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브로흐의 이 소설은 이미 현대소설사에서 나온 옛 번역판이 제 서가에 꽂혀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제였죠. 잠시 본가에 갔다가 아주 우연히 눈에 들어온 헌책방이 있었습니다. 간판도 없고 그저 허름한 쪽문과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밖에 없었죠. 바깥에 매장 입구로 보이는 이 조그만 문 앞에는 책을 산다는 사장님의 글씨가 보였는데요. 반가운 마음에 급히 계단으로 이어지는 매장 안쪽으로 걸어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니 헌책방의 규모는 그리 크지는 않았는데요. 장서 보유가 대략 1천권 내외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입구 바로 옆은 소설 서가였는데, 바로 이쪽에서 블로흐의 몽유병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표지는 열린책들의 2007년 번역판인데요. 언제나 그렇듯 책 뒤편에 있는 밀란 쿤데라의 지극한 찬사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그의 말을 살짝 개작한다면 아마도 유럽 최고의 박물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새롭게 다시 손에 쥔 이 몽유병자들은 불행하게도 제겐 처음 시도가 아닌데요. 1992년판이던가요. 정식 판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책을 읽다가 중간에 포기한 기억이 있습니다. 방금 카페에 들어와서 살짝 책을 열어봤는데, 조그만 활자들이 글 읽는 사람을 숨도 못 쉬게 할 정도로 빡빡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아..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그래도 헌책방에서 구한 책 치고는 상태도 너무 좋고 크게 의미는 없지만 2007년 판의 나름 초판이라 뭔가 기분이 좋네요. 그리고 가격도 아주 저렴했습니다.
지금 집 근처의 프랜차이즈 카페인데 공교롭게도 옆 테이블에서 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되는 여자 세 분이 서평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네요. 저분들이 직접 서평을 쓰는 분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화 요지는 "다른 사람이 써 놓은 서평을 먼저 읽게 되면 정작 그 책을 읽는 데 좋지 않다."는 뭐 그런 얘깁니다. 저는 저 분들과는 약간 다른 입장인데 제가 몇 년 간 사회과학 분야 서적의 서평을 쓰게 되면서 제 서평이 이런 재미없는 책들의 약간의 '길라잡이'가 되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독서 저변이 일반적으로 취약한 편이라 그런 면에서 뭔가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죠.
책은 다른 여타 영화나 전시와는 달리 개인의 노력이 필요한 취미 생활입니다. 책 한 권을 일독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제법 상당하다고 볼 수 있고, 그에 비례하게 어느 정도 집중력이 필요하죠. 오랫동안 책을 접해온 골수 독자들이야 각자 책 읽는 요령이 생겨 독서 자체를 즐기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책을 평소에 접하지 않는 분들이 책과 친해지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그것에는 사소하지만 꽤 근사한 서평들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쓸데없는 흰소리가 많았습니다. 하여튼 제가 이 몽유병자들을 끝까지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할 텐 데요. 다시 화이팅 하고 책에 집중해야겠습니다. 저도 이 몽유병자들을 통해 커다란 감동을 받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네요. 이미 읽으신 분들이 최고의 소설이라고들 하시니 의지를 한 번 다져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