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심리 현대지성 클래식 39
귀스타브 르 봉 지음, 강주헌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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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중북부 노장르로트루 출신의 19세기를 대표하는 사회심리학자인 귀스타브 르 봉은 그가 존경해 마지 않았던 허버트 스펜서와 마찬가지로 민족학, 심리학, 사회학, 의학, 물리학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가졌던 학자였습니다. 오늘날에는 거의 그가 창안했다시피한 사회심리학이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의해 세인들에게 더욱 알려졌고, 같은 사회학의 측면에서 연구 대안의 한 방편으로, 혹은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과 심리적 구조를 역사와 철학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적 차원으로까지 발전하기에 이릅니다. 후에 사회심리학과 관련해, 후에 뒤르켐과 논쟁하게 되는 가브리엘 타르드가 르 봉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인 르 봉은 1870년의 보불전쟁과 1914년 이후의 1차대전까지 직접 경험하면서 그가 스스로 이해해 왔던 세계관 전반에 큰 변화를 겪었던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그의 학문적 경향이 1800년대의 유럽 정치 전반을 이끌었던 브루주아지를 대변했고 대표적 논저라고 할 수 있는 '군중심리'와 '민족의 심리학'에서 종래와는 다른 관점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군중으로 시작하여 초기 유럽 민족주의에 상당한 비판적 분석을 한 르봉에게 대전이 끼친 영향이라 할 수 있을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군중심리'를 이미 다른 번역판으로 일독하여 편협한 서평도 쓰기도 했는데요. 그럼에도 작게는 책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의미에서, 그리고 여기에 의미를 더 부여하여 강주헌 역자가 번역한 이 판이 어떤지 강한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이 글의 역자는 주로 노엄 촘스키의 글을 번역했던 분인데요. 그래서 더 역자에게 관심이 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원제, "Psychologie des Foules"로 지난 1895년에 출간되었고, 이듬해인 1896년에 "he Crowd: A Study of the Popular Mind"라는 제목으로 영역본으로도 출판되기에 이릅니다. 국내에는 여러 번역본들과 더불어, 그 중' 현대 지성'에서 2021년 10월 번역판이 출판되었습니다.

