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 이렌 네미롭스키 선집 4
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이상해 옮김 / 레모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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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본명이 이리나 르보브나 네미로프스카야인 이렌 네미롭스키는 1903년 2월, 당시 러시아 제국에 속해있던 우크라이나 키예프(현재는 키이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부친은 레프 보리소비피 네미로프스키로 당시 키예프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은행가였습니다. 모친인 파니 요보브나 마리골리스 네미로프스키로 그녀에게는 별다른 가정사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딸인 이렌과 적잖은 불화를 겪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런 어머니와의 불안정하고 불행한 관계는 그녀의 많은 작품에서 주요한 뼈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시작될 무렵의 불온한 기운을 읽은 그녀의 가족은 러시아 제국을 떠나, 잠시 핀란드로 이주하게 됩니다. 1918년을 그곳에서 보낸 후, 그녀의 가족은 파리에 정착하게 됩니다. 네미롭스키는 곧 소르본 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고 18세가 되던 해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1929년에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 많은 딸과 유대인 은행가의 이야기를 담은 '데이비드 골더 (국내에 번역된 제목은 『몰락』)'를 출간합니다. 이 작품은 프랑스에서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이듬해인 1930년, 줄리앙 뒤비비에 감독에 의해 영화화가 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데이비드 골더의 원작자가 밝혀졌을 때, 당시 프랑스 문단은 여성 작가가 어떻게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는지 놀라워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쌓은 작가적 명성을 통해, 그녀도 파리에서 꽤나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8년에 자신이 신청한 '프랑스 국적' 취득이 당국으로부터 최종적으로 거부당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녀는 1939년에 유대교에서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인데요. 더욱이 극단적인 민족주의 잡지인 '캉디드'와 같은 곳에 글을 기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덧씌워진 '유대인'이라는 혐오는 그 민족의 역사 만큼이나 뿌리가 깊었습니다. 1940년이 되자 네미롭스키의 남편은 더 이상 은행에서 일할 수 없게 되었고, 그녀 역시 유대인이라는 이유 만으로 작품을 출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결국 나치가 수도 파리에 접근하자 그녀의 가족은 부르고뉴 지역의 이시레베크로 급히 피난을 떠나게 됩니다. 이후 부르고뉴와 파리를 오가며 생활했던 네미롭스키는 1942년 7월 16일부터 17일까지 비시 프랑스 정부 경찰이 독일 점령 당국의 지시에 따라 파리에서 유대인들을 체포한, '벨 드 이브 검거 작전'에서 '유대인 무국적자'라는 이유 만으로 연행되어, 당시 오를레앙에 있던 비시 정부의 피티비에르 수용소로 끌려갔고, 1942년 7월 17일, 982명의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나치의 절멸 수용소인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습니다. 이틀 후,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네미롭스키에게 나치는 유대인 식별 번호를 새겼고 이로부터 한달 후 쯤에 그녀는 장티푸스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녀의 남편 역시, 1942년 11월 6일,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즉시 살해되었습니다. 작가 자신과 남편의 이 불행하고 비참한 죽음은 유대인이기 전에 프랑스인과 다름없었던 그녀의 삶 자체를 유럽에 의해 인정 받지 못한 것이며, 나치 독일은 그 엄혹한 체제 만큼이나 인간이라고 전혀 볼 수 없는 잔혹한 행위 등을 국가 사회주의이라는 미명하에, 주저 없이 시행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정권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작품은 원제, "Les Chiens et les loups"로 지난 1940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3년 9월, 번역 출판 되었습니다. 특히 이 '개와 늑대'는 그녀가 살아 생전에 마지막으로 출간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렌 네미롭스키가 쓴 이 특별한 작품의 의의는 유대인과 그 민족을 다른 여타 문학들과는 달리, 그동안 우리가 명확히 알지 못했던 1900년대의 유럽, '유대인 디아스포라'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고 있는 점입니다. 특히 1900년대 초, 러시아 제국의 통치하에 있던 우크라이나에서 유대인들 현지인들과 따로 분리한 '게토'가 이미 존재했다는 부분과, 이 게토가 실상은 많은 부와 권력을 가진 최상위 유대인 계층과 그렇지 않은 유대인들로 거주 구역을 나눴다는 놀랄만한 서사가 무엇보다 눈에 들어왔습니다. 또한, 이 작품에서 의미심장하게 다루고 있는, "그럼에도 돈이 많은 유대인은 쓸모가 있다'는 메타포 자체도 제게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기도 했는데요. 여기에 작품 서두에 등장하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에 대한 언급 역시, 이 대다수 유대인들이 실제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배타적이고 몰이해적인 혐오에 직면하고 있었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러시아를 비롯한 각지를 오가며 물건을 팔고 있는 이스라엘 시너는 아내를 여의고 홀로 남은 딸을 힘겹게 키우고 있는 중년의 인물입니다. 아마도 키예프로 추정되는, '우크라이나 어느 도시'의 하층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구역에 허름한 집을 갖고 있는 이스라엘은 딸의 외할아버지인, 장인까지 부양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렇게 겨우 겨우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름만 사촌 동생의 부인이 남편을 잃고 그에게 의지하기 위하여 오게 되는데요. 아마도 유대인들의 관습 상, 혼자가 된 집안의 여인과 남은 가족을 친척이 부양하게 되는 의무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기존의 빠듯한 생계에도 불구하고 시너는 별다른 군말 없이 이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의 딸인 아다에게는 어린 나이에 겪게 되는 환경의 변화로 이렇게 대면하게 된 '라이사 숙모'와 마찬가지로 사촌 남매인 릴라와 벤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 '러시아 기병대'를 비롯한 군중 무리들이 유대인 게토 지역을 침범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는 당시 암묵적인 사주로 이뤄진, '포그롬 pogrom'이라는 유대인 약탈 행위이자 박해이기도 합니다. 아다의 아버지와 숙모가 야밤에 아직 어린 아다와 벤을 좀 더 안전한 지역으로 보내는 와중에 그들의 식모이자 하녀인 나스타샤와 부지불식간에 떨어진 이 두 아이들은 유대인 상류층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자신과 성은 동일하지만 완전히 다른 '시너'의 대저택이 그곳이었습니다.바로 이때, 아다의 남은 평생을 의식하고 좌우하게 될. '해리 시너'와의 극적인 조우가 이뤄집니다. 물론 이 만남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대면이기도 했습니다. 극에서 로스차일드와 비견될 정도로 부유하고 권력층과 유대가 깊은 본래의 '시너 가문'은 유대인 사회에서 독보적인 존재들이기도 헸는데요. 그들은 러시아 제국에서 큰 돈이 될 만한 사업들을 하고 있었고 이들 유대인들이 당시 상류층에게 특별한 '돈줄'임과 동시에, 이 가문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것이 자신들의 이득에 기여할 것임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돈 많은 유대인'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처럼 이득이 될 만하다는 서사를 확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해, 극중에 등장하는 "유대인에게는 부유함이 곧 구원이다"라는 증언에 가까운 읊조림은 그야말로 '현실의 확인된 서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네미롭스키의 이 작품은 돈이 있는 유대인 상류 계층과 그렇지 않은 유대인들과의 확연히 분리된 인식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거듭 반복해서 드러내게 됩니다.

