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동아시아의 패러다임 변환과 한반도 논형학술총서 40
강상규 지음 / 논형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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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만에 접해보는 역사글인 이 책은 어제 제가 리뷰했던 ‘삼각관계의 국제정치‘에서도 몇차례 인용되기까지 해서 기대를 갖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조선 시대 말 고종이 통치하던 구한말 시대를 재평가하거나 재해석하는 글을 좋아합니다. 이것의 이유는 글 말미에 알려드리죠.

서울대에서 외교를 전공하고 일본에 유학을 다녀온 이 책의 저자는
역사학과는 다른 분야를 공부한 사람입니다. 굳이 연관성을 갖고온다면 19세기 말 동아시아에서의 국제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저자의 이 책에 높은 평가를 주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조선사를 전공한 어느 학자들의 글보다도 충분한 사료를 바탕으로 그 시대의 독창적인 재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글의 도입에서는 동아시아의 내의 전통적인 중화 질서가 서구의 산업혁명을 이룬 세력 확대가 19세기 이 지역의 커다란 딜레마로 다가왔고, 결국에는 성리학과 중화로 대변되는 오래된 질서가 무력화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 시점에서 조선의 외척 세력이 정치 전면에 나서, 왕권을 무력화한지 80여년 후, 왕계를 이을 마땅한 이가 없어 결국 흥선대원군의 차남이 국왕의 위에 오르게 됩니다. 이런 배경에는 승하한 익종의 정비인 대왕대비의 지원과 협력이 지대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후 대원군이 섭정으로 정권을 잡으며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거쳐 임오군란으로 청국에 납치되기 전까지의 조선 상황을 서술하며 대원군이 우리엑 익히 알려진 이미지인 쇄국 정치로 대표되어 조선의 개화 시기를 무력화시키고 시대착오적인 경복궁 중건과 같은 잘못된 정책으로 조선을 암류에 빠뜨렸다는 일방적인 선입견에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당시 조선 내에 들어와 있던 프랑스의 천주교 선교사들과 긴밀히 연락해 다가오는 러시아 견제를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다만 당시 유학자들의 견해인 ‘부국강병은 야만과 같다‘는 매우 편협한 사고로 인해 그러한 쇄국으로 주도된 것은 유감일 것 입니다.

흔히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사이에서 무력한 암군으로 설명되는 고종 또한 즉위하고 나서 어렷을 적 받게 되는 군왕의 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한것을 열심히 경연에 참여하고 수많은 책들을 읽고 자신의 사고를 확장시켜 당시 시급한 선결과제인 법령을 엄격히 세워 나라의 기강을 세우고 민생응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며, 친히 통리기무아문을 세워 자신의 뜻과 부합하는 신료들을 키우고 서양을 비롯해 당시의 국가들의 국제적 및 외교적 관계의 틀이었던 만국공법의 연구를 위해 심지어 일본에까지 신하들을 파견한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저는 일찍이 이태진 선생의 ‘고종시대의 재조명‘이라는 책을 접했는데 당시도 그랬지만 지금도 고종 시대를 암울하게 그리며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하는 것을 일제 식민주의의 잔재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국운이 걸려있던 구한말에 저자가 묘사했듯 ‘우리는 연기력 부족으로 19세기 새로운 무대에 퇴출당했다.‘고 결론냈지만 내부적으로 국왕의 여러 개혁 시도가 좌절되고, 뿌리깊은 성리학의 왜양일체론적 논리만으로 일본의 침략 의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국권이 피탈된 것은 불행한 일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다만 그 원인과 그에 따른 결론은 일방적인것은 아니며, 책임을 물어야한다면 애써 현실을 외면했던 식자층 대부분과 심지어 시개상황을 면밀히 주시하며 노력했던 국왕을 좌절케 한 이들의 행동을 더 비판해야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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