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유럽의 위기와 지정학
조지 프리드먼 지음, 홍지수 옮김 / 김앤김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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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프리드먼은 헝가리 태생의 유대인으로 미국 코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루이지애나 주립대에서 교수로 일하다가 특이하게도 미 국립국방대학과 랜드 연구소 등 정부와 연관된 교육 기관 및 연구소에서 국제정치 및 주요 국제현안에 대한 강의, 자문을 맡은 바가 있습니다. 그는 여러해 동안 이러한 활동을 통해 미국내에서 신뢰받는 국제전문가로서 명성을 얻기도 했는데요. 이와는 반대로 프리드먼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이들은 그를 ‘국제정치학계의 예언자’로 격하해서 부르기도 하는데요. 물론 저자인 프리드먼을 판단하는 것은 각자 개인의 몫이기도 합니다만 어떤 현안에 대해서 보이는 그의 직관은 개인적으로 꽤 놀랍기도 하였습니다. 다만, 여기에서 소개해 드릴 이 책은 학문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약간 난감하기도 한데요. 일단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뒤에서 하는 것으로 갈음하겠습니다. 이 책은 지난 2015년 “Flash Points” 라는 원제로 출간되었으며, 국내에는 가장 최근인 2020년 1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국내 번역본에는 예상대로 서두에 이춘근 교수의 추천사가 있으며, 번역은 피터 자이한의 글을 번역했던 홍지수씨가 맡았습니다.

우선 이 책은 총 3부로서, 이하 16장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부터 거의 1억명의 목숨을 앗아간 2차대전 그리고 냉전을 거쳐 현재의 유럽과 유럽연합이 내포하고 있는 한계와 문제점을 중점으로 꽤 에세이적인 형식의 글로 저자는 차분히 풀어내고 있는데요. 서두에서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 부모를 따라 공산치하의 헝가리를 탈출하는 장면과 현재의 유럽인들이 ‘과거 31년을 계승한 사람들’이라는 외연 확장과 더불어 피로 쓴 그들의 과거사를 제대로 씻어내지 못했는가에 대해서인지 아니면 인종주의적 국가 압사의 과오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것인가에 대한 선입견인지는 모르겠으나 글에서 서술되어 나타나는 인식이나 평가가 과연 면밀한 근거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명료성을 떠나 너무 유럽의 상황에 대해 편파적인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러시아가 굴복시킨 조지아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프리드먼은 NATO가 연약해졌다는 식으로 서술해 내고 있습니다만, 우크라이나의 경우 러시아와 합의한 ‘부다페스트 메모랜덤’에 대해 미국이 연대 책임을 지지 않은 것은 국제정치학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음에도 이것에 대한 서술은 쏙 빠져 있는 것은 저자의 명성을 생각해 봤을 때 다소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활화산에 끼얹은 기름이 되었던 민족주의는 1871년 비스마르크가 초안한 독일 제국에 의해 비롯됩니다.저자인 프리드먼은 사실상 그 당시 발칸반도를 비롯한 유럽 전지역에서 피올랐던 민족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데요. 이후 2차대전에서의 민족주의가 인종주의와 결합해 600만의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낸 역사적 사건을 연계해 해석하고 있습니다. 종전 이후, 오늘날 세계 4위의 경제 국가가 된 독일이 과거 그들이 행했던 인종주의적 말살로 인해 확실한 재무장과 보통 국가로의 이행이 독일 국민 대다수의 신중함에 가로막혀 있다고 봐도 무방해보입니다. 독일인들은 그 특유의 절제와 인내심 그리고 신중함으로 유럽 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국가로 부상했지만, 아직까지도 꽤 진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같은 시기 드골 치하의 프랑스는 핵을 보유해 발언력이 강한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려고 하였고, 영국은 전후에도 대영제국의 경계를 유지하고 싶어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기도 합니다.

