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 고전의세계 리커버
존 듀이 지음, 김진희 옮김 / 책세상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에게는 꽤 낯익은 교육철학자로 알려져 있는 존 듀이는 미국 버몬트 대학을 졸업하고 존스홉킨스 대학에 수학한 뒤 헤겔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미국의 독특한 철학인 프래그머티즘의 사상적 확대를 일군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개인적으로 존 듀이는 민주주의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단순한 교육 분야의 이론가 보다는 공공철학자로서 그를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대 민주주의의 위기는 시민들이 정치적 관심보다 즐길 오락 거리들이 많아지면서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는 정치철학의 측면에서 공공성의 관심을 기울여 온 측면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그의 1935년에 출간된 논저인 ‘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은 세계 대공황의 위기를 극복하고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을 사실상 지지한 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원제는 ‘Liberalism and Social Action’ 으로 국내에는 과거 1980년대에 판권 없이 일역판을 번역해 출간된 책들이 있습니다만 2011년 책세상에서 번역 출간되어, 2018년에 대사 개정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후에 나온 개정판을 구해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총 3장의 구분으로 되어 있고, 글의 마지막에는 꽤 면밀한 해제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존 듀이가 밝히는 자유주의의 핵심은 프래그머티즘에 입각했다고 봐야하는 ‘실용적 자유주의’ 내지는 ‘진보적 자유주의’입니다. 우선 2장에서 존 듀이는 프랑스 혁명을 이끌었던 자유주의 혁명가들과 이론가들 및 자유주의자들이 분명 인간의 자유를 위한 세상을 처음 열었던 것을 기념비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즉, 이들 자유주의자들의 노력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된다는 선언적인 의미도 담고 있는데요. 다만, 당시 세계 대공황 이전 혹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자유주의는 크게 변질되어 1장의 초입에서 “자유주의자는 프롤레타리아의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위기의 순간에는 늘 자본주의의 지배자 편에 서는 자들이다”라고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결국 듀이가 밝히는 쓸모있고 유용하며, 민주 정치에 도움되는 자유주의는 제도 구성의 철저한 변화와 그 변화를 실현시키기 위한 행위가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급진적 인식을 주창했습니다.

결국 자유주의 사상이 가장 결핍된 문제는 지적 및 지성에 대해서 기존의 자유주의가 인간 바깥의 고립된 역할을 지지했고, 빅토리아 시기의 긍정의 시대 이후 과학과 기술의 놀라운 발전으로 지성의 문제를 편협하게 해석한 것은 그는 시대상과 맞지 않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의 습속을 깨고, 인간들로 하여금 실제 사건에 근접하는 정신과 지적 그리고 도덕적 양식의 생성에 도움을 주게끔 하는 것이 자유주의가 개선하고 변화해야 되는 점으로 또한 인식하고 있습니다. 본래의 자유주의가 “지적-도덕적 방향성을 지닌 사회조직으로 조직화 하는 문제에 있어서 자유주의는 거의 무능했다”고 비판하며, 1장에서 자유의 문제를 그 시대 상황에서 재정의해야한다는 근본 원칙을 망각했다고 보는 시각과도 이 점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많은 개인에게는 이성과 조화를 이루는 동정심의 실천이 덕을 갖춘 행위의 기준이다”라고 독자들에게 이해시키는 과정도 그러한 맥락에 닿아 있습니다. 따라서 자유주의가 지성을 고립된 요소로 파악하는 것은 현실 정치에서 시민들의 정치철학적 질문들을 막아서는 문제로 비화될 수 있으며, 모두가 공유하고 발전시킨다는 대의 명제로서 지성의 역할을 반대하고 특별한 계층, 특수한 인물들만이 소유 내지는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전반적인 인간 사회의 진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더불어 3장에서는 현 시점과 약간 다른 인식적 배경이 있었는데요. 당시 미국 정치 무대에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독립되고 분리되어 있는 상황이 오늘날의 보수정치와 신자유주의의 밀접한 관계와는 상이한 부분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차치하더라도 일찍이 제러미 벤담이 강조한 공익의 측면에서 자유주의가 어느 정도 의미있는 기여를 했다면 새롭게 발견된 자연권과 더 나아가 기본적인 자유의 확대가 인간 해방에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불확실성을 불식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예견해보기도 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전반적인 시대긍정론과 같은 상황에서 자유주의자들이 과거의 역사에 개념치 않고 단지 실용주의적 입장에 치중했다는 듀이의 평가에 긍정하면서도 이 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입장과 지적 이론의 견고함을 강조하기 위해 수도 없이 과거의 역사를 인용하는 것은 역사의 원칙없는 차용이 어떠한 인식 파괴를 불러일으켰는지 명백히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저는 이 책을 통해 1800년대 후반부터 그 이후의 자유주의가 어떠한 길을 걸었는지 대략적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꽤 변혁적이었던 다윈과 멜서스의 진화론의 다수를 받아들여 허버트 스펜서와 같은 이들이 자유주의가 양산한 불평등의 문제를 원인과 결과론으로 한정해 버린 것과 같은 자유 자체가 교조주의적 성향을 띠게 되는 폐해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개인의 경제 자유와 그에 따른 정치의 불간섭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날이 가면 갈수록 교조화가 되어가는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상적 주장에는 반드시 그것을 상식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상대가 있어야 하며, 존 듀이가 강조했듯이 그 시대에 맞는 사상, 그 시대에 부합하는 사상으로 철저히 분석하고 개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