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국가 - 미국의 세계 지배와 힘의 논리
노암 촘스키 지음, 장영준 옮김 / 두레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의 세계적인 언어학자이인 노엄 촘스키는 세계 지식인들 가운데 누구와도 비견될 수 없는 실천적 지식인이자 현실의 부조리들을 선명한 양심에 따라 가차없이 비판하는 소위 ‘인류의 양심’이라 불릴만한 지성인입니다. 현재 MIT의 명예교수로 있는 촘스키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정력가이기도 한데요. 특히 그와 관련된 한가지 특이한 일화는 미국 CIA가 그를 지속적으로 감시해 왔다는 점이었는데요. 아마도 권력층에 있는 사람들은 그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지 않을까 짐작해보기도 합니다. 더불어 생전의 지그문트 바우만과 촘스키가 서로 만나 정치와 사회 비판을 주제로 작은 대담집이라도 기획이 되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사뭇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이 책은 지난 2000년 “Rogue States”라는 원제로 출간되었으며, 국내에는 이듬해인 2001년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다만, 재출간을 앞두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는 절판된 상황입니다.

아마 독자분들은 제목만 보고선 과거 조지 W. 부시의 테러지원국이라는 리스트가 올라간 그 담화를 떠올리고 계실지 모르겠군요. 저자인 촘스키는 제목과 관련된 설명을 서두에서 하고 있는데요. “정치적 담론의 많은 다른 용어들과 마찬가지로 ‘불량국가 rogue state’란 용어도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선별된 적국들에 대해 적용하는 프로파간다로서의 용법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국제질서에 구속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는 국가들에 적용되는 문자 그대로의 용법이다”라고 이어집니다. 물론 이 책에서는 미국을 후자에 빗대어 비판해내고 있습니다. 현재에도 중동의 권위주의적 종교 독재 국가들의 후견인을 자처하고 있는 미국은 과거 전 국무장관인 조지 슐츠가 말했던 대로 “국제 사회의 역학 관계를 무시하고 유엔이나 국제 사법재판소와 같은 중재기관에 호소하는 유토피아적, 법률주의적 수단”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비웃고 있습니다. 오로지 국익이 우선이라는 교리는 특히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며, 사실상 미국이 그러한 지위를 꽤 적나라하고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것은 세계 민주주의 국가의 큰형을 자처하면서도 행동은 그 반대가 되는 아주 역설적인 행태인데요. 니카라과와 아이티, 파나마 등에서 벌인 민중이 주도가 된 민주정치를 거부하고 다루기 쉽다는 미명하게 군부 독재 정권을 지원했던 미국 정부의 과거 이력은 우리와도 꽤 밀접하게 보이는 것은 단지 기분탓일까요.

사실 촘스키가 쓴 이 글에는 실로 소름끼치는 일들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터키와 이라크가 쿠르드족을 말살하기 위해 사용한 화학무기와 국가 폭력의 현장,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가 동티모르인들을 학살하면서도 당시 빌 클린턴이 이런 수하르토를 두고 ‘우리 사람’이라고 했던 것, 미국 정부에 의해서 콜롬비아에서 화학 및 생물학 무기가 사용되었던 것 등은 실로 믿겨지지가 않을 정도입니다. 저는 그동안 여러 책을 통해 미국이 비합법적으로 파나마와 그레나다 및 쿠바에 군사적 침공을 벌인것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자신들이 앞마당이라고 부르는 남아메리카에서 군사 정권을 지원하며 벌인 일들은 단순히 역사의 불행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입니다. 따라서 이 책의 총 14장의 구성 중 7장까지는 앞에서 짧게 열거한 국가들에서 미국의 CIA와 군대 및 국무부가 벌인 일들을 UN을 비롯한 국제시스템 기반의 체제를 불신하고 반하게 된 원인들(물론 주요한 이유는 미국의 국익입니다)과 8장부터 14장까지는 2차대전 전후부터 마셜 플랜과 브레턴우즈 체제를 거쳐 워싱턴 컨센서스의 신자유주의가 미국 국적의 집산 기업들의 이해에 맹목적으로 따르게 됨으로써 벌어지는 진보에서 멀어지는 퇴행의 정치사회적 결과들을 매우 신랄하게 비판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미소 냉전시기의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첨예한 대결에 대해 그 시대에는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체념을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이념 대결에서 남미와 아시아의 민중들이 요구하는 민주주의를 좌파로 몰아가 탄압한 많은 군부 독재 정권을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이들의 배후에는 유감스럽게도 미국이 있었으며, 브루스 커밍스가 일전에 언급한대로 아시아의 여러 외교무대에서 미 국무부 장관이 한국과 일본의 외교장관을 양쪽에 거느리고 나타났다는 후견국과 피후견국의 관계의 역사를 엿보았습니다. 과거 미국은 지역 안정과 자신의 국익의 부합이라는 미명하에 다루기 쉽고 말을 잘듣는 독재 정권들을 지원하였으며, 리비아의 카다피와 이라크의 후세인은 오판하여 그러한 대열에서 이탈해 결국 미국의 응징을 받았다고 촘스키는 설명합니다. 우드로 윌슨의 도미니카 공화국 및 아이티 침공은 미국의 국익 우선이 어느 선에 있는지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꽤 합리적이고 진봅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는 아이젠하워 조차도 과테말라에 군사 개입을 시도해 현지에서 야만적인 억압과 고문의 시대를 열었다는 일편의 평가도 초강대국의 국익 우선이 어떠한 파급을 낳는지 감히 재단하기도 힘듭니다.

