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없는 열정 - 20세기 정치 참여 지식인들의 초상, 개정증보판
마크 릴라 지음, 서유경 옮김 / 필로소픽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국 미시간주의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마크 릴라는 미시간 대학을 졸업하고 후에 하버드 케네디 스쿨을 다니는 동안 저널리즘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후 공공 정책 석사를 수여받고, 1990년에 하버드에서 박사 학위를 마치게 됩니다. 그는 근래 미국에서 크게 각광을 받고 있는 정치학자로 종종 대중매체에도 등장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있는데요. 특히 마크 릴라는 서구 유럽의 계몽주의 연구에 대한 미국 내 권위자이며 동시에 극단주의 정치에 대해 냉엄한 비판을 하고 있는 학자기이도 합니다. 그는 2007년부터 컬럼비아 대학의 인문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데요. 지금도 저명한 언론사들에 꾸준히 자신의 글을 기고하고 있고 철학과 정치학을 동시에 연구했던 지식인으로서 미국 정치와 더불어 인간에 대한 정치적 연구 및 철학적 담론을 분석하는 데 정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원제, "The Reckless Mind : Intellectuals in Politics"로 지난 2001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02년 초도 번역을 거쳐 2018년에 개정판을 다시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일독한 판은 2018년 9월에 나온 개정판입니다.

마크 릴라의 이 글은 뉴욕 서평과 타임스 문학 부록에 수록된 글들을 한데 모아 출간한 것이기도 한데요. 여기에 등장하는 사상적 인물들의 삶의 자취는 1920년부터 파시즘과 그로인한 세계 제2차대전의 발발까지, 당시 근대주의의 극심한 침몰과 사회에 만연된 회의주의와 또한 그런 인간 정신의 종말을 현대에도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저 사상가들의 내밀한 인생 역정과 소위 '사상적 휩쓸림'을 통해 객관적으로 분석해 낸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과거 역사의 잔인한 퇴보라 할 수 있는 전체주의와 관련해, 각자가 다른 행보를 보이고 극명한 영향의 일환으로 각기 상이한 해석과 결과를 보이게 됩니다. 마르틴 하이데거와 카를 슈미트, 극단적인 감수성의 소유자였던 발터 벤야민의 비극적 종말, 유쾌한 헤겔주의자였던 프랑스의 이방인 알렉상드르 코제프, 니체주의의 한계에 직면했다고 봐야하는 미셸 푸코 그리고 끝내는 신자유주의까지 해체하려고 들었던 자크 데리다까지 사회학이나 정치학 혹은 철학을 통해 독자들이 한번쯤은 그 이름과 명성을 들어봤을 법한 인물들을 마크 릴라는 그 혼란스런 시대적 과오를 동시에 살펴보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저 역시 '창궐한 파시즘의 시대'에 몰입하여 과연 일개 개인으로서 어떠한 삶으로 살았을지 호기심을 곁들이며 상상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때는 어떻게 보면 유럽 대부분이 인간성 말살의 시대에 놓여있었다고 할 수 있을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마르틴 하이데거와 카를 야스퍼스 그리고 한나 아렌트를 다룬 1장과 히틀러의 나치즘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카를 슈미트의 2장과 삶의 압박과 반대로 깊은 감수성을 가진 발터 벤야민의 비극을 다룬 3장 만으로도 꽤 만족스러웠는데요. '이방인' 알렉상드르 코제프를 다룬 4장은 레오 스트라우스 때문에 좀 더 집중했고 5장인 푸코와 다음 6장인 데리다는 큰 관심을 기울이기 보다는 평이하게 읽는 것만으로 만족하게 되었습니다.

