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사워드 지음, 강정인.이석희 옮김 / 까치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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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출신의 ‘정치이론가’이자 정치학자인 마이클 사워드는 영국 코벤트리에 소재하고 있는 워릭 대학의 정치학 교수이기도 합니다. 그는 또한 시드니 민주주의 네트워크 (The Sydney Democracy Network)의 회원으로 활동중인데요. 그의 주요 관심 분야는 오늘날 민감한 정치적 변화 시기의 여러 핵심적 이론들을 연구하고, 어떻게 현실에서 작용되어 왔는지에 대한 포괄적 연구들입니다. 구글 검색을 통해서 호주에서는 꽤 유명한 정치학자로 인정 받는 것을 대충 알 수 있었는데요. 아마도 현실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언론과 여러 저작을 통해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이 책도 그러한 연장선상에 있는 놀라운 학문적 작업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생각했습니다. 원제는 ‘Democracy’로 지난 2003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까치에서 2018년에 번역 출판을 맡았습니다.

우선 마이클 사워드는 자신의 이 글을 통해 밝히고자 하는 두 가지 논점이 있는데요. ‘첫번째는, 과연 평범한 사람들의 정치참여는 중요한가. 두번째로는, 오늘날 전세계의 경제적 불평등과 만연한 환경 문제를 민주주의가 해결할 수 있는가’ 입니다. 이 두 가지 주제 내지는 의문을 갖고 전반적인 민주주의의 형태, 성격, 기원, 의의 등을 논리적으로 규명해 나가고 있습니다. 1장에서는 1999년 10월 파키스탄의 페르베즈 마샤라프 장군이 주도한 쿠데타와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플로리다 개표 상황, EU 체제와 유로화 가입에 대한 영국의 민주주의 캠페인 이 3가지를 ‘과연 각각의 국민 국가들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와 그 본질성을 살펴보고, 2장은 미헬스를 거쳐 조지프 슘페터의 ‘슘페터식 민주주의’를 고찰하고 3장은 앞선 슘페터식 민주주의를 비판과 함께 이론적 대안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4장은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가 직면한 몇가지 도전들에 대해 살펴보고, 5장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떠한 길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정치철학의 이론과 현실정치의 여러 고민들을 틈새에서 몇가지 방법을 모색해보는 것으로 마지막 약간의 결론을 통해 글이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저자는 민주주의 이념이나 가치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기 보다는 일종의 역사적 혹은 이론적 서술 (naration)을 통해 텍스트적인 상호접근식 방법의 형태로 일관되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즉, 1차대전 당시 ‘인류 문명의 파괴’에 따른 민주주의적 회의와 그에 따른 미헬스의 입장들, 뒤이어 2차대전을 치루고 이후에 등장한 조지프 슘페터의 소위 민주주의에 있어서 ‘정치과학적’ 이론 소개하고 각각의 주장을 또 다른 여러 정치학자들의 주장과 이론으로 비교하는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자 자신은 꽤 관찰자의 시선으로 민주주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증되는 곳곳에 저자의 인식이 또 보여지기도 합니다. 우선 미헬스는 그의 정당론에서 “민주주의는 과두제로 이르게 되며, 필연적으로 과두제적인 중핵을 포함한다”고 전제하며 조지프 슘페터도 동의한대로 ‘엘리트에 의한 관료지배’를 안정적인 선택으로 지지한 바가 있습니다. 또한 슘페터 역시 “유권자들의 역할이란 정부를 산출하는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명백하게 단정하고 있는데요. 정치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현실주의적 정치 이론’라 여겨지지만 미헬스와 슘페터는 ‘이 현실적인 한계’를 매우 중요하게 파악했지만 동시에 정치 일반을 소급적인 수단화에 이르게 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조금 더 달리 말하면 ‘민주주의 내에서 엘리트 지배 체제에 대한 이론적 근거’가 이를 추종하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 알게 모르게 되어 왔다는 점에서 국민국가에서 다수의 국민들을 단순한 권력의 위임자로 국한시켜 해석한 부분은 분명 동의하기 힘들기도 합니다.

