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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일상생활 - 사랑, 결혼, 그리고 페미니즘 ㅣ 현대의 지성 119
크리스토퍼 래쉬 지음, 엘리자베스 래쉬 퀸 엮음, 오정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5월
평점 :
로버트 크리스토퍼 래쉬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진보주의자이면서 역사가, 도덕주의자 그리고 사회비평가였습니다. 흔히 미국의 진보주의 역사에서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와 더불어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 크리스토퍼 래쉬이기도 한데요. 이와 더불어 C. 라이트 밀스와 하워드 진과도 같이 회자되는 지식인입니다. 그는 미국 네브레스카 주 오마하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을 거쳐 컬럼비아 대학에서 석박사를 수여 받습니다. 특히 래쉬는 헨리 조지와 지그문트 프로이트, 테오도어 아도르노 등에게 학문적으로 큰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래쉬의 치열한 사상적 행로 가운데에서 그가 비판한 '냉전적 자유주의'에 절로 관심이 갔는데요. 미국내 자유지상주의자들에 대한 래쉬의 비판을 접하고 나니 참으로 외로운 길을 자청해서 걸었던 지식인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지식인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은 자유주의 자체가 인류에게 있어 과거의 억압으로부터 역사의 진보를 이루게 한 원동력이었지만 그렇다고 오직 자유주의만이 비판을 받지 말아야 하는 절대지고의 가치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자유주의가 오도한 적지 않은 병폐에 대해 많은 지식인들이 눈을 감고 있는 실정에서 유독 래쉬의 도덕적 양심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는 엘리트 지배 계층이 주도하는 민주주의의 본래적 의미가 퇴색되고 결국 이러한 파국적 이행이 시민들에게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기도 했는데요.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의 여러 논저들이 제대로 국내에 번역되지 않는 상황이라 볼 수 있습니다. 모쪼록 래쉬의 다른 글들도 우리 독자들이 볼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바래봅니다. 여기 이 책은 원제, "Women and the Common Life : Love. Marriage and Feminism"으로 지난 1998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04년에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이 글의 책머리에는 크리스토퍼 래쉬의 딸인 엘리자베스 레쉬 퀸의 이 책에 대한 소개와 아버지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가 본문에 앞서 수록되어 있습니다. 래쉬가 죽기 10일전에 완성한 이 소중한 글은 그가 죽음의 병마와 싸우면서도 마지막 글을 탈고하기 위해 얼마나 귀중한 시간들을 사용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는데요. 사회에 적잖은 이정표를 남긴 한 지식인의 마지막이 담담하게 쓰여져 있어서 개인적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래쉬의 이 책은 유럽에서 계몽주의가 정착하기 이전의 시기부터 이후 1980년대까지 우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이라는 존재와 그들이 처했던 비이성적인 상황, 그리고 일반적인 여성들의 삶을 고찰해 보고, 최근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어떻게 '여성의 권리'가 정치적 편의로 인해, 주류에서 소외 되었는지에 대한 일종의 논증 작업의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이에 1장부터 3장은 계몽이 일부 유산계층의 남성들에게 집중된 시기에 이들과 사회 전반이 여성들을 어떤 식으로 취급했는지에 대해 여러 사료들과 문학 작품 등을 통해 살펴보는데요. 이미 탁월한 역사학자이기도 한 저자의 사료 분석은 꽤 설득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서도 드러나지만 당시 사회의 중간 계급조차도 남녀 간의 결혼은 동등한 남녀의 결합이라기 보다는 여성의 입장에서 자신의 안온한 인생을 위한 일종의 사회적 안전 장치라고도 볼 수 있었는데요. 래쉬의 의견 역시 이에 부합하는 측면에서, "여성의 성을 남성에게 제공한다"는 의미가 그 시대의 뿌리 박힌 관습이었다고 분석합니다. 따라서 일부 귀족 계급의 여성들을 제외한다면 대다수의 여성들은 이러한 사회적 인식 하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 거의 타당한 분석일 겁니다. 남성에게 교태를 부리고, 남자들에게 성적인 만족을 자신이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포함한 매혹과 이러한 메커니즘 전반이 여성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의의라는 고정관념이 당시 사회에 팽배해 있었는데요. 이러한 현실을 처음 비판한 여성은 바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였습니다. 울스턴크래프트의 문제 제기 이후에도 현실에서 노동 계급에 속한 여성들은 경제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남성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4장에서 울스턴 크래프트는 "경제적 자립성을 결여한 여성을 아름다움에 바쳐지는 감각적인 경의"를 통해 남성들에게 힘을 행사하고자 했다고 평가하는데요. 아마도 경제적 자립성의 중요성을 여성에게 연계해 자신의 외모를 통해, 스스로 '생활의 고단함'을 회피하고자 했던 것이죠. 