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마지막 기회 - 세 대통령이 초래한 제국의 위기를 넘어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지음, 김명섭.김석원 옮김 / 삼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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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키신저, 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와 더불어 미국 외교가에서 영향력 있는 3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한국 대중들에게는 '거대한 체스판'이라는 논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폴란드 귀족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와 독일 및 프랑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후 폴란드가 소련에 의해 점령당하자 캐나다에 정착해, 몬트리올에 소재한 맥길 대학에서 예술 석사를 취득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수여 받습니다. 그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로서 반공주의의 신봉하며 학계와 정관계를 비롯 제법 많은 이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2017년, 8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전세계에서 애도를 보낸 바가 있습니다. 위키 백과를 비롯 그를 설명한 여러 정보글에선 브레진스키를 미국의 국익을 주도한 냉혹한 현실주의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어느 정도의 이상주의적 시각과 미국의 리더십에 대한 도덕성을 강조하는 등의 절충된 의견도 피력하고 있었습니다. 국제 문제에 있어서 미국의 개입론에 헨리 키신저와는 명백히 다른 노선을 표하고 있으며, 도널드 럼스펠드와 같은 네오콘들과는 그 입장이 상이하며, 조지프 나이와도 도덕주의와 관련된 명분론에 있어 상당한 이견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물론 앞선 이들과 달리 미국의 국제적 일방주의를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온건한 제국주의에 빗대어 비교하고 있었는데요. 이 글 마지막 장에서 그의 이러한 시각이 잘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원제, "Second Chnance : Three Presidents and the Crisis of American Superpower"로 지난 2007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09년 2월 번역 출판 되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의견은 너무나 훌륭한 번역이어서, 일독의 어려움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글의 서두에서 브레진스키는 "미국 국제적 리더십을 책임감 있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행사해 왔는지에 대한 여부"를 규명해보고자 하는 목적을 먼저 드러냅니다. 후에 더 진술되겠지만 냉전 이후의 미국의 리더십이 상당히 정치외교적으로 주춤했던 결과를 낳은 것은 분명하며, 여기에는 조지 H. W. 부시, 빌 클리턴, 조지 W. 부시를 글로벌 1세, 글로벌 2세 그리고 글로벌 3세로 지칭하여 다른 이론가들과는 달리 미국의 제국주의를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앞선 주제에 대한 논증을 시작합니다. 물론 3인의 대통령들에게 붙인 저 제국주의적 호칭이 오로지 현대적인 제국주의적 인식에만 기반한 것이 아니라 그런 힘의 공백 즈음에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이 주도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빗댄 의미도 포함되어 있겠습니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비교적 주요한 경제외교 정책으로 수행된 이 세계화는 미국에 어느 정도 명과 암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 브레진스키는 신자유주의적 체제에 중국을 포함시키기로 한 당시 클린턴 대통령의 결단을 그저 오판한 정도로 그치지 않고 있는데요. 중국을 세계 경제의 품 안으로 끌어들이면 당연히 자연스레 중국 국내 정치에서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릴 것이라는 낙관주의를 비판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이와 유사한 맥락으로 이어진 5장에서도 "양쪽 정권(중국과 러시아)은 선거 민주주의에 대한 미국의 호전적 고무 행위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고 서술합니다. 이는 클린턴 행정부의 임기 말, 거의 졸속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회담에 대한 보편적인 중동인들의 인식과도 동일하지만 미국이 어떠한 정치적 해결 의지도 없이 중동의 정치적 역사와 종교적 문제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데 이르렀고, 이는 후에 이라크 전쟁을 앞둔 조지 W. 부시와 토니 블레어의 회담에서도 거의 제국주의적 인식과 다름없는 인종적 편견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브레진스키는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획책하는 듯한 발언에 그 직무에 있는 사람이 할 발언이 결코 아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었는데요. 뒤에 언급하겠지만 조지 W. 부시와 그를 따르던 네오콘의 국제 인식이 얼마나 기본적인 자유 민주주의적인 틀 조차 망각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역사적 사례라고 거듭 인정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미국이 주도하여 전세계적으로 이식하고자 했던 이 자유 민주주의는 이 자체로 이들의 중요한 정치적 명분이자 도덕적 명분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시장과 정치를 유연하게 만들어 미국이 추구하는 국익에 유리하게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니라, 전 임기를 통틀어 외교적으로 실패했다고 평가받는 클린턴 행정부가 유일하게 성과를 거뒀다고 여겨지는 코소보에서의 세르비아 세력의 축출처럼, 당시의 단순한 온건한 민족주의에 대한 함의가 아니라 앞선 명분처럼 개인의 자유, 민족적 자립과 관련한 기본적인 가치가 통과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를 자유주의적 이상이라고 받아들여도 무방하겠지만 이러한 측면에서 지난 몇 백년간의 역사에서 세계 패권을 움켜쥔 다른 국가와는 다른 미국의 정치적 명분이 존재하는 것이죠. 하지만 2007년 이라크 전쟁 이후, 다수의 중동인들이 현 상태의 미국이 과거 영국의 제국주의와 다름 없음을 결국 인식하고 말았다고 저자는 꼬집고 있었는데요. 특히 조지 W. 