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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알라딘 리커버 특별판) - 2024 부커상 수상작
서맨사 하비 지음, 송예슬 옮김 / 서해문집 / 2025년 6월
평점 :
1975년생인 서맨사 하비는 부모의 이혼 전까지, 잉글랜드 남동부 켄트 주의 메이든스톤 인근 디튼에서 10년을 살게 됩니다. 이후 모친은 아일랜드로 이주했고 하비는 요크, 셰필드, 일본 등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십 대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그녀는 대학의 정규 교육 과정을 시작할 나이가 되자, 영국으로 돌아와 요크 대학과 셰필드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합니다. 그리고 2005년에는 바스에 있는 공립 대학인 바스 스파 대학에서 창작 글쓰기 관련 석사 과정을 수료하게 됩니다. 그녀의 첫 소설은 '황야 (The Wildeness)'로 2009년에 나왔고, 이후, 2012년에 '모든 것의 노래 (All Is Lost)', 2014년에는 디어 시프 (Dear Thief), 2018년의 '서풍 (The Westren Wind)' 그리고 2023년에는 '궤도 (Orbital)'가 출간됩니다. 그녀의 소설은 맨부커상, 베일리스 여성 소설상, 제임스 테이트 블랙 기념상, 월터 스콧상 등 많은 상의 후보로 거론되었고, 2010년에는 '더 걸쳐 쇼' 에서 선정한 최고의 신인 영국 소설가 12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녀의 작품들 가운데, 궤도는 2024년에 부커 상과 호손든 상을 수상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책은 원제, "Orbital"로 지난 2023년에 출간되었고, 국내 초도 번역은 2025년에 이뤄졌으나 제가 구입한 판본은 '알라딘 특별판'으로 리뉴얼 되어, 2026년 3월에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근래 출간된 영미 소설들 가운데 하비의 '궤도' 만큼, 크게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은 없을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을 지난 추석 때, 본가에 있는 작은 동네 서점에서 구입을 할까 망설이다 놓고 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시류에 이끌려 특정한 글을 보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저로서는 내심 이 작품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으나, 알라딘의 상술(?)에 완전히 굴복하여 이번에 특별판으로 구매를 하게 되었습니다. 책 정면의 제목은 명품 시계의 '선레이 처리'처럼 빛의 각도에 따라 글자들이 빛나는 형태로 나타나고, 양장 역시 고급스런 코팅을 통해, 공을 들인 노력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이 국내에서 '특별한 판'이 나올 정도이니, 그 인기를 실감할 정도입니다.
하비의 이 소설을 완독하자마자 처음 들었던 생각은 잘 차려 입고 적잖은 돈이 있어 보이는 남녀가 이 세상에 대해 약간의 '지적 허영'을 포함한. 잘 포장된 진보적 의식를 백화점 쇼윈도에서 보는 것 마냥, 상품처럼 관찰할 수 있는 느낌을 들게 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인간이 이룩한 문명의 진보가 확연히 이 지구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는가와 또한 인간으로 한정하여, 각자가 지니는 삶의 태도는 완전하거나 완벽할 수 없으며, 그 삶 조차도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하지 않으면 온전할 수 없다는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주제 의식을 담고 있었습니다. 얄팍한 관념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과학과 종교를 적절하게 얼버무렸으며, '딥스테이트와 세계 대전'을 함께 언급하는 것처럼, 앞으로의 총체화된 인간 문명의 그 끝이 어디에 있을지도 나름 경고하기도 하는데요. 이 작품에서 '잘 포장된' 오늘날 문명의 어두운 측면과 거기에 드러나는 인간 소외 및 삶의 파편화와 같은 문제들을 철학적 관념과 약간의 종교적 색채를 가미함으로써, 뭔가 마음의 의도적 평안(물론 안도감과는 거리가 있는)과 서사의 연계를 통한 포괄적인 지적인 만족을 독자들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인기를 간접적으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우리의 지구 위에 떠있는 우주 정거장에서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우주 비행사' 혹은 '과학자'들인 안톤, 로만, 넬, 치에, 숀, 피에트로 이 6인의 사적인 인생과 이들이 거쳐온 삶, 그리고 주변인들의 관계 등을 통해, 부분적으로 독자들에게 삶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거나,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문명이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그다지 간절하지는 않지만 적절한 서사를 통해서 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우주 비행사들이 우주 정거장에서 생활하고 실험하는 장면에서의 풍부한 자료 제시는 물론, 우주 유영과 중력의 문제, 그로 인한 신체의 변화 등과 같은 아주 상세한 장면 장면의 묘사는 탁월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우리가 특정한 SF 장르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정작 진보된 과학이 보여주는 탁월한 요소 보다는 스토리 라인에 숨겨진 핵심 주제가 "분명 소재는 SF물인데, 어느새 정치 스릴러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본말전도가 쉽게 이뤄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비의 이 작품은 고립된 이 우주 비행사들의 외롭고 절제된 삶을 조명하면서 이들이 지구에서 어떠한 삶과 어떠한 인간의 관념을 가졌는지 내밀하게 서술함으로써, 여기에 연계된 여러 일화와 대화들이 우리가 어떠한 배경 위에 삶을 영위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의 일상이 나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를 가늠하게 만듭니다.