여성의 성이 남성에게 단순히 섹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하층 여성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먼저 숙고해보는 것이 이 글의 전체적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이미 중세사와 관련해 어느 정도 당시의 사회상을 어렴풋이 나마 인식하고 있듯이, 가장의 권위가 중심이 된 오래된 가부장제의 틀이나 소위 '가정성'에 대한 여성의 의무가 16세기 이후에도 고착화 된 것이 여성 자체를 사실상 남성의 소유로 여겼던 배경에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기본적으로 강조하는 자신의 성에 대한 통제는 남녀가 결코 이성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한데요. 래쉬에 의해 이미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여성이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기본적인 인식을 사실상 인정하는 문호였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당시에도 일부 지식인들도 사회적 관습으로 강요하고 있던 여성의 이 같은 굴레들에 대해 어느 정도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귀족 문화를 비롯 상류 계급의 결혼 문화라든지 상류 여성들이 항유하는 문화가 시대적 관습의 과오에 머물러 있었으며, 1장에서 비판적으로 진술 되듯이 부르주아 집단에서 시골 귀족층의 계몽되지 못한 성의 왜곡 상황을 이 즈음부터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꽤 고무적인 일이라 볼 수 있었는데요. 사실 인간을 모두를 위한 '이성의 불빛'은 오로지 하나의 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성에게도 해당되는 것으로 이를 모든 세대가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러여 했습니다. 이처럼 역사적 진보 자체가 더디고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나 에릭 홉스봄의 과거 언급대로 과거 역사를 거스르는 진보의 힘은 분명 아주 조그만 단초로부터 비롯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날과는 상이한 차이를 보이는 당시 남녀 간의 사랑은 다분히 여성들이 남성들의 출세와 성공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해야 하며, 그런 와중에 자신의 아내들을 쉴 새 없이 '임신 상태'로 만드는 일종의 윤리적인 무계획까지도 포함하고 있는데요. 래쉬가 언급하는 당시 '여성 재사들'이 아직도 강고한 '여성들의 정절에 대한 요구'와 더불어 현존한 결혼 제도에 대해 비판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여성 재사들이라는 표현은 일종의 이성에 눈을 뜬, 각성한 여성들이라 볼 수 있겠는데요, 이들은 초기 활동 시기에 남성 위주의 사회 제도와 관습에 열정적으로 비판을 가했으며, 그로 인해 울스턴크래프트가 여성주의(초기 전통적인) 자체가 이성의 산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로서 본격적으로 개화한 부류라고 생각됩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사회의 강고한 관습에 반해 저항한 계층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즉, 남성 위주의 기득권들을 위한 사회적 제도를 이성적 측면에서 다시 돌아보고 개선해야 된다는 흐름이기도 한 데요. 이러한 진보는 그저 당대에 국한된 여성들 뿐만이 아니라 후에 이런 사회적 관습 하에 태어나게 될 다른 여성들과 더불어 사회 제도가 기본적인 '도덕적 양심'에 의해 재구축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현재에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진정한 남녀 평등은 바로 이러한 인식 하에 공통된 사회적 저변를 대변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가 표출했던 단순한 사회상으로 여길 수 없는 '충동적인 결혼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다루고 있는 3장은, 앞서 서술한 결혼 제도가 전반적으로 이성적이지 않기 때문에 어린 나이의 소년 소녀들이 충동적으로 결정한 결혼에 대한 결정을 단순히 돈과 명예를 위해 교회가 비이성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실태를 꼬집고 있습니다. "젋은 여자들이 본질상 너무나 쉽게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의 절개를 믿게 되고 자신과 결혼하겠다는 남자의 진지한 약속을 잠자리로 받아들이고 보답하려는 경향"에서 기존의 교회가 갖고 있던 결혼 예식에 대한 권리를 박탈하는 사회적 명령은 일종의 개혁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특히, 가난한 이들이 사실상 결혼하지 못하게 막는 교구 관리인들 혹은 교구 정치인들의 폐단은 대단한 것이었는데요. 단순히 종교 자체가 사회에 기여하는 바를 나열하고 그것의 정당성을 강화시키는 여러 논의들 가운데서 당시 유럽의 종교 권력 자체가 예전과는 다른 '이성의 시대'를 목도하고 있었으며 그런 계몽주의가 종교를 마땅히 '대단한 권력'으로부터 제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교회의 폐단과 더불어 18세기 영국에서 대부분의 여성이 이십대 중반에 결혼을 한다면, 십대나 이십대 초반에 결혼한 임산부는 우발적이고 비정상적인 만남의 과정에서 임신을 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생각하게 된 경우가 비일비재 했다는 점에서 여성의 성에 대한 여성들 스스로의 통제가 이 시기에도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18세기 말엽과 19세기 이후 유럽에서 본격적인 산업 발전이 이뤄지면서 여성 노동에 대한 정치권과 부르주아 계층의 함의가 드러나게 되고, 본격적으로 가계 경제에 여성이 기여할 수 있게 되는데요. 그동안 전통적인 가부장제도 하에 본래적인 가정성에 대한 지지와 결속이 당시까지도 이어졌다고 봐야 할 겁니다. 