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다 다쓰루 컴북스 이론총서
박동섭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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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다쓰루(内田樹)는 일본 도쿄도 오타구 시모마루코에 출신으로, 프랑스 문학 연구자, 사회사상가, 번역가로서, 흥미롭게도 합기도 7단과 거합도 3단의 무도가이기도 합니다. 과거에 그는 고교를 중퇴했지만 대학 입학 자격 검정을 거쳐, 도쿄 대학 문학부에 입학합니다. 이후 1977년에 도쿄도립 대학 대학원의 인문과학연구과 석사 과정을 거쳐 본격적으로 일본 내에서 교편을 잡게 됩니다. 특히 우치다 다쓰루는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에게 큰 영향을 받아 일본 국내에서 고유한 레비나스 연구자로 명성을 얻게 되는데요. 이런 우치다 다쓰루를 분석한 저자의 언급대로 현재 그는 일반 시민들을 위한 저변이 넓은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이런 '일반인'들을 위한 읽기 쉬운 여러 교양서를 끊임없이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우치다 다쓰루를 시라이 사토시와 함께 일본에서 몇 안되는 '리버럴 지식인'으로 이해하고 있는데요. 대체로 그의 진보적이고 고유한 사상들은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생각할 꺼리들을 전해준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출판사 커뮤니케이션북스의 컴북스 이론 총서 가운데 하나인 이 책은 2022년 5월 국내에 출간되었습니다.

지식을 통해 일반 대중을 지향하는 지식인의 존재는 어느 사회나 단언컨대, 매우 귀중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에드워드 사이드가 인용되고 있습니다만 지식인이 권력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 사회가 존재한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거의 암울해 보이는데요. 이를 토대로 우치다 다쓰루는 대중들을 향해 있으면서도 권력 비판에도 물러서지 않는 지식인으로 저에겐 읽히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독립연구자이자 번역가인 지은이 역시 스스로 우치다 다쓰루의 책을 거의 다 구해 읽고 그것도 모자라 다쓰루의 블로그 글과 각종 매체에 기고한 에세이도 다 찾아 있었다는 것을 1장 '마치바론'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심지어 저자는 스스로를 "다쓰루안"으로 강조하기까지 합니다. 이는 마치 일본 내 독특한 사상가인 강상중에 대한 일부 국내 연구자들의 추종도 사뭇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우치다 다쓰루가 다른 철학자들이나 사상가들과는 달리 앞선 분야를 선도하는 일부 전문가들의 어려운 글쓰기와 주제 의식에 대해 반대하면서 "사상이나 철학을 따로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이해하기 쉽고 명료한 주제 의식을 담은 글을 여전히 쓰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에드워드 사이드의 뚜렷한 목적 의식과 맞닿아 있다고 여겨집니다. 상반된 측면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대중 지식인에 대한 극명한 편견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기도 한데요. 상아탑에 있는 전문 학술 연구자들이 오늘날 여러 매체를 통해 오르락 내리는 '학위 지식인'들을 바라보는 눈에 마뜩잖은 기미가 있는 것은 학문에 대한 너무나 강고한 엘리트주의를 담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저자는 다시 한 번 마르셀 모스를 인용하면서,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학문과 지식에 대해 고찰합니다. 모스의 증여론을 통해 나타난 '증여 사이클'을 언급하면서 이를 학문과 지식의 소위 독특한 '증여관'을  분석하고 있는데요. 누군가의 귀중한 이론과 그에 따른 해석을 자기 안에서 잘 씹고 소화시켜 소위 '신체성'을 획득하기란 매우 어려운 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이나 사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자신의 노력과 더불어 비슷한 분야를 이미 '선행'한 선배들의 도움은 어떻게 보면 학술과 학문의 '증여 사이클'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이 부분에도 우치다 다쓰루의 학문에 대한 태도와 그런 맥락을 유사하게 대입해 보는 것이 가능합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 저자가 따로 명백하게 언급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다쓰루가 강조한 '민주제론'의 한 일각에서, "가능한 한 많은 국민이 적절한 판단력을 갖춘 어른일 때야 말로 잘 기능하는 제도"라는 점을 강조한 것을 보면 그가 왜 그토록 전문 학술 영역의 업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지 대략 짐작이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가 꽤 고절한 전문 지식인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전자와는 다른 부족하지만 아마추어리즘과 다방면의 지식을 보유한 다수의 지식인이 필요하다는 해석은 우리가 깊이 곱씹어 봐야 하는 주제라고 생각되는데요. 이는 사회 발전을 위한 지식의 고도화는 물론 우리와 밀접한 일반 정치에 있어서도 '사려 깊은 시민들'을 길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이 내포하는 바가 꽤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끝으로 어떠한 깊은 주제 의식을 담은 논저나 짧은 문장이라고 할 지라도 누구에게나 쉬운 언어, 평이한 문장으로 빠른 이해를 돕는 글쓰기가 과거 어느 때보다 지금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요. 인터넷 시대에 대한 여러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검증되지 않는 지식과 자극적인 정보의 범람은 단순히 고상한 학문이라 일컫는 철학과 사상에 대한 분야에 대한 스스로의 고립을 더욱 가속화 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쓸모 없는 신변잡기식의 언어로 된 주제들을 백안시하여, 기존의 고차원적이라 불리는 철학이 이들과 오랫동안 거리를 두게 됨으로써, 폭넓은 차원에서 존 듀이와 토크빌이 강조한 '준비가 된 시민'을 사회에 소위 공급할 의지와 의무를 무력화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치다 다쓰루와 같은 대중 지식인들의 귀중한 존재 이유가 증명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전문 학술 지식인들이 스스로 밥줄에 연연하면서 동시에 되지도 않는 권위주의에 갇혀, 사회와 정치의 발전에 대해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은 그만큼 좋지 않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 버틀란드 러셀이 지적한 바와 같이 단순히 제도권 교육에 대한 맹신과 함께 많은 시민들이 스스로를 재교육하지 않고 그저 방치된다면 아마도 그 사회의 미래는 거의 희망이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현실과 점차 괴리되어 가는 소위 '전문 지식'들이 과연 그것을 협소하게만 공유하는 일부 계층과 특권화 된 지식 계급이 우리 사회를 어떠한 식으로 몰고 갈지는 거의 자명하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소한의 변별력을 갖추지 못한 시민들이 절대 다수인 이런 사회에서 말이죠.    
     



