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남자 - 개정판 폴 오스터 환상과 어둠 컬렉션
폴 오스터 지음, 김현우 옮김 / 북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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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소설가이자 시인, 영화 제작자였던 폴 오스터는 1942년 2월 3일, 미국 뉴저지 주 뉴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은 사무엘 오스터로 저지 시티에서 형제들과 함께 건물 소유했던 지주였고, 모친인 퀴니 보갓으로 평범한 가정 주부였습니다. 이 부부는 일종의 이민자들로 오스트리아계 유대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스터가 고등학교 3학년 때가 되던 해에, 부모는 이혼하여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뉴어크 위콰히크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하게 됩니다. 다른 가족이었던 삼촌은 당시 큰 명성을 갖고 있던 번역가 앨런 만델바움이었습니다. 오스터는 뉴저지 주 사우스오렌지와 뉴어크 등지에서 자랐고, 메이플우드에 있는 컴럼비아 고등학교를 졸업합니다. 그는 1970년 컬럼비아 대학에서 영문학과 비교문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은 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여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프랑스 문학 번역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1974년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후, 그는 스테판 말라르메와 조셉 주베르와 같은 프랑스 작가들의 시, 에세이 등의 번역 작업을 지속하는데요. 이후 1982년에 호평 받은 데뷔작인 『고독의 발명 』으로 말미암아 『뉴욕 3부작』역시 큰 명성을 얻게 됩니다. 1980년대까지 꾸준하게 작품을 발표했던 오스터는 1990년대 후반 영화 제작에 확고하게 전념한 후, 남은 20년 동안은 다시 소설과 회고록으로 작품 방향을 전환하게 됩니다. 작품 활동을 제외한 자신의 외적 활동과 관련해, 오스터는 스스로의 정치 성향을 "민주당 보다 더 좌파적이라고 설명했지만 자신의 표가 사표가 될 것 같아 민주당에 투표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2023년 3월 11일, 오스터의 아내 시리 허스트벨트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가 2022년 12월에 암 진단을 받았고, 뉴욕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 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지속적 치료에도 불구하고, 폴 오스터는 2024년 4월 30일 브루클린 자택에서 폐암 합병증으로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Man in the Dark"으로 지난 2008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도 2008년 9월에 초도 번역이 이뤄졌습니다. 제가 구입한 번역본은 개정판으로 2025년 9월, 출판된 판본입니다.

극의 주인공인 오거스트 브릴은 현재 일흔두 살로, 1984년에 퓰리처 상을 받았을 정도로 명성을 얻은 비평가였습니다. 그는 자신 스스로를 "구덩이에 밀어 넣었다"고 말할 정도로, 사랑했던 아내가 암으로 떠난 뒤, 삶이 망가지는 정도가 아니라 무너지는 단계에 이른 상황입니다. 이런 그에게는 유일한 딸이자 자신과 마찬가지로 글을 업으로 삼으려는 미리엄과 그녀의 딸이자, 손녀인 카티야가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자신의 손녀 역시, 이제 시작된 인생에서 더할 나위 없는고통을 당하고 말았는데요. 카티야의 남자 친구였던 타이터스 스몰이라는 친구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이 타이터스 스몰이라는 청년의 죽음에 대해, 작가인 폴 오스터는 서두에 교묘한 함정을 만들어 놨습니다. "질병에 시달리는 젊은이"라는 표현이 물론 정신과 육체, 모두 해당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마치 큰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것처럼 배경을 유지했는데요. 후반부에 드러난 정확한 그의 죽음을 통해, 왜 손녀인 카티야가 그렇게 자신을 세상과 단절시켰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노년의 주인공인 브릴도 말년의 큰 과제를 손녀인 카티야의 '세상으로의 복귀'로 삼은 만큼, 할아버지와 손녀라는 관계는 결국에 서로를 좀 더 면밀하게 알아가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포함되어, 두 사람의 크나큰 아픔을 어느 정도 상쇄시키는 위력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오거스트 브릴의 남은 삶을 이끄는 힘은 오로지 손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귀한 손녀는 자신과 세상을 떠난 아내 소니아와의 귀한 재결합을 가능케 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노년의 오거스트 브릴의 이야기와 또 다른 이야기인, 오언 브릭의 서사가 메타 소설처럼 이어집니다. 이 오언 브릭의 따로 이어지는 별개의 이야기는, 바로 오거스트 브릴이 쓰고 있는 작품으로 설명되는데요. 작가인 오스터에 의해 이 의미심장한 브릭의 스토리는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즉, 오언 브릭만의 세계와 사건들이 2000년대 초반의 미국 정치를 몸소 체험한 작가에 의해,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인데요.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오언 브릭은 갑작스럽게 평행 세계로 이동하게 됩니다. 미국은 연방군과 독립군의 내전으로 치달은 상황입니다. 이것의 서사는 오스터 답지 않게 그다지 정교하지는 않지만 2000년 대선에서 대법원 판결 직후 주요 도시에서 발생한 시위가 끝내 폭동으로 이어져 유혈 사태로 번졌고, 뉴욕시와 자치구 대표들이 주도한 분리 독립 운동은 연방군의 공격으로 8만명의 무고한 피해자들을 낳습니다. 역사적으로 2000년의 미국 대선은 조지 W. 부시와 민주당의 앨 고어의 대결이었습니다. 이때 앨 고어가 승복해 최종적으로 조지 W. 부시가 백악관의 주인이 됩니다. 오언 브릭이 체험한 평행 세계에서는 이것을 아주 처절하게 비튼 것이죠. 연방 대법원의 판결에 반대하던 일부 미국 시민들이 봉기에 나섰고 여기에 호응했던 13개 주가 연방에 맞서 분리 독립하게 됩니다.

