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헨리 앨프리드 키신저 지음, 이현주 옮김, 최형익 감수 / 민음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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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주재우 교수의 ‘한국인을 위한 미중관계사‘를 읽고 나서 ‘헨리 키신저의 세계질서‘라는 이 책을 일독해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이 연휴 기간에 책을 구해 읽게 되었습니다.

헨리 키신저의 이력은 일개 개인의 사적 발자취라고 국한하지 못할 만큼 무척 중요하고 화려합니다.과거 닉슨 행정부 시절에 국무장관으로서 당시 폐쇄된 국가였던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저우언라이이와 회담을 했고, 자신의 상관인 닉슨 대통령과 함께 세계 질서에 대한 나름의 계획을 갖고 냉전 시대에 미국이 주도한 자유 세계의 연대에 기여를 했고, 포드 행정부 시절 럼스펠드와 리처드 체니의 교묘한 정치적 술수에 의해 쫓겨난 이후에도 역대 여러 행정부들의 자문과 일정의 기여를 해왔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키신저를 찬양하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는 1945년 이후 남한 내의 미군정을 이끌었던 하지 중장의 당시 한국인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평가인 ˝한국인들은 시끄럽고 쉽게 흥분하며, 그 특유의 분열성으로 자신들의 정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와 비슷한 의견을 낸 적이 있습니다. 그는 ˝한국인들이 일본인들과 달리 쉽게 흥분하고 감정적이어서 문제다.˝ 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요, 더욱이 1974년 4월 30일, 이집트 방문 당시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과 가진 회담 자리에서 김일성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1972년 저우언라이와의 회담에서 일본의 재무장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는 저우언라이의 말에 동조하며 그런 역할을 위해 미군이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것이라고 입장을 밝힌 키신저의 태도는 확실히 현실 정치에서 변화무쌍한 미국의 이익 대변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 스스로도 세인들의 이러한 현실주의자라는 평가에 큰 거부감이 없는 듯 보였구요.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헨리 키신저는 이 책을 통해 과거 베스트팔렌 식과 관련된 세계 정치론에 대한 지지를 일관되게 보이고 있습니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인류 역사에서 최초로 영토와 민족으로 구성된 주권 개념에 대한 개념을 밝힌 것으로 이 시기부터 현재까지의 국가와 국가간의 조약들에 대한 이론적 토대가 되어왔습니다. 사실상 미국도 이러한 베스트팔렌식의 세계 이론을 추구해 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1차대전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과 이후 2차대전 시기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해리 트루먼, 냉전 시대에 존 F. 케네디, 리처드 닉슨,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부시 등이 마찬가지로 미국이 추구한 세계 질서가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다고 다시금 강조합니다.

그는 약간 모순되게 질서가 자유에 우선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지만 자신들의 미국에 의한 질서를 위해 그라나다와 파나마, 쿠바 등에 군사력을 투입한 일에 대해서는 어떠한 평가를 하고 있지 않더군요. 사실 정밀한 현실주의를 추구하는 국제적 현실주의자라면 미국의 질서라든지 미국이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옳다라는 류의 이상주의적 주장으로 덧칠하지 말고 미국의 이익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고 지금에 있어서는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립서비스라도 있었으면 그의 주장이 좀 더 받아들이기 쉬었을지도 모르겠군요. 여하튼 곳곳에 그런 몰이해적인 측면의 주장들이 있습니다.

또한 세력균형론의 지지자로서의 미소 냉전시기의 세력 균형, 앞으로 대두하게 될 미중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대한 언급도 있었는데요. 키신저는 얼마전 출간한 ‘21세기 패자는 중국인가‘ 에서는 중국이 미국을 누르고 세계 패권을 쟁취하기란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을 보인 적이 있는데요. 이 점은 중국의 세계 패권을 거머쥘 수는 없다고 명백하게 주장하면서 미국과 더불어 균형을 이루는 세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입장은 보인것으로 봐야겠죠. 그리고 세계의 핵확산에 대해서는 각국이 비확산의 의견 일치를 보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다만 아쉬운 점은 베스트팔렌식의 질서와 이슬람식의 질서가 중동에서 대립하고 있는 현실에서 알 카에다와 같은 무차별적인 비 이슬람인 및 비 이슬람 신도에 대한 학살을 자행하는 매우 광신적인 태도인 이들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다면 그것은 거의 재앙에 가깝다는 측면에서 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은 실망스러웠습니다. 기존의 5대 핵보유국에서 냉전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무장을 하고 북한이 핵을 보유하려고 하는 이 시점에서 중동의 파키스탄의 핵은 언제든 이러한 무장 단체에 흘러들어갈 가능성 존재함에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파키스탄의 핵은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현실 괴리적인 측면이라 볼 수 있겠죠. 그리고 ˝내가 아는 한 미국과 소련 어느 쪽도 양국 간의 구체적인 위기 상황 중에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하는 단계에 가까이 간 것은 없었다˝ 라고 언급된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는데요. 데이비드 E. 호프만의 ‘데드 핸드‘ 나 론 서시킨드의 ‘전쟁 중독‘을 보지 않더라도 과거 냉전 시대에 미소 양국이 긴박한 핵전쟁에 이를뻔 했던 증거들이 여러가지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주장하는 것은 매우 받아들이기 어렵더군요.

하지만 이런 부족한 면을 감안하더라도 키신저의 이 책은 미국이 주도한 과거 역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러한 논리의 이면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책의 후반부에서
미국의 균형 추구는 본질적으로 영원하며, 그 과정에서 미국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바로 포기라고 말하는 것은 꽤 의미심장합니다. 미국이 주도하고 미국이 계획한 이즈음의 세계 질서가 무조건 긍정적이진 않지만 키신저의 주장대로 미국이 추구하는 것이 정밀한 세계의 세력 균형이라면 일정 부분 세계 평화에 도움이 될 만한 요소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외교 경험을 쌓은 키신저 조차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세력 균형으로 이어질 세계로 예측하고 있는 것은 적절히 중국의 패권적 야욕(중국인들이 매번 밝히는 주장과는 달리) 과 군사적 투입을 적절히 무마시키는 것이 키신저가 밝히고 있는 세력 균형의 요체일런지도 모릅니다. 또한 그것은 미국의 국익에 부합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일독하고 나서 며칠전에 계획한 ‘헨리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를 구해 읽는 것을 심각하게 재고하기로 했습니다. 그의 근본적인 주장이 저와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미국과 미국인들만을 위한 주장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참, 제가 읽은 판은 최형익 교수가 감수한 것인데요. 종전의 번역상의 문제는 많이 없는 듯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수월하게 글이 읽혀졌습니다. 2016년 초판본은 번역상의 문제가 있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하지만 근래 출판된 판본은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출판사에서는 따로 개정판이라고 밝히지는 않고 있는데요.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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