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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민주주의를 읽다 - 우리의 민주주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ㅣ 유유 서양고전강의 5
양자오 지음, 조필 옮김 / 유유 / 2018년 5월
평점 :
국립 타이완 대학의 역사학과를 졸업한 대만 출신의 대표적 인문학자인 양자오는 대만 내에서 시민들을 위한 열린 강연 및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등의 진보적 학자입니다. 그는 특히 대만의 여러 정치 외교적 문제를 다루는 데 탁월했으며, 시민들이 정치 바깥에 머물며 그저 수동적인 삶을 보내는 것에 대한 문제 의식이 큰 인물이기도 한데요. 일반적으로 제도권 바깥에 있는 지식인들을 반대로 제도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와 같은 활동을 경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규정된 상아탑 내에서의 확실한 지위만을 갖고 학문을 쌓는 것만이 능사이고 합법이던 시절은 오래전에 역사의 뒤안길로 저물었지만 아직도 제도권의 분위기는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어느 나라나 비슷한 모양입니다. 하여튼 저자인 양자오는 시민들 스스로의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인물이며, 이 책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연결될 수 있는 논저라 생각됩니다. 이 책은 지난 2013년 원제, ˝以平等之名: 托克維爾與民主在美國˝으로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8년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우선 양자오의 이 글은 전문적인 학술서라기 보다는 대체로 평이한 정치학 입문서 정도로 여겨지는데요. 무엇보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독해하는 목적을 갖고 있지만 대체로 알렉시스 토크빌이 바라본 미국의 민주주의를 쉽게 풀어내는 데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토크빌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기 전의 독자라면 양자오의 이 글을 한 번 접해보는 것도 크게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평등과 민주주의의 사회적 요인을 분석해 본 7장이 다소 집중해서 읽어봐야 하는 지점으로 생각되었는데요. 이미 많은 학자들이 민주주의와 평등의 관계에 대한 여러가지 관점으로 논의를 한 이력이 있습니다. 그만큼 민주주의가 평등의 문제를 등한시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반대로 민주주의에 대한 터무니 없는 의구심을 갖고 있는 엘리트주의자들이나 기득권에 대한 반대되는 이론적 근거를 쌓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지극히 정치적인 시선으로 고찰해 본 것이고, 아주 기본적인 접근에서는 민주주의와 평등을 따로 분리해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여기서 밝혀두고 싶습니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몇 마디 단어로 국한시킬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무리를 해서 적어본다면 아마도 ‘분권주의‘일 것입니다. 미국의 독립혁명 이후 건국 당시 ‘건국의 아버지들‘이 다수에 의한 소수의 핍박이나 권력이 특정 세력에 독점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여러 측면에서 제도 수립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부분은 특히, 미국이 유지하고 있는 의회의 상하원제와 대통령을 선거인단의 합계로 선출하는 전통적인 선출 제도가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글 1장에서도 잠깐 언급되고 있지만 연방 대통령이 각 주정부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이유도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분권의 역사‘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최근에 행정 명령이라는 미명하에 주정부에 관여를 하려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비화 또한 그러한 맥락입니다. 이것은 인구가 상대적으로 거대한 주가 그렇지 못한 주를 ‘인구의 수‘로 밀어부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상원을 각자 균등한 인원으로 분배했던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바로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 미 연방을 이룬 주들이 외교권과 대표권을 갖지 못하고 이를 연방 대통령이 대신 한 것도 주 정부의 자치를 보장하지만 그 이상의 권력은 부여하지 않은 꽤 면밀한 균형적인 제도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고유한 정치권력을 보장하는 각 주정부의 권리는 인정하면서도 그 위에는 ‘연방의 특별한 가치‘를 훼손할 수 없으며 (에이브러함 링컨 대통령의 경우일테죠)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응분의 대가가 따른다는 역사의 결과도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토머스 제퍼슨 시기까지 연방 대통령 조차 이러한 균형을 해치는 일들에 대해 경계하고 두려워하기도 했는데요. 