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불평등은 돌이킬 수 없는가 자본주의어게인 1
척 콜린스 지음, 박형준 옮김 / 내인생의책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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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저자인 척 콜린스는 미국 햄프셔 대학을 거쳐 서던 뉴 햄프셔 대학에서 경제학 학위를 받았지만 어떻게 보면 주류 경제학과는 일견 거리가 먼 인물이기도 한데요. 특히 그는 미국 경제에 있어서 경제적 불평등과 기업들이 조장하는 경제적 불평등 확대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공 선을 위한 부’라는 사회 단체를 공동으로 설립,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시키고 그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주지시키기 위해 사회활동가로도 활약하는 중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번역된 다른 논저인 “왜 세계는 불평등한가”의 서평을 작성한 바가 있습니다. 이 책은 원제 “Is Inequlity in America Irreversible?”로 비교적 최근인 2018년 출간되었으며, 국내에도 얼마전인 2019년 11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우리가 현재 미국의 심각한 빈부 격차와 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중에 하나는 미국이 전세계 자본주의적 이행이 가장 오래되고 시장 근본주의라 지칭해도 될만큼 자본주의를 가장 잘 현실화 시킨 국가이기 때문일텐데요. 하지만 요즘에는 시민의 사회적 자본이 가장 미비한 국가이자 개인의 자유에 따른 삶의 선택이라는 일방향에 집중해 그것의 파장이 어떤식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확연하게 연구해 볼 수 있는 사례로 연구자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일전에 토크빌은 “개인의 이기심을 과도하게 보장하고 이것이 개인주의적인 극대화로 나타난다면 사실상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가 있습니다. 이 점은 토머스 페인과 존 듀이도 함께 동의하기도 하였는데요. 제법 신기하게도 앞선 미국인들이 갖고 있는 자유에 대한 신념과 그들이 신화로 믿고 있는 아메리칸 드림은 외형상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오히려 모든 걸 개인의 자유 문제로 국한 시켜서 해석한 나머지 현재의 ‘아메리칸 드림’은 (사실상) 과거의 추억이 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저자는 글의 초입에서 “미국의 불평등은 지구적인 추세의 일부분이지만, 초-개인주의적 자본주의라는 본성과 미국 (특유의) 공공정책으로 인해 상황이 더 심각하다”고 냉정히 평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배경 가운데 미국 사회가 더욱더 경제적 불평등의 이행과 “더할 나위 없는 세습 자본주의로의 과정”에 놓여 있다고 비판합니다. 이것은 더이상 미국 사회가 건전한 계급 이동성이 불가능해지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며, 글에서도 자료로 인용되고 있지만 “부모가 가난했지만 자신의 대에서 부자가 된 사람들”의 비율이 나날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이를 반증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사회가 계급적 경직성으로 폐쇄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연유에는 “권력의 불균형”에 있다고 저자는 분석합니다. 소수의 부유층은 자신들의 이익 보호와 이러한 시스템의 안정 및 존속을 위해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고 있는 반면에 대다수의 시민들은 정치와 멀어지고 동시에 정치인들의 관심 밖에 놓이는 ‘현격한 과두제의 진행’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특히나 미국은 의회 정치를 비롯한 정치 전반이 금권 정치 영향하에 놓여 있으며, 월 스트리트의 경제 엘리트들과 의회에 관여하는 정치 엘리트 및 관료들과의 긴밀한 연계가 대중이 주도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차치하더라도 정치 시스템이 변질되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결국 저자의 분석대로 누구도 원치 않는 정치 과정의 소수 독점화는 시민들이 경제적 불평등 상황에 놓여지게 됨으로써 정치 권력을 견제하고 정치에 새기운을 불어넣지 못하는 과거 플라톤이 우려했던 것과 일치합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몇가지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익히 들었던 내용들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양질의 교육 확대와 부유층에 대한 누진세와 현실적인 상속세 부과 및 역외로 몰래 빼돌려지는 약 1.2조 달러 규모의 막대한 현금 자산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등의 실천적인 제시입니다. 물론 충분히 공감할 만한 내용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글을 계속 소화해 나가다가 논증 가운데 두 가지 사례가 저의 흥미를 이끌었는데요. 먼저 부유한 미국 국민들이 조세를 회피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위탁자 유보 연금 신탁이라는 일종의 편법이 있습니다. 미리 신탁회사에 자산을 맡기는 동시에 상속세 및 증여세를 미리 내고 매년 연금 형식으로 돈을 수령한 후 계약이 끝나면 자산을 세금 없이 돌려받는 제도인데, 여기에는 페이스 북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와 패션 디자이너 랄프 로렌 등이 이 기술을 이용해 왔다고 합니다. 다음은 자산 도피에 대해 미국 정부와는 다른 해법을 보인 이스라엘 정부의 사례를 들고 있는데요. 이스라엘의 자산 관리자들이 자산 도피의 공범이 되지 않도록 감시와 제대로 된 감사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은 정보 당국의 도움을 받아 이에 적절히 대처한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한편으로는 당국의 이러한 감시와 개입이 개인 자유의 측면에서 문제가 되지 않을까도 싶었지만 경제 전반의 시스템이 법의 토대 안에 존재해야 하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더 많은 독서를 하기 전에는 소수의 기득권층과 부유층들이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시민들이 더이상 정치에 관심을 갖게 하지 않도록 일부러 경제적 불평등과 가혹한 노동 여건을 강요하는 것으로 이해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진실은 더욱더 진행된 세계화와 노골적으로 경제에 정치를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던 신자유주의의 영향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많은 자유지상주의자들이 크게 착각하고 있는 점은 70년대를 거쳐 지금까지 전세계의 주류 경제와 시장 지배적 경제주의가 단 한번도 제도와 시스템 바깥에 밀려난 적이 없었다는 것이죠. 이 (뭐라 불러야 될지 모르는)사조는 줄곧 지금까지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던 주류 중의 주류였습니다. 한 줌도 안되는 유럽의 사민주의적 이행을 제외한다면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막아선 그 어떤 세력도 전무했었죠. 최근인 2008년 이후에 들어서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학자들과 언론이 등장했던 것은 최소한 개혁과 다수의 시민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 보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안전 보장은 전반적인 복지국가로의 이행을 말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더 글이 길어질 수도 있으니 다음 책에서 더 논해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더이상 이제는 이념 논쟁이나 좌우 논쟁에 소모되지 말고 모두가 인간의 품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대책과 실효적인 제안 등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를테면 기본 소득이나 시민 배당과 같은 것들 말이죠. 그래서 피터 반스의 주장은 꽤 귀담아 들을만 하지 않나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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