우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이 글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18세기에서 19세기 초반의 상당한 교육을 받은 브루주아지들이 과거 구교와 신교의 권력 투쟁에서 사실상 승리한 상황을 먼저 언급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이전의 유럽 사회가 구교라고 말하는 가톨릭의 정치사회적 개입에서 종교적 개혁의 정신으로서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정교 분리를 이룩해, 이 부르지아지들에 의해 계몽주의 시대에 걸맞는 사회를 열었다고 봐도 무방해 보입니다. 이른바 이 부르주아지의 대두라는 의미 자체가 여러 복합적인 사회적 산물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나중에 사회 전반에서 다소 이르지만 계급적인 구귀족들을 대체하기에 이르는데요. 이에 르 봉은 자신 스스로도 18세기 무렵에 항유하는 민주주의가 실제로 완벽하지는 않았다고 언급하며, 외형적으로는 갑작스러웠지만 군중의 궐기를 이끌어 낸 이'프랑스 혁명'이 비로소 '군중'이라는 아주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켰다고 봐야 할 텐데요. 저자는 이를 보다 명확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하에 글의 서두에서 먼저 밝히고 있었습니다. 이 프랑스 혁명은 다소 예측하기 어려웠던 나폴레옹 전쟁으로 이어졌고, 거의 전유럽을 전장 삼아 대략 300만의 희생자를 초래하게 되었는데요. 결과론적이지만 이는 기존에 불안하게 온존하던 유럽의 사회 체제를 일소에 붕괴시켰고 당시의 기득권층이 이런 전사회적 파탄을 초래한 군중들에 대한 기존의 역사학자들과 철학자들의 천편일률적인 해석이 상당히 미흡하다는 판단을 내린 르 봉은 이에 군중을 새롭게 규명하는데 나서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스스로 역사적 소명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인지는 다소 불명확 하지만 혁명 자체를 옆에서 지켜본 지식인으로서 꽤 견고한 사명감을 갖게 되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어느 학파, 어느 학술에 얽매이지 않은 학자이고 스스로 객관성을 유지하며 당시 유럽의 상흔을 초래한 이들 군중 현상에 대한 본질적인 분석을 시도하는데요. 앞의 객관성이라는 말이 저자 스스로에게 어떠한 의미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그의 글이 히틀러를 비롯한 많은 왜곡된 정치인들에게 영감을 안겨주었고 오늘날에도 이 군중과 관련된 그릇된 인상을 재생산 하는데 오르테가 이 가세트와 함께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 점은 부정할 수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인간이 불확실성을 갖고 있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을 우리가 얼마간 차치하더라도 르 봉의 의견에서 '개인은 대체로 순진무구함에 가깝다'는 평가를 쉽게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본성의 개인들이 모인 군중이 집단적인 무의식 상태에서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일을 벌일 수 있다는 저자의 믿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는데요. 르 봉 자신의 통찰대로 사회가 신봉하는 제도자체가 단순히 몇 해에 걸쳐 이룩된 것이 아니라 꽤 오랜 시간 지속되어 온 민족 스스로의 관습, 고유한 정치적 상황과 사회 내부의 정당한 구속력에 의해 체제를 유지시킨 일종의 사회적 산물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러한 맥락은 그의 다른 논저 '민족의 심리학'에서도 동일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즉, 이러한 제도는 "가진자나 못가진자 양자 중 어느 한 부류를 완벽하게 만족시키지는 않는다"는 조건에서 모두가 어느 정도 불만족하는 형태로 유지되어 왔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입니다. 이렇게 기존의 제도 자체가 인간의 이성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측면도 분명 존재하고 또한 일부는 개선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볼 수 있겠는데요. 그렇다 하더라도 르 봉의 불안감처럼 분노한 군중들에 의해 사회 전체가 급격한 혁명으로 이어지는 것 자체가 아주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제가 보기에 이 지점에선 집단으로 모인 군중들의 이성적 판단이 어느 정도로 가능할 수 있겠는가를 예측해 보는 것이 필요하겠으나 르 봉은 자신의 글 2부 2장에서 "군중은 예부터 진실을 갈망한 적이 없다"는 극대화 된 회의와 함께 서두에서도 보였던 "군중은 이성으로 움직이는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논증하고 있는데요. 저자는 이와 관련해, 이 "격렬한 논쟁이 일어날 만한 문제"를 어떤 문명이 겪게 될 수밖에 사회적 진화라는 관점에서 사회학이 쥐고 나아갈 길이라고 판단되는 '실질적 가치'를 통해, 군중의 원인과 이들의 파급적 문제들을 면밀히 분석해 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마찬가지로 1장 전반에서 논의되고 있는 군중의 기본적인 여러 속성들과 그에 따른 결과물들은 단순히 개인과 군중의 대비되는 비교 뿐만 아니라 양자가 엄연히 다른 형태의 소산물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 한데요. 흡사 이른 결론일수도 있겠지만 군중 자체를 부정적 요인만으로 사회에서 어떻다는 식으로 두려워 하거나 판단을 유보할 수도 있지만 저자 스스로는 이 군중의 출현과 더불어 이어지는 군중의 시대가 앞으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소산으로 여기는 듯 했습니다. 물론 르 봉의 이와 같은 전망은 거의 대부분이 부정적인 것들이었고 지금의 민주주의를 고려한다면 대중이라는 의미와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오늘날에도 그만큼 복잡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진술한대로 당시 유럽 사회에서 날로 주도권을 강화하고 있던 있던 많은 브루주아지들에 의해 가톨릭의 정치 개입이 성공적으로 불식되기에 이릅니다. 물론 이것의 역사적인 맥락은 다소 복잡할 수도 있겠는데요. 그러나 이 브루주아지들이 프랑스 혁명에서 분노한 민중들의 폭력적 결기를 목도하게 됨으로써, 르 봉은 종교가 세속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브루주아지들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대신 진술하기에 이릅니다. 그만큼 당시 군중의 출현은 기득권 상위에 있던 귀족 정치를 궤멸 시키는 정도에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프랑스 혁명이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생각됩니다. 오늘날 기본적인 사회적 관념으로 봤을 때, 이 글에서 르 봉이 분석하고 있는 군중 전반의 이해는 다소 선민사상과 엘리트주의에 경도된 해석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요. 