부시의 제2차 이라크 전쟁 이후, 이라크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정치적 난맥들이 국무부 관료들조차 이 지역에 대한 역사적이고 종교적인 배경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자기들의 방식대로 개입해 온 결과인 것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사태를 브레진스키는 수니파 강국이라고 할 수 있었던 이라크를 무리하게 자신들이 제거함으로써 미국의 국익보다 테헤란의 국익과 그들을 안심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국제정치적 인식하에 과거 영국이 뼈저리게 겪었던 '지역 내의 힘의 공백 사태'를 역사적으로 답습한 것으로 이 역사에서 미국은 분명 교훈을 얻을 수 있었음에도 당시 조지 W. 부시의 선악론에 기반한 일방주의에 몰입했던 네오콘들이 미국의 외교를 거의 40년이상 후퇴시키기에 이릅니다.마찬가지로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게 이어지는 다음 핵 억제 문제에 있어 저자인 브레진스키는 다소 듣기에 불쾌한 표현으로 한국을 '미국의 보호국'이라고 지칭하면서 서두를 시작합니다. 물론 이러한 인식의 일면에는 미국의 국제적 헤게모니가 여태까진 우리에게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에 기반합니다. 이를 한국 극우들이 신격화하는 '한국을 방어하는 미국의 책임감'등으로도 손쉽게 받아들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미국의 외교적 정책과 그것의 운명이 우리와 완전히 무관할 수 없다는 것에 있을 겁니다. 앞선 인식을 우리가 긍정한다면 클린턴 행정부 당시의 북한 핵문제와 관련된 또 다른 난맥들은 클린턴 대통령의 단순한 무능정도로 평가내릴 수는 없을 겁니다.  

브레진스키에 의해 그려지는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은 가진 바 능력과 의지 및 지성이 충분한 선택받은 권력자로 여겨집니다. 냉전 이후의 혼란한 국제 정세가 그 이전보다 심각했다고 평가하는 저자는 그것에 대한 일정부분의 책임이 빌 클린턴에게 있다고 지적하기에 이르는데요. 특히, 우리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핵확산 억제 기조'가 결과적으로는 동맹의 협조와 국제 체제의 공조 없이 단일한 세계 패권국이 이를 가능하게 하기란 실제로 어려웠다는 것이 그의 거듭된 판단이기도 한데요. 당시 미국의 동맹국들이 그 어느 시대보다 미국과 잘 지내왔고 그런 측면에서 분명히 도움이 될 만한 계재가 있었음에도 인도가 핵무장을 시도할 때, 강력하게 제제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일본과 서유럽의 동맹들의 의견을 배제하고 이를 묵인하여 인도에 이어 파키스탄의 핵무장까지 사실상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미국과 소련이 주도한 이 핵무기 억제와 관련해. 그 명분이 다소 부족했음에도 다수 국가들은 지구상의 핵무기 확산에 대한 공통된 우려가 기반이 되었던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무장은 자신들의 정치적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국가들의 도덕적 한계를 거듭 시험하게 된 사건으로 이란은 말할 것도 없이 북한마저 미국의 이런 도덕적 명분의 실기를 이용하였는데요. 차기 행정부인 조지 W. 부시 조차 집단적인 협의체가 없이는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끝내 인정하게 되었던 것도 그저 미국 외교의 실패라든지 굴욕으로 평가받을 필요는 없겠지만 너무 늦게 현실을 인지하게 된 것은 특히 우리에게는 불행한 일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미국은 최소한의 핵 억지 정책에 있어서 활용할 카드들이 많았지만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전혀 이를 사용하지 않았는데요. 저자 자신이 카터 행정부 시절의 관료였음에도 같은 민주당 출신의 연방 대통령을 비판하는 데 있어 전혀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클린턴 행정부의 2기 외교 정책은 물론 1기보다는 약간 진보된 소산물이지만 르완다와 소말리아의 비극적 인종 청소를 억지로 넘어간다 하더라도 북한 핵문제에 있어서의 외교적 무능,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 회담을 손쉬운 정치적 잇속 만으로 취급해, 지역 내에 해당되는 국가들 뿐만 아니라 자유진영에 있어 미국의 외교적 신뢰를 급락시키게 만든 사건으로 저자는 비판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어지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오만한 선악론도 미국의 외교적 신뢰를 급전직하시킨 문제였던 것은 분명한데요., 이 전 클린턴과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기의 총체적인 외교적 무능은 냉전 이후의 미국 국익에 있어 중요한 시기를 치밀하게 분석하지 못하고 국내 정치적인 요인과 더불어 방산 로비에 굴복해 결국 미국 패권의 쇠퇴를 낳게 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 유명한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냉전의 이후, 그야말로 세계 자유진영의 평화로운 번영을 선언하였는데요. 앞서 언급한대로 네오콘들과 입장을 같이한 후쿠야마와는 달리 브레진스키는 결국 현실의 역사로서 냉전 시기보다 복잡하고 혼란한 정세를 거의 미국의 책임으로 놓고 보고 있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연성 권력의 쇠퇴까지도 포함한 외교적 실패를 빌 클린턴과 조지 W. 부시가 함께 초래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이 글의 주요한 비판적 논점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조지 W. 부시 초기의 정책적 결정의 화두이기도 했던 신자유주의(세계화)와 신보수주의의 이행은 일부 기업인들과 자본가들에게 이익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세계에 대한 미국의 이익에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전세계에 닥친 포퓰리즘과 반미주의는 자유 민주주의를 일방적으로 강요한 대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중동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나날이 증가하는 반미는 바로 이러한 문제에 기인한 것입니다. 브레진스키가 중동에 왜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지 못했는가에 대해 사회가 성숙해짐에 따라 서로간의 관용적 태도를 쌓지 못하는 현실과 서구의 민주주의가 마찬가지로 어느 곳에나 뿌리 내릴 수 있다는 과도한 믿음 또한 그 실패를 답습하게 만든 것일텐데요. 여기에 이슬람의 폐쇄성과 정교일치의 율법은 그저 부차적인 문제일 것입니다. 더욱이 중동에 미국이 영국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제국주의 국가로 비쳐지는 것은 실로 미국의 현지화에 대한 정책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가히 짐작하게 되는데요. 이러한 총체적 난국을 그저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자신감 때문인지는 아직도 불확실한 측면이 있습니다.


