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리는 개 안온북스 사강 컬렉션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유진 옮김 / 안온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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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옥시타니 레지옹의 카자르크에서 태어난 프랑수아즈 사강은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큰 명성을 얻은,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였습니다. 부유한 부르주아 부모 밑에서 자라난 그녀는 친증조모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러시아인이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익히 알다시피 필명이기도 한, '사강'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한 인물에게서 따온 것이기도 합니다. 사강은 평생에 걸쳐, 두 번의 결혼 생활을 했는데요. 첫번째 남편은 20살 연상의 아셰트 지의 편집자였고, 두번째 남편은 밥 웨스트호프로 젊은 미국인이었습니다. 이에 사강은 평생 동안 수십 편의 작품을 써냈고, 그녀의 삶이 관통한, 1950년대에 실험적인 누로 로망의 시대에 고유한 작품만으로 큰 명성을 쌓기에 이릅니다. 이와는 별개로 2000년대에 이르러 갑자기 그녀의 건강이 악화되었는데요. 그동안 쌓아 온 자신의 명성을 심각하게 추락시키는 소위 정치적 스캔들을 몸소 겪다, 2004년 9월 24일, 옹플뢰르에서 그녀는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녀의 이 책은 원제, "Le Chien Couchant"으로 지난 1980년에 초도 출간되었고, 본격적인 번역은 1984년에 이뤄집니다. 국내 번역은 2011년 번역판을 기본으로, 2023년 11월에 정식 출판 되었습니다.

스스로의 삶이 무미건조하고 무질서한 행렬에 불과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로제 게레는 어느 공장의 회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굴곡이 없는 그저 '평범한 삶'이 주어진,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무료한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금언이 문득 생각날 정도로 게레는 수동적이고 폐쇄적인 인물입니다. 사강이 유독 집중했던 주제이기도 한, 일상적인 남자에게 있어, 어느날 다가온 사랑과 열정에 대한 태도와 그로 인한 극적인 영향이 어떠한가와 더불어,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남성성이 제거된 반대의 극도로 불안한 인격이 예기치 않은 일들의 중첩으로 어떻게 파멸에 이를 수 있는지를 이 작품은 크게 두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남성다움'이라는 단어에 대해 남들과 비슷한 보편적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이성을 가진 한 인간을 그저 남성다움이라는 본래적 관념을 주입해, 그 사람의 인생 전반을 좌지우지 하게 만드는 일련의 사고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는 충분히 공감하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여기 주인공인 게레는 스스로 자초한 어리석음과 또한 주변의 오해와 그를 향한 굴절된 인식으로 스스로 망가질 수밖에 없는 인물이기도 한 데요. 그에게 유일하게 찾아온 '따뜻한 유대'는 어떤 식으로 귀결될지는 충분히 짐작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다만, 그의 하숙집 부인이기도 한 비롱 부인, 즉 마리아와의 육체적 관계는 다소 비뚤어진 게레의 의도로 말미암아 시작됩니다. 저는 이 서사의 초반이 조금 작위적으로 느껴졌는데요. 게레와 마리아가 나이 차를 극복하고 서로 대화와 공감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지만 극 초반에 게레가 비롱 부인을 다소 껄끄럽게 여겼던 부분을 고려해 본다면, '젊은 남자'와 '나이든 여자'의 연애 구도가 막 극적으로 다가오지는 못했습니다. 더욱이 게레에게 결여된, '남성적인 단호함'과 '결단력'으로 인한 스스로에 대한 경멸은 마리아와의 사랑으로 일정 부분 해소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나이든 여자'를 정부로 두고 있다는 주변의 간접적인 경멸에 대해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태도를 지우지 못하는데요. 저자의 입을 통해, 다소 조심스럽게 회자되는 젊은 남자가 '나이든 여자'와 연애를 하는 모습은 소설에서 거의 터부시 취급 되고 있는데요. 이 점은 현재의 사회적 공감대와도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바에서 보여지는 게레와 마리아의 '늙은 여자', '이모'등을 통해 벌이는 한 차례의 촌극은 이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데요. 이와 유사하게 나이든 남자가 젊은 여자를 연애의 대상으로 삼았을 때, 보통의 사람들은 그 나이든 남자가 젊은 여자를 돈으로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고 흔히 생각할 겁니다. 또한 영화 '귀여운 여인'도 그렇거니와, 이러한 소재의 작품들은 의외로 자주 보이기도 하는데요. 반대로 젊은 남자가 나이든 여자를 만나는 상황은 전자와는 상당히 다른 어감을 갖고 있습니다. 혹자들이 말하길, 이는 부자연스럽고 심하게 말하면 역겨울 정도로 인식하기까지 하는데요. 이러한 인습적 배경은 혹여 일반적일 수 있는 관계에 대해 세인들의 '이성적 판단'을 다소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게레와 마리아 사이에는 이런 전자의 인습적 틀 말고도 마리아에 대한 누구나 짐작할 만한 반전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극 초반에 게레가 마리아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 혹은 느낌은 바로 이러한 반전과 연결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요. 여기에 게레가 릴에 위치한 고급 바에서 벌인 난투극과 자신과 마리아 사이의 연결 고리를 갖고 있는 '개'를 둘러싼 페레올의 협박 사건은 극의 반전을 주도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게레가 스스로 능동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것은 그가 강조하는 '따뜻한 연대'에 이른 애정으로, 오직 그가 원하는 사람이 '마리아'임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는 점은 자신에게 있어 삶 자체를 변혁시키는, '넥스트 레벨'그 자체가 아니었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물론 초반에 그가 마리아와 같은 늙은 여자에 대해 갖는 사회적 통념을 완전히 극복하기는 어려웠지만 말입니다. 이는 그가 냉혈한 범죄자 마냥 사람을 17차례나 칼로 찌르지 않았음에도, 누군가를 '17차례나 찌를 수 있는' 결단력의 증거가 거짓이 나마 절실히 필요했던 굴절된 인물로서, 마침내 그러한 왜곡된 인식 하에, 진정으로 스스로 원하는 사랑을 갈구했다는 점은 그의 인생 자체에서 필연적으로 비극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몇 번의 어리석은 결정과 선택을 통해, 진실로 그 같은 일들을 후회하다 결국 비극적 사랑으로 구원 받는다는 이런 이야기의 모체가 우리에게 말하는 바는 그래서 거의 명확하다고 생각됩니다.