미국의 평범한 펍에서 자신의 좁은 인간 관계 만큼이나 그 동네의 아는 사람들과 맥주 한잔을 하는 30대 혹은 40대 가량의 남성이 여기에 등장하는 우주 비행사를 매우 동경한다는 서사는 어떻게 보면 전형적입니다. 이는 우주에 올라가 문제를 일으킬 만한 사람들을 나사에서 전부 걸러낸다는 '우주 비행사 훈련 과정'의 대목을 드러내자마자 앞선 서술은 쉽게 대응됩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누구나 참여할 수 없는 특별한 직업은 그것의 명예나 영광 만큼이나 외롭고 고단할 수밖에 없다는 뭔가 '엘리트주의적인 교조주의'를 느끼게 만듭니다. 지구에서 로켓을 쏘아, 지구 대기권의 우주를 경험한다거나, 다시 달 탐사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유인 우주선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모습 자체는 일개 개인의 특출난 사명감이라든지 책임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쌓아 올린 '인류의 과학 문명이 통째로 기반이 된 시스템 그 자체'일 겁니다. 그 불행한 첼린저 호 폭파 사건을 보더라도 이 시스템의 아주 작은 단 하나의 불안 요소가 무고한 인간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진술 자체는 인간 문명의 진보가 앞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 것인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합니다. 후반부에 언급되는 '딥스테이트'에 대한 의미는 바로 이러한 함축적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오늘날 인간을 위협하는 문제로 대두 될 수 있는 '지구 온난화' 역시 이 작품은 인간들의 정치 문제로 이를 다루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욕망의 정치'로 요약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손에 거머쥐겠다는 인간들의 무분별한 탈도덕적 태도는 마치 극중 피에트로의 딸이 아버지와 문답을 통해 밝히는 "인간의 진보가 마냥 즐겁지 않다"는 서사와 맞닿아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 등장하는 일본인 과학자 치에의 의미심장한 일화 가운데, 1945년 8월에 일본에 떨어진 원자 폭탄과 관련해, 할아버지의 우연한 삶의 구원, 그리고 이 위험한 원자 분리의 폭탄이 치에의 어머니의 대화로, "인류는 언제 멈춰야 하는 지를 몰라. 언제 그만둬야 하는 지를 말이야."로 불만족스럽게 귀결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많은 정치적 수사와 관념적인 비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일본이 원자폭탄을 맞을 수밖에 없었는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인간의 욕망'으로 이를 간접적으로 갈음할 수 있는 것은 그 의미상의 구조로 보건대. 적절해 보이지만 '은연중 도덕이 붕괴한 인간'을 드러내는 작가의 일관된 모습을 봤을 때, 이는 아쉬운 부분입니다.
