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사다리 - 불평등은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키스 페인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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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인 키스 페인은 행동과학과 인지심리학 분야의 전문가이기도 한데요. 그는 사회학적 측면에서의 다중 인간 심리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아마도 다수 인간의 집단 행동 연구와도 유사한 연구 궤적을 그가 따라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근래 많은 학자들과 지식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소위 ‘불평등 문제’와 관련해 아주 단적으로 이를 ‘공중보건의 문제’라고 확정짓는 것은 공통된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 책의 소개는 의미심장하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원제, “The Broken Ladder”로 지난 2017년 출간된 이 글은 국내에도 역시 같은 해인 2017년 12월에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일종의 사회과학 범주안에 들어가도 무방한 책임에도 번역은 꽤 잘되었다고 여겨졌습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키스 페인의 이 글이 최근 이어지는 사회적 문제 내지는 관심사를 반영하는 판매고를 올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점은 작성된 서평 글 수를 봐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우선 글의 결론인 9장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바와 같이, 키스 페인의 근래 불평등 문제와 관련한 해석과 관련한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불평등을 줄이려면 많은 문제들을 한꺼번에 다룰 수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불평등을 도덕적으로 고찰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이를 공중보건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것은 종래의 심화된 불평등 문제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던 수많은 지식인들과 그들의 진단과 비판과는 약간 상이한 관점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물론 도덕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을 시도했던 학자들도 분명 있었으나, 근본적으로는 불평등 문제가 현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작게는 개인의 능력차나 크게는 사회적 자원과 효용성을 발휘하는 측면에서의 차이가 매우 차별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들을 요약해서 분석들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의 중산층들이 여러가지 이유에서 자신들의 자식들에게 유리 바닥을 만들어주고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는 것을 도덕적으로 마냥 비난할 수는 없기에 모두가 동등한 선에서 출발할 수 있는 최소한의 평등주의에 대한 인식이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전 총리인 고이즈미는 “격차가 뭐가 잘못된 것이냐”고 반문한 것과 같은 불평등 문제와 관련한 명사의 몰이해적인 측면은 이것의 인식차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굳이 자본주의적 상황에서 개인의 인센티브 문제를 제기하지 않더라도 개개인들의 합리적 이기심이라는 전제에는 많은 역사적 사례들을 보더라도 합당하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4장에서는 ‘합리적인 사익 추구’라는 것이 현실 가능하다고 봤던 일련의 경제학자들의 해석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4장은 통념적인 좌파와 우파의 틀로 인식되는 불평등의 관념적 측면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진보적인 엘리트와 노동계급 보수주의자”와 같은 태생적 이분법 말이죠. 이 부분에 대해서 저자가 밝히고 싶은 것은 미국 러스트 벨트의 노동자들이 보수주의적인 정치 성향을 갖고 있다는 점과 유사한 판에 박힌 계급적 정치의식에 대해 반대하면서, “낙태를 반대하는 자들이, 사회적 복지 제도의 강화를 주장 할 수 있다”면서 반론을 제시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개인의 이념적 성향이나 정치 성향이 시시때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며, 우리가 내면화된 가치로 어떤 신념을 쭉 지켜내기란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미국 시민들의 민주당 지지와 관련된 지도에서도 실질적으로 중산층 이하의 가난한 계층들이 폭넓게 지원하고 있는 것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노동계층이 언뜻 공화당을 더 지지하는 것으로 통념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으나 실제로는 그보다는 더 많은 노동자들이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는 밝혀냅니다.