다만 신대륙이었던 미국은 구대륙의 유럽과는 다른 경향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물론 신대륙에서도 남성들이 오로지 상업 거래와 자신의 경제적 성취에 모든 걸 투입하게 됩니다. 여기에 가정의 희생도 포함되는 것이죠. 그렇지만 신대륙의 많은 여성들은 래쉬에 의하면, 여성의 공적 세계에 대한 자발적인 참여는 폭발적인 것이었습니다. 진보적 시기라 불리는 1890년부터 1920년 사이에는 오늘 기업 세계와 비견될 정도로 조직된 연계망을 구축합니다. 이 여성들은 노동자들과 흑인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돈을 받지 않는 자발적인 자원 봉사'로 운동을 구축하고 이러한 활동들이 미국 사회의 진보에 큰 역할을 하게 되는데요. 수많은 남성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자아 성취에 빠져 있는 동안 여성들은 이렇게 큰 역사적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은 제가 보기에도 역사의 기적으로도 여겨지는데요. 이러한 큰 공동체적 기여와 책임 의식이 신자유주의 이행 상황에서 오로지 개인주의화되는 미국 사회의 단편을 래쉬 역시 크게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약간 다른 접근이지만 이런 개인주의화는 사실상 사회의 진보와 시민들의 건전한 활동을 사실상 저해하는 요소로 이해되는데요. 개인주의는 자본주의와 아주 밀접한 만큼 일반적인 사회적 책임이나 도덕적 의무와는 완전 별개의 생명체임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래쉬는 글 초입에서 "현대 페미니즘이 결혼과 남녀 평등을 화해 시키려 노력했다고 강조합니다. 아직도 많은 여성들과 특히 페미니스트들이 대다수의 남성들이 "위선자이며 사기꾼"이라는 인식을 어느 정도 저변에 깔고 있는 것처럼, 전통적인 가부장제도와 가정성에 대한 강고한 의문을 페미니스트들은 파헤쳐 왔습니다. 현대 의사들과 정치인들이 한통속이 되어 저출산 문제와 같은 현대 사회의 고민들을 자신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고 저들이 결탁해 "어디 즈음에 여성의 책임"있다는 식으로 치부해 왔다는 것을 공격하기도 했는데요. 아마도 이러한 인식의 최종 책임은 남녀 평등에 대한 민주주의의 경시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와 관련해, 1950년대 미국에서는 여성의 권리에 대한 민주주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1960년대에 서구 사회에서 여성 참정권이라는 정치적 권리를 여성계가 획득하게 되는데요. 그럼에도 당시 미국 사회는 앞으로 이어질 진정한 남녀 평등이라는 의제를 뒤로 물리고 '당면한 흑백 간의 차별과 흑인의 권리'에 대해 주목하게 됩니다. 우리도 역시 민주화 과정에서 여성주의 운동과 관련해, 먼저 시민의 정치적 권리와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먼저 나서게 됨으로써, 폐미니스트들의 불만을 초래한 바가 있습니다. 사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사회적 조정이 필요한 시기에서 우리가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하고 공격하여 좀 더 사회를 건전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함과 동시에 뒷짐 지고 있는 자본주의는 민주주의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결함이자 축복이라고 볼 수 있는 갈등과 대결을 아무런 불안감 없이 그저 웃으면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래쉬가 토로한 '일상 생활의 강등'은 이런 의미가 아닌가 생각해 보는데요. 또한 기존의 페미니스트들이 오늘날 심대되고 있는 과학 기술과 전문 영역이 사회에 끼치는 오판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도 이들이 스스로 민주주의가 우선이 아니라 자신들의 고착화 된 논리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하는데요. 물론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스펙트럼이 다양하다고 볼 수 있기에 이들이 정치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어떠한 인식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하는 래쉬와 함께 우리 시민들도 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일반적인 성에 대한 솔직성을 강조하는 의사들의 권유를 단순히 전문가들의 긍정적인 기여라고 전부 치부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역사사회적 발전에서 근대성이 갖는 의미도 이와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변혁과 개변이 이뤄지기도 하는데요. 물론 남녀 평등과 여성의 권리에 대해 아직도 부족하다고 여기는 일각의 의견도 많을 겁니다. 이것을 어떠한 식으로 바라봐야 하는 지에 대한 다양한 여러 의견도 있겠지요. 그럼에도 남녀 평등과 여성의 권리를 마땅히 보장해 주었던 우리의 민주주의가 위기라는 점은 분명하고 이것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막말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여성의 권리나 남녀 평등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며, 다수의 시민들이 스스로의 정치적 인식과 배경을 바탕으로 여러 정치적 문제와 마찬가지로 남녀 간의 문제도 다룰 수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여성의 권리라든지 남녀 평등 문제가 오로지 페미니스트들만이 다룰 수 있는 고결한 분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덧붙여 앞으로도 많은 여성주의 운동가들도 우리의 민주주의의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71페이지 문장 한 곳에 조사 하나가 빠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문에 래시와 래쉬와 같이 저자의 이름이 통일되지 않은 문장들이 보였습니다.
