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낭만주의
칼 슈미트 지음, 조효원 옮김 / 에디투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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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까지도 진보와 보수 할 것 없이, 큰 관심을 받고 있는 법학자이자 철학자 및 사상가인 카를 슈미트는 그가 주장했던 정치와 법에 대한 이론 및 고유한 철학적 성과들로 꺼지지 않는 논쟁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기도 한데요. 그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순진한 자유와 정치를 혐오했으나, 스스로는 후에 히틀러의 나치에 적극적으로 부역하며, 유대인들을 정리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에 동의했던 것만으로도 악명을 떨친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크 릴라는 그런 슈미트를 '도덕적 최저점'에 있는 인물로 규정하기도 하였는데요. 1945년 독일의 패전 이후, 미군에 의해 주도된 전범 재판에서 혐의 없음으로 풀려나고 나서, 자연인으로 돌아온 그는 말년에 이르러 나치시절의 자신의 행적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였습니다. 동시대의 인물인 알렉상드르 코제프가 "대화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독일인"이라고 언급했던 것을 보면, 이러한 그의 참담한 도덕성과는 달리 학문적으로 혹은 사상적으로는 철학자라는 당시 저명인의 범주에서 세인들에게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샹탈 무페와 지그문트 바우만을 통해 카를 슈미트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진보에 있는 사상가들이 카를 슈미트를 전체주의의 반면 교사로 그를 여기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순전히 학문적인 측면에서 법에 대한 슈미트의 흥미로운 이론들이 어느정도는 일독의 필요성으로 답보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이처럼 "비도덕적 인물의 천재적인 측면"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라 일개 독서인으로서 가타부타 말을 할 입장은 아닙니다만 시대의 천재가 항상 만인의 지지를 받았던 것은 아님을 고려해 볼 때, 각자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이 책은 원제, "Poltische Romantik" 으로 1919년 처음 출판되었으며, 1925년에 제2판을 거치기도 했습니다. 번역된 책의 서지 정보에 의하면 이 책은 1998년의 제6판을 기반으로 번역되었고, 2020년 8월에 초도 번역이 이루어졌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슈미트의 이 글이 원만한 번역에 비해 일독의 난해함을 갖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저자가 규정하는 '낭만'과 '낭만주의'에 대해 이론적인 측면에서 명확한 기준이 다소 모호한 것은 일견 아쉬움으로 다가왔는데요. 슈미트가 철학적으로 규명한 '실재'가 사회와 역사의 혼합물임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실재가 부재한채로 '내키는대로 주관화'하는 일련의 움직임들을 낭만주의로 보는 것이 기본적인 인식틀로 여겨졌습니다. 즉,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와 반대이면서, 합리주의와 계몽주의의 반대"라는 그의 인식은 일종의 '대립론'이라 치부된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분명한 요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불어 이 글에서는 프랑스 혁명과 이후의 나폴레옹 전쟁으로 귀결되어 나타난 복고주의 체제인 빈체제를 앞선 것의 대립물로 놓고 있었으며, 마찬가지로 당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1500년이 넘은 카톨릭의 존재를 낭만주의자들이 부정하고 개혁의 대상으로 여긴 지점을 "역사는 결코 단절될 수 없다"는 이해하에 낭만주의자들이 갖는 "역사적 주관성" 비판하는 데, 메테르니히의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프리드리희 폰 겐츠와 아담 뮐러의 정치적인 행적과 특히, 아담 뮐러의 사상적이고 정치적인 변화들을 고찰하면서, "당시의 난폭한 프랑스 혁명의 시재적 결과물"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상세히 분석하는 것으로서 일종의 정치사상적 서사로 글 전체가 점철화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땅히 독자들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당시에 극명하게 도래한 자유주의적 낭만주의는 저자인 슈미트의 입을 통해, "개인과 개인주의 그리고 자유"의 고삐풀린 관념체계로 이해되면서 더 나아가, "역겨운 천민들의 정치"라고 일컫는 프랑스 혁명으로 연결되기도 하는데요. 