이때 딸의 갑작스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아다의 부친인 이스라엘 시너는 그에게 있어 '시너 본가'의 혜택을 입게 됩니다. 극중에서 '그다지 똑똑하지는 않지만 꾀를 부리지 않고 꾸준한 성실성'을 몸으로 체득한 그는 일련의 시험을 거쳐, 성공적으로 시너 가문의 일에 스스로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그는 딸과 가족을 부양하는 데, 돈이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데요. 물론 하루 아침에 풍족하고 부유할 수는 없겠지만 이들은 어느 정도 삶의 여유를 느끼게 됩니다. 이런 와중에서 자신의 딸에 대한, 야심만만한 야망을 갖고 있던 라이사는 딸과 조카인 아다의 교육을 위해, 파리로 이주해야 한다는 욕망에 사로잡힙니다. 그녀는 여기에 있어봤자 나날이 미모를 드러내고 있는 큰딸의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에 라이사는 프랑스에서의 경험을 갖고 있는 '마담 미미'와 협력하여, 이스라엘을 강하게 설득했고 이때 이들이 내세운 근거는 외동딸인 '아다의 더 나은 교육 기회'였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들불처럼 러시아를 휩쓸자, 이스라엘 시너의 사업 역시, 기존의 안정을 박탈 당하게 됩니다. 자신의 딸과 제수 가족에게 꼬박꼬박 생활비를 보내주던 시너의 돈이 결국 마르게 되자 라이사는 부득이하게 생계를 위해, 그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 '옷 수선집'을 차리게 됩니다. 이때 자신의 딸보다 더 뛰어난 미모를 꽃피우고 있던 아다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라이사는 종종 그녀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저주를 퍼붓기도 했습니다. 어렸을 적, 해리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반추하고 그때의 기억을 자신의 생명처럼 여기며 살아가고 있던 아다는 숙모의 독심으로 말미암아, 더욱 내면으로 침잠하게 됩니다. 극중에서 자신이 돈 많은 남자를 골라 결혼했던 라이사와 마찬가지로 딸에게도 그러한 기회를 주고자 노력하는 라이사와, 아다는 완전히 대립되는 캐릭터로 자리합니다. 아마도 당시 좋지 않은 환경에 놓여있던 많은 여성 유대인들이 가졌을 법한, 소위 '상향혼'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던 아다는 무엇보다 '잔잔한 일상'과 '마음 가는 대로 살 수 있는 환경'을 열망합니다. 이는 단순한 서사로 봤을 때, 라이사가 그녀에게 행하는 손찌검과 증오에 가까운 발언 등이 직접적으로 아다를 무너뜨리지는 않았지만,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사촌인 벤과의 결혼을 감행하는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주인공인 그녀가 '상향혼'을 거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전혀 없는' 결혼을 선택하게 된 것인데요. 그런 연유로 그녀가 집착하는 '해리에 대한 열망'이 이런 의도적인 설정에서 더욱 도드라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와 멀어지는 것을 감안하고 그동안 흠모해 왔던 아다와 결혼한 벤은 그 시대가 표출했던 '유대인들에 대한 편견'을 복합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입니다. 자신이 추구해야 될 것은 오로지 '돈'이며, 이것은 유대인들의 숙명이라고 언급하기까지 합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다에게 보이는 집착에 가까운 마음과 반대로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점'을 체념하며 받아들이는 면모 또한 함께 드러냅니다. 그런 연유로 그는 무엇보다 아다가 있는 집을 벗어나 하염없이 외부로 겉도는 상황을 반복합니다. 이런 와중에 유년 시절에 겪었던 우크라이나 (러시아 제국 하의)와 무의식의 영역에서 자신을 지배한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극복할 수 없었던 아다는 '특유의 유대인의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엄혹한 분위기이면서 시대의 어두운 분위기를 안고 있던 유대인들의 면면과 그들이 처해 있던 도시와 환경을 그려내는 것으로 그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게 됩니다.

