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책임 - 레옹 블룸, 알베르 카뮈, 레몽 아롱… 지식인의 삶과 정치의 교차점
토니 주트 지음, 김상우 옮김 / 오월의봄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지난 2010년에 타계한 토니 주트는 우리에게 그의 생전 마지막 유고인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를 통해 신자유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고, 중동에서 일으킨 미국의 전쟁과 자기 자신이 유대인임에도 이스라엘을 비판한 실로 지식인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생전에 켐브리지와 옥스포드. 버클리를 거쳐 뉴욕 대학의 유럽을 연구하는 레마르크 연구소의 소장으로 재임했습니다. 그의 여러 논저들 가운데 가장 명성을 가져다 준 글은 ‘포스트워 1945~2005’입니다. 마찬가지로 위의 책은 국내에도 토니 주트의 주저로 대표될만큼 잘 알려져 있습니다. 소개할 이 책은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1930년경부터 냉전시기까지 토니 주트가 비판했던 당시 프랑스 지식인들의 이합집산과는 다른 삶을 살았던 레옹 블룸, 알베르 카뮈, 레몽 아롱의 정치적이고 학문적인 일대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원제는 The Burden Of Responsibility 로서, 지난 1998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조금 늦은 2012년 오월의봄에서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레옹 블룸부터 알베르 카뮈, 레몽 아롱의 차례대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마도 이 세사람이 서로 아슬아슬하게 겹치며 살다간 각자의 인생 순서 때문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좀 더 엄밀하게 말씀드리면 알베르 카뮈와 레몽 아롱의 시간대가 많이 겹치고 2차대전 이후 삶을 마감한 레옹 블룸만이 따로 서술되는 느낌입니다. 물론 이건 제 개인적인 감상일 따름인데요. 토니 주트는 이 위대한 세 사람의 공통점을 도덕적 용기를 가졌으며, 대체로 반공주의자였던 점을 꼽고 있습니다. 여기에 레옹 블룸은 외로웠지만 고결한 이상주의자였고, 카뮈는 진리를 사심없이 성찰한 모럴리스트에 가까웠으며, 레몽 아롱은 이성을 겸비한 현실주의자라고 저자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세 사람 모두 당시 프랑스 지성계 및 지식인들 사이에서 꽤 독특하고 특별한 양심으로 당시 프랑스 지식인들 모두의 미움을 받은 전력을 공통된 경험으로 갖고 있습니다.

우선 레옹 블룸은 프랑스 알자스 출신의 유대인으로 사회주의자였던 정치가였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고 공화주의적 영향을 받은 프랑스인으로 여겼지만 동시에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도 갖고 있었습니다. 토니 주트는 블룸을 가리켜 “그가 프랑스에 그토록 충실했던 것은 그의 공화주의적 신념이 강고했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말합니다. 당시 유럽의 반유대주의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그의 삶이 무조건 평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사회주의자이긴 했지만 소비에트 혁명을 비롯한 공산주의와는 거리를 두었고 끝내는 유럽의 공산주의자들을 경멸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자의반 타의반 고립되었지만 고결하고 도덕적이고 이성을 갖고 있던 이 정치인은 세계주의적 입장에서 당시 정치적 판세를 다소 오판했는데, 특히 1943년 체코에 대한 히틀러의 교묘한 술책에 속아 넘어가 국내외적으로 비난을 받은바가 있습니다만 이것은 오로지 블룸 한 사람만의 책임은 아닙니다. 영국의 그 얼굴 두꺼운 총리 역시 히틀러를 오판했을 정도로 차라리 히틀러의 교묘하고 치밀한 언설을 끄집어 내야될 정도로 보입니다. 후에 패탱과 비시 정권에 대한 논쟁으로 인신 모욕까지 감내해야 했으나 그는 프랑스 전체를 위해 일했고 공화주의적 신념을 평생 지니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주트의 말마따나 그를 유대인이라는 인종적 편견으로 평가하는 것은 공화주의를 모욕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1944년 이후 히틀러에 의해 분열된 프랑스와 프랑스 지식인 계층은 그들이 레지스탕스와 나치로 분리지지 하여 시대의 난맥상이 어떠했는지 가감없이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레옹 블룸의 삶을 통해서 말이죠. 여기서 약간의 논외로 히틀러 정권을 지지한 비시 정권에 의해 프랑스 내에 유대인들에 대한 강제 인솔이 이뤄졌다고 글에 나오고 있는데요. 이런 문제 때문에 과거 발터 벤야민이 자의와 상관없이 스페인과의 국경지대까지 몰리게 된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찌됐든 이 문제는 어떻게 마무리가 되었는지 실로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프랑스를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로 알려져 있는 알베르 카뮈는 토니 주트의 표현대로 세 번이나 ‘유배되었던’ 알자스 이민자 출신의 아버지와 마요르카섬 이민자의 후손인 어머니에서 태어나 일생을 ‘뿌리없는 세계주의자’로 살았습니다. 토니 주트는 훗날 카뮈가 사르트르와의 논쟁에서 엄청난 상처를 받게 되는 연유를 ‘학력의 증표가 부족한’ 카뮈가 반대로 거의 완벽했던 ‘맹렬한 실존주의자’ 장 폴 사르트르에게 인간적이고 또한 작품의 본질이 더럽혀지는 것과 같은 치욕을 받게 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더불어 주트는 이 점에 대해서 “카뮈 스스로가 특히 끊을 수 없는 알제리에 대한 끈과 마찬가지로 사랑했던 프랑스 사이에서 대중들과 지식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했으며, 또한 좌와 우에서 혹은 양극단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았고, 여기에 자신의 작품 성과를 사르트르에게 부정당하기까지 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카뮈 스스로가 냉철하고 완벽한 이성을 보유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으므로 더욱이 정규 과정을 거친 다른 프랑스 엘리트 지식인들에 비해 항상 학력의 결핍을 안고 있었으므로 그의 내면의 양심이 어떠했을지는 감히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교통사고로 죽기전인 프랑스가 저지른 알제리 사태에 대해 그가 프랑스의 편을 들지 않게 되자, 그에 대한 지식인들의 분노와 비난은 맹렬했습니다. 후에 알제리인 포로들에 대한 프랑스 군의 고문이 드러나면서 프랑스 지식인들의 이중 잣대는 실로 역겨울 정도가 되었는데요. 뿐만 아니라 프랑스 군이 자행한 알제리인들에 대한 학살이 근래 계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주트는 이런 카뮈를 향해 “시끄럽고 분노가 판쳤던 파리의 공인세계에서 일찌감치 멀찍이 떨어지고 싶어하는 성향을 드러냈다”고 말합니다. 진리를 사심없이 성찰하는 사람이 되었던 카뮈는 말년에 모럴리스트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카뮈에게 중대한 문제는 도덕과 정치 가운데 어떻게 선택할지 하는 게 아니었다. 도덕적 참여를 통해서 어떻게 버려낼까 하는 것이었다”고 이 글은 밝혀내고 있습니다.