르 봉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군중의 감정은 여성들처럼 순식간에 극단을 치닫는다"와 같은 여성차별적인 인용을 보며 다시금 그 시대에 팽배해 있던 여성에 대한 뿌리깊은 차별을 짐작케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글 2부에서 자세히 논증되는 앵글로 색슨과 라틴 민족의 인종차별적인 대비는 더 나아가 정치 발전 과정에서 앵글로 색슨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의 라틴 민족으로 서술됩니다. 물론 근대의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는 데 있어 이를 그저 편협한 도식으로 이해하여 미국 건국 당시의 앵글로 색슨이 여타 다른 민족들에 비해 성공적으로 민주주의의 토대를 쌓아 올렸다는 진술은 새뮤얼 헌팅턴 식의 그것을 쉽게 떠올리게 합니다. 차라리 르 봉은 이 부분을 좀 더 제도적이고 관습적인 문제로 돌려 말하며 스스로 심리학적으로 이해한 '민족에 대한 관념' 자체에 너무나 큰 과신을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어찌됐든 앵글로 색슨보다 라틴 민족에서 군중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식으로 결론이 나지는 않아 사뭇 다행이었지만, 인종과 민족의 설득력이 없는 문명적 결정론과 같은 르 봉의 의견은 앞선 여성 차별적 인식과 함께 이 글에서 줄곧 보여지는 '군중'에 대한 현란한 분석과는 상반된 형태로서 더욱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여겨집니다. 정치적 외형으로는 '제도와 정부가 민족의 산물'이기 때문이라는 비교와 함께 그러한 인식적 맥락이 도출되었을 수도 있지만 어찌됐든 여기에는 좀 더 명확한 근거가 필요한 것은 분명했습니다. 아마도 당시에는 지금과 같이 여러 사회적 개념들이 신중하게 규명되지는 않았기에 스스로 개화되었다고 여기는 지식인 조차 이러한 논리적 모순을 답습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요.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사회심리학이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으로 그저 국한시킬 수밖에 없는 건지 다소 난감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르 봉이 논증하고 있는 군중의 성격과 사회적 의미 자체는 꽤 귀담아 들을 만한 부분도 있다 생각됩니다. 오늘날 단편적인 군중심리로 널리 이해되고 있는 비이성적 판단에 따른 매우 즉흥적 행동, 즉 다수의 무리가 군집한 가운데 그러한 분위기에서 위험해 보이는 정신적 고양 상태와 폭력적 행동의 가능성 등은 사회 체제 전반에 어느 정도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진술은 충분히 설득력을 갖고 있었는데요. 이들이 어떠한 '정치적 식견이나 이상'을 위해 나서기 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이 우선되었기 때문이라는 르 봉의 분석은 그가 군중에 대해 갖는 해석의 또다른 모습 이라고 여겨집니다. 사실 군중 현상과 군중 자체를 결코 부정할 수 없다는 르 봉의 평가와 더불어, 군중 자체가 사회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역사적 소산에서 '이들 군중을 조종하여 악용할 가능성이 있는 자'에 대해 논하는 즉, 더 나아가 선동적 정치인에 의해 무참히 휘둘림을 당해 정치 전반을 약육강식의 원시 시대로 돌리게 되는 것이 르 봉이 경계하는 핵심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와 같은 사회 전반의 파국을 방지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가 2부 전반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나 있는데요. 여기에 인용되고 있는 역사적 사실로서 나폴레옹과 그가 주도했던 전유럽을 상대로 했던 전쟁 과정에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에 열렬히 환호했던 당시 프랑스 시민들을 꽤 절묘하게 매치시켜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을 높이고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프랑스 인들을 직접적으로 '군중'이라고 지칭하기까지 합니다만 이러한 군중들이 이성적 판단이 전무하다는 강한 믿음과 이들이 쉽게 거짓에 선동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나폴레옹 전쟁 자체가 프랑스만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던 것은 이처럼 분명해 보이기 까지 합니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 시기부터 나폴레옹이 최종적으로 몰락하게 되는 워털루 전투가 마무리되는 이 시기의 시민들이 어쩌면 군중과 다름없었다는 최종적 진술에 반론을 내기가 어려운 부분도 그와 같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체제를 지탱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 자체가 단순히 인스턴트 식으로 만들어진 체계는 결코 아닐 겁니다. 르 봉의 주장대로 정치와 정부 자체가 고유한 민족성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제도 자체가 완벽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개혁의 필요성도 충분히 있어야 할 텐데요. 저자인 르 봉의 의견대로 완벽하지 않은 민주주의가 어떻게 18세기를 거치는 동안 유럽에 뿌리를 내리고 초기 브루주아지들이 이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되었는지는 역사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건전성이 아마도 사람들을 군중 상태로 내몰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르 봉 자신이 스스로를 역사가임을 자처하지는 않았지만 미래의 군중의 대두로 인한 민주주의 체제가 몰락하거나 그에 준하는 비상한 결과에 이르지 않도록 건전한 지도자 뿐만 아니라 건전한 대중 혹은 시민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 글을 통해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되는데요. 아무리 높은 교육을 받은 계층이라고 할지라도 쉽게 군중에 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 듀이와 토크빌이 강조한 '시민들 스스로의 재교육 그리고 진지한 성찰과 사회에 대한 통찰'이 무엇보다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늘날의 시민들의 무력감과 정치적 영향의 쇠퇴는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왜곡된 자본주의가 철저한 이기심과 맞물려, 다수의 정치 권력이 흡사 시민들이 넘게 만드는 군중에 이르게 하는 위험한 지경으로까지 내몰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부분은 지난 역사에서 유럽이 몸소 체험한 바가 있는 것이기도 한데요. 오늘날은 좀 더 정치적으로 교묘해져, 물 밖으로 나온 극우 포퓰리즘이 선동하는 자들 스스로의 정치 권력을 위해 시민을 더욱 오도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습니다. 공익이 아닌 사익을 위해 움직이는 정치인들의 존재, 저는 이것이 우리 체제에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를 시민이 아닌 군중으로 몰아가는 어처구니가 없는 지식인들과 냉엄한 현실에서 말입니다.





