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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섹스는 평등한가요? - 동등한 관계, 동등한 즐거움을 위한 기혼 여성들의 섹스 말하기
부너미 외 지음 / 와온 / 2020년 4월
평점 :
일종의 페미니즘 글쓰기 공동체라고 볼 수 있는 부너미는 2017년 말 기혼여성들의 독서모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서 부너미는 한옥에서 아궁이에 불을 땔 때, 온기가 역류하지 않게 막아주는 '부넘이'에서 유래했습니다. 전작인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는 주변에서 의외의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한국 사회에서 기혼 여성들도 진정한 페미니즘 운동에 동참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미에서 해당 분야의 독서 저변을 비롯해, 일반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생각할 거리를 남겨준 논저라고 여겨집니다. 지금 서평을 쓸 이 '당신의 섹스는 평등한가요?'는 기혼 여성들의 솔직한 섹스 담론과 결혼 생활의 본질을 떠올리게 하는 일종의 르포르타주로 추측하건대, 일반 미혼 남성들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기존의 기혼 남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여러 주제에 대한 토론이 필요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쯤에서 각설해, 이 글은 지난 2020년 4월, 국내에 출간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인간은 누구나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갖고 있으며, 섹스에 있어서도 이러한 권리가 무엇보다 우선해야 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다만, 부부 사이의 섹스 그 반대의 섹스리스 등 부부 관계에 대한 문제는 아무래도 내밀한 영역이고, 동시에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복합적으로 터부시되어 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즉, 가부장제에 기반한 전통적인 가족 제도 하에서 '남성의 성'은 거의 배타적으로(결혼한 아내의 성에 비하면) 사회가 이를 용인해 왔으며, 이 책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듯, 이러한 기조는 개인에 국한된 것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현실에서 여전히 강고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섹스리스 부부'에 대한 일종의 편견이나 섹스리스 부부에 대한 과도한 주변의 관심은 '부부 사이의 섹스'라는 전형적인 담론에 매몰되어 어느 정도는 폭력적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여기에 소개된 여러 글들 가운데, 기본적으로 아내에 대해 섹스를 요구하는 아주 일반적인 남편의 사례와 반대로, 어떤 남편과 아내는 둘 사이에 굳이 섹스가 없더라도 잘 지낼 수 있다는 앞선 예의 바깥에 있는 경우도 드물지만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이 글의 도입부는 '섹스리스 상태'에 대한 판에 박힌 관심을 회피하고자 어느 정도 절충해서 변명거리를 마련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정서적 교감과 대화만을 통해 서로를 충분히 잘 이해하고 있으며 그런 측면에서 관계 전반에 서로 만족하고 있는 일부 부부들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부부와 같은 사례는 어느 정도 소수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여기에 소개되어 있는 여러 부부들의 현실적 모습을 살펴보니, 보통 남편들은 거의 자신의 사정(射精)만을 위해 아내에게 성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를 좀 더 풀어보자면 대부분의 남성들은 연애 시절을 포함해 파트너인 여성과의 좀 더 서로 간의 성적인 교감을 위해 충분한 대화를 나누는 것을 꺼려하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오랫동안 접한 야동이나 포르노를 통해 잘못된 성지식을 켜켜이 쌓아왔다는 점 일텐데요. 특히, 여성의 클리토리스에 대한 남성들의 일반적인 무지는 매우 심각하다고 여겨집니다. 남성의 대표적 성적 기관인 페니스에 위치한 귀두와 거의 동일한 기능을 갖고 있는 클리토리스에 남성들의 의도된 무지는 주목할 만합니다. 특히 클리토리스에 대한 자극은 여성들에게 있어 오르가즘에 도달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도 여겨지기까지 하는데요. 하지만 많은 남편들이 아내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이 담긴 애무조차 무관심하고, 그저 자신의 만족을 위한 '삽입 섹스'에 중점을 두고 있기에 이런 남편들의 '일방적인 섹스'가 섹스리스 문제에 어느 정도 큰 원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보통의 부부들은 결혼 생활 과정에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게 됩니다. 특히 출산은 여성의 몸에 있어 중대한 여러 변화를 초래하게 되는데요. 출산 도중 아이의 머리가 임산부의 방광을 눌러 전에 없던 요의의 불편함을 겪는다거나 출산을 위해 의사의 조언대로 회음부 절개를 하다 보면 그것대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은 아이의 건강한 출산에 맞춰져 있다 보니 미혼 남성을 비롯한 적지 않은 수의 남성들은 출산 문제는 당연히 여성의 몫으로만 취급했던 것이 현실입니다. 아이를 출산하고 모유 수유 하느라 몸이 처녀 때와 달리 체형이 급격히 변한 여성은 스스로 대한 사랑을 잃게 되었고, 오히려 상대적으로 아무런 변화도 없는 남편의 몸을 보면서 자신만 왜 이러한 신체적 변화를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하기도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자신의 몸에 대한 혐오'는 결국 남편과의 섹스를 기피하는데 이릅니다. 이는 더 이상 자신의 몸이 아름답지 않다는 부정적 인식이 바탕이 되어, 남편의 요구를 거부하게 되는 것인데요. 