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 진다 - 전후 70년, 현대 일본을 말하다
우치다 타츠루.시라이 사토시 지음, 정선태 옮김 / 우주소년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도쿄대 불문과 출신으로 프랑스 현대사상 및 푸코와 라캉을 연구하고 말년에는 고베여학원대학에서 은퇴해 현재 명예교수로 있는 우치다 다쓰루와 와세다 정치학과 출신으로 정치학, 사회사상을 연구하면서 현재는 교토세이카대학의 교수로 있는 시라이 사토시의 두 번째 대담집 ‘사쿠라 진다’를 일독했습니다. 우선 시라이 사토시 교수는 얼마전 번역된 ‘영속패전론’으로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반향을 일으킨 바가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마르크스-레닌주의자’로 칭하고 있는데요. 이것과는 논외로 대담에 참여한 두 사람 다 일본 내 대표적인 리버럴 지식인이라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들의 첫번째 대담집은 2018년에 번역 출간된 ‘속국 민주주의론’입니다. 국내에는 두 번째로 번역 출간된 이 ‘사쿠라 진다’는 일본의 전후 70년이라는 주제로 지난 2015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올해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한 가지 출판사의 착오인지 아니면 알라딘의 임의 표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책 표지에는 저자 이름이 우치다 다쓰루와 시라이 사토시로 표기되어 있으나, 알라딘 홈페이지에는 우치다 타츠루, 시라이 사토시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점은 양자간에 합의를 보던 어떻든 간에 수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일단 이 책은 총 4장의 큰 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글을 관통하는 주제는 크게 ‘일본의 국내 정치와 대미관계 그리고 청산되지 않은 역사 문제 및 역사수정주의’를 다루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일본 내 리버럴 지식인들의 공통된 문제 의식인지는 모르겠으나, 사실상 일본이 미국의 속국 지위에 놓여 있는 것을 일본 정부가 이를 알면서도 묵인하는 건지 아니면 경제적 이익을 위해 외교와 군사 문제를 미국에 위임하는 것이 피치못한 문제로 보는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과 함께 비판적 인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과 미국과의 관계는 패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 인가에 대한 입장 차이부터 미국의 안보 이익을 위한 일본의 군사 기지 지원과 같은 ‘배려예산’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얼굴을 들고 다니는 많은 일본 정치인들과 국민들의 무의식을 포함합니다. 이것은 전후 국체호지를 위한 미국 정부와 일본 파시스트의 영합이라는 측면과 미일안보조약을 통한 평화헌법의 존재로 인해 일본인들 스스로 ‘군사적 발기 불능 상황’이라고 자조하면서도 미국의 영향력을 벗어나고자 하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 일본 정부와 그 정치인들의 행태를 꼬집는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반세기 이상을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서 안주해 온 일본이 얼토당토 않게도 ‘전후의 탈각’을 목표로 ‘자학 사관 퇴출’과 ‘역사수정주의’를 주요 정치적 사업으로 확대시켜왔는데요. 지난 2013년 아베가 고노 담화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했을 때, 오마마의 백악관이 이에 대해 아주 불쾌한 평가와 함께 압력을 행한 것이 아베의 궁색한 변명과 함께 이를 철회하게 되었습니다. 끊임없는 역사 수정의 시도는 주요 주변국인 한국과 중국의 어떠한 의견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단지 백악관의 시선이 도쿄에 닿을때, 반응하는 것에만 일본 정부에게는 중요했던 것이죠. 이에 관해 시라이 사토시는 “분명 과거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가 일본의 국익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최근 부흥 올림픽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있는 도쿄 올림픽에 대한 주변국들의 보이콧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 점도 단순히 동일본 대지진 사태에 따른 환경 문제에 대한 측면 뿐만 아니라 현재 중국과 한국에서 증가한 ‘역사 압력’ 상황을 우려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도쿄 올림픽 보다는 ‘후쿠시마 올림픽’이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책과는 논외로 일본이 벌이고 있는 경제적 술수를 보노라면 이 후쿠시마 올림픽에 대한 좀 더 합리적인 대응이 필요하지 않나 판단해 봅니다.

과거 일본의 전중 세대는 “절대 말하지 않고 무덤까지 갖고 가겠다”는 그 소름끼치는 예의 침묵과 이를 바탕으로 과거 여러 장소에서 벌어졌던 일본군에 의한 지옥의 광경들을 왜 오늘날 다시 끄집어 내야 하는가라는 침묵의 정당성을 일본인들 스스로가 자의적인 판단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는 오늘날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에 대한 꽤 설득적인 매커니즘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역사를 무덤까지 안고 가는 전중세대의 침묵과 증인과 증거가 없다는 핑계로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도리어 이러한 과거 역사 문제들이 일본을 자학 사관에 빠지게 만든다는 이상한 해석이죠. 더군다나 평화헌법을 수정해 동맹국인 미국의 군사 협력을 좀 더 수월하게 하겠다는 본질을 흐리는 주장을 함께 곁들이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면에서 이 책의 3장에 더해져 있는 논의들은 큰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특히 “한국과 중국을 혐오하는 책이나 혐오 발언에서 알 수 있는, 하시모토 도오루와 아베 신조의 인격에서 배어나는 반지성주의, 또 그런 것을 환영하는 폭력적인 풍조” 등이 이를 말해준다는 우치다 다쓰루의 비판은 꼭 일본인들이 귀담아 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미밀 동맹에만 기대어 방향타를 잡고 이를 위해 역사수정주의가 뒷받침하는 일본의 대외 정치의 요점은 “일본이 아시아에서 고립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와 일맥상통합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냉전 시기 이후에도 왜 미일 동맹은 굳건히 유지되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맹이 존속과 의존적인 측면으로 일본이 스스로 미국의 속국임을 증명한 것밖에 되지 않았느냐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혐오하는 가당치도 않은 국제 관계와 자신들이 자유 민주주의적 가치를 믿고 있는 서방 진영이라고 믿고 있으면서도 퇴행적이고 전혀 되돌아보지 않는 역사 왜곡을 정당화하는데 있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일본인들 스스로에게도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님은 분명해보입니다. 끝으로 저자인 우치다 다쓰루는 2015년의 한국은 “확실히 민주화가 뒤쳐져 있고 정치 시스템도 문제가 많습니다”라는 표현으로 당시의 우리를 돌아보고 있는데요. 사실 금방 발끈하다가도 옮긴이가 달아놓은 것으로 보이는 주석으로 저자가 그렇게 받아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이후에 촛불 혁명으로 불의한 정권을 끝장냈으니 지금의 한국 민주주의는 그 위상이 달라졌다고 볼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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