특히 토머스 제퍼슨이 대통령령을 들어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사들인 것에 대한 일종의 자책감이 든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아마도 그는 앞선 일이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유럽과 다른 미국만의 고유한 정치제도가 마련되는 시기에 이처럼 견고한 양심을 가진 지도자가 미국 건국 초기에 있었다는 것은 저자인 양자오가 유럽 종교에서 분리된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라는 특성을 주요한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만 일개 개인으로 국한해서 보더라도 꽤 대단한 일면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자신의 모국에서 사실상 실패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실험으로 뭔가 좌절감을 맛보았을 수도 있는 알렉시스 토크빌은 당시 미국의 곳곳을 돌아보며 느꼈던 점을 가슴에 안고 귀국길에 오릅니다. 그는 ˝구체적으로 민주주의의 효과와 이익을 분석하고 가능한 한 솔직하고 담백하게 민주주의를 선택했을 때 도대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되는지 설명했다˝고 저자는 밝히며 이러한 토크빌의 냉정한 태도를 사뭇 진지하게 분석합니다. 우리 프랑스인들에게 민주주의가 어떤 점에서 좋고 또 어떤 점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지 일개 몰락 귀족에 불과했던 토크빌의 분석은 민주주의의 흐름 자체가 역사의 진보 가운데에 있는 큰 과정이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저 소수의 인원에게 집중된 권력 정치 자체가 1720년대 이후 프랑스 역사에 부르봉 왕가의 복귀 혹은 나폴레옹에 의한 제정 수립 등 여러가지 정치적 부침 속에 있었던 민중들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그도 역시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의 속내를 여기서 다 밝힐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민주주의가 평균의 행복과 더이상의 악순환을 끊어낸다는 점에서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오늘날 민주주의 제도 하의 ‘삼권분립‘과 같은 견고한 정치 견제는 바로 미국의 건국 혁명의 정신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이 ‘전세계 민주주의의 맏형‘이라는 수식어를 받게 된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요. 다만, 토크빌을 비롯한 한참 정착해 나가고 있던 당시의 미국 정치와 민주주의가 건국 초기에 심각한 정치적 갈등을 분권에 이양하고 각자의 삶과 정치적 자유를 연방이라는 이름하에 보장했던 것은 기득권이나 거대한 부유층이 없었던 그 시기에서나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더욱이 미국 역사에서 흑인들을 노예 제도라는 틀에 몇 십년간을 얽매이게 한 채, 백인들만의 정치적 국가를 유지시킨 것은 산업 혁명 이후에 불어온 경제적 훈풍에도 불구하고 매우 불행한 일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온전히 경제권을 보유한 다수 백인들만의 민주주의라는 게 지금의 식견으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가 아닐겁니다. 이 흑인들의 인권과 정치적 권리는 지금에도 큰 논란이 되는 것은 안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끝마치며, 우리의 민주주의는 일부에게는 큰 이득이 되면서 다수에게는 인내와 인고를 강요한 파행된 자본주의로 인해 큰 위기에 봉착한 것은 분명합니다. 소위 보수주의자라고 자임하는 자들이 과거 역사의 진보를 이루었던 계몽의 결과인 공화와 민주주의를 목숨을 걸고 수호하지 않고 오로지 ‘보이지 않는 손‘만을 신봉하는 것은 일견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정치적 반대에 있는 사람들을 궁지에 몰아 세워 정치적 이익을 얻는 등의 건전하지 못한 정치 무대가 유사 민주주의의 그것으로 귀결한 건 실로 유감이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지금도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민주주의 자체를 공격하는 것에 어떠한 신념이나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는 그 맹목적인 관점을 과연 우리가 어떻게 봐야할지 의문입니다. 모두가 장미빛 전망으로 그려왔던 네트워크 시대의 민주주의가 온갖 가짜뉴스와 극한의 혐오, 인종 차별, 무지 몽매로 일그러져 가는 것은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을 해결하여 권력을 잃었던 민주주의를 되돌리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문제임은 자명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가 없습니다.
-글 2장에서 몽테스키외를 인용하며 민주 공화제를 서술하고 있는데요. 백성은 언제라도 단결해 군주를 내쫓을 수 있다는 첨언은 장 자크 루소와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케네도 그러했지만 참으로 에둘러 말하지 않는 프랑스인들입니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국민은 국가를 이루는 형식을 결정한다
이러한 전 세계적 변화를 이끌어 내도록 자극하고 고무한 것이 하나의 주요한 힘, 곧 미국의 경험, 미국의 민주주의이며,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토록 강대국이 됐다는 사실이다
토크빌은 자유를 두 가지로 나누어 이 문제에 답한다. 하나는 자연적 자유 natural liberty, 다른 하나는 시민적 자유 civil liberty 또는 공민적 자유이다
사회가 평등할수록 그 구성원의 자아가 갖는 가능성도 커진다. 다시 말해 자기 상상의 공간이 확대된다. 이러한 사회에서 그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 분명하고 엄격한 틀에 속박되지 않기 때문이다
토크빌은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는 차이를 별로 따지지 않고, 따라서 세부를 따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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