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 - 편 가르기 시대 휘둘리지 않는 유권자를 위한 정당정치 안내서
에즈라 클라인 지음, 황성연 옮김 / 윌북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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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즈라 클라인은 미국의 언론인이자 정치 분석가로 미국 뉴스 및 오피니언 사이트인 Vox의 공동 창립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캘리포니아 어바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유니버시티 고등학교를 거쳐, 서부의 명문인 UCLA에서 학사 학위를 받습니다. 이후 워싱턴 포스트와 더 아메리칸 프로스펙트를 거쳐 현재 뉴욕 타임즈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앞선 Vox의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자신의 이름을 건 팟캐스트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미국의 여러 정책과 관련해, 논평한 개인 블로그도 가히 심도 있는 분석으로 많은 네티즌들에게 유명세를 타기도 했는데요. 더욱이 그는 진보적인 언론인으로서 레이첼 매도를 비롯한 다방면의 이론가들과 관계를 맺고 있기도 합니다. 그의 이 책은 원제, "Why We're Polarized"로 지난 2020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2년 6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클라인의 이 글을 추천한 여러 유명 인사 중, 프랜시스 후쿠야마와 파리드 자카리아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니 개인적으로 꽤 흥미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우파 정치 사상가로 알려진 후쿠야마가 작금의 극단주의 정치를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그 점이 매우 궁금했는데요. 현재 미국 정치에 있어 우파 포퓰리즘과 양극화 정치 자체가 미국이 힘겹게 쌓아 올린 공화주의에 사실상 악영향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저자는 글의 결말 부분인 10장에서 에둘러 이런 양극화 정치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었습니다만 논증의 전개 과정 대부분은 이런 양극화와 극단주의 정치에 우려섞인 내용들을 근거로 두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진정한 과제는 미국 정치가 얼마나 건전성을 답보할 수 있겠느냐에 달려 있을 것 같은데요. 저자인 클라인 역시, 현재의 미국 정치 시스템이 상당히 잘못된 길로 가고 있으며, 정체성 정치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 인식도 바로 이러한 맥락 가운데 있다는 점을 주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거의 많은 정치 이론가들이 인정하듯, 현재 미국 정치에서 만연된 양극화 정치를 가장 실질적으로 이용한 인물은 도널드 트럼프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성기가 큰 것을 자랑하고, 편협한 인종주의에 여성을 그저 성적 대상화한 인물이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된 점은 '우파 포퓰리즘'의 시대를 열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과거 2008년에 조지 W. 부시가 재선 가운데, 백인 기독교인들 가운데 74%의 지지를 받았는데, 이에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비도덕적이고 타락한 간통자였던 트럼프가 마찬가지로 백인 기독교인들의 80%의 지지를 받았다는 점은 거의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2012년에 실시된 조사에서도 "자신을 민주당원이라고 하는 사람의 43%가 백인이 아니었지만, 자신을 공화당원이라고 하는 사람의 9%만이 백인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는 결과 역시, 현재의 인종적 정체성 정치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여실히 목도하게 됩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 역사적인 측면에서 저자인 애즈라 클라인의 단연 통찰이라고 볼 수 있는 점은, 미국 정당 정치에서의 민주당과 공화당간의 구분은 사실상 '민권법'과 관련한 부의 재분배와 계층 상승이 흑인에게까지 확대되자 많는 사람들이 민주당에 등을 돌렸다"는 분석입니다. 더불어 전통적인 '백인 정체성'과 이어지는 이 흑인에 대한 인종주의는 이것을 지지하는 백인들이 아직도 지대하다는 점을 사실상 반증하는 것이기도 한데요. 현재까지 미국 정치 무대에서의 이런 '인종주의적 맥락'이 얼마나 강력한지 앞선 진술들을 통해 파악할 수 있습니다.