앞서 폴 오스터 작가의 고유한 정치 성향에 대해 설명을 드린 바가 있습니다. 그는 평소에도 민주당보다 더 왼쪽이라고 했으니, 별개의 액자 소설로 봐도 되는 브릭이 겪게 되는 평행 세계의 '미국 내전'은 오스터 그 다운 발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앞선 오거스트 브릴과 여기의 오언 브릭의 복잡한 셈법은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여기까지만 밝히겠습니다. 다만, 독립군의 자치 지역이 전국민 의료 보험 제도를 적용할 정도로 루즈벨트보다 더 진보적인 체제로 나아갔다는 점과 독립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조지 W. 부시의 이름을 꺼내는 것조차 꺼려하는 모습은 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더욱이 이어지는 서사에서 딕 체니와 도널드 럼스펠드를 '파시스트'라고 주장하는 장면에서는 촘스키가 말했던 "누가 이들에게 전쟁을 할 권리를 주었는가"라는 대목이 절로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오스터는 개인이 지나온 역사와 그 속에서 살았던 인물들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영위했는지를 매우 기록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는데요. 실례로 1967년 뉴어크에서 있었던 인종 폭동인 '뉴어크 폭동'이 오거스트 브릴의 가족사를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저 역시도 놀랐던 부분입니다. 또한, 뉴어크 폭동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뉴어크로 차를 몰로 갔던 일은 지옥의 밑부분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는 작가인 폴 오스터와 오거스트 브릴이 혼재된 나레이션은 이때의 상황을 실감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히, "도시에 있는 흑인 새끼들은 모조리 사냥할 겁니다." 라고 말하는 전직 대령 (아마도 백인이겠죠)의 서슬퍼런 모습은 '미국의 실체'에 대해 알리려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종언의 극적이고 비참하면서, 현대사의 오명이라고 볼 수 있는 장면을 앞선 타이터스의 죽음으로 극대화 시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인 오스터는 극명한 '선한 사람들'과 전쟁과 폭력 그리고 증오의 시대를 건너는 이들의 삶이 과연 어떻게 무너지지 않았는가를 의식적이지 않게, 교묘하게 탐구하고 있었는데요.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아주 격정적이지는 않지만 오거스트 브릴의 입을 통해, 손녀인 카티야에게 전해지는 그가 살아온 잔잔한 삶의 궤적들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어린 나이에 아내를 통해 구원을 받았다는 감정, 그들 사이에 태어난 작은 딸, 누나와 매형의 불행한 삶, 결혼 생활의 부침을 감내하며 큰 실수를 저지르고 태어난 손녀를 통해, 두 부부가 진정 삶의 구원을 받게 되는 이야기는 작중 오거스트가 거쳐간 일상들이 절로 떠오를 정도였습니다. 더욱이 그토록 선한 아내를 만나게 되는 과정과 세상을 떠난 아내인 소니아가 얼마나 인간적으로 훌륭하고 아름다운지, 눈에 보이는 미사여구나 도가 지나치는 서사 없이, 담백한 시선 처리와 언어로 이를 만들어낸 작가의 능력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우리는 한번 이상 '끔찍한 사랑'에 대해 회고하기도 합니다. 지독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던 내가 내 자신이 아니었던 시절의 맨 모습은 누구나 기억하고 있겠죠. 여기의 다른 주인공 혹은 서사의 조력자라고 볼 수 있는 오언 브릭이 자신을 만들어낸 오거스트 브릴의 다른 자아라고 애써 해석한다면 브릭을 구성하는 모습의 대부분이 오거스트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이며, 이 두 사람은 본질적으로 매우 이질적인 환경과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젋든 늙었든, 부자든 가난하든,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기습해 오듯 우리에게 닥치고, 무감각한 상태에서 깨어난다"는 브릭의 예상치 못한 결말을 설명해주는 듯한, 이 작중 금언은 마치 이디스 워튼이 자신의 작품에 녹여낸,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쉽게 부서질 수밖에 없다"는 서사가 문득 떠오를 정도입니다. 과연 내가 내 삶에서 얼마나 통제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는 역시나 돈의 문제 아만은 아니었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문장 중에, 분명하게 이어지는 서사와 함께, 다음의 문장이 눈에 밟혔습니다. "오직 선한 사람들만이 본인의 선함을 의심하고, 무엇보다도 바로 그 점이 그들을 선하게 만들어준다."는 먹먹한 문단과 함께, 이들 선한 사람들은 남들은 쉽게 용서하지만 자기 자신은 쉽사리 용서하지 않는다는 점층된 설명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기도 했습니다. 아마 제가 그다지 선한 인간이 아니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거스트가 정말 선했던 아내에게 자신의 과오를 용서 받았기에, 그리고 아내가 자신을 남겨두고 떠난 것이 "왜 좆 같은지". 이 때문에 나는 내 삶을 궁지로 몰 수밖에 없었다는 전반부의 서사가 너무 의도적이지 않나 싶었지만 손녀를 통해, 다시 밟는 인생 경로와 그의 참회는 소시민들에게는 분명하게 충격으로 다가왔을 미국의 굴직한 그리고 부정적인 현대사와 맞물려, "당신은 이딴 세상에 왜 나를 남겨두고 갔는가"를 오거스트의 입을 그려보며,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죽은 아내를 몹시도 그리워하며 회상하는 한 어둠 속의 노인을 극에서 꺼내 그런 희한한 세상에서도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희망 무언가를 찾았느냐고 되물어보고 싶을 따름입니다. 여기까지 우리에게 명시를 넘어선 각인의 삶을 보여준 작가는 그럼에도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는데요. "그럼에도 괴상한 세상은 굴러간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의 삶도 여전히 굴러갈 것이란 말이다"라는 역사 앞에 놓인 개인의 읊조림처럼 내뱉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자신의 내면을 울릴 뭐라도 건질 수 있다면 그 삶은 그나마 온전하게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를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말입니다.


