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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패닉 - 코로나19는 세계를 어떻게 뒤흔들었는가 ㅣ 팬데믹 시리즈 1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 북하우스 / 2020년 6월
평점 :
구 유고 지역인 슬로베니아 출신의 유명한 현대 철학자인 슬라보예 지젝은 오늘날 전세계에서 속된말로 팝 아티스트와 같은 인기와 위상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일반적인 자유주의 우파에게 공격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비슷한 사상적 체계를 갖고 있는 진보 좌파에게 있어서도 큰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런 연유에는 그가 양비론을 신봉하는 궤변론의 철학자라기보다는 자유주의 우파는 물론이고 반대편인 좌파에게도 동일하게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기 때문일겁니다. 좌파에 대한 비판과 관련해서 지젝 역시 현실과 사회에 괴리되어 있는 관념적 좌파와 자본주의 자체를 백안시하는데 몰두하는 비생산적인 좌파에게 그는 비판을 놓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그가 류블랴나 대학과 이후 파리 8대학을 거쳐 천착한 철학과 정신분석학으로 말미암아 여느 사상가와는 다른 꽤 다양한 사상적 스팩트럼을 스스로 완비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헤겔과 푸코, 라캉에 이르는 그의 학문적 연계는 능수능란한 논지와 이론화의 근거가 되었고, 이를 보는 많은 독자들은 그의 달변에 적지않게 놀라기도 했는데요. 물론 로버트 미지크와 같이 지젝이 한때는 자신의 논리적 허점을 인식하고 철회하는 경우가 있어 이를 희화화하기도 합니다만 이를 좋게 해석하면 리처드 J. 번스타인이 주장했던 가류주의의 긍정적 측면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 저로서는 크게 개의치는 않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Pandemic! COVID-19 Shaken the World˝라는 원제로 올해 출간되어, 국내에도 최근인 7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이번에 번역된 지젝의 이 글은 특별히 국내 번역판에 3편의 글을 수록했고, 번역은 서울대 강우성 교수가 맡았습니다.
현재의 전세계적 상황과 맞물려 최근 출간된 지젝의 이 글은 일종의 짧은 현상에 대한 시론으로서, 일반적인 독자들이 보기에도 상당히 평이한 수준이라 여겨집니다. 지젝은 여기에서 현재의 진단과 그가 명백히 밝힌 ‘재난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파급적 효과와 앞으로 이 코로나 시기가 과연 어떤식으로 귀결될 것인가에 대한 일종의 복잡한 전망까지 함께 실려있습니다. 앞에서 제가 단순하게만 글이 평이하다고 평가했습니다만, 현실적인 맥락에서는 지젝의 통찰력이 들어가 있기도 했는데요. 이를테면, 현재 단계에 이르러서는 식량 문제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으나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국가별로 식량문제가 대두될 수도 있으니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언급합니다. 이런 연유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종사자들의 신변 안전과 사실상의 격리가 필요하다는 등의 제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외에도 부유층과 자본가들이 이런 상황에도 개인 제트기를 이용해서 국가를 넘나드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가에 대한 도덕적인 판단도 독자들에 따라서는 스스로 판단해 볼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2019년 말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미국의 트럼프와 같은 인종주의적 포퓰리스트들은 여기에 음모론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들 인종주의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전세계에 그 저변이 상당하며,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그 일면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젝은 이에 대해 일축해 마지 않고 있습니다만, 그가 인용한 ‘홈 파이어‘의 카밀라 샴지의 경우에서 그녀가 비교적 온건한 이스라엘 반대 운동을 지지했다는 이유 만으로 지역 문학상 하나를 수여받는 것을 거부당했지만, 반대로 보스니아에서의 세르비아계의 군사작전을 대놓고 지지했던 페터 한트케는 2019년 노벨 문학상을 별 무리 없이 수여 받은 것을 봤을 때, 이를 지젝은 단순히 ‘정치적 올바름‘의 강요된 형태로 인정하는 것 이상의 이데올로기적 측면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즉, 앞선 트럼프의 저런 공개적 발언이 그 스스로는 단순히 마땅히 증오를 받을 대상에 대한 단순한 지시라고 볼 수 있겠으나 이러한 정치 지도자의 수신호가 이데올로기화 된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마치 과거 히틀러에 의한 유대인 학살과 마찬가지로 증오의 대상을 선별해 그 책임을 내재된 인종주의적 편견과 함께 전가시키는 트럼프의 행태는 지극히 비정상이라고 부를 만할 것입니다.