2장에서 상세히 분석되고 있지만 이 정체성 정치 자체는 상대적으로 권력에 소외된 사람들의 사회적인 측면에서 필요한 논리였습니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나 사회적으로 여전히 억압 받는 저소득층의 여성들과 같이, 기존의 기득권 정치에 자신들의 입장을 어필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한데요. 여기서 문제는 맞지 않게도 다수의 백인들이 미국 사회에서 다른 인종들에 비해 차별 받고 있다고 믿는 부분입니다. 더욱이 오버마 대통령의 당선으로 현재 미국에는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이 없다고 믿는 백인들이 너무나도 많은 실정인데요. 이런 연유로 도널드 트럼프의 반(反)이민 정책이나, "멕시코가 미국 국경에 좋은 사람들만 보내는 것이 아니다"라는 거의 인종적 혐오 발언과 다름 없는 언설들이 미국 내부에서 영향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 같습니다. 이것은 다음 3장에서 '증오를 통해 행복을 찾는다'는 주제와 맞닿아 있기도 한데요. 시민들이 누군가를 증오할 권리가 있다고 전제한다면, 끊임없이 증오의 대상이 되는 어떤 누군가는 그것 자체로 현실 정치의 왜곡이라고 항변할 수 있을 텐데요. 다른 사람을 끊임없이 증오할 권리가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인지는 지금도 강하게 의문이 듭니다. 물론 저자는 이러한 '양극화'에 대해 단순히 '분류'라는 정치적 용어를 들이대며, 현재의 미국 정치에서의 양극화가 과연 심각한 상황인가에 대해 다소 의문을 표하기도 한데요. 자신이 속한 그룹의 상당한 내적 편향과 이것에 속하지 않는 다른 그룹에 대한 증오가 이미 상당한 수준임에도 단순히 이를 미국 정치의 개방성이나 시민들의 마땅한 사상의 자유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마찬가지로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결국 극심한 사회 분열을 분석하고 있는 5장에서, 저자는 "포퓰리즘 우파의 부상은 미국만의 현상은 아니며, 2016년에 시작된 것도 아니다. 서방세계의 여러 나라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고 사실상 일관된 논증 가운데서 선을 긋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도널드 트럼프 뿐만 아니라 공화당 전체가 거부한 '오바마 케어'와 의료보럼 의무 가입은 이러한 정체성 정치의 극명한 사례라고 여겨지는데요. 이 책에서는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과거 로널드 레이건이 사회 복지 제도에 대한 완벽한 거부는 아직도 지원이 필요한 흑인 계층에 대다수에 대한 혐오를 거의 가감없이 드러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는 국가의 사회 보장에 대한 반감과 인종주의는 꽤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이같은 맥락은 일전에 마틴 길렌스도 언급한 바가 있는데요. 유독 많은 백인들이 사회 보장에 대해 큰 반감을 보이는 것은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더욱이 미국의 현실적인 '인종주의적 벽'을 감안하지도 않고 많은 흑인들이 스스로의 삶에서 성공하는 데 사회적으로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진보주의자들의 판단은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사회 전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 부실하다고 느껴지는데요. 이것은 서로를 혐오하는 양당의 지지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그렇게 매번 강조하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이해는 거의 전무하며, 오로지 정치적 셈법을 위해 서로를 대결의 상대로만 보는 사실상의 양극화 정치 자체는 저자의 말마따나 일종의 시스템의 우려스러운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두에서 이미 저자는 엘리트 기반의 정치가들이 서로를 향해 극단주의적 논법을 강화시켜 나갈 때 비록 시간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 시민들도 이러한 흐름에 휩쓸리 수밖에 없다고 진단합니다. 여기에는 6장의 좌파와 우파를 뛰어넘은 미디어의 분열에도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요. 폭스 그룹에 의한 보수적 언론의 영향력을 보더라도 언론 대부분이 자신들의 정체성에 따라 '가치 중립'을 위배되는 기사 보도가 매우 빈번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비슷한 분위기일 텐데요. 다만 미국의 언론 지형이 우파쪽으로 상당히 기울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매번 미국 언론계가 '좌파적'이라고 매번 비난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반지성주의와 그에 따른 '대안적 사실'이라는 말장난을 고려해, 이미 시민들 대다수가 정치적 분별력이 전무한 것과 일맥상통해 보이는데요. 이와 같이 정치적 진술 자체가 사실에 근접하지 않더라도 '내집단 편향'에 근거하여, 많은 시민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프로파간다에 대해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그저 이를 수용하고 있는 실정인데요. 이러한 분위기는 언론 비즈니스 측면에서 돈과 권력을 가진 언론들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이는 반대로 거짓 뉴스에 대한 시민들 대다수의 정확한 '거부'와 '도태'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자체가 위험에 놓인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끝으로, 권력에 상당히 소외된 계층의 정체성 정치가 아닌 오도된 정체성 정치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지성주의의 공격은 이런 현실 자체에 있어 민주주의적 다원성의 후퇴라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저자의 미국 정치에 대한 분석은 다름 아닌 우리가 알고 있던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실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크리스 베일의 우려대로 SNS를 비롯한 인터넷 정치를 포함한 극단주의에 따른 중도와 온건주의의 퇴출은 앞으로 미국 정치가 건전성을 답보할 수 없는 주된 이유일 겁니다. 다만, 서두에서 저자가 밝히는 이 양극화에 따라 소위 중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그저 온건한 중도가 아니라 이들 다수는 아직도 정확히 정치적으로 분류되지 않은 상황도 존재한다고 인용을 통해 분석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도 꽤 설득력이 있어 보였는데요. 본인을 중도 온건이라고 여기는 시민들도 미디어나 주변에서 극단주의적 주장들에 노출된다면 그 자체로 정치적 불신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극단주의에 경도될 수 있다는 부분은 마찬가지로 우려스러운 측면입니다. 이 지점에서 확실한 것은 금권 정치에 따른 미국의 시스템적 왜곡과 더불어, 이러한 양극화 정치가 사실상 엘리트 정치인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미래에 있어 충분히 두려운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글 서두에 '부정적인 당파성'에 대해 짧게 언급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는 지지하는 당에 대한 긍정적 감정이 아니라 반대하는 당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에서 기인하는 당파적 행동을 뜻하는데요. 우리도 지난 대선에 이를 뼈저리게 경험했고, 지금도 자신들의 정책이나 건전한 주장들을 피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몸담고 있는 정당에 반하는 상대에 대한 근거 없는 증오와 냉소주의에 기반해 사실상 기존 정치를 추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실로 정치 전반에 있어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글을 통해, 현재 미국 정치가 인종과 종교에 따라 극명하게 분열되어 있다는 논점은 지극히 수긍할 만한 부분이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백인 유권자들은 트럼프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고, 주요 주州들에서 그들이 과잉 대표되며 트럼프를 당선시켰다.