앞서, 작가가 과거에 일본에서 체류했던 일을 적기도 했습니다만 그래서인지 모르겠으나 산과 자연환경, 일본인들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그것이 바탕이 된 진술들은 서양인의 그것과는 매우 상이한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치에와 그의 어머니는 삶과 죽음이라는 모티브로 이어져, 이 작품의 중요한 서사의 축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우주에서의 중요한 임무 때문에 어머니의 상을 치루지 못한 일본인인 치에는, 그 일본인 특유의 철저한 분리된 관념을 드러냅니다. 어머니가 지구에서 삶을 마치셨다고 동료들에게 밝혔을 때,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지 못한 동료는 울음을 터뜨리지만 막상 치에는 덤덤한 태도를 취하는 모습에서 작가가 일본인들을 허투루 바라본 게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눈 대중으로 이들을 살펴본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끝으로 지구를 회전하며, 그 밑에 사는 인간들과 다른 시각과 삶의 태도 등을 새롭게 견지한 이 6인의 과학자 겸 우주 비행사들이 전형적인 '신과 인간'이라는 직렬적 배경에서 비롯된 차별적인 이해가 느껴져서, 일정 서사에서는 불유쾌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앞으로 있을 인류의 화성 이주나 달 탐사에서 이 우주 공간이 인간의 신체에 미치는 영향과 중력의 차이로 발생되는 문제 등을 선험적으로 조사를 진행하는 일종의 선구자적 의미를 가진다 하더라도 이들을 뭔가 '선택된 사람들'로 간접적으로 규정하거나, 마치 신의 사도와 같은 교묘한 수사로 포장하는 듯 보이는 서술은 역시나, 설득력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이처럼 한 작품에 과학과 종교, 그리고 인간을 적절하게 버무려, 작가 나름의 어떤 통찰을 드러내는 행위는 간혹 특유의 몰이해적 방편이나 관념적 한계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애초에 신과 인간, 그리고 거기에 맞서 진보를 이룩한 인간 문명 자체에 대한 객관적이고 담백한 서사였다면 그럴 수 있겠다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보통 작가들은 자신의 소위 '이데올로그'를 증명하거나 밝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만 하비의 이 작품은 잘 버무려진, 그렇지만 이미 잘 알고 있는 주제들을 적절한 SF소재로 풀어내, 그 때문에 저에게는 그다지 신선한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또한 평범한 삶과 자신이 특별한 임무를 하고 있다는 만족 내지는 우월감의 감각. 이 양자 간의 '특별한 화해' 역시, 그다지 설득력이 없었다고 여겨집니다. 애초에 우리가 이룩한 시스템이 인간을 분류하게 만든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배제하고 이러한 주제를 다룬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 이 부분을 따로 언급할까 상당히 고민했지만 한번 적어볼까 합니다. 지구 궤도에서 상행과 하행을 오가며 낮과 밤의 대륙과 도시들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유독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 심지어 북한도 언급되지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한국은 아예 없는 것처럼 나옵니다. 밑에 타이완도 수차례 장면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죠. 저는 그저 실소가 나오기만 했는데, 왜냐하면 이 부분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그 무엇이든 간에, 정말 웃기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 극중에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 크로노그래프 모델이 등장하는데, 이 장면도 매우 전형적으로 우주 비행사가 남성적인 직업이라는 것을 드러냄과 동시에 치에가 여태 일본에 여자 우주 비행사는 없는지 묻는 장면과 묘하게 오버랩되기도 합니다.
그러다 집에 가기 싫어진다기 보다 집이라는 개념이 내파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자주 느끼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말하자면 그건 융합의 감정이다. 자신들이 서로와, 또 우주선과 구분되어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때까지 버림받은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우리는 우리의 기술, 지식, 지성을 탁월한 수준으로 올려놓고, 온전히 다 해소할 수 없는 성취욕으로 안달이 나고, (여전히 대답이 없는) 우주 공간을 바라보고, 그래도 꿋꿋이 우주선을 짓고, 외로운 우리 행성을 수없이 돌고, 똑같이 외로운 달에 잠시 가서 무중력 상태의 당혹감과 경외감을 느끼는 와중에 이런 생각에 잠긴다.
어느 행성의 우주선이 눈앞을 지나쳐 간다는 건 그 얼마나 예기치 못한 기이함인가.
넬은 가끔 숀에게 묻고 싶다. 우주비행사이면서 어떻게 신을, 그것도 천지를 창조한 신을 믿을 수 있느냐고. 하지만 무슨 대답이 돌아올지 알고 있다.
가끔은 파괴적이고 상처를 입히고 또 가끔은 이기적이겠지만, 살아 있기에 아름다워.살아 숨 쉰다는 점에서 진보도 그렇단다.
그걸 제공하는 인물들은 어느 구석이라도 혁명적이거나 혜안이 깊거나 현명한 관점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목소리가 크고 힘이 세고 과시에 능하고 뻔뻔하게 권력 싸움을 갈망했기에 그 자리까지 오른 자들 아닌가.
이들은 비로소 욕망의 정치를 목격한다. 성장하고 획득하는 정치,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10억 가지의 외삽적 추론, 지구를 내려다보면 그게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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