해리 역시, 아다와 마찬가지로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어린 시절 '포그롬'에 대한 기억을 선연하게 갖고 있습니다. 자신을 포함한 유대인 민족에 대한 양가 감정과 명확히 분리되지 못한 인식과 그것에 사로잡힌 삶을 그는 동시에 영위하고 있었는데요. "해리는 유대인 특유의 결점과 마주할 때면 기독교도보다 더 예민하고 격하게 눈살부터 찌푸렸다."는 후반부의 서사는 이를 증명합니다. 여기에 "갈망하는 것을 얻으려는 그 끈질긴 에너지, 거의 본능적인 욕구, 주변의 눈치를 볼 줄 모르는, 체면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뻔뻔함, 그의 정신 속에서 이 모든 건, '유대인의 불손'이라는 오직 하나의 이름표 아래 정리되었다" 부연 설명됩니다. 이처럼 해리는 자신이 분명한 유대인의 후손이면서도 반쯤 왜곡된 그 '유대인 정체성'을 혐오합니다. 아마도 그런 연유에서 순수 프랑스인이었던 로랑스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애정 없이 결혼한 것이기도 한데요. 물론 그의 아내인 로랑스의 부친이 부유한 은행가이긴 했지만 해리가 돈 때문에 로랑스와 결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그에게 장인이 되는 로랑스의 부친은 애초에 이 결혼을 반대하는데요. 그는 어릴 때부터 크게 반항하지 않은 막내딸이 해리의 청혼을 받았다는 말에 가당치도 않다는 식으로 대처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동쪽으로부터 오는 것들"에 대한 극심한 혐오를 드러냅니다. 저는 이 부녀의 서사에서 작가인 네미롭스키가 생전에 프랑스 사회에서 어떠한 냉대를 받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동쪽에서 온 유대인'이라는 설정은 당시 서유럽인들의 정서에는 어떠한 인종주의에 놓여 있었는지 짐작하게 할 만합니다. 그럼에도 작중에서 해리는 그녀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더불어, 그동안 유대인 전통에 따른 '혈통 결혼'에 은연중 거부 의사를 가졌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자신을 애지중지 키운 어머니와 집안의 혈통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충동적인 모험의 길로 스스로 이끌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후, 파리에서 다시 해리와 재회하게 된 아다와 이들을 둘러싼 벤과의 연민과 갈등을 주축으로 극은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물론 직전에 읽었던 '몰락 (데이비드 골더)'과는 다르게 극의 전환에 있어 당사자들의 '몰락'은 예견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를 사실상 유인한 벤 역시, 아다를 떠나는 것으로 끝나고 아다는 스스로 마음이 찢어지고 고통에 처하지만 해리의 안전과 삶을 위해 그의 곁에서 멀어지는 것을 결정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해리의 아내인 로랑스에게 있어, 아다가 차라리 그의 정부(情婦)였다면 쉽게 잊고 넘어갈 일이었지만 아다와 해리 이 두 사람이 "서로에게 정서적으로 그리고 함께 기억을 공유하는 친구이자 특별한 우정 관계"라는 용서할 없는 그 관계성이 자신을 더욱 나락을 이끌었다는 간접적인 묘사는 큰 설득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연계가 상당히 상투적으로 느낄 수도 있지만 온전히 자신의 사람이 될 수 없는 사람과의 관계 지속은 그야말로 '심연의 고통'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저 역시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다가 맞게 되는 인생의 제2막은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았는데요.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자세히는 언급할 수는 없겠으나 극이 일관되게 설명했던 아다의 개인적 인생사와 맞물려, 그동안 그녀가 견지했던 삶의 방향성과 마지막의 예상치 못한 장면은 서사의 관점에서 통일된 느낌이 들지가 않았습니다. 물론 여자에게는 갈망과 두려움 그 사이를 넘어서는 중요한 문제겠으나 만약 이 부분에 조금이라도 해리와 연관되어 있다면 마지막 그녀가 의미심장하게 독백하는 '그와의 연결성'에 대한 언급은 적당한 대미를 장식하기에 충분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점이 아마도 이 작품의 열린 결론이라는 증거일 수도 있겠습니다. 전체적으로 극의 종결은 어느 정도 모호하게 마무리되고 있어서 작가인 네미롭스키가 의도적으로 이런 부분을 염두해 두지 않았나 잠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 본문 229 페이지에 편집 오류인지 한 문장에 두 번이나 마침표가 찍혀 있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 마찬가지로 본문 280페이지에 오타 한 곳이 있었습니다.