- 별로 돈이 되지 않는 일에 나서지 않는 요즘 지식인들을 보았을 때, 권력과 첨예한 갈등 관계에 놓이더라도 할 말을 하는 지식인의 존재는 단순히 사회를 이익 창출이라는 기회의 장이라는 목적에 온갖 이유를 갖다 바치는 경우보다 매우 귀중하다고 여겨집니다. 일전에 에드워드 사이드가 규명한 지식인의 아마추어리즘은 이처럼 사회를 견실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건 저의 서투른 결론이기도 합니다만 이런 건전한 지식인들과 변별력과 깊은 사고력을 갖춘 시민들이 결합한다면 우리의 정치가 무엇보다 더 이상 극단주의에 놀아나지는 않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민주주의 역시 기득권적 과두제에 휩쓸리지 않을테고요.  

내가 민주제를 지지하는 것은 그것이 ‘가능한 한 많은 국민이 적절한 판단력을 갖춘 어른일 때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도 더 잘 기능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민주제 국가는 일정 수의 국민이 어른일 것을 요구한다. 그것이 민주제의 공덕이다.

즉 자신이 새로운 ‘증여 사이클의 청시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그 절박한 부채감이 완화된다. 이렇게 해서 증여는 도미노가 넘어가듯이 최초의 한 명이 시작하면 그 다음은 무한으로 연쇄되는 프로세스다.

일상의 징그러울 정도로 복잡한 특성을 품으려고 무지 애를 쓰면서도 그것을 담아내려는 ‘글쓰기‘는 많은 사람의 귀에 닿을 수 있도록 가벼움을 유지할 것. 나는 우치다 다쓰루의 학술적 글쓰기에서 이 ‘가벼움과 무거움과 복잡함을 동시에 품는‘곡예의 글쓰기의 모습을 본다.

그런데 그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철학과 사상이라는 무거움과 난해함으로 점철된 것을 아카데미즘이라는 공간에서 끌어 내 세속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로 바꾸어 말할 필요가 있다.

그는 전문가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난삽한 말로 그들만의 리그에서 철학과 사상과 예술 등을 논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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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1-25 1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치다 타쓰루의 책을 좀더 읽고 싶어서 하나하나 담아보니 대략 30만원이 넘더군요. 쉽고 잘 읽히도록 쓴 그의 글들에 권력에 대한 날선 비판도 담겨있어 더 좋았습니다. 요전에 읽은 책에도 언급되었는데 무도가로써 자신의 지식을 실천하는 삶도 교육자다워 보였습니다. 이 책도 읽어보고 싶어요. 베터라이프님 연휴 잘 보내셨나요? 남은 한 주도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베터라이프 2023-01-25 22:14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미미님 ^^ 우치다 다쓰루 이 분이 일본내에서도 보기 드문 평화헌법 개정 반대자였습니다. 또한 역사 문제에 있어서도 수정주의자들을 비판했던 사람이고 리버럴 지식인들 가운데서도 유독 상식적인 사람이죠. 더군다나 일본 사회가 나아갈 바를 끊임없이 제언하기도 해서 인간 교양과 교육 전반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사람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일본어가 능통했으면 원서라도 사볼텐데 외국어 문맹이라 아쉽습니다 ^^;: 미미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도 좋은 일 많으시길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