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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1 ㅣ 밀리언셀러 클럽 51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미국 문단에서 흔들리지 않는 문학적 지위를 갖고 있는 스티븐 킹은 마찬가지로 많은 독자들에게 초자연 소설, 서스펜스, 범죄, SF, 판타지 등에서의 대가로 읽히고 있습니다. 특히 그의 책은 총 3억 5천만 부가 판매되었는데 많은 작품이 TV 드라마와 영화 등으로 판권 매매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믿을 수 없는 성과는 2015년에 미국 국립예술기금으로부터 예술 훈장을 받는데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의 스티븐 킹을 있게 한 여러 작품들 가운데 1973년에 나온 그의 소설 '캐리'는 독보적인 작품으로 1976년 영화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에 의해 영화화 되기도 했는데요. 이런 이력과는 달리 그는 정치적 식견과 행동주의와 관련해서는 민주당 후보를 강력하게 지지한다거나 미국의 부유층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만 한다는 주장을 거의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몇몇 공화당 인사들에 대한 비판적 의견 개진과 현 정치 상황에 대해 자신의 비평을 가감 없이 밝히는 점은 소설가로서의 큰 인기를 감안한다면 공화당을 지지하는 계층에게 있어 어느 정도 거부감을 초래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사회학자나 철학자가 아닌 대중 소설가가 이러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출하는 점이 다른 지식인 계층과 비교해 봐도 특히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다른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도 합니다. 다만 문학적 구조와 고정된 주제에 몰입하여 그 입장의 한계를 인정하는 여느 작가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 해야만 하는 말들을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점은 어쩌면 미국의 민주주의가 우리와 확연히 차이나는 부분일 수도 있겠습니다. 따라서 지금 소개해 이 책은, 원제 "Cell"로 지난 2006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도 동일한 해인 2006년 11월에 번역 출판 되기에 이릅니다. 다만, 현재 이 책은 국내에서 절판된 상황입니다.
개인적으로 킹의 이 소설을 읽게 된 중요한 이유는 지난 2016년에 영화화 되어 나온 존 쿠삭과 새뮤얼 L. 잭슨이 주연한 "셀 : 인류 최후의 날" 때문이었습니다. 영화가 썩 뇌리에 남을 만큼 인상 깊지는 않았지만 원작이 스티븐 킹의 작품인 걸 알게 되어 연말 기념으로 문득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는데요. 2006년에 나온 번역본은 현재 절판된 상황이었지만 아주 빠르게 '헌책방'에서 구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주문을 넣고 며칠 뒤에 배송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쯤에서 아주 강한 스포일러 일수도 있겠지만 킹의 이 작품은 소위 '폰 사이코'로 불리 우는 '전파 좀비'가 주된 소재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그 외 세 사람의 인상 깊은 모험극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주인공들 가운데 한 사람인 클레이와 톰이 초반에 서로를 인식하게 되고 이후 엘리스가 존재감을 드러내며 이들의 무리에 합류하게 됨으로써 기본적인 모험 서사의 틀이 잡히게 됩니다.