래쉬는 여기에서 보편적으로 인간의 힘과 평등 그리고 자존감의 본질은 우리가 삶에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오랜 시간 헌신하며 정면으로 도전에 맞서는 것으로부터 얻어진다는 사상을 추구한다
이와 같이 구시대의 전통인 가부장제가 자유주의 국가라는 새로운 헤게모니에 의해 대체되는 것이 대국적인 그림이다
그들은 성간의 평등에 기초한 사랑과 부인이 남편의 권위에 복종할 것이 당연시되는 계층적 타협인 결혼 사이의 모순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결혼으로 인한 결합이 토지 재산의 강화와 상속, 그리고 귀족 가문과 혈통의 유지를 위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한, 낭만적인 열정이나 당사자들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결혼은 이루어졌다
여성 정절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을 험담가들에 대항하여 여자를 지키기 위해 말을 달리는 기사들과 같이 여기는 것이다
풀랭 드 라 바르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로 시작한 여성주의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되는 차원의 원칙에 따라 사회 제도들이 다시 만들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기조로 하고 있다
성실한 부모들은, 그들의 딸들이 교회의 묵인 하에 낚아채이고 꼬임을 당해 결혼으로 이끌어질 때 무능력하게 방관해야만 한다
물론 그들 역시 사랑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지만 결혼을 일찍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그들의 주장은 그들이 사랑을 성숙한 사고와 오랜 사귐의 산물로 여기기보다 성적 매력의 작용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약 대부분의 여성이 18세기 영국에서 대부분 그러했듯이 이십대 중반에 결혼을 한다면, 십대나 이십대 초반에 결혼한 임산부는 우발적이고 비정상적인 만남의 과정에서 임신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생각하게 된 경우라고 추정할 수 있다
울스턴크래프트의 글에서는 결혼이 본질상 여성에 대한 감옥이라는 어떠한 의견도 없다. 그녀는 대신 결혼을 우정의 최고 형태로 보았고, 따라서 본질적으로 평등한 결합으로 보았으며 여성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주는 동반자 관계라고 생각했다
비록 우리 시대에 와서 여성을 부엌에 머무르게 하려고 만들어진 이데올로기로 곡해하기는 하지만, 가정성에 대한 예찬은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꼭 생각하지 않은 여성들에게도 페미니즘적 사고를 형성해내었다
이에 따라 잘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폐미니즘에 대한 반대가 나오게 되었다. 더 이상 시민적 평등권에 대한 이의로 만족할 수 없게 된 운동에 대한 반대였다
성간의 전쟁은 강연장을 떠나 침실로 그 자리를 옮겼다. 성적 쾌락에 대한 여성의 평등권 주장은 이전에 사회 개혁과 시민 문화 향상에 집중되던 에너지를 흡수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고소득 법률가, 광고업계 중역, 방송 언론인, 대학 교수 같은 직업이 "조직적 체계"를 유지하는 데에만 봉사한다면, 이러한 직업이 자동차 수리공같이 스스로 유용한 척 꾸미지도 않는 직업보다는 더욱 부도덕하다
여성이 기업과 로펌, 신문, 출판사, 텔레비전 방송국, 대학, 병원을 운영할 수 있게 된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기관들을 더 인간적이고 민주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
고결성은 최소의 저항선에 굴복하는 것, 군중을 따르는 것, 정직과 자기 존중의 대가로 대중의 비위를 맞추는 것 등을 거부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대는 페미니즘이 가사일과 자녀 양육을 집단화시킬 것을 요구하는 것과 너무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인식으로부터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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