지젝은 이에 대해 ˝포퓰리즘적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전성기를 맞을 것이다˝라고 지적하며, 여기에는 현저하게 유럽의 통합을 방해하는 러시아의 푸틴과 터키의 에르도안의 국민을 억압하고 외부의 현실을 왜곡시키는 ˝동일한 정치체제의 다시 없을 두가지 변종˝이라 지칭합니다. 현재의 세계에서 이 두 정치 지도자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세계의 이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이 둘의 왜곡된 권위주의 정치의 파급과 더불어 현재의 중국 정치가 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중국 공산주의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는 추론이 널리 퍼져있다˝는 현상에 대해 지젝 역시 다소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과 같이 아무말이나 내뱉으려고 하는 비정상적인 행태가 이 코로나 사태를 타고 확산되고 있는 것 또한 확실해보입니다. 여기에는 이들 비정상적인 정치 행위의 측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병은 시장 중심의 지구화의 한계만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고, 완전한 주권을 주창하는 국수주의적 포퓰리즘의 훨씬 더 심각한 한계 또한 알려준다˝는 지젝의 진단 또한 일정 부분 설득력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좌파 진영이 점진적 통제 상황과 같은 현재의 모습을 ˝트럼프의 중국 바이러스˝ 언급처럼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적 요소들과 결합된 사회적 통제의 실행으로 해석하는 것에는 ˝극우 진영과 사이비 좌파˝라는 수식어로 비판하고 있는데요. 바이러스 통제를 위해 각국이 나서고 있는 정부의 노력을 단순히 시민을 권위주의적 통제 범위 안에 집어 넣으려고 하는 일종의 전체주의적 발상으로 오해하는 이들 ‘사이비 좌파들‘의 존재는 사회 통합에 큰 걸림돌로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가 주목하는 경제 시스템과 관련해 지젝은 ˝바로 경제를 통제하고 규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면 국민 국가의 주권에 제한도 가할 수 있는 전 지구적 형태의 조직˝이라는 측면의 이론적 필요성에 대해 논하고 있기도 한데요. 저 역시, 앞선 재난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에는 일정 부분 동의를 하고 있으나, 과연 얼마간의 대안 없이 국민 주권주의와 기존의 경제 체제를 파격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이 위기가 정도 이상의 파급력을 지니고 있을지는 좀 더 고찰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현재의 유럽의 통제 상황에 사실상 거부하며 밖으로 향하고 있는 다수의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자유‘ 만큼이나 타인들의 자유와 권리에 신경을 쓰는 ‘이타주의적 자유주의자‘들의 탄생이 필요한 것인데요. 이런 경제적 위기가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시기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우파 정치인 내지는 우파 포퓰리스트가 일정 부분 사회 압력을 동반하는 개혁에 나서는 것이 진보에 있는 정치인이 개혁에 나서는 것보다 반대와 저항이라는 측면에서는 한결 유리할텐데요. 이는 과거 로널드 레이건과 리처드 닉슨이 소련과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던 역사에서 당시 미국의 유권자들로부터 증명된 바가 있습니다. 만약 반대로 필요한 개혁을 위해 오바마 대통령이 팔을 걷었을 경우, 아마 우파 성향의 지지자들이 극렬한 저항을 했을겁니다. 반대로 현재의 트럼프가 지젝의 제안대로 개혁적인 정치경제적 행동에 나섰을 경우, 아마 그를 지지하는 소수의 핵심지지층을 제외한다면 아마도 다수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아마도 이 점 역시 지젝의 고유한 통찰력이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끝으로, ˝감염병으로 인해 불가피해진 조치들을 푸코 같은 사상가들이 설파했던 감시와 통제라는 통상적 패러다임으로 즉시 환원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의 경고는 이 시대의 불가피한 환경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이러한 변화된 체제에서 민중이 국가기구들 바깥에서 지역 차원으로 자기 조직화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으로 섣부른 판단을 하는 것도 좋지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을겁니다. 물론 이러한 개인의 자유주의를 함의한 자본주의적 재난의 상황에서 모두가 자신의 안전과 평안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좀 더 조심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는 것은 자명합니다. 모두가 현상에 대한 틀에박힌 동일한 논리로 무장하는 획일적인 사회는 전체주의와 더 가까워지는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것과는 반대로 우리의 민주주의와 보다 개선된 경제 체제에 대한 면모를 담은 지젝의 아이디어를 얼마간은 되짚어 볼 만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토록 비상한 시기에 발빠르게 글을 쓴 한 철학자의 노고에 감사를 전하면서 저급한 저의 글은 이정도로 마무리 할까 합니다 .
-역자의 번역에 대해 말들이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아웃소싱을 ‘외부위탁‘과 같이 번역한 역자의 노력과 더불어 본문 대부분의 번역이 꽤 괜찮았다고 여겨집니다.
-저도 역시 조르조 아감벤이 지젝의 이 글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몹시 궁금한데요. 이탈리아 출신의 아감벤이 모국이 처한 상황에 직면했을때, 그가 느끼는 감정을 일축해 단순화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일겁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병은 시장 중심 지구화의 한계만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고, 완전한 주권을 주창하는 국수주의적 포퓰리즘의 훨씬 더 심각한 한계 또한 알려준다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인류 중 노인, 약자, 병자를 제거해서 전 지구의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이로운 감염병이라고 보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감염병으로 인해 불가피해진 조치들을 푸코 같은 사상가들이 설파했던 감시와 통제라는 통상적 패러다임으로 즉시 환원하지 말아야 한다
좌파 진영은 트럼프의 중국 바이러스 언급처럼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적 요소들과 결합된 사회적 통제의 실행으로 해석한다
이 위기를-국가권력은 본연의 임무를 해야 하고 우리는 그 지시글 단지 따르기만 하면 되는-탈정치적 국면으로 보면서 머지않은 미래에 어떤 형태로든 일상성이 회복되길 바라는 사람들의 태도는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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