이 엘리트 지배 체제에 대한 당위성이 민주주의 자체가 ‘민중 권력의 가시적 형태’라는 측면의 이해와 ‘오늘날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이해 관계와 정치적 상황을 과연 대중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와 관련해 앤서니 다운스가 옹호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정치체제의 인식으로 변화되어 왔습니다. 더불어 ‘민주주의를 헐뜯고자 하는 사람들의 범주’가 사라지지 않은 것도 앞선 사례들과 거의 비슷해 보입니다. 저자는 이 민주주의를 헐뜯고자 하는 범주의 사람들이 작다고 평가하지만 저는 이것에 동의하기 힘들었습니다. 예전에 태국의 변호사와 의사들을 비롯한 엘리트들이 농민이나 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투표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크 랑시에르도 진단했던 바와 같이 오늘날 과두제의 위협은 지대한 것입니다. 에릭 홉스봄도 처칠과 같이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비관론을 견지했던 바가 있는데요. 이러한 소위 ‘정치과학자들’은 “평등주의적 열망은 망상”이며, “제어하기 힘든 민중적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소위 상위 계층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엘리트 지배 정치가 모순인 것은 “평범한 남성과 여성 대다수에 대한 깊은 불신”이 지배하는 것으로 저자 역시 이 점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로버트 달과 벤자민 바버가 천착했던 다원주의와 참여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수단만이 이러한 ‘엘리트 지배 체제’로 획일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저 역시 믿고 있습니다. 물론 포퓰리즘과 반지성주의와는 아주 면밀하게 구분되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겠죠.

18세기 말 공화주의 시기의 루소는 그의 일반의지로서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을 포괄하고 그들 모두가 참여해서 만들어내는 공동선에 대한 개념”을 주창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가치는 충분히 공감할 만하며, 특히 “자유주의가 불안정과 불안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정기적인 공동체주의의 교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설득적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많은 학자들의 의구심을 갖고 있는 ‘대중권력’에 대한 대안으로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진단하는 ‘숙의 민주주의’가 좋은 해결책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각 국가들이 지구화 과정에 놓여 있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소수에 대한 부의 집중과 경제적 불평등에 이르고 있어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상호 불균형적인 관계로 발생하는 문제들의 그 근본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로버트 달이 주장했던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해 보이지만, 이제는 국가 단위의 권력 규모를 보이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과 정치 권력이 영합해 나가고 있는 거대한 경제 주체들의 영향에서 전통주의적인 민주주의를 지속해 나갈 수 있을지는 사실상 시민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런 권력이 재편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선언적인 의미로서 국한될 수 있다는 점은 바로 이 우려의 본질이라고 불릴만합니다.

글의 결말에서 보이는 대로 저자는 모두에게 각자가 인식하는 민주주의는 다르다고 설명합니다. 민주주의를 정확히 규정하는 것은 거의 딜레마에 가깝지만, 각각의 시민들이 집중하는 서로 다른 민주주의 가치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민주주의는 스스로 존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도 있겠죠. 전세계의 심각한 환경 오염과 이것의 피해는 세계의 국제정치가 민주주의적 메커니즘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반증은 꽤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중국 학자 엔쉐퉁이 현재 세계는 “민주주의적 과잉의 시대”라고 말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도 실상은 세계의 민주주의가 ‘공표’되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현실의 민주주의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그것이 어떻게 기반하고 있는지 이 책은 꽤 면밀하고 상세히 잘 보여주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더 많은 민주주의와 연관된 ‘급진 민주주의’에 대한 저자의 판단이 약간 애매하긴 하지만 딱히 책을 잡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끝으로 로버트 달의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에서 언급된 다두제(일종의 다원주의적 정치체제)의 핵심 조건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1. 선출직 공직자들
2.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3. 포괄적인 선거권
4. (누구나) 공직에 출마할 권리
5. 표현의 자유
6. 대안적인 정보
7. 결사의 자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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