- 늙은 여자와 소심하고 남성성이 결여된 젊은 남자의 연애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어쩌면 사강이 다루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너무나 작위적인 설정이 몇 차례나 극에 등장해, 그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소 부족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기도 한 데요. 그럼에도 내면의 문제와 사회적 통념, 이 두 가지 특이점을 소설에 녹인 것은 어느 정도 신선하기는 했습니다.   

그 눈빛이 탐욕스럽고 위협적으로 느껴진 게레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녀가 무서웠다이 여자를 무서워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는 자신을 무자비한 범죄자로 바라보던, 그래서 온종일 진정한 남자로 살게 했던 그녀의 사자같이 형형한 시선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두려웠다.

"모두가 이 진창에서 벗어나려면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걸 보유주기만 할 뿐이지 방법 같은 건 없어. 각자 알아서 하는 거지."

"남자들은 항상 어딘가에서 남성성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지. 사무실에서든 여자들에게서든 늙은 말한테서든, 하다못해 축구장에서든 말이야. 남자들은 항상 그걸 증명해 보이려고 해. 하지만 당신의 상대는 여자가 아니잖아."

그는 누구에게나 그걸 털어놔야 하는지 몰랐지만, 관념의 법정이 어디에선가 그가 호소하러 오길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신경질적이고 고달픈 부모, 쪼들림, 중간쯤 되는 성적, 졸업, 좌절된 야망, 부모의 죽음, 군대, 창녀, 첫사랑, 회계학과, 상송에서의 인턴 생활 등등. 게레는 자신의 삶이 무미건조하고 무질서한 행렬에 불과하다는 것을, 특히 사랑과 모험의 왈츠와도 같은 그녀의 과거와 비교하자면 어떤 매력도 없는 잡동사니에 불과하다는 것을 진작에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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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3-12-26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강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이 작품은 어떨지 오래 고민했습니다.
가장 최근에 읽었던 작품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었거든요. 그런데 베터님 리뷰를
보니 궁금하네요. 읽어봐야겠어요!ㅋㅋㅋㅋ 소설도 매섭게 읽으시는 베터님^^

베터라이프 2023-12-26 22:40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미미님 ^^ 제 개인적인 평가이긴 하지만 사강의 다른 작품에 비해 약간 사건의 연계도 그렇고 작위적인 느낌이 있어요 ㅠㅠ 물론 이 작품에 한해서 말입니다. 그래도 사회적 통념에 대한 약간의 우화로 이해하면 꽤나 생각할 거리가 있습니다 ^^; 제가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하며 썼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 감안하시고 즐겁게 접하시길 빌어요 ^^ 그나저나 무덤에 있는 사강 여사께서 혹여 저를 원망하시지는 않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