- 본문 226 페이지에 오타 한 곳이 있었습니다.

- 극 중 오거스트의 출신 학교가 컬럼비아 대학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캐릭터는 작가인 폴 오스터의 모습이 투영된 인물로 짐작되었습니다. 책과 관련된 일도 그렇거니와 오랫동안 문학계에서 일한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실패와 의존성, 무질서, 규칙이 무너지는 것과 원칙이 손상되는 것을 극히 싫어했고, 그만큼이나 겁쟁이들도 싫어했다.

괴상한 세상, 만신창이가 된 세상, 주변의 온갖 곳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괴상한 세상은 굴러간다.

당신 세계에서는 그랬겠지. 프리스크가 말한다. 하지만 이쪽 세계에서 자네는 매사추세츠 7사단 상병이야. 미국 독립주 연합군 소속이지.

오직 선한 사람들만이 본인의 선함을 의심하고, 무엇보다도 바로 그 점이 그들을 선하게 만들어준다. 악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하다고 알고 있지만, 선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며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지만, 자기 자신은 용서할 수 없다.

법학대학원, 그에 이은 성공적인 변호사 활동과 점점 더 깊어지던 민주당과의 관계. 이상주의적인 좌파 자유주의자. 1960년 대선후보 지명전에서 스티븐슨 지지. 애틀랜틱 시티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엘리노어 루즈벨트 수행. 그리고 1962년 혹은 1963년 뉴어크를 방문한 케네디는 매형과 악수하며, "우리는 당신에 대해 아주 대단한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라고 인사했다.

그럼에도 정해진 시간이 다가왔을 때 그녀는 해야 할 일을 했고, 노란색 별 장식을 소매에 두른 채 공원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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