군중 세력을 부정하려는 주장은 허튼 소리에 불과하다. 서구 문명의 최종 단계 중 하나가 군중의 등장이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군중 속의 개인이 행동만 본래의 자신과 다르게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독자성을 상실하기 전에 이미 그의 생각과 감정부터 바뀐다.

군중의 일원인 개개인의 기질이 무척 다양하기 때문에 군중이 직접 목격한 사건을 무척 다양한 방법으로 왜곡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30년이 지나자 너그럽던 영웅(나폴레옹)은 권력과 자유를 찬탈하고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3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죽음의 늪으로 몰아넣은 잔혹한 전제군주가 되었다.

중세의 기독교 사상이나 18세기의 민주주의 사상, 현재의 사회주의 사상은 그 수준이 대단히 높다고 볼 수 없다. 철학적으로는 그 사상들이 오류투성이에 변변치 못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상들은 지금까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국가를 운영하는 데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어떤 사상의 정당성이 입증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상이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최고행정재판소세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가톨릭 신자가 되어 방데 전쟁을 끝냈습니다. 이슬람교도가 되어 이집트에 교두보를 마련했습니다. 교황권 지상주의자가 되어 이탈리아의 성직자들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유대 민족을 다스려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솔로몬의 성전을 다시 세우겠습니다"

군중의 확신은 맹목적 순종과 야만적 편협성, 폭력적 수단을 써서라도 전파하려는 욕구를 가지며 이런 특성은 종교적 감정에도 내재한다.

미국 같은 나라는 민주적 제도를 활용해 크게 번영하고 있는 반면 중남미의 스페인계 공화국들은 거의 같은 제도를 갖추고도 무정부 상태에서 신음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사건은 자신에 대한 강력한 믿음 말고는 내세울 것 없는 무명의 신념가에 의해 일어났다.

프랑스 역사에서 1790년부터 1820년까지 비교적 짧은 기간인 30년, 이른바 한 세대로 여겨지는 시간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자. 이 기간에 프랑스 군중은 처음에 왕정주의자였다가 혁명을 지지했고, 그 후에는 제정주의자가 되었고, 다시 왕정주의자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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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식 2022-01-25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어린 글 잘 읽었습니다만, 글쓰기는 좀 가다듬어야 할 것 같네요. 장황한 건 둘째치고 어색한 문장, 매끄럽지 않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요.

베터라이프 2022-01-25 09:20   좋아요 0 | URL
지적 감사합니다. 조만간 글을 수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