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축의 발명 - 미국의 북한 이란 시리아 때리기
브루스 커밍스 외 지음, 차문석 외 옮김 / 지식의풍경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반테러리즘의 일환으로 걸맞는 표적들을 통칭해 악의 축으로 규정했는데, 이것은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추국 (the Axis) 에서 인용된 표현입니다. 바로 이런 불량국가들에 대한 분석과 당시 소위 네오콘이라 불리우던 미국 행정부에 있는 주류 정치 세력에 대한 비판으로 3명의 저명한 학자들에게 원고를 부탁하는데, 그 부탁을 한 사람은 미국의 저명한 출판인인 안드레이 쉬프린입니다. 그는 출판사 뉴프레스를 세운 사람입니다. 미국에서도 손꼽힐정도 인정과 존경을 받는 사람이죠.

이 책에는 쉬프린이 원고 청탁을 건네 3명의 학자들의 글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시카고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인 브루스 커밍스와 뉴욕 시립 대학의 역사학과의 교수인 에브란드 아브라하미안, 미국평화연구소 선임 연구 위원인 모셰 마오즈 입니다.

책의 원제인 Inventing The Axis of Evil 은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한다면 ‘악의 축 꾸며내기‘로도 바꿀 수 있지만 우리에게 번역된 제목은 ‘악의 축의 발명‘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당시의 부시 대통령이 어떠한 심정과 역사적 배경을 인지하고 그러한 표현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꼬집은 대로, 역사 감각이 없다면 지도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 부시 대통령 자신은 통달한 지식으로 인한 깊은 사유없이 주변의 네오콘들에게 조언과 때론 얼마간은 수동적인 리드를 당했음에도 지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처칠과 같은 언행을 흉내내기에 바빴던 그런 이중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민주주의 국가가 외부의 위협을 걱정할 정도로 허약하고 모순에 가득찬 상태라고 의심하지 않지만 당시에 미국의 정치권은 이른바 9. 11 테러로 인한 심각한 안보 위협을 노이로제와 비슷한 심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러한 국내 분위기를 부시와 그의 행정부가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이겠죠. 파이프 라인을 위해 이라크에 개입할 구실을 만들고 전쟁을 수행한 것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습니다.

이 책은 국내에 2005년에 출간되었기에 여기서 주장된 정치, 외교적인 형태가 수정 또는 첨언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만, 전체적으로는 미국을 포함한 세계의 사람들이 북한과 시리아, 이란을 좀 더 이해하게 하는데 큰 도움을 제공합니다. 커밍스 교수가 말한대로 북한이 왜 핵을 갖으려고 하는지에 대한 것과 (물론 북한이 핵을 갖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기까지 그 이전의 미군정의 불성실함과 한국과 한국민에 대한 무지, 보다 입체적으로 김정일의 북한과 클린턴, 부시 행정부의 미국이 북핵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던 여러 입증된 자료들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커밍스 교수의 원글이 여기에 소개된 번역과 동일한지는 모르겠으나, 이 분의 해학과 풍자적인 표현은 참 거리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한반도와 한국민에 대한 그의 진실한 이해와 동정이 느껴져서 읽는 내내 커밍스 교수를 실제로 대면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군요. 물론 그의 한국 전쟁에 대한 수정주의적 입장으로 인해 특히 국내에서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서구 학자 못지않게 우리에 대한 깊은 이해는 충분히 존중 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얼마전 극적인 타결을 본 이란의 핵개발과 관련된 왜 이란이 핵무장을 하려는 것인가에 대한 답이 아브라하미안 교수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부분도 이란의 핵개발이 정당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혁명 전까지는 이스라엘과 우방국이었으며, 미국과도 중도 어느 나라보다 가까웠으며 당시 중동에서는 친자본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국가가 혁명의 길을 거친 이후, 폐쇄적이며 민족주의적인 주장이 강화되어 지역내 강국화를 부르짖고 중국과 인도의 핵기술을 받아들여 핵을 키우는 배경에 대해 언급되고 있습니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여기에 진보된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한몫을 하게 되었죠. 지금은 좀 더 개혁적인 요구가 이란 내부를 변화시키고 있고 종교적인 국가 지배가 많이 완화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다만 아브라하미안 교수가 언급한 그 이후의 이란에 대한 것은 시간차가 있어서 보충 설명이 되지 못하는 점은 있는데요. 이란 혁명 이후의 미국과의 관계와 이란이 혁명을 거쳐온 개략적인 정치사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점은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의 유일한 지중해 진출 교두보이자 현재 IS문제로 거의 전국토가 무정부 상태로 빠진 시리아에 대해 모셰 마오즈가 분석한 글도 그동안 궁금했던 아사드 대통령과 그의 정권에 대해 면밀히 알게 해주고 있습니다. 미국이 IS와 더불어 시리아 정부군까지 축출하려는 행동에 대해 왜 러시아가 반대했는지 그런 지난날의 정치역사적 배경까지 이해 되었습니다. 구소련 시절에 시리아와의 우호 협력 조약을 그때 그때 작위적으로 조절해서 받아들였던 지난 역사가 있음에도 현재의 러시아는 지중해 진출과 시리아와의 준동맹 국가임을 자처해 개입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온전히 푸틴의 의지입니다. 더불어 이스라엘과 레바논, 그리고 예전의 협력 관계였던 이집트, 마지막으로 현재로서도 골치아픈 문제인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에 대한 배경을 이 글을 통해 이해하게 됩니다.

이 3개의 악의 축은 어쩌면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충분히 개선시킬 수 있었던 관계 또는 문제였음에도 정확한 표현으로 ‘현재는 그냥 한구석에 치워버려‘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을 이슬람의 테러리즘 문제로 인해 부각된 측면이 큽니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정치인들 혹은 정치세력들은 자신들이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라면 머뭇거리지 않지만 이 악의 축의 문제는 미국 자신들이 깊숙이 관여해 있다는 측면에서 자기모순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의미와 관련해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한국인들은 미국인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고통을 겪어 왔다. 미국은 수십 년 전에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었지만, (빌 클린턴을 제외한) 미국의 지도자들은 노력하지 않는 편을 택했고, 그리하여 이 새로운 세기에 미국은 그 문제와 관련하여 악화된 상황에 놓여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현명함은 이 악의 축이 현실적으로는 미국의 문제이며 그 원인 또한 미국의 소홀함이라 이해하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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