그래서 키스 페인은 불평등과 일반적인 사회학적 관점과 관련해 우리의 편견을 타파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불합리내지는 부조리한 상황에서도 “그래도 사회는 정의롭다 혹은 정의로운 세상”이라는 결말에 이르게 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세뇌시키는 편견에 대해서도 저자는 비판을 하고 있는데요. “재능과 노력과 운의 복잡한 조합으로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현실 세계”에 자신이 마땅히 원하는 것을 얻어야만 한다고 인식함으로써, 이 세상은 아직은 정의롭다고 여긴다고 측면은 6장에서 다른 여러 사례들을 통해 입증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점은 “자기와 의견이 다르면 그를 무능하거나 이기적이며 비합리적인 사람으로 평가했다”는 어느 실험 사례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물론 보기에 따라서는 극단적인 측면으로 여길 수 있지만 이미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 객관적인 인식을 결여한 채로 얼마나 부정적일 수 있느냐”에 대해 철학적 접근을 해온 바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에 소개되는 여러 결과론적 인식을 통해 전반적인 불평등 상황이 사회 내에서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서로간의 이해를 제한시키며, 끝내는 “불평등이란 서로 공유하는 공간이 없음을 의미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이와는 약간 별개로 “불평등은 본질적으로 공통적인 경험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이런 불평등을 공유하는 공간이 전무하다는 것은 시민들의 사회적 단절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더욱, 사람들의 편견이 더 심해지는 특정 상황은 “돈과 권력 및 불평등이 관련되어 있다”고 저자는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5장의 불평등은 생과 사의 문제라는 표제는 제가 임의로 발췌한 것에 불과하지만 원칙적인 측면에서는 이 문제가 생과 사를 좌우하기도 한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꼭 돈의 차이 때문에 개개인의 수명 차이가 발생한다는 여러 주장들을 귀담아 두지 않더라도 가용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의 개별 차이와 이것의 결핍과 관련된 정신적 및 육체적 질병의 문제는 분명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에 대해 어떠한 연민과 관심이 없는 것처럼 분명 부유한 자들과 가난한 이들이 같은 공간에서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고 있음에도 계급간의 단절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은 모두가 부정할 순 없을테죠.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은 불평등 자체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능력, 책임을 중시하다보면 불평등이라는 결과물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여긴다”는 인과론에 대해 유독 보수주의자들의 자기 방어적인 주장에서 뿐만 아니라 진보나 그외의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까지 이 불평등 문제가 아주 자연적이고 태생적인 문제여서 어떤 인위적인 개입을 해야만 하는 것에 대해 아직도 의구심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많은 서평에서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 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많은 불평등의 여건에서 우리의 민주 정치와 민주주의가 과두제와 포퓰리즘이라는 악의 쌍두마차로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해왔습니다. 애초에 시민 다수의 삶의 인간다운 영위에 대해 사실상 많은 정치 엘리트들은 관심이 없으며, 여기에 합세한 경제 엘리트들 역시 이러한 자본주의적 사회 구조를 더욱 강화하는 것에만 신경쓸 따름이지 허버트 스펜서 류와 같은 그냥 ‘자연의 섭리’에 불평등 문제를 맡길 것을 바라고만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끝으로 이 책을 다 일독하고 나서 드는 생각은 얼마전에 접했던 리처드 윌킨슨의 글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많은 사회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이 이 책에 인용되고 있었는데요. 저 개인적으로는 마틴 길렌스의 다른 논저들이 하루 빨리 번역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수많은 사회적 실험과 모의 실험은 흥미로운 점들이 많았습니다만 몇가지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소득이 높은 이들은 남의 말에 신경쓸 일이 많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다른 기회를 잡기 위해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에는 다소 동의하기 힘들더군요. 또한 선진국일수록 종교의 필요성에 구애받지 않고 후진국 내지는 보수적인 전통국가는 종교적 믿음에 집중하는 것에 대해서도 일반적으로는 수긍이 가지만 오늘날 미국과 같은 나라는 오히려 사회에 있어서 기독교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고 많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종교적 믿음에 대해 언론을 통해 어김없이 밝히고 있다는 점은 꽤 예외적 사례로 불릴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광범위한 불평등 문제에 대해 이렇게 약간 상의한 접근의 글 또한 나름 필요하다고 인식되었는데요. 아예 불평등 문제가 개인의 심리적 문제와 질병 등에 어떻게 더 작용하는지와 같은 연구가 좀 더 이뤄지면 어떨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논하고 있는 다양한 사례와 실험들이 꽤 신선하다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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