철학과 정치를 엄밀히 구분하고자 했던 마르틴 하이데거는 익히 알려진 대로 '반유대주의자'였습니다. 어쩌면 이 사실을 처음 접하는 분도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제자였던 한나 아렌트와의 짧은 사랑(초기의 서신 교환의 내용을 보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죠)과 스스로 고유하게 사유한 사상의 성과 측면에서 하이데거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고 느꼈던 카를 야스퍼스가 진심을 다해 평생동안 그와 교류를 해왔던 행적들이 절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저는 하이데거에 대한 야스퍼스의 글들을 통해, 인간 하이데거가 다소 교활하다고 느끼게 되었는데요. 나치에 대한 부역과 관련해 말을 바꾼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치에 대한 스스로의 발언이 후에도 명확하지 않다는 점은 양심에 위반되어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회피하려는 의도와 연관되어 있다는 인상을 적잖이 받았습니다. 물론 2장의 주인공이랄 할 수 있는 카를 슈미트에 비하면 하이데거의 이런 태도는 다소 애교로 느껴질만 한데요. 그럼에도 마르틴 하이데거는 당시 철학계에서 형이상학 전반에 분명한 족적을 남긴 대가이며, 근현대의 철학에서 그를 빼놓고서는 시대와 학문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여기에는 한나 아렌트가 스스로 겸허한 '정치 이론가'로 규명하는데 있어 하이데거의 손꼽히는 철학적 업적들이 존재했기에 그녀가 하이데거를 단순한 매료를 넘어 존경했던 것은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범인들과 평범한 여자의 입장에서 하이데거에 대해 아렌트와 같은 태도는 보이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사상적 대가들의 학문적인 성취와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소수의 수용자라는 입장에서 하이데거와 아렌트가 유사한 형태가 아닌가 짐작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단순히 이분법이나 선악의 문제가 아닌 '파시즘의 부역'과 관련해 하이데거의 꾸준한 회피 시도는 그가 자신의 평판에 있어서 교활하다고 밖에 볼 수 없었는데요. 마땅한 학문적 성취와 반사회적인 인간으로서의 혹은 정치적인 행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는 통합을 해서 살펴보던 따로 구분을 해보던 간에 확실히 어려운 문제임은 분명합니다.

이에 반해, 카를 슈미트는 과거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의 자유주의를 혐오하면서, 그 이면에 자유주의에 전도된 자본주의가 인간 사회를 혼란의 구렁텅이로 빠트릴 수 있다는 것을 특별히 전제하기도 했는데요. 그래서 그는 여러 사람에 의해 자신의 결단주의가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대략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나치에 부역하는 것을 정당화 시킵니다. 앞선 하이데거가 성공적인 나치의 이론을 설파하는 이론가로서 잠정적으로 실패했다고 봐야한다면 여기 카를 슈미트는 완전히 반대의 케이스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히틀러의 정치적 예외 현상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이를 엄정한 결단으로 봤던 슈미트는 생애 말년에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저자는 "2차대전이 끝난 뒤 슈미트는 비굴한 인생을 살았다.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자기연민으로 가득한 비망록에 개인적인 울분을 토로했다"고 덧붙이고 있었는데요. 슈미트의 사상을 옹호했던 레오 스트라우스와 "대화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독일인"이라고 밝혔던 알렉상드르 코제프를 제외한다면 그의 생애 말년은 외로운 섬과도 같았다 볼 수 있습니다. 지금에서야 좌파와 우파, 모두에 의해 그의 사상이 주목받고 있습니다만 이러한 양쪽의 적극적인 연구와 인용은 60년전 전까지만 해도 다소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했습니다. 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면서 다수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엄중한 결단이 때론 필요할 수 있다는 그의 핵심적인 주장들이 지금의 시대에는 상당히 거부감이 있는 논법임에도 혁명의 준하는 어떠한 심각한 비상 상황을 설정해 해석하고, 자유주의의 전반적인 위기가 도래할 시에 그의 이론들을 되짚어 나가며, 민주주의의 나아갈 방향을 역설적으로 제시받을 수 있다는 부분은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저는 자본주의의 오판을 경고하는 데 있어도 카를 슈미트의 글이 일정 부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방만한 개인주의를 배경으로 오늘날 비판없는 자본주의의 융성이 바로 슈미트의 일침을 가할 지점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한가지 우려스러운 부분은 극단주의 정치의 시발점인 극우주의자들이 민주주의 토대를 '결단주의'적으로 해체하기 위해 이론적인 측면에서 슈미트를 연구하고 있다는 것은 이론의 오용이라고 해야할까요. 아니면 해석의 문제라고 해야할까요.

어린 시절, 한나 아렌트 짧은 글을 통해 잠시 발터 벤야민의 비극적인 종말을 접했던 저는 다시금 마크 릴라의 글을 보며, 벤야민의 행적에 거듭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스페인으로 떠나기 전, 벤야민이 영국에 있던 전처의 권유를 받아들였다면 그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을 겁니다. 과거 빈곤했던 그가 창피를 무릅쓰고 전처의 하숙집에 머물렀음에도 왜 영국으로 오라는 재차 권유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는지 특별한 사정이 있었겠지요. 그러한 상황은 십분 이해할 수 있지만 한편으론 개인의 불행을 넘어 역사의 참혹함이라고 느껴집니다. 마찬가지로 그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힘들때 여러모로 후원을 했던 아도르노에 대해 그 호의는 충분히 고마운 부분이지만, 학문적으로 혹은 사상적으로 복잡한 관계였던 두 사람의 행적 또한 독자의 입장에서 복잡한 심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스스로가 학문적으로 지향하는 바를 충돌하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철회하거나 절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특히 감수성이 예민하고 양심의 문제를 깊이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있어 어려운 문제임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애인을 만나러 간 모스크바에 만연된 스탈린주의를 그토록 예민한 감수성을 갖고 있던 그가 시대의 대안으로 받아들이기는 무척 어려웠을 것이라는 판단이 듭니다. 이미 자유와 역사의 진보라는 대안에서 공산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명확하게 밝혀진 부분이기도 하니까요.

