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경제적 결과 부글 클래식 boogle Classics
존 메이너드 케인스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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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존 메이너드 케인스라는 이름은 경제학의 대부라 불리우는 애덤 스미스처럼 잘 알려져 있습니다. ‘케인지언’, ‘케인스주의자’등으로 수식되는 의미조차 아주 명확합니다. 그는 켐브릿지에서 수학한 이후 경제학자로 활동하며,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파리평화조약에 관여하고,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영국 재무성 관리로 재직하고 전후 유럽 부흥과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를 만드는데, 공헌을 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이 책은 그가 1919년 영국 재무성의 공식 대표로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졌으며, 거의 2개월에 걸쳐 완성한 글로 원제는 ‘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로 국내에는 2016년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정식 판권으로 소개되기 이 전에 80년대에 ‘평화의 경제적 귀결’이라는 제목으로 일본판을 번역한 판본이 헌책방에 돌아다녔던 것이 문득 생각이 납니다. 이 부분은 그냥 참고로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책을 다 일독하고 나서 드는 생각은 제목이 아주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평화의 경제적 결과’가 파리 평화 회의 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의미하는 바가 역설적이지 않나 추측해 보기도 합니다. 바로 케인스는 그런 관점에서 1차대전의 종전 이후 ‘파리 평화 회의’를 다음 두 가지 관점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파리 평화 회의 자체가 파괴적 측면을 갖고 있었으며, 두번째, 우드로 윌슨과 로이드 조지, 조르주 클레망소 등 협상국의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경제적 측면의 고려를 결여한 협상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 두번째 비판과 관련해 ‘현실성’을 결여한 채 이상주의적이고 도덕적인 문제에 집착한 우드로 윌슨, 독일을 두 번 다시 프랑스 앞에 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조르주 클레망소, 선거를 앞두고 마찬가지로 독일의 굴복을 기대했던 로이드 조지의 이런 불편한 하모니가 사실상 ‘독일의 징벌적 배상’을 강요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위의 측면의 정당성 문제와 관련해 케인스는 “독일이 사실상 무조건 항복을 한 것이 아니라 평화 조약 협상에 참여를 요청하고”, “그 이전에 미국 윌슨 대통령과 전후 처리에 대한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봤을 때, 이것이 과연 합당한 결과인가”에 대해 되묻고 있습니다. 더욱이 조르주 클레망소가 주장한 “독일을 포함한 중부 유럽을 1870년(보불전쟁) 이전으로 돌리자”는 주장에 케인스는 전혀 동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프랑스에게는 독일 황제가 보불전쟁 이 후, 베르사유 궁전에서 대관식을 한 사건에 이르는 과정을 대단히 굴욕적으로 여기고, 카이저에 대한 전쟁 책임을 영국과 프랑스에서 요구한 것은 이에 기반한 것으로 보입니다.

독일은 1914년 이후로 유럽 전체에서 중요한 산업국으로 도약하게 됩니다. 알자스-로렌과 자르, 슈레스비히의 석탄 및 철광성의 자원으로 헤외에서 원료를 수입해 가공한 제품을 영국과 프랑스에 수출하는 등 이러한 산업 기반이 유럽 전체에 경제적으로 기여한 측면을 살펴보는 등 뒤이어 ‘4장 : 배상’ 에서 “본래 배상금이 정해지고 나면 지급하는 수단은 그 국가의 자유에 맡기던 것이, 파리 평화 조약의 경우 배상금을 받을 국가들이 금액을 정할 뿐만 아니라 배상금으로 내놓을 재산의 종류까지 명시한 것은 거의 최초라고 언급됩니다. 이러한 인식은 과거 카르타고식 평화로, 제2차 포에니 전쟁 후 로마가 카르타고에 강요한 평화조약에서 적을 잔인할 만큼 철저히 분쇄함으로써 유지하는 평화에 기인하는데, 결국 역사의 가정은 없다지만 독일 내부에서 전체주의가 자생하여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다만 케인스는 이러한 가혹하고 기준없는 독일에 대한 ‘징벌적 배상’이 독일 지역에서 혁명의 기운을 낳게 할 수도 우려했으나, 우리가 아는 바대로 아돌프 히틀러라는 시대의 악을 잉태했습니다. 