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정책은 국내에서 시작한다 - 미국은 자기 집부터 정리해야 한다
리처드 하스 지음, 우정엽 옮김 / 아산정책연구원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뉴욕 브룩클린의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오하이오주에 있는 미국 명문 사립인 오벌린 대학을 거쳐, 미국에서 영예로운 장학금인 ‘로즈 장학금’으로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 유학한 리처드 하스는 2003년부터 현재까지 미국외교협회의 회장직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그는 콜린 파월 전 국무부 장관의 상임 고문을 맡았고 2003년에는 북아일랜드의 평화협상 과정을 지원하기 위한 평화특사로 파견되었으며, 조지 H. W. 부시 정권 시절 당시, 새로운 외교 정책을 세운 공로를 인정 받은 바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번역된 그의 논저 “혼돈의 세계”의 서평을 작성한 이후, 두번째로 접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지난 2013년 원제 “Foreign Policy Begins at Home : The Case for Putting” 으로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5년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약간의 참고로 책의 출판을 맡은 아산정책연구원은 과거, 로버트 케이건과 같은 네오콘에 속하는 학자들이나 정치 관료들의 글을 번역해 온 것으로 유명했는데요. 더불어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실질적인 정책 행위자들로 유명했던 네오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을 때, 저 역시 레오 스트라우스와 아인 랜드의 글을 찾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미국내에서 손꼽히는 외교 학자이자 정책 관여자였던 리처드 하스가 이 글을 통해 밝히고자 하는 것은 “세계의 모든 인도주의적이고 인권을 보호하는 개입을 포함한, 정치군사적 투입에 더이상 미국의 여력이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특히 이러한 환경적 변화 요인에 미국 국내적 상황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에 따른 비용은 2001년 이후 누적된 연방정부의 15퍼센트 정도”라고 저자는 소급해 이해하고 있기는 하지만, 2008년 이후 세게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의 재정적 여력이 한계에 이르렀으며, 연방 정부의 적자 규모 또한 나날이 누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의 전쟁 비용 지출과 같은 재정 조력이 사실상 힘들어지지 않았나 추측해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인 리처드 하스는 2부 마지막 주제인 ‘옹호할 수 있는 국방’에서 오늘날 현대전에서는 막대한 지상군 투입이 필연적이지 않기 때문에 일본과 EU와 같은 국방비 지출의 후발 주자보다는 전략적이고 대외적인 측면에서 어느 정도의 국방비 유지를 전제조건으로 옹호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스는 지상군 투입이 선결조건이라 할 수 있는 미래의 현대전은 한반도에서의 작전 밖에 예상되지 않으므로 꽤 주도면밀하게 공군과 해군에 대한 규모 유지가 필요하다고 보는 듯 했습니다.

우선 글이 시작되는 1부에서는 냉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후, 일종의 다극체제로의 변화 가능성으로 대두하고 있는 여러 국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브라질, 멕시코, 인도네시아, 호주, 일본, 한국 등 각 국가별로 간략히 분석해내고 있는데요. 이에 저자는 냉전의 종식 이후 바로 미국이 주도해 국제 관계에서 갈등과 대립을 조정시킬 수 있는 일종의 국제적 협의체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을 아쉬움으로 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기존의 UN을 비롯한 국제 외교 무대의 한계로 볼 수도 있겠는데요. 하지만 이러한 저자의 토로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도 중국은 과거에 자신들이 참여하지 않은 국제 조약과 기준에 상당한 거부감을 밝히고 있는데 과연 명확한 국제 기준과 합의가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중국 전문가로 불리우는 조반니 아리기 역시 중국이 어느 정도 민주화가 진행되는 것이 중국 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게도 이득이라고 했던 것은 그 의미가 명확해 보입니다. 특히 많은 서구의 학자들이 민주화 없는 베이징 컨센서스에 우려를 표명했던 것도 마찬가지의 맥락일 것입니다.