끝으로, 20세기에 등장했던 이데올로기들이 개인의 삶과 그 개인들의 의지조차도 무시하고 강요했다는 점에서 이것이 정치와 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충분히 분석되고 비판되어야 하는 것이 일종의 당위라고 생각됩니다. 그러고 보면 개인들의 평범한 삶을 얼마나 충분히 보장할 수 있겠느냐가 정치의 선결 과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대의를 갖고 있지 않아도 자유롭게 또한 평등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이 국가와 제도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을 망각한 슈미트의 '적과 아'의 개념은 마찬가지로 히틀러에 의해 전 유럽을 지옥으로 이끌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멀쩡한 얼굴로 웹상에서 '반유대주의'를 외치는 자들도 이와 비슷한 사고라고 여겨지느데요. '무지의 죄'는 절대로 처벌되어선 안된다는 관념을 차치하더라도 저자인 마크 릴라가 언급하는 지난 세기 동안의 '지식인의 책임'이 무의미한 용어가 되었다고 진술하는 것에 지금의 현실과 당시의 역사가 비극적으로 맞물려 있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여기에 등장하는 레오 스트라우스가 수준 낮은 지식인들을 그렇게 경멸했던 것일까요. 고차원적인 지식과 사유를 만들어낸다고 믿는 지식인들이 스스로의 책무는 별로 관심이 없는 시대는 과연 어떻게 귀결될지 몹시 궁금해지는 저녁입니다.



-본문 37페이지에 대괄호 하나가 홀로 삽입되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47페이지에 띄어쓰기가 잘못된 문장이 있었습니다. 개정판을 내면서 이렇게 수정을 안한건 조금 믿겨지기가 어려웠습니다.

-마크 릴라는 나치 독일의 시기에 슈미트가 '도덕의 최저점'에 있었다고 꽤 비판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이 사상가들을 경애하는 많은 이들이 계속해서 그 사람들의 정치적 분별없음을 무시하거나 정당한 것으로 여긴다는 사실도 그들을 선정하는 중요하는 고려사항이었다

이제 이 여인(한나 아렌트)은 마침내 한 사람에게만 "확고부동의 헌신"을 바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

하이데거는 죄의식을 토로하면서도 자신의 연구 작업을 위해서 (당분간)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아렌트를 설득했다

하이데거는 유대인 동료들과 모든 관계를 청산했는데, 그중에는 스승인 에드문드 후설도 들어 있었다

야스퍼스는 친구고 아렌트는 연인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하이데거가 자력으로 진정한 의미의 ‘철학함‘을 재생시킨 사상가임을 굳게 믿고 경애했다

두 사람이 주고 받은 편지에서 나치즘과 관련된 주제는 하이데거가 1950년 3월에 스스로 언급할 때까지 완전히 배제되었다

나치는 슈미트가 히틀러의 행위에 사법적 지위를 부여하리라는 희망을 품은 게 분명한데, 결국 실망하지 않았다

슈미트는 히틀러의 처신이 ‘그 자체로 지고한 정의‘라고 주장하는 악명 높고 영향력이 있는 글을 발표했다

슈미트는 바이마르공화국 정치의 혼돈은 자유주의자들 스스로 극우와 극좌 노선에 선 적들과 충돌하기를 꺼렸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거의 200년 동안 자유주의 사상의 주창자들은 슈미트 같은 반대자들과 대치해 왔다

코제브와 스트라우스는 고대 철학과 근대의 ‘지혜‘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우리가 정치적으로 사유하며 살아가는 방향을 찾는 데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 의견이 일치했다

어째서 때때로 모호하고 늘 태도를 명확히 하지 않던 사상가의 저서와 발언이, 20세기 지식인이 살아온 삶의 지형에서 이미 하나의 기념물이 되어버린 뒤에도 그렇듯 강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아마 가장 중요한 이유는 푸코를 찬양하는 많은 독자들에게 푸코는 단순히 저자 이상의 다른 무엇이기 때문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