여기에 브레진스키가 미국 외교 정책과 국제 정세를 읽는 눈에 비판적으로 쓰게 된 것은 분명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서 일겁니다. 더욱이 우리와 같은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있어 어찌됐든 자유 진영의 맏형으로서 어느 정도는 세계 질서를 존속시키기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길텐데요. 현재의 중국이 자신들의 입맛대로 국제 정치적 질서를 조종하고자 하는 의도를 당연히 불식시켜야 하며, 더 나아가 중국이 세계 패권을 차지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미국을 포함한 우리 동맹체제의 과제일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저는 과거 미국이 CIA를 동원해 벌인 타국에 대한 역겨운 정치 개입을 혐오합니다. 또한, 신자유주의가 추동한 세계화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입니다만 과거 미국이 소련과 벌인 핵무기 감축과 같은 노력, 핵억지 정책이라든지 주요 지역 내의 긴장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 것들을 인정하는 편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철지난 구호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그럼에도 견고한 민주주의 국가에 의한 세계 체제의 선도를 지지하는 편입니다. 이것의 요지는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국가가 전세계 질서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브레진스키가 생각하는 미국의 명분, 즉 도덕적 선명성은 외교 무대에 있어서도 중요하게 추구해야 될 가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도덕적 명분을 무시하거나 아니면 도덕적 개입이 필요한 상황에서 돈의 문제로 이를 무시하는 것은 그만큼 대가를 치뤄야만 했다는 점이 이 글이 개괄하는 주요한 논점들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과거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위해 명목상 3000억 달러를 지출했다는 것은 도덕적 명분의 결여가 오히려 막대한 비용 지출을 초래한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물론 거대한 방산 업체에 로비 대상으로 전락한 미연방 정부에 있어 전쟁을 통한 경제의 선순환이라는 억지 논리를 펼칠지도 모르겠으나 여기에서 한가지 확실한 점은 도덕적 명분을 상실한 전쟁의 결과가 결국은 미국의 국익에 있어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언급하는 전세계의 발칸반도, 이를테면 중국의 신장과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아우르는 이 세계 정세의 화약고가 어떻게 세계 대전을 발화시킬지 두려운 마음으로 이를 지켜보는 것이 거의 최선이 아님은 명백할 겁니다. 이 지점에 저자가 말하는 미국의 두 번째 기회에 대한 맥락이 존재하는 것이겠죠.    



-글에서 브레진스키는 과거 네오콘 세력이 9.11을 정치적 셈법을 위해 이용했다는 것을 명백하게 인정하고 있었는데요. 흡사 마니교와 같은 조지 W. 부시의 선악론과 네오콘의 결탁은 사실상 미국의 패권을 후퇴시킨 역사적 사건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이 국제적 리더십을 책임감 있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행사해왔는지 여부는 미국인들의 안보와 안녕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더 크게는 전세계에 대해서도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마거릿 대처나 프랑스아 미테랑 중 어느 누구도(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즉각적으로 독일의 분할을 종결시키고자 하는 조지 H. W. 부시와 헬무트 콜의 결심을 공유하지 않았다

세계화는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소수가 처음에 겪는 어려움들을 상당 부분 상쇄하는 이익의 재분배를 통해, 궁극적인 균형 상태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계화의 선봉으로서 미국은 물질적인 면에서는 강화되고 도덕적으로는 정당화된 전 지구적 리더십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비록 세계화가 처음에는 오직 경제적 관점에서만 수용되었지만, 세계화의 옹호자들은 세계화의 매력이 정치적 요소에 의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재빠르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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