“법의 규제를 거부하는 불량국가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한 이러한 (유엔의) 해결책은 아무런 효과도 없다”고 국제 시스템의 무용론은 과거 미국이 안보리 이사국으로서 수많은 거부권을 해온 것에 기반합니다. 또한 자의적으로 해석된 인도주의적 개입은 막상 소말리아나 앙골라와 같은 적극적 개입이 필요한 국가에는 유명무실했는데요. 만약 이들 국가에 원유라도 묻혀 있었다면 그 결과는 아마 다르게 나타났을 겁니다. UN에서의 각 가맹국들의 권한은 자신들 스스로 자결권과 침략에 대한 방어권을 갖고 있음에도 강대국들의 ‘인도적 개입’이라는 선별적 선택에 의해 체제 자체가 만신창이가 되었고, 꼭 필요한 인도적 지원에는 미국이 눈을 감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데요. 특히 인도네시아 특수군에 의해 자행된 동티모르인들의 학살과 관련해 당시 미국 정부가 호주의 압력이 없었다면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촘스키의 평가는 이를 잘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자신을 너무 이성적이고 냉철한 머리를 가진 나라로 묘사하는 것은 자행행위이다” 라든지, “우리는 적대국들에게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국가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닉슨의 미치광이 논리는 무력이 없이는 국제 정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촘스키의 설명에 단순히 맞아 떨어진다고만 봐야할지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 책에 노엄 촘스키는 전반적으로 스스로 미국인이라고 믿을 수 없을정도로 자신의 정부와 과거 불법적인 군사외교정책에 서슴없는 비판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데요.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이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자위하는 많은 국제정치학자들과는 다른 변치않는 양심에 걸맞는 그의 논법이라 할만 했습니다. ‘미국의 명령을 거부한 국가가 불량국가’라는 촘스키의 해석은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것이 아예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님은 분명합니다. 다만, 베트남과 관련한 정치적 셈법인 “미국이 두려워했던 것은 이들이 결국 독립적인 아시아 지역을 형성하면서 일본식으로 발전하여 미국의 통제를 벗어난 아시아의 새로운 질서의 산업중심지로 성장하는 것”이라는 비평에는 다소 동의하기는 힘들었는데요. 베트남이 파란색이 아니라 다소 붉은끼가 감도는 국가여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역외 균형 Offshore Balancing 전략을 베트남에 적용할 정도로 이 소국이 지역내의 대두하는 국가로 성장할 것이라는 일종의 예견에는 동의하기 힘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외에는 이 책은 오늘날 강대국의 국익에 대한 논법과 이와 관련된 비현실적으로 비합법적인 행태를 모두 담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읽어봐야 하는 글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현대 외교의 창안자이자 영향력있는 과격한 현실주의자인 헨리 키신저가 촘스키의 이 글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으나, 그도 역시 이 글을 완전히 부인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점의 차이라는 미명하에 수단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게 될까요? 과연 미국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지에 대해 솔직히 물어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현실은 대부분 “어떤 공식적 금지를 할 필요도 없이 어둠속에 갇혀 있다”




-아마 큰 의미는 없겠지만, 267페이지에 오타 한 곳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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