소련의 붕괴와도 거의 일치하는 1991년의 마스트리트 조약은 현재의 유럽 연합을 있게 한 장면이었습니다. 고르바초프의 소련은 개혁 개방의 길에 들어설 즈음, 레이건과의 담판에서 NATO가 더이상 모스크바와 가까워지는 것을 동결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지만, ‘유럽 연합을 확대하려는 욕구’와 더불어 NATO의 확장은 결국 조지아와 우크라이나 사태를 초래했습니다. 사실상 이것의 전제는 NATO가 효과적으로 푸틴 치하의 러시아를 제어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며, 이것의 책임의 상당 부분은 미국에게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과거 드골은 “미국이 유럽을 위해 시카고를 잃는 위험을 감수하리라고 믿지 않았다”는 저자의 인용은 본질적으로 국제 정치가 어디에 수렴되어 있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문장이라고 생각됩니다. 마찬가지로 “미국은 조지아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것이 확실했다”는 문장 하나 만으로 미국의 불개입이 정당성을 답보하는 것은 아닐겁니다. NATO에 대한 미국의 기여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NATO자체가 미국의 그림자라고 봤을 때, 현실주의자인 푸틴이 그러한 도발을 감행하고 국제사회에 의해 어떠한 응분의 조치를 당하지 않았다는 점은 그 시사하는 바가 매우 부정적이다 라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프리드먼은 유럽의 여타 상황을 꽤 편안하게 서술하면서 우크라이나를 경계로 동쪽은 유럽의 본토로 서쪽은 유럽의 반도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즉, 이것은 유럽 전도를 90도로 비틀어 버린 것과 같죠. 이러한 해석대로라면 남쪽으로 밀려드는 러시아의 의도를 밑의 반도에 해당하는 국가들이 저지해야만 하는 상황일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독일의 재무장과 경제력의 유지는 매우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죠. 또한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는 프랑스와 이제는 한발 멀찍이 서 있는 영국을 고려한다면 남부 유럽의 PIIGS의 경제 불안과 그 중의 그리스의 쇠퇴는 프리드먼이 어떠한 말을 하고 싶은지 짐작할 만했습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유럽의 위기는 영국, 프랑스, 독일이 처한 입장의 급격한 변화와 유럽 전체에 드리우는 이슬람의 그림자와 호시탐탐 러시아와 서유럽 전체의 완충지대의 역할을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전복이 앞으로의 방향타를 좌우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 저역시 절로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전 정권과는 달리 좀 더 고립주의로 다가가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이러한 전유럽의 위기 상황은 더욱 가중되고 있는데요. 독일이 자원을 매개로 러시아에 대한 접근과는 별개로 푸틴은 앞으로도 미국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위험한 오판을 또 감행한다면 우크라이나로 시작되는 위기가 과연 어떻게 변질될지는 매우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2차대전 당시 프랑스와 동맹관계였던 폴란드가 어떠한 취급을 당했는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영국까지 끼어들어 폴란드를 기만하기까지 했는데요. NATO의 확장과 더불어 더욱 가까워지고 있는 상트 페테르부르크과 모스크바는 아예 발칸과 동부 유럽의 완충지대를 자신의 영향하에 두려고 하는 등의 감히 신냉전의 초래가 될지는 일말의 확대해석에 경계를 유지하면서 좀 더 지켜볼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이러한 현재의 유럽 내부의 모순과 혼란의 가능성이 오로지 유럽인들의 문제로만 먼 발치에 두고 과거처럼 미국이 수수방관한 한다면 러시아의 오판을 부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학계와 관료계에서 꽤 면밀한 관찰과 연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해봤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헝가리인이었으나,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동화되지 않았던 자신의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독일은 유대인이 장악한 은행, 공산주의, 진보주의에 의해 피해를 당했다”는 꽤 솔직한 고백에는 일개 독자지만 동의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유대인의 고유한 독립성에 의해 독일이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해석에는 절대 동의할 수가 없으며, 인종주의적 말살에는 어떠한 근거를 대서는 안된다는 한나 아렌트의 주장에 동의할 수 밖에 없음을 밝혀두고 싶군요. 물론 앞뒤 맥락을 고려한다면 저의 해석은 다소 확대일 수도 있겠으나, 유대인이면서도 반유대주의자임을 먼저 고백했던 저자의 솔직함에 꽤 감명을 받았다고 치부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꽤 신경질적인 평가일 수도 있으나 글의 61페이지에 ‘아버지의 모친’이라는 표현에 대해 홍지수 선생께 정정을 요구하고 싶은데요. 이미 ‘조부’라는 단어나 등장함에도 왜 아버지의 모친이라는 구어를 ‘조모’로 의역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외에 한나 아렌트를 ‘해나 아렌트’로 표기한 것은 애교로 받아들여도 충분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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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waySunny 2020-03-31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인 의견 잘 보았습니다. 미국도 그렇고 유럽에서도 전반적으로 이제는 ‘민족주의로의 회귀‘ 가 국제 정치 트랜드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좀 더 입증하고 있는 것 같네요.

글 본문과는 조금 벗어날 수 있으나 ‘Hannah‘는 외래어 표기법상 한나가 아니라 해나가 맞습니다.

베터라이프 2020-03-31 16:05   좋아요 0 | URL
해나 아렌트라고 말씀해주셨는데요. 그녀가 유대인인 것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한나 라는 표기가 더 정확하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에서 해나라고 표기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국내에 이미 한나 아렌트와 관련된 성명표기가 여러 학술서를 비롯 일반적으로 ‘한나’라고 통용되고 있으므로 그 부분에 대해 말씀드린겁니다. 성명 표기가 특히 인종과 국적에 귀결된다면 유대인인 한나 아렌트는 마땅히 한나가 정확한 표기겠죠.

좋은 친구 2021-04-03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나 아렌트가 더 익숙하긴 하지만 2014년 국립국어원에서 해나로 표기하기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외래어표기법을 따른다면 해나로 표기해야 합니다. 따라서 그것이 이 책의 단점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유대인이라는 점은 이 문제에서 아무런 영향이 없습니다. 미국에 사는 유대인도 많고 그들의 이름은 미국식으로 표기되니까요. 문제는 그가 독일인이냐는 것이겠지요. 독일인이라고 한다면 한나 아렌트로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할 근거가 있을 것입니다.

베터라이프 2021-04-03 16:00   좋아요 0 | URL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유대인 표기법을 말씀 드린것은 유대인들의 발음 방식도 독일식이랑 유사하다는 것인데요. 흡사 라틴어 발음과 유사한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지프 슘페터의 이름 표기와 마찬가지로 조셉 슘페터, 조제프 슘페터와 같이 번역자들이 기준 없이 마음대로 번역하는 바람에 성명 표기에 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학계에 용인된 표기가 있는데 영어식으로 혹은 다른 언어의 발음으로 표기하는 것은 혼란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예 권위를 가진 기관에서 이러한 국문 표기를 확정해주면 좋겠는데 현재는 그렇지 않죠. 국립국어원의 결정은 일단 참고는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나 아렌트는 아이젠하워 행정부 당시 발생했던 리틀록 사건에서 스스로 유대인임을 다시금 주장했듯이 유대인으로 보는 게 맞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