- 책 제목과 관련해, 극의 후반부에서 '벤과 해리'로 암시 되는 구절이 있었는데요. 개와 늑대로 대비되는 이 두 종은 극명한 점과 더불어, (종과 사회적인 인식 사이에) 유사한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제목의 차용 자체는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니콜라이 2세가 지배한 20세기 초의 러시아에서는 유대인의 거주가 몇몇 주거지역과 몇몇 구역, 몇몇 거리로 한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상점들도 군인들 틈에 섞여서 종교와 상관없이 약탈을 일삼는, ‘비렁뱅이‘라 불리는 인간 말종들의 습격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처럼 어마어마하게 돈이 많은 사람의 생각은 하늘에 거하는 사람들의 생각만큼이나 고상하고 기묘해서 평범한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일 터였다.

그녀에게는 억척스러운 유대인들이 스스로 찾아내지 못하는, 낙천적이고 정겹고 부드럽고 유쾌한 삶의 방식이 있었다.

그가 그 여자아이 앞에서 그렇게 덜덜 떤 것은 그의 눈에 그 여자아이가 가난뿐만 아니라 불행을, 전염될 수 있는 질병처럼 이상하고 불길하게 전염되는 불행을 표상했기 때문이다.

해리가 아름다운 책들을 집어 어루만질 때면, 아다는 그의 민첩한 갈색 손이 황갈색이나 붉은색 표지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걸 바라보며 진정한 황홀감을 느꼈다.

모든 유대인이 그렇듯, 해리는 유대인 특유의 결점과 마주할 때면 기독교도보다 더 예민하고 격하게 눈살부터 찌푸렸다.

아다는 상류사회에 진출하거나, 인맥을 쌓고 돈을 벌기 위해 해리와의 관계를 이용하는 것은 비열한 짓이라고 여겼다.

"아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것이기 전에 너의 것이었어. 로랑스가 정확하게 봤어. 내가 로랑스 비슷한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면, 그녀는 날 용서했을 거야. 그래, 로랑스가 결코 용서하지 못하는 건 바로 너야. 우리와는 다른 누군가가 묶어 놓은 것을 푸는 건 우리의 능력 밖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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