물론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와 씨름 해, 밤만 되면 거의 녹초에 이르는 아내에게 있어 변변한 대화도 없이 그저 손끝으로 몸을 툭툭 건드리며 관계를 요구하는 남편에게 "잠 좀 자게 내버려 둬"와 같은 분통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임신 시기에 남편의 욕구를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아내들도 분명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대부분 시스템적으로 아내에게 전가 되고, 이것에 대한 배려가 전무한 남편들이 아직도 상당하다는 점은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오로지 '자신의 욕구가 우선인 남편'이라는 존재 자체가 현실의 사례에서 볼 수 없는 그저 공상 속의 산물로 치부해 버릴 수 있겠지만 그만큼 여기에 실려 있는 글들은 일부 독자들에게 쉽게 접할 수 없는 귀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특히 결혼 생활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있어 더욱 그렇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끝으로 여기에 소개되어 있는 결혼 생활의 여러 사례들 가운데 무엇보다 뜨악했던 부분은 어느 남편의 불법적인 성매매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직장 생활에 있어 상사가 원하는 분위기를 맞춰 주고, 접대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간혹 경험하게 되는 성매매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입장이었는데요. 다만 이 부분과 관련해, 일선 경찰들이 실정법에 규정된 불법 성매매를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는 이유는 만약 그렇게 된다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들어가야 하며, 만약 무리를 하게 된다면 오히려 그만큼 강력 사건에 투입될 인원이 부족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즉, 일선에서 음성적으로 벌어지는 성매매가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는 논법으로 취급될 것이 아니라, 쉽게 단속에 나설 수 없는 국가 조직의 현실적인 제약이 있는 것이 본질이겠죠. 그래서 이러한 상황이 결코 성매매에 대한 법적 면죄부로 이어져서는 안된다고 판단됩니다. 더불어 여기에 소개된 글들을 읽으면서 분명하게 느낀 부분은 아직도 한국 사회가 여성의 성에 있어 폐쇄적이며, 그러한 측면에서 남성들 역시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부분입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많은 남성들이 섹스에 있어 서로의 만족을 위한 대화와 교감을 거부하고 있는 실정과 여전히 자신들의 사정만을 위한 섹스를 거의 노골적으로 원하고 있는 점은 일반적인 결혼 생활에 있어 어느 정도는 서로 간의 치명적인 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됩니다. 그런 연유로 건전한 부부 관계를 위한 '부부 간의 성'이라는 주제는 좀 더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도 마찬가지로 더 이상 이를 금기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깨달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어떤 분의 사례에서 과거 자신의 연애에 대해 지금 남편 분이 더럽다고 일컫는 내용을 접했는데요. 이런 분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나중에 '여성에게만 가해지는 순결주의'에 대해 글을 쓸 기회가 있을 것 같은데요. 한국 사회 곳곳을 이루고 있는 이러한 폭력들이 개화된 종교에서조차 여전하다는 점에서 이것을 그저 철지난 사회적 관습으로 치부하고 그냥 그러려니 해야 되는지 가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맥락의 '철지난 관습들'은 어떻게 보면 사회 통합을 방해하고, 서로 간에 편견을 극대화하며, 종내에는 의견조차 피력하지 못하게 하는 악습으로 발현되기에 이릅니다.
-결혼에 이르기 전, 여느 연인 관계처럼 뜨거웠던 커플이 서로의 극명한 차이만 인식하게 되는 작금의 현실에서 가장 필요한 건 천천히 서로를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해야 될 겁니다.
"우리에게 섹스는 대화였고 배려였고 존중이었다"
섹스리스가 되고 싶다는 사람은 없지만, ‘왜‘ 섹스리스가 되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다.
내가 궁금한 것은, 남편의 섹스 요구를 자신을 향한 관심이나 애정으로 굳게 믿고 ‘남편이 조르기를 은근히 바라는‘ 뭇 여성들의 심리다. 못 이기는 척 응하든, 에둘러 거절하든 일단은 요구해 주길 바라는 마음.‘아직도 나를 원한다‘는 사실에서 자존감을 찾고 뿌듯해하는, 그래서 남편의 성욕을 자랑스레 떠벌리게 되는 마음.
임신 중인데도 자신의 몸보다 남편의 성욕을 더 걱정하던 후배. 그녀가 정말로 걱정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남성의 성욕은 본능이고 그에 비해 여성은 대화와 관계에 대한 욕구가 크다고 강조한다. 이런 생각들은, 남편의 성욕은 반드시 해소되어야 하므로 아내가 받아 주지 않으면 다른 여자를 만날 수밖에 없다는 식의 서사로 완성된다.
여자의 몸은 소중하며 아무에게나 보여 줘서는 안 된다는 정도가 그들이 내게 해준 성교육의 전부였다.
여성의 성기에서는 어떠한 냄새도 나지 않아야 한다거나, 출산 전 성기의 모양을 되찾아야만 성적인 존재로서 가치있다는 믿음은 어디서 주입된 걸까?
내가 더럽다니?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귀를 의심했다. 그는 친절하게 설명하며 그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니까 나는 연애를 좋아했고, 지금껏 여러 남자를 만나고 섹스를 했으니 더러운 여자라는 뜻이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애를 돌보는 동안 식욕, 수면욕, 배변욕과 같은 기본적인 욕구조차 채우지 못해 절규하며 살았다.
사회에서 늘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유능한 남성들이 피임에 있어서는 심각하게 무능하다. 고통을 나눌 의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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