또한 그는 케인스의 이 책을 통해 히틀러가 면밀히 연구하고 전후 사상적 인식에 도움을 받은 것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출간된 6개월 이후 전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점이 무엇을 말하는지 예측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독일이 치뤄야 할 배상과 관련해서 케인스는 앞선 알자르-로렌과 자르, 슐레스비히에 대한 할양을 차치하더라도 대전 이 전의 연합국과 각 식민지에 존재했던 독일의 이권이 무상으로 몰수되고 이것이 배상액에 포함되지 않는 상황은 이해되기 힘든 행위라 여기고 있습니다. 독일 국내에 필요한 석탄 1억톤 가운데 프랑스와 벨기에 및 다른 주변국에 2000톤 이상 무상(배상금과 상관없이)으로 보내야 한다는 점과 보유한 선박들을(대체로 상선들) 마찬가지로 영국 등에 보내야 한다는 점, 벨기에와 같은 경우는 취약한 동부 국경지대의 피해 이상의 배상금을 따내고 바로 이것을 대전 도중 영국으로부터 받은 현물지원 및 차관으로 대체하는 등의 배상의 이차적인 측면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위의 할양할 지역의 독일 민간인 재산의 몰수와 관련해서 아무런 법적, 도덕적 근거가 없이 무상 몰수가 이뤄진다는 부분은 또한 배상금 안에 포함되지도 않는다는 측면에서 매우 가혹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해봤습니다. 저자인 케인스는 최소한 독일 경제가 배상금을 갚을 수 있을 만큼 산업 기반의 재가동이 필요한데, 이것을 원천적으로 제한하게 하는 이런 배상금 문제는 “독일 국민이 커피나 담배와 같은 기호품까지 끊어야 겨우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언급합니다. 기본적으로 독일이 1913년 이전 만큼 국내 경제가 유지되는 것이 영국과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이며, 반대로 과도한 배상에 따른 국내 시장을 초토화시키는 결과가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될 것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잠정적으로 독일은 프랑스에 배상할 전체 330억 달러에서 210억달러에 이르는 배상금을 납부했지만, 1920년부터 세계 대공황이 터지는 1929년 이후까지 대부분의 독일 국민을 경제적 고통에 처하게 만들어 나치즘이 활개치는 근본 원인이라 여겨도 무방합니다. 즉, 5장 : 평화조약 이후의 유럽에서 무역 저조로 인한 인플레이션의 확대가 유럽 경제의 위기로 대두할 가능성으로 케인스는 예견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또한 전쟁 배상금을 받지 못할 경우 장기적인 경제 침체에 빠질 것으로 예상하고 세르비아를 비롯한 낙후된 동부 유럽도 더 안좋은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이 책에서 나는 러시아와 헝가리, 오스트리아에는 별로 주의를 주지 않았다. 그곳은 삶의 비참함과 사회 붕괴가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에 별도의 분석조차 필요하지 않다”며 전쟁 이후 외적으로 발생한 유럽의 상황이 가늠하기 힘들정도로 좋지 않았던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이 평화조약에 따라 독일에 강요된 배상과 비슷한 예는 인류 역사에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는 케인스의 결론으로 설명되는 이 문장은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대한 전쟁 책임이 여러 측면에서 고려되지 않고 오로지 정치적 수단에 의해서만 계산된 것은 또 한번 대전을 치루고 수많은 인명 살상을 겪게 되는 비극적 원인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예상해봅니다. 여기에 어쩌면 1910년대 불기 시작한 계몽적 낭만주의가 정치의 불확실성을 간과하게 만든 요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비판적 견해에도 불구하고 1차 세계 대전의 종전 분위기와 당시 유럽의 모습을 담고 있는 글을 쉽게 찾기 힘든 출판계에서 케인스의 이 글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협상의 이면과 정치적 문제 등을 비판적 인식으로 쓰고 있는 저자의 태도도 꽤 교훈으로 삼을만하다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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