다만, 현재의 상황과 과거에 있었던 다소 고립주의적 정책에 기반하는 복고주의를 설명하면서 논증 가운데 몇가지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우선 “중국, 일본, 한국. 그리고 러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의견 불일치를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는 의견은 약간 반감까지 들었는데요. 청산되지 않은 역사 문제를 단순히 의견 불일치로 이해하는 점은 전형적인 미국인의 몰이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더욱이 자신들이 2차 대전 당시 일본 제국과의 교전 당사국이었지만 안마당인 태평양 지역의 안보를 위해 일본 제국의 과오를 서둘러 봉합한 것은 주변국들의 이해에 기반한 것은 아닙니다. 냉전 시기에도 소련의 위협이라는 문제 앞에 일본과 주변 당사자들의 강제 화해를 주도하고 결국 일본에게는 어떠한 역사적 참회를 철저히 미연에 방지시킨 결과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지 짚어보고 싶습니다. 또한,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지역에 대한 이해와 동맹의 의무를 고려했을 때 군사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압박이 클 것이다”라는 서술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는데요. 한미동맹과 같은 비대칭 동맹 관계에서 미국이 항상 연루의 위협에 직면해 있지만, 다른 미국과의 우호국 내지는 동맹관계를 고려했을때 압박이라는 표현은 동맹의 의무라는 입장에서 다소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몇번이나 미국내 여러 지식인들이 서울이 핵공격의 위협과 동시에 LA이나 샌프란시스코에 핵위협 가중될 때, 과연 미 당국이 한국에 대한 핵우산을 지킬 수 있을지에 설왕설래가 있는데요. 마찬가지로 동맹에 대한 의무는 단순한 조약의 서명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한반도에서의 재래전이 핵전쟁으로 발화될 가능성이 있을 경우에도 미국이 동맹의 의무를 지켜낼 수 있을지에 대해 누구나 확신을 갖기 어렵다는 것도 분명해 보입니다. 마찬가지 측면에서 인도와 파키스탄의 초기 재래전과 같은 대결이 결국 양국 사이의 핵전쟁으로 귀결될 가능성 또한 상당하기 때문에 인도와 파키스탄의 사소한 국지전이라고 할지라도 국제사회 차원의 개입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즉, 한반도에서의 무력 충돌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주변국의 노력이 인도와 파키스탄의 사례와 같은 엄중한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여겨집니다. 앞선 주장과는 논외로, 저자인 리처드 하스 역시 “파키스탄의 증가하는 핵무기는 거대한 위협중에 하나”라고 인정하고 있는데요. 파키스탄의 국내 정치가 사실상 부족 중심의 체제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과연 자신들의 핵무기가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이 확언한 만큼 과연 안전하고 통제권에 있는지 의구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파키스탄 서북부에서 암약하고 있는 테러 단체의 존재를 감안해본다면 파키스탄 정부의 핵무기가 언제까지 안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군요.

하스는 자신이 공화당 당적을 갖고 있는 학자이자 정치인이기도 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책의 기조를 “전략적이고 제한적인 개입”을 미국의 대외정책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3부에서 밝히는 미국 국내적 요건과 관련해 “미국의 GDP 5분의 1이나 되는 비용을 의료보험제도에 투입”하고 있다는 것을 예로 들며 이것의 감축을 주장하고 있는데요.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과도한 의료보험비용을 지출하고 있으면서도 600만이나 되는 미국인들이 변변한 의료보험 조차 없이 지내는 것이 사뭇 이해가 안될 정도입니다. 2008년 이후 미국 경제가 다시 회복기에 이르고 있지만, 여러 국내적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미국 정치가 꼭 누군가를 지칭한 것처럼 “포퓰리즘을 등에 업은 가짜 리더십”을 꼬집고 있는데요. 저자인 그도”민주주의는 단순한 선거 이상의 것이고, 선거 또한 선거 당일에 일어나는 일 그 이상의 것이라는 점이 강조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현재의 미국 정치가 ‘민주주의의 쇠퇴’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앞서 언급한 그 포퓰리즘을 등에 업은 리더가 앞으로 어떠한 결정을 하게 될지에 대해 누구보다도 우리의 미래와 운명이 달려 있다는 점에서 실로 뜨악한 현실이기도 할텐데요. 저자의 예견과는 약간 상이하게 미국이 경제 발전과 꾸준한 국방비 투사가 함께 이뤄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연방 정부의 재정악화와 대외 경제의 불안감이 미국의 패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될지는 앞으로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지켜봐야 되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봤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모든 것을 다할 수 없다”는 의미 역시, 아마도 과거의 미국과 다른 현재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책의 39페이지 하단에 서술된 “쿠웨이트에서 이란을 내쫓았으며..중략”는 아마도 이라크를 이란으로 잘못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장이 시작되는 “중간의 1990년대에는..” 이라는 시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라크 후세인의 쿠웨이트 침공이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은 오타라고 할 수 있으니, 기본적인 역사조차 인지하지 못한 역자의 책임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다만 이란의 영문표기인 Iran과 이라크의 Iraq는 뒤의 마지막 자음에 헷갈려 할 수 있지만 이 부분도 완전히 변명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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