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로서의 디자인
토니 프라이 지음, 송기철 옮김 / 안그라픽스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영국 버밍엄 대학 출신으로 현재 호주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디자인 이론가인 토니 프라이는 특히 카를 슈미트와 조르조 아감벤에 대한 연구로도 유명한 학자입니다. 더불어 정치철학과 관련된 주제들로 활발한 저작 활동을 그동안 지속해왔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이 책이 아마도 처음 소개되는 논저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글은 지난 2010년에 ‘Design as Politics’ 라는 원제로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4년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우선 본격적으로 책에 대한 논의에 앞서 아쉬운 두 가지 점을 밝히고 싶습니다. 본문 75페이지의 오탈자와 함께 심각한 문제는 가편집도 제대로 하지 않은 듯한 삐뚤삐뚤한 문장 줄넘김입니다. 이렇게 의미있는 번역본을 이렇게 성의없이 편집한 것은 인력의 문제, 시간의 부족을 떠나서 정말 비판받아야 하는 점이라 생각합니다.

저자인 토니 프라이는 “현재의 시장 자본주의의 사실상 종속 상태인 (서구) 민주주의가 앞으로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으며, 이 점은 명백하게 반미래화로 귀결된다”는 큰 틀에서의 주제 의식을 밝히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주장을 기본으로 이것의 합리적 당위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현시대의 현상으로서의 근거와 이론적 대응을 결합시켜 꽤 설득적인 논의 글을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우선 개인적으로도 이러한 시장 자본주의에 예속된 현재의 민주주의적 병리적 상황에 매우 공감하고, 우리의 근대가 기술 만능주의에 휩싸여 전개되어 왔다는 것에도 동의합니다. 물론 이 뿐만 아니라 2부의 카를 슈미트 현상을 비판적으로 인식한 논의 만으로도 충분히 일독해 볼만하다 여겨졌습니다. 특히 근래 번역된 슈미트의 유명한 논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의 대한 이해를 돕는데 중요한 해석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부문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독서였습니다.

과거 냉전시기 전후로 급격한 세계화에 따른 소비 자본주의화가 초래한 문제에 대해서는 익히 이해하고 계실겁니다. 많은 민주주의 이론가들이 제가 앞서 소개해드린 바와 같이 ‘민주주의가 시장 자본주의에 종속된 형태로서 정치 (민주주의)가 자본주의 (시장 자유주의)를 보조하는 구조적 결합으로 강화’ 되었다는 것이 오늘 광범위한 세계적 문제의 본질입니다. 이 책에서 토니 프라이가 논하는 대로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는 어떻게 보면 지엽적인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기술 만능에 따른 광범위한 자연파괴적 대량 생산에 따른 환경 파괴 문제와 세계화의 사실상 본질이라고 볼 수 있는 선진국의 환경 오염 배출 산업을 제3세계에 이전하는 즉, ‘미녀로 야수를 포장하는’ 교묘한 행태 등을 전방위적으로 저자는 비판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책을 국제사회에서의 의결과 같은 모든 것을 포함한 더 많은 민주주의의 확대로 인식해 왔는데요. 저자인 프라이는 그러기에 앞서 먼저 현재의 민주주의를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과거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했던 실질적 민주주의가 오늘날 우리의 민주주의에는 없으며, 사실상 일종의 대의 민주주의로 귀결되는 민주 정치에 ‘실질적 민주화’가 결여되어 있다고 해석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2부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카를 슈미트 비판과 연계되어 있는데요. 먼저 카를 슈미트는 ‘적과 우리’라는 대결구도를 통해 정치 및 자유를 해석함으로써 그 유명한 결단주의와 함께 정치 자체를 획일화 시킨 책임이 있습니다. 또한 주권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도 “주권은 법률의 명령 안팎에서 동시에 기능하기 때문에 주권의 역설이 존재”한다고 그는 첨언하면서 사실상 슈미트는 정치적 이상주의를 불신하고 첨예한 현실주의 및 현실정치를 비판하기 힘들게 만든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는 혐의를 벗어나기 힘듭니다. 여기에는 “법의 등장 (성립) 은 (어떤 식으로 정의하든) 인간이라는 존재의 다루기 힘들고 지배할 수 없는 본성에 대한 대응”이라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날것’을 가차없이 평가함으로써 그가 우파 뿐만 아니라 좌파에게까지 영향을 끼친 이면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만, 슈미트 역시 존 듀이와 마찬가지로 (주된 대상이 하급 계층이라는) 오락거리의 범람이 앞으로의 정치 토대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분석했고, 일원화되지 않는 개인주의 총합의 ‘다원주의’ (물론 저는 이러한 분석을 모두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정치가 과연 민주주의에 있어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과 함께 독특한 통찰을 엿볼 수 있습니다. 즉, 동일성의 정치라는 것이 우리가 스스로 소멸시킨 ‘공공성의 가치’ 내지는 ‘공익의 목적’이라는 가치로 귀결되어야 함에도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많은 이론가들에 의해 ‘자유를 건드리는’ 모든 것들을 배척하게 만들었고, 프라이는 이것을 한술 더 떠서 ‘자유 마저도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약간의 첨언이라면, 프라이가 인용한 라클라우와 무페가 주장한 바대로 “수행적이고 다원주의적인 ‘자유민주적’인 사회들의 객관화된 권력구조와 실상은 헤게모니적이며 따라서 전체화한다고 결론지었다.”라고 밝힙니다. 여기에 카를 슈미트가 ‘대의 정치’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것도 그가 왜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이유라 생각됩니다.

결론과 더불어 프라이는 앞선 비판적 인식을 토대로 우리 세계가 ‘지속불가능한 상태’에 놓여 있고, 이 부분을 우리는 정확히 직시해야 하며, 주권과 자유의 재인식을 통해 새롭게 세계관들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합니다. 저는 저자의 주장 끝에는 ‘다소나마 독재의 그것이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로 도출되는 불길한 인상을 받았습니다만 물론 근본적인 독재 정치를 지긋이 가리킨 것은 아닐겁니다. 이미 이 책 1부에서 권위주의화 된 민주주의에 대한 일침을 한 것으로 저의 의심은 터무니없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소감은 하이데거와 슈미트의 비판과 더불어 받아들일만한 근거들을 보여주는 것에 이해를 하면서도 뭔가 뒤끝이 씁쓸했고, 이미 그도 이라크 전쟁 상황에서 잡힌 포로들을 고문한 등의 그 ‘예외상태’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던 점이 명백한 것으로 꽤 괌범위한 그의 논거를 의심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그래서 글 도입에서 말한 민주주의 국가들이 국익을 신봉하게 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대놓고 비판하는 것은 충분히 그 의도를 인정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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