최근까지 프랑스 학계에서 큰 존경을 받고 있는 레몽 아롱은 주트의 표현대로 ‘이상주의적 열망을 버리고’ 현실주의적 인생을 살다간 인물이라 평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 전쟁에 대한 묘한 이상주의적 분위기를 감지한 아롱은 후에 E. H. 카가 평가한대로 “전쟁에 대한 이상주의적 관점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불러일으켰는지” 이미 깨닫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알제리에 대한 프랑스의 전쟁이 사실상 프랑스에게 별로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아롱의 관점은 바로 그가 얼마나 현실주의자인지 깨닫게 합니다. 그는 어린 시절 쓴 꽤 독특한 철학적 논저로 명성을 얻기 시작해 당시에는 사르트르에 버금가는 명성을 얻은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물론 그도 마치 손쉽게 찍어내는 듯한 사르트르의 일관된 글쓰기에 질투를 느끼기도 했다고 주트는 소개하고 있습니다만 레몽 아롱 역시 비범한 지식인임에는 분명해 보였습니다. 1949년 이후 서유럽에 냉전의 그림자가 드리우자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이 집단 안보에 나서는 것이 단순히 군사적인게 아니라 정치적이고 심리적인 행보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전후 유럽 정치를 정확하게 본 인물로 유명했는데요. 자유주의와 시장의 문제가 민주주의의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잠정적으로 에견한다든지 국제 관계에서 이론적 현실주의에 몰입하는 것 또한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바탕에 있는 그의 신념은 “사회과학자 (지식인)의 과제는 과거나 현재에 벌어진 사회적 과정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지식인은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언제나 직시하고 선택해야 한다”고 일종의 지식인의 명제로 밝힌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당시 프랑스 사회학계를 뒤흔든 뒤르켐주의와는 궤를 달리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개인적으로 아롱과 가브리엘 타르드는 비슷한 관점을 견지한 것이 아닌가 추측을 해보기도 하였습니다.

비슷한 시대를 살다간 쥘리앙 방다 역시 지식인들의 종잡을 수 없는 ‘무리(떼)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바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지식인들의 무분별한 행태가 대중과 일반 시민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도 있기에 그러한 지식인들 자체가 사회의 해악이라고 여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 세 사람을 통해 주트가 소개하고 있는 1930년부터 1950년을 넘은 냉전시기까지 프랑스의 지식인 사회가 어떠한 굴곡을 갖고 있었는지 가감없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위 지식인의 양심이라는 것이 허황된 신념과 왜곡된 가치에 전도되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프랑스의 비시 정권과 무모한 알제리 전쟁, 이집트 수에즈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개임 등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불완전하고 불확실성을 갖고 있는 인간들이 사회와 국가를 형성하고 그러한 바탕의 세계는 복잡하다는 일련의 전개는 실로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세계의 지식인들의 책무는 과연 무엇일지 이들 모두가 냉정하게 살펴보는 기회로 이 책을 반면 교사 삼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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