만약 당신이 흑인이고 경찰의 잔혹성을 걱정한다면, 그것은 정체성 정치다. 만약 당신이 여성이고 남성과 여성의 임금격차에 대해 걱정한다면, 그것도 정체성 정치다.

기관과 정치인들이 점점 양극화 함에 따라, 대중은 더욱 양극화하는 방식으로 순환이 이루어진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선거 때마다 건강보험에 대한 의견 차이를 강조하는 광고에 수십억 달러를 지출하는데, 이 논쟁이 지지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대중이 상대방에게 등을 돌리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반면 오바마케어는 매사추세츠주에서 밋 롬니가 실시했던 개혁을 본떠서 만들어진 것이었고, 공화주의적 아이디어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또한 완벽하게 말이 된다. 만약 당신이 정부가 사회 프로그램에 너무 많은 돈을 쓰고, 불법 이민자들에게 너무 관대하고, 급진적인 환경론자들에게 너무 휘둘린다고 믿는 공화당원이라면, 실제로 민주당은 당신에게 더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1946년 재선을 위해 선거운동을 하던 민주당 상원의원 시어도어 빌보는 소름돋을 정도로 직설적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나 나나 깜둥이가 투표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일 좋은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선거 전날 밤에 투표를 하는 거죠. 그 이상은 말씀드릴 필요가 없겠습니다. 혈기 왕성한 사람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겁니다."

여기서 질문할 것은 미국의 나머지 지역이, 다시 말해 불완전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운영되는 나라의 나머지 지역이 왜 남부가 미국의 정치적 가치를 그런 식으로 조롱하도록 내버려두었는가 하는 것이다.

2008년 오바마가 당선되었을 때, 미국은 더 이상 인종에 얽매이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백인의 57%가 "백인에 대한 차별은 오늘날 흑인과 다른 소수자에 대한 차별만큼 큰 문제"라는 점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르디나는 백인 인구의 약 30~40%가 강한 인종적 연대감을 느끼지만, 대부분은 인종적 적대감 없이 연대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러한 당 엘리트들의 지지 속에서 트럼프가 공화당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공화당원이든, 크루즈를 지지하는 공화당원이든, 라이언을 지지하는 공화당원이든,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든, 선택은 분명했다. 트럼프에게 투표하는 것이다.

정치적 갈등은 정책에 관한 것만이 아니며, 권력에 관한 것만도 아니다. 그것은 집단 지위에 관한 것이다.

전적으로 보수적인 뉴스 출처들을 중심으로 구축된, 공화당의 신뢰를 받는 정보 생태계는 이와 유사한 다양성이 없으며, 심지어 이들 중 다수는 선전,홍보 역할을 수행한다.

현재 미국의 양극화는 시민권 시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고, 인종 간 평등을 수용한 민주당, 백인들의 반발을 수습하고자 한 공화당에 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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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3-03-01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치적 양극화가 전세계적인 현상이어서 더 걱정이 됩니다.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미국에서는 특히 자본주의와 인종주의가 혼합되어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느낍니다. 끊임없는 총기관련 사건들과 총기규제를 제대로 할 수 없는 현실적인 모순은 거기 기름을 붓고 있는 것 같아요.

베터라이프 2023-03-01 22:53   좋아요 1 | URL
신자유주의가 강화되면서 사실 정치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게 사실입니다. 그런 연유로 정치 불신이 심화되었는데, 여기에 경제적 불황에 따라 양극화는 또 심각한 수준이 되었죠. 그리고 미국 헌법에 보장된 권리가 전반적인 민주주의 체제보다 더 우선시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하는데요. 이게 약간 궤변일수도 있지만 총기 소유에 대한 권리가 시민 자유라는 맥락에서 사회적 안전에 대한 요구를 더 무력화 시키고 있는 게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우리 뿐만 전세계 민주주의의 바로미터라 정말 우려스러운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미국의 인종주의가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