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이란 무엇인가
스튜어트 화이트 지음, 강정인.권도혁 옮김 / 까치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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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저자 스튜어트 화이트는 옥스포드 대학에서 철학 및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그 이후 도미, 프린스턴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습니다. 현재는 옥스포드 대학에서 정치이론과 정치사상사로서 장 자크 루소와 제러미 벤담 등을 사상적 연계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는 시민권과 전통적인 소유권, 자원의 권리 등 정치경제학의 핵심 분야에 대해 지속적인 학문적 관심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이 책은 원제 ‘Equality’로 지난 2007년에 출간되었으며, 국내에는 2016년에 번역 출판 되었습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강정인 서강대 교수가 글의 공동 번역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우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에 앞서 저자인 스튜어트 화이트 교수는 서두에서 “평등의 대가는 필시 자유의 상실이나 소름끼치는 획일성에 대중들을 몰아넣는 것”이라고 선입견을 갖는 것에 대해 경고로서 이 점을 언급하고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미 자유지상주의자들이 민주주의에서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가치로 ‘평등’을 논해왔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자도 글의 3장인 ‘능력주의’에서 평등의 두 가지 가치적 형태에서 ‘기회의 평등’을 어떻게 하면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비판 없이) 좀 더 무리됨이 없이 수용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집중하면서 다수의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결과의 평등’에 대해서는 사실상 입을 아끼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자본주의를 전복시키고 다른 체제를 채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과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적 시장 지배 체제를 감안하더라도 다중적인 측면에서 시장 경제에 기반이 된 자본주의가 현재로서는 이에 대한 대안이 불확실하며, 차라리 왜곡된 자본주의 체제를 보다 개선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먼저 밝혀두고 싶습니다.

오늘날 모든 시민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평등의 존재적 가치성은 “어떻게 보다 많은 평등이 모든 이에게 품위있는 생활 수준을 보장해주는 가치에 복무할 수 있는가”로 요약될 만합니다. 특히 이와 관련하여 5장에서는 현재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불평등적 상황은 바로 ‘경제적 불평등’이며, 바로 이 부분에 이르러 “우리는 얼마만큼의 (경제적) 불평등을 용인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이릅니다. 저자는 2장의 ‘민주주의’에서 그리스시대를 거쳐 사회계약의 이론이 성립된 루소를 돌아보며, “모든 사람 혹은 모든 시민은 총명한 도덕적 판단을 할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민주주의 체제의 이상이라 여겨도 될만한 ‘도덕적 민주주의’에서 각자 개개인이 만연한 불평등의 문제를 분명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것임을 인지할 것이라는 일종의 예시로 제시합니다. 이렇게 판단된 인식은 4장과 5장을 거쳐서 ‘경제적 불평등’ 자체가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문제이며, 이 부분에 눈을 감는 것 또한 옳지 않은 일이라고 저자는 주장하기에 이릅니다. 그래서 평등의 전위적인 기본 조건으로서 앞에서 서술한 ‘기회의 평등’은 무엇보다 중요하며, 결국 “경쟁활 기회의 측면에서 충분히 평범한 운동장에 있지 않는다면”, 이 기회의 평등이 과연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다시 3장으로 돌아가보면, 우리는 그동안 자본주의적 발달 단계에서 누구에게나 ‘능력주의 meriocracy’가 내면화 된 것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노동을 통해 능력이 뛰어난 자가 더 많은 임금을 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차등의 원칙을 적용받는 것은 노동 경제의 단순한 인센티브 확보를 넘어 사회 전체의 불문율이 되기도 했습니다. 만약 이런 시스템이 충분히 설득적이라면 ‘평등의 가치’에 대해 거부감이나 공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할겁니다. 이런 현실적 기반이라면 더욱더 우리는 도덕적 판단을 통해 평등주의와 인도주의의 결합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해야만 합니다. 여기에 저자는 존 롤스의 이른바 평등의 차등적 원칙을 언급하고 하층민에 대한 선별적인 차등 지원과 같은 복지 차원의 원칙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 분석합니다. 물론 롤스의 이론이 양쪽 모두에게 동의를 받지 못할 지점이 분명 존재합니다만 기존의 자유주의적 경제 조치에 대해 일말의 복지와 평등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롤스를 일방적으로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드워킨의 경우는 ‘부유층에 대한 (사실상의 강제 세금 징수와 부의 집행)이 가난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부유층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 바가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안정적인 사회 시스템의 제반 상황에서 그토록 원하는 부유층의 자신들의 이익 보호에 이바지 할 수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사유 재산의 강제 집행이라는 문제는 자유주의에 반하는 것으로 봐야하겠죠. 더불어 약한 능력주의와 강한 능력주의에 대해 비교 분석하면서 저자는 (특히 중요하게) 평등이 자유를 침해할 것인가란 문제에 관련해 효과적으로 논박하고 있습니다. 굳이 자원이나 복지의 평등이라는 문제를 꺼내지 않아도 거의 대부분의 사회가 능력주의적 지배하에 놓여 있으며, 그동안 복지 뿐만 아니라 평등의 필요성 조차도 매우 쉽고 효과적으로 거부되어 왔음을 인지해야 할 것입니다.

‘평등의 미래’라는 글의 결말인 7장을 차치하면 저자가 주장하는 6장까지의 논의는 대체로 우리에게 평등이 그동안 너무 얕게 이해되고 있었으며, 평등에 대한 뜻모를 배격이 존재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을겁니다. 다만, 2장에서 대중의 정치와 다원주의와 관련해 잠깐 실마리로 보이고 있는것과 같이 평등의 원칙과 평등의 필요성에 대해 갖고 있는 불신과 공포는 경제적 기득권층과 정치 엘리트들에게 민감한 문제였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유산계급이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에 반대했던 주된 이유의 한 가지는 하층 계급들이 그들의 정치적 권리를 부자들로부터 자신들에게로 재산을 재분배하기 위해서 이용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해석은 이를 잘 증명한다고 여겨집니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될 사실은 그동안 몇백년간에 걸쳐 ‘능력주의적 신념’이 매우 성공적으로 이행해 왔으며 이것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만연된 불평등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정치경제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정치와 경제를 따로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과 일맥상통할 것입니다. 더욱이 현재의 정치 상황이 민주주의적 기반에 이어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웅변가들이 (혹은 선동가들) 민주주의의 의사 결정을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마도 저자는 포퓰리즘을 염두해 두고 밝힌 듯 한데요. 이러한 지점들을 반대로 뒤집어 보면 ‘자발적인 시민적 결사’와 ‘공공 정신’에 고무된 시민들의 노력이 절실해 보입니다. 그 결과물이자 최종적인 이행이 되어야 할 우리의 목표인 ‘민주주의의 도덕화 된 개념’은 바로 이 점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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