그에 의하면, 이 낭만주의자들은 자신들과 같은 일개 개인들이 국가와 다름없는 위상을 갖고 있다고 여겼으며, 이들에 의해 자행된 무분별한 헌법의 자의적인 해석과 그에 따른 개헌 역시, 슈미트는 매우 비판적 어조로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슈미트가 프리드리히 슐레겔을 통해 살펴본는 국가 개념의 본질이 과거의 역사의 산물로서, 또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객관화된 주체로서 강조되고 있었는데요. 앞선 낭만주의자들의 이론적인 측면에서 도화선이 되었던 장 자크 루소를 유독 꼬집어 비판하는 것은 그에게는 마찬가지로 동일한 기질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위대한 개인주의'와 '자유 의지'를 잉태했던 이들을 낭만주의라는 외피로 규정해 탈역사적 혹은 충동적이고 감정에 사로잡힌 무리들로 인식하는 것이 과연 명확한 대립된 개념으로서, 일차적인 설득력을 갖고 있는 것인지는 약간 이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18세기 이후, 철학과 사회에서 전유럽의 계몽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전통을 어느 정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는 이 자유주의적 낭만주의에 대해 슈미트가 가졌을 반감은 충분히 이해가 되기는 합니다. "시대가 변했다"는 문제를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있어서 유럽의 저명한 인사들이 가졌던 감정은 각기 상이했던 것으로 판단되는데요. 글 초반에서 언급되는 낭만주의의 시초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인과 독일인들이 혁명에 대한 감정과 태도가 극명하게 달랐던 것도 슈미트의 언설로 통해 상당 부분 이해가 되었습니다. 다만, 에드먼드 버크를 통해, 어찌됐든 장 자크 루소를 매섭게 깎아 내리는 것과 그것이 혁명의 외형적 모습이라 할지라도 '천민들의 정치'라고 규정되는 것은 현대인의 감성을 가진 저로서는 다소 안타까운 일이기도 했는데요.요. 반대로 "빈체제 이후, 다시 혈통을 내세우는 자들이 도래했다"고 언급되는 부분에서 슈미트의 명확한 태도가 보이지 않는 점 또한 상당히 아쉬웠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아쉽다는 표현 정도로 일단락을 내리려고 합니다만, 그의 이후 행적들로 봤을 때, 특히 카톨릭에 대한 기존(개혁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는)의 "혈통있는 자들"의 인식을 어느 정도 동조하는 것으로 느껴지디고 했는데요.. 이러한 인식에서 중요한 점은, 우리가 그렇게 나누기 좋아하는 단순한 정치적 관념으로서의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앞서 언급한대로 카톨릭은 전통주의적 입장에서 그 역사를 존중받을 만하다는 것이 슈미트의 해석으로 보였습니다. 이것은 국가와 정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역사의 실재성과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을 폭력이나 힘으로 무너트려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표하는 것에 이르고 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런 슈미트의 입장은 아담 뮐러를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읽혀지기도 하는데요. 자유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갖고 있는 당시의 아담 뮐러는 대표적인 낭만주의자였고, 혁명을 견인한 자유주의적 낭만주의가 종래에는 여러 정치적 지형들을 통해 '보수주의'로 귀결되는 것으로 고려했을 때, 그도 역시 보수주의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여기서 인용되고 있는 아담 뮐러가 다소간 에드먼드 버크의 지지자로 읽히기도 하는데요. 뮐러의 대표적인 논저인 "대립론"에 주목하고 있는 슈미트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소회로서 밝히고 있는 뮐러의 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떠들썩했던 18세기 말이 우리에게 남겨준 온갖 문서, 대화, 행동 들 가운데 지금까지 어느 하나 완결된 것이 없다"고 피력하는 것은 혁명에 대한 낭만주의자의 눈물나는 재조명에 대한 노력과 다시금 이 혁명의 주옥같은 언어들을 되새김하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슈미트 스스로는 이 아담 뮐러의 사상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기가 다소 어렵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만 뮐러가 보수적인 지주들로 구성된 반대파에도 줄을 대고, 동시에 보수주의에도 손을 내민 것으로 보아 아담 뮐러의 낭만주의는 스스로의 이익과 결정에 수반하는 것으로도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개인의 고유한 결정 내지는 이익에 대해 슈미트도 어느 정도 애덤 스미스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만, 슈미트가 평생에 걸쳐 겉으로는 '일관된 주의'를 옹호했던 것으로 보아 낭만주의에 대한 그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남음이 있습니다.

