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 시민주권 시대, 직접 민주주의를 말하다
토마스 베네딕토 지음, 성연숙 옮김 / 다른백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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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저자인 토마스 베네딕토에 대한 짤막한 소개에 따르자면, 그는 이탈리아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로서 또한 지방 행정 전문가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저는 매번 서평을 쓸때마다 저자에 대한 구글링에 꽤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만 이번 토마스 베네딕토와 관련해서는 매우 짤막한 이력 정도만 이탈리어로 검색되고 있어 제 한계를 여실히 느끼고 말았습니다. 또한, 그는 볼자노 지역의 EURAC라는 연구소와 협업을 하고 있는듯 한데요. 이 EURAC는 사립 사회학 연구기관으로 이 곳에 대한 정보 또한 많지는 않았습니다. 주로 세계화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는 곳으로 추정됩니다. 이 책은 원제 “Piu potere ai cittadini?”로 지난 2018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올해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의 국내 번역과 관련하여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전문 출판사가 아니라 사단법인이 관여한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아마도 이 사단법인은 이와 같은 출판물들을 꾸준히 낼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우선 이 글의 중요한 관점은 번역된 제목대로 “직접 민주주의”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좀 더 엄밀히 말씀드린다면 “정치적 사안에 대한 확정적 국민투표 (레퍼랜덤)와 국민 발안”이라고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오해를 피하고자 저자는 이 직접 민주주의가 오늘날의 대의 민주주의를 대신하는 정치 체제가 아니라 “일종의 대의 민주주의의 보완재”라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총 15장의 내용적 구성에서 8장인 ‘직접 민주주의의 실행 특성과 효과’부터는 직접 민주주의가 우리의 정치에서 얼마나 긍정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증하는 것처럼 단순한 보완재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다만, 글 도입인 1장과 2장에서 저자가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과 효용성을 믿고 있으며, 오히려 대의 민주주의 체제 하에 직접 민주주의적 기능적 요소를 도입해 사실상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다양한 정치 무대에 있어서 숙련된 테크노크라시와 같은 소위 직업적 엘리트들에 비해 일반 대중이 각각의 정치적 이슈에 대해 노련한 이해와 자질을 보일 수 있느냐에 대해 전자의 이들이 사뭇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만, 저자는 이러한 선입견에 대해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을 더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시민들의 역량 부족을 주장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 자체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논지이다”라는 반론에 대해서 말이죠. 저역시 이 점에 매우 동의하고 민주주의 자체가 다수의 시민들에 의한 정치체제라는 것은 설사 그것이 책에서나 나오는 이상주의라 할지라도 반드시 이것을 옹호해야 한다는 것을 먼저 밝혀두고 싶습니다.

약 15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스위스의 직접 민주주의 체제는 저자의 논증을 통해 글에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연 3회에서 4회에 이르는 레퍼랜덤 (확정적 국민투표)은 저자가 강조하는 시민들의 더할 나위없는 행복과 정치적 고양감에 이르며, 이렇게 시민 개개인이 첨예화 된 정치적 논제에 자신의 선택을 더할 수 있다는 ‘체험’은 단순히 4~5년 주기의 투표권의 행사와 더불어 정치권력과 멀어진다는 소외감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게 만들어주는 직접 민주주의의 덕목이라 할 만합니다. 제가 이 부분에 대해 머릿속으로 한번 그려보기도 했는데요. 예를 들어 요즘 논란이 되었던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해당 투표로 제 의사를 정치권에 전달하는 것과 같은 국민투표는 시민들에게 꽤 정치적 참여 의식을 높일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자는 단순히 이상론에 그치지 않고 스위스에 소요되는 이 국민투표와 관련된 비용을 소개하고 특히 자신의 모국인 이탈리아 정치에서 정치인들에게 각종 자문을 해주고 세금을 뜯어가는 대략 40만명이나 되는 자문단체 및 자문위원의 현금 지급 등을 꼬집으며 이탈리아의 같은 경우도 쓸데없는 세금 낭비를 제거한다면 충분히 한정적 국민투표제에 들어가는 소요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사실 직접 민주주의에 들어가는 비용에 대한 공포심을 의회 정치인들과 정치 권력 엘리트들이 조장해 왔던 면이 분명 존재하며, 아예 저자는 스스로 납세의 책임을 갖고 있는 시민들의 권리가 특히 국가 부채와 관련된 문제에서 전혀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있으니 이 부분에 대한 시민들의 적극 참여가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 유독 국가 부채 문제에 있어서만 다수의 시민들의 의견이 무시되고 있는가”에 대해 저역시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매번 민주주의와 관련한 여러 논저들을 읽을 때마다 “민주 사회에서 정치 참여는 기본권에 속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맥락에서 직접 민주주의는 정치 행위에 대해 적법성 legitmacy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가히 그 의미가 가볍지 않습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도 저자는 15장에서 ‘스위스의 직접 민주주의를 어떻게 하면 유럽과 전세계에 이식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그 가능성들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이를테면 전자 투표를 획기적으로 보안 기능을 삽입하여 인터넷 망에서의 실시간 1인 1투표를 돕는 기술적 보완을 언급합니다. 아주 간단히 살펴보면 요즘 스마트 폰들에 들어가 있는 지문인식이나 안면인식과 같은 보안 장치를 바로 실시간으로 투표 참여에 연동시킬 수 있는 기능상의 지원 또한 가능하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앞의 부분은 제가 다소 단순화 시켜 봤지만 정부와 여러 자문 단체들이 이와 관련된 논의를 한다면 획기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열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아주 직접적인 반감으로 제시할 수 있는 ‘숙련되지 않은 시민의 정치 참여’와 ‘각 단계에서 소요되는 비용 문제’는 이렇듯 제반 사항을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근래 문제가 되고 있는 ‘포퓰리즘의 대두’와 관련해서 이어지는 저자의 여러 논증들을 통해 약간의 실마리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즉, 어떠한 대안도 없는 선동 정치인이 직접 민주주의를 빌미로 자신의 주장을 듣고 있는 시민들에게 일어서서 행동하라는 식의 과격한 선동은 그 자체로 견고한 민주주의적 이념과 체제를 갖고 있는 국가에서는 포퓰리즘의 발호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며, 이것이 그냥 말장난에 불과하더라도 어떤 정치적 이슈에 대해 시민들이 저절로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하게 만드는 ‘직접적인 국민 투표의 시행’이 오히려 이를 효과적으로 방지하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많은 정치 이론가들이 다원주의적 설득과 서로간의 깊은 이해 내지는 활발한 토론을 통해 민주주의가 보다 더 민주주의다워지는 유일한 길임을 주장해 왔습니다만, 시민들이 스스로 고도화 된 정치적 분별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오늘날 드러나는 모든 정치적 논쟁과 대결에 대한 관심과 자신의 고유한 의견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정상적인 민주주의에 있어 애초에 어느 것이 먼저 선결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역으로 민주주의와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부터 차례대로 성취할 수 있는 문제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인식으로 “전문가 정치가 그 무엇보다 ‘투명성’이 필요”하다는 관점은 이들이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민주주의가 왜곡 되었고, 바로 이런 엘리트 정치인들을 효과적으로 견제하는 시민들의 역할이 부족했기 때문에 ‘포퓰리즘’과 같은 비정상적인 도출로 나타났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최종적인 진술로, “직접 민주주의가 제대로 발달한다는 것은 계급적 권력이 덜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언급 역시 엘리트 지배체제에서 일반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만들어내는 긍정적인 효과라고 봐도 지나친 해석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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