우선 킹의 이 소설은 그동안 좀비와 관련된 여러 작품들을 숱하게 인용하면서 그가 창조해 낸 좀비와 그 외의 다른 좀비들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전반적인 서사에서 이를 드러내고 있는데요. 물론 앞선 설정은 어떻게 보면 하루 아침에 미국 보스턴을 쑥대밭으로 만든 흐름의 한 구성으로서, 특히 좀비와 관련된 작가의 고유한 해석을 답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의 해석을 통해, 좀비 자체로서의 어떤 문학적 구조보다도 일전에 일독했던 가브리엘 타르드의 '군중'과 칼 구스타프 융의 '무의식에 지배된 군중'에 인식적으로 유사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권 후반부의 게이튼 아카데미에서의 다소 익숙해 보이는 좀비들의 꽤 심각한 반전은 전파의 전달과 더 나아가 그들끼리의 '텔레파시'라는 불명확한 시도 자체가 앞선 군중들을 불확실한 실체로 이끄는 '무의식의 전염성'과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교장과 앨리스 또래의 조든이 발견한 '인간의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이성의 사고가 완전히 축출된 상황에서 좀비들의 '질서정연함'은 정말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여겨지는데요. 어떻게 보면 인간의 개성이라는 것이 아주 쉽게 말살될 수 있다는 점과 더불어 그것을 초래하는 요건 역시 아주 단순하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한다면 - 이를테면 인간 사회의 폭력의 지배나 반지성주의의 팽배 같은 - 이 소설이 시사하는 바는 아주 명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도한 스포일러가 될 듯 싶어 내용을 전부 밝힐 수 없는 후반부의 복선도 이러한 해석을 좀 더 강화시킨다고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어떻게 보면 '실제에서 생물학적으로 죽지 않은 좀비'가 이처럼 붕괴된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괴로운 맥락을 갖고 있다는 점은 킹의 이 작품을 단순히 좀비 소설로 국한할 수 없는 근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주제 의식에도 불구하고 소설이나 영화를 비롯한 여러 '좀비극'에서 보이던 케케묵은 설정들이 나타나기도 했는데요. 극중 미스터 리카르디가 보인 스스로의 안타까운 행동과 세상의 종말과 다름 없는 상황에서 '신이 내린 저주'를 읊으면서 극단적 회의주의에 몸을 맡기는 일부 종교인들의 모습은 이미 우리가 봐왔던 설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원전 자체에서 작가가 상당한 비속어를 문장에 넣었으리라는 추측과 함께 '어느 기독교인에 대한 지독한 경멸'은 과거 품위를 갖춘 버틀란드 러셀의 고백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역설적인 감정을 독자들에게 강요하게 하는데요. 아마도 종교의 타락을 우리가 실질적으로 가늠케 하는 것은 이러한 위기와 종말의 시대에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파국을 초래하는지, 이성으로 대략 추론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몇 년 간 큰 인기를 끌었던 워킹 데드의 주인공인 릭과 이 작품에서 좀 더 이성적이고 인간적인 클레이는 앞서 언급한 복선으로 말미암아 다음 권에서 후반부 극의 변화를 독자로서 원치 않는 결말로 귀결될 것 같아 그 점이 우려스러운데요. 또한 과학 만능주의에 대한 극의 주제 의식이 어떤 식으로 문제를 만들어 낼지, 다음 권에서 여실히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스티븐 킹의 유독 자주 보이는 스토리의 '용두사미'가 이 작품에는 들어맞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 유독 이 소설의 원전을 살펴보고 싶은 욕구가 들게 만든 문장이 있었는데요.
"기운을 내라. 앨리스, 오늘 공사가 다망한 날이었잖니."
"공사가 다 망해요?"
바로 클레이와 앨리스의 짦은 대화였습니다.
"예, 맞습니다. 우린 가능한 빨리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법정이나 사문위원회에서 내가 그러게 말했다고 증언하셔도 전 그 사실을 부인할 겁니다."
전에 그런 여자들과 강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터득한 사실 하나가 그 나이까지 살아온 아줌마들은 거의 난공불락이라는 것이었다.
아들을 생각하려 할 때마다 클레이는 머릿속에 미친 쥐새끼를 풀어 둔 기분이었다. 그 쥐새끼는 당장이라도 허술한 우리를 부수고 나와 입에 닿는 건 닥치는 대로 갉아먹을 판이었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신호 말이야. 과학 소설 같기는 하지만, 불과 15년이나 20년 전만 해도 대다수 사람들에게 휴대폰도 과학 소설 같았을 테니까."
"그래요. 우린 모두 누군가를 잃었어요. 대시련의 시기니까요. 모두 여기 [요한계시록]에 예언되어 있죠."
그들은 자기들만의 무리 속에서 자기들끼리만 속닥거리며 기계적으로 움직였고, 기껏해야 손전등을 휘두르거나 다른 손으로 여행 가방을 바꿔 드는 게 의미 있는 행동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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