이렇게 혁명 이후, 슈미트는 빈체제에 의한 복고주의 시대에서 '정치적 낭만주의'는 추상적 합리주의에 대한 역사적 반동에 종속되었다고 평가하고 이를 헤르더와 보날에 이르러, 2장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논증되고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점철된 도덕주의자였던 로비에스피에르가 실로 무지했던 것은 인간의 이기심과 개인적 욕망이었을 겁니다. 혁명의 주역들이 전부 자신과 같았으면 혁명이 그런식으로 귀결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처럼 그의 인간에 대한 진정한 무지가 역사의 아이러니로 남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독일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혁명에 반대하는 이들이 강고하게 갖고 있던 생각은 "인간 사회는 이미 역사적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회가 그 자체로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뜻을 갖고 있는 것이죠. 또한, 이것은 혁명 열사들의 무질서를 바로 잡는데에 역사가 필요한 것이고, 그렇게 축이 무너진 인류 공동체에 대해 민족이라는 개념이 탄생했다고 보는 점은 꽤 흥미롭기도 하였습니다. 민족 개념의 탄생이 어떻게 보면 혁명의 소산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혁명의 부정적인 파급을 치유하기 위해 도출된 것이 민족이라는 그의 해석은 루소가 이를 오용했다고 다시 한번 규정하면서, 이것은 오로지 역사적 산물이라고 주장하면서 일단락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2장 전반은 역사와 국가의 연계라는 인식적 측면에서 슈미트가 공을 들인 부분이기도 한데요. 마찬가지로 이 역사와 국가간의 관계는 무엇보다 합리적인 관계이고 이를 다시금 재해석하거나 기존의 인식적 체계를 기피하는 것을 낭만주의의 숨길 수 없는 본질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단순히 낭만주의가 비합리적인 어떤 주체성에 대해 집중하고 뒤이어 3장에서 논의되는 '인간의 충동적인 감정적 소산'으로서의 수많은 개인주의들이 역사의 흐름을 배격하는 움직임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결말로 그려지고 있기도 한데요. 앞선 빈체제에 따른 복고주의를 전통과 역사에 기반한 기존의 공동체적 사회체계로 저자인 슈미트와 동일하게 같이 바라봐야 할지는 지금으로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습니다. 여기서의 핵심은 슈미트가 '보수주의'라는 단어를 끄집어 내어 그가 줄곧 잘했던 낭만주의의 대립물로 체계를 확립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보와 보수라는 단순한 이원화된 논리들을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꺼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이처럼 18세기 말을 거쳐, 19세기를 침윤시킨 낭만주의적 서사들이 "주관화된 기연주의"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점은 그의 일관된 가치 체계에서 일견 이해되기도 합니다만 낭만주의자들의 주관성을 강조하기 위해 굳이 기연주의를 꺼내들 필요는 있었을지 약간 의문이 듭니다. 무신론을 비판했던 말브랑슈와 같은 철학자들과 그것에 기반한 기연주의적 입장들과 범신론 전반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러한 일부의 비판적 사조속에 혁명의 단어와도 같은 일반 의지에 군주를 종속시키려고 한 일련의 움직임 또한 그는 점진적으로 비판합니다. 프랑스 혁명에서의 수많은 천민들과 반대의 군주는 극명한 대립물로서, 이러한 인식의 토대가 아담 뮐러의 것이라 할지라도 슈미트 역시 성공적으로 이를 받아들인 것은 분명합니다. 간접적으로는 인용된 에드먼드 버크를 통해 슈미트 역시 혁명을 경멸했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단순한 자신의 정치적 관념에서가 아니라 실재의 측면, 합리의 측면, 전통의 측면에서 거부했던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끝으로, 이 글에서 전반적으로 진술되고 있는 아담 뮐러와 같은 수사에 대해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는 낭만주의자들이 기존의 전통주의와 그것들을 따르는 여러 주제들을 관념적으로 모호하게 만들었던 것은 낭만주의 자체가 그 특별한 주관성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사상에서 다소나마 일관성을 결여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자신들의 의지와는 별반 상관없는 카톨릭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요리하고 싶어했던 것이나,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형이상학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논리적 명료성을 답보하지 못해 시대적 요청을 위한 중대한 설득력을 갖지 못한 것도 결점이자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부족한 이해로 왜 자유주의적 낭만주의가 왜 보수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일종의 단초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앞서 소개했던 바와 같이 혁명의 실패와 그에 따른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적극적으로 보수주의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각국의 정치 무대에서 보수주의가 얼마나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고 부르짖는지 따져보면 얼마간 그러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역사의 개인적 해석"조차도 용인받는 시대이고, 무엇보다 개인의 자유가 중요시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어리석은 하층 계급들이 일으킨 혁명의 그 결과물이 어느 정도 개인의 자유라는 함의에 이르기도 하였죠. 물론 과거 보수주의의 이력에서 개인의 자유란 오로지 힘있는 자들의 자유이기는 했습니다. 무덤에 있는 슈미트가 개인들의 자유가 중요시 되는 이 사회를 나약하고 부질없는 것으로 볼지는 모르겠으나, 반대로 국가와 공동체의 필요성 또한 자유주의의 왜곡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그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앞선 인식과 마찬가지로 힙있는 자들의 국가론과 일반 시민의 국가론은 명백하게 상이한 차이를 갖고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글을 마무리 하기에 앞서, 프리드리히 슐레겔과 아담 뮐러, 겐츠, 말브랑슈와 보날과 같은 당시의 사상가들에 대한 기초적인 인지없이, 슈미트의 서사에 기반해 서평을 썼기에 매우 부족한 글이 되었음을 밝히고 싶습니다. 더불어 번역은 대체로 나무랄데가 없었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수록되어 있는 역자의 후기는 모두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번역서에 대한 판권 문제에 대한 한국 출판계의 아쉬운 부분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구입은 출간된 8월 즈음이었는데요. 그동안 다른 글들을 읽느라 손을 대지 못하고 이제야 겨우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책은 얇은 비닐에 싸여져 있었는데요. 비닐이 없는 책은 아마도 중고라 여겨도 되실 것 같습니다. 구매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사실 카를 슈미트가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정치적 낭만주의의 간략한 요점은, 아마도 순진한 자유주의와 입헌주의를 주장하는 낭만주의자들과 그에 동조하는 흐름이라고 볼 수 있을겁니다. 자유를 경멸하고 헌법의 예외적인 측면을 강조했던 그의 일관주의를 고려해 봤을 때, 이는 크게 어긋나지 않은 이해이기도 합니다.

