 비롯한 그러한 체계의 워싱턴에 대한 금권 정치라고 볼 수 있으며, 국가 권력을 소수인들로 이뤄지는 독점 형태로 유지시키려는 노력이라 칭할만합니다. 여기에서는 지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그의 내각, 그리고 네오콘 등의 정치적 관여가 이에 속한다 판단하고 있습니다. 관리되는 민주주의는 크게 로마 바티칸으로부터 세속 정치를 분리시켜왔던 과거 역사로부터 현재 미국의 공화당과 기독교주의적 근본주의 및 세속주의자들과의 결합으로 종교와 정치의 엄격한 분리를 근본으로 하는 근대 민주주의의에 대한 오염과 레이건 행정부 때 광범위하게 추진되었던 실질적 복지 쇠퇴와 감세를 기반으로 하위 계층에 대한 거의 반강제적인 탈정치화를 일으켜 현실 정치에서 퇴장시키고, 그러한 정치 혐오와 정치 불신을 조장해 자신들이 국가를 좌지우지 하기 수월한 정치 형태로 관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더불어 월린은 미국이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세계 각지에 이식시키려 노력해 왔지만, 그것은 아주 표면적인 입장이며, 실질적으로 경제적 혹은 군사적 이익이 사실상의 본질로 이러한 민주주의의 본류로 자임하는 국가가 패권을 추구하는 것은 그 자체 만으로도 민주주의 국가로 표현할 수 없다는 일종의 비판을 하고 있는데요. 여기에 한국과 베트남, 이라크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 미국의 시민들이 원해서였다기 보다 이를 수행한 엘리트들의 과오와 패착이라 볼 수 있으며, 항시 엘리트주의적 정치가 민주주의에서 좋은 결과를 답보하는 것은 아니며 아마도 오늘날 공화당의 패거리적 정치 문화와 이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민주당의 현실로 봤을 때 이를 개선시키기 위해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인들이 워싱턴에 더 자주 나타나야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밝히고 있는데요. 이것은 실질적으로 노동 계층이나 하위 계층의 인물을 지지하여 계층적 이익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그러한 시민들의 정치 행위가 우선되어야 하지만, 특히 언론과 다수의 정치인들이 정치 혐오와 불신을 오랫동안 조장해왔고, 온전한 시민 정치가 기반인 민주주의를 추구하기 보다는 대중 영합의 좀 더 왜곡된 민주주의를 선호하는 것으로 확대되어 왔다고 의미심장하게 분석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여러의 책들을 통해 어느 국가나 배타적 기득권을 갖고 있는 기득권층들이 민주주의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이미 공인된 소수의 엘리트들이 정치 현실에서 과연 시민 대다수의 이익을 위해 정치를 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과 아직은 미국의 엘리트 계층들이 현재의 미국 정치가 자신들의 기반으로 축적되고 견고해진 현실을 대외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꺼려하지만 앞으로 얼마간의 기존의 정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 부재한다면 이러한 현실이 더욱더 고착화 될 가능성이 높다고 월린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결국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시민들의 역할이 중요하고, 정치 권력을 좀 더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다만, 현재의 시민들이 의견을 낼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즉각적인’ 인터넷 환경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얼마간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월린도 인정하듯이 기존의 민주주의 체제가 견고한 듯 보이나 과거 역사를 보더라도 조직된 시민의 힘이 왜곡된 권력이 민주주의를 훼손시킬 때마다 자정 능력을 발휘했듯이 이에 대한 믿음이 월린 스스로도 갖고 있었습니다.

끝으로 이 적지 않은 분량의 글들이 오로지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에 대한 월린의 소산이며, 그것을 위해 평생 스스로를 독려하고 살아왔던 것에 경의를 표하고 싶더군요. 위키피디아에서 검색해보니 지난 2015년에 그가 작고한 것으로 나오더군요. 남은 사람들에게는 이제 이 민주주의를 더 발전시킬 부채를 갖고 있다고 봐야할 것 입니다. 이 조직적이고 강대한 ‘정치 혐오’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부수어 낼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