가령 국가가, 민족 또는 개별 주체가 지고의 심급이자 결정적 요인으로 등장해 신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낭만주의는 세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나는 다음과 같은 정식을 제안한다. 낭만주의는 주관화된 기연주의다

1848년 독일 부르주아 혁명 운동은 낭만주의를 자신들의 정치적 적수, 즉 반동적 절대주의의 이데올로기로 보았다

여기서 메테르니히는 낭만주의를 자유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경향으로 보고 있다

17, 18세기의 고전주의에 대한 대립은 루소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낭만주의가 감정적 왜곡의 대상으로 삼았던 당대 철학의 여러 개념들 가운데 일부는 칸트 철학에서, 그리고 다른 일부는 피히테와 셸링의 철학 체게 - 이것은 그 자체로 반동의 표현이었다 - 에서 차용했다는 사실이다

복고주의 시대의 이른바 ‘정치적 낭만주의‘는 추상적 합리주의에 대한 역사적 반동에 종속되어 있다

기연주의는 모든 사람을 상대로 자신의 참된 본성을 속이려는 것일 수 있다

인간의 행위는 어디서 성립하는가? 기연주의 체계의 윤리에 따르면, 그것은 오직 기분의 움직임 속에서만 일어날 따름이다

바꿔 말해, 낭만주의자는 어떤 기분을 느끼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활동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낭만주의자는 자신의 기분을 다른 어떤 ‘평볌한‘활동보다 높이 평가했다

혁명은 "사실"기독교적인 것으로서, 이교적이고 계몽주의적인 절대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이다

버크에게 혁명은 신의 법과 인간의 법에 대한 혐오스러운 모욕이었다

그러니까 정치적 낭만주의의 핵심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국가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며, 역사적-정치적 현실 속의 국가는 예술 작품을 생산하는 낭만 적 주체의 창조적 활동을 위한 기연, 즉 시와 소설 혹은 순전히 낭만적인 기분을 위한 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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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꾸러미 2022-10-02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베터라이프 2022-10-04 00:00   좋아요 1 | URL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칼 슈미트에 대한 상당히 인상적인 비평을 쓴 어느 블로그 글이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제가 그 블로그 주소를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ㅜㅜ
개인적으로 슈미트는 알면 알 수록 대단한 느낌과 함께 실망감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후자는 나치에 대한 부역과 관련된 일화들인데요. 아마 자신의 이력에 대한 것들을 슈미트가 변명으로 일관한 것을 아주 잘 아실 겁니다.

책꾸러미 2022-10-04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칼슈미트가 나치 부역자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