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현기증 - 소셜미디어 속에서 길을 잃은 현대인
앤드루 킨 지음, 진달용.전준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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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런 러니어, 니콜라스 카와 함께 네트워크 및 소셜미디어, 인터넷 미디어, 인터넷 생태계와 관련해 요즘 많이 인용되고 또한 여러 매체에 조언을 해오고 있는 앤드루 킨의 일종의 디스토피아적인 네트워크 시대를 진단한 이 책 ‘디지털 현기증’을 일독했습니다. 킨의 번역 출판은 이번이 두번째인데요. 2010년에 국내에 출간된 ‘인터넷 원숭이들의 세상-구글, 유튜브, 위키피디아’가 큰 반향을 일으킨 바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앤드루 킨은 네트워크와 소셜미디어를 통칭한 뉴미디어 시대와 관련하여 재런 러니어와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느껴졌는데요. 이 점은 뒤에서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킨의 간단한 약력은 영국 런던 대학과 미국의 버클리 대학을 거쳐 실리콘 벨리의 기업가로 또한 CNN을 비롯한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고 현재는 TV쇼 킨온의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Digital Vertigo’ 로 2012년에 출간된 것을 국내에는 지난 2016년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앞서 잠깐 설명해 드린대로 저자인 앤드루 킨은 오늘날 소셜미디어 시대와 관련하여 비판적이고 비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자신의 입장을 위해 제러미 벤담과 파놉티콘, 조지 오웰의 1984 등을 자주 인용하고 있는데요. 특히 제러미 벤담과 관련해서는 약간의 희화화와 익히 알려지긴 했지만 그의 파놉티콘을 현대의 면밀한 감옥으로 재탄생시켜 해석해 자신의 논리를 강화시키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데요. 물론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을겁니다. 더불어 역자는 글의 초입에서 킨의 글이 충분히 공감이 가지만 논리의 과장도 분명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페이스북의 CEO인 마크 저커버그와 같은 기업인의 인터뷰 발언이나 기사 등을 곳곳에 인용하고 있는데요. 자신의 논증 과정을 인터뷰와 발언 등으로 보강하는 것은 충분히 공감은 되나 이것을 이를테면 네트워크 시대 전반적인 상황의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이해시키려고 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무리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날 킨의 해석대로라면 이 소셜미디어로 비롯되는 뉴 미디어 시대를 ‘과잉가시성’이라는 용어로 규정하는 것인데요. 이것은 심각한 노출증과 빠르게 유입되고 빠르게 지나가면서도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집착을 결코 놓지 못하는 혹은 자제하지 못하는 모든 세태를 꼬집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21세기에 과연 소셜미디어가 국가를 대신해 개인의 정체성의 구원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은 적지 않을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개인의 행복과 관련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는 군중 속에서 홀로 분리되어 있는 인간의 외로움”이라고 저자는 그 상반된 면을 지적하면서도 “인간은 본디 홀로 있을 시간이 있어야만 한다”고 동시에 주장하는 것은 아이러니 하기도 합니다. 저는 인간의 행복이란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충분한 자기결정권을 갖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소셜미디어와 수많은 웹들이 과연 그 연결성 만으로 우리의 나은 삶과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있을지는 저역시 크게 회의적입니다. 거대한 나르시시즘적 창궐의 시대에 과연 진정성이라는 것이 존재할 지는 여러분도 인식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또한 이 점을 바탕으로 킨은 네트워크 시대의 지성, 네트워크 지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는 꽤 산만한 서술로 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아주 간략한 이해는 “중동 사회에서 소셜미디어가 민주주의 정부의 수립에 얼마나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인지는 아직도 분명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물론 위의 과정을 면밀히 관찰하고 수집한 마누엘 카스텔과는 비교할바는 아닙니다만 분명 시대착오적인 독재자와 독재정권을 제거하는데 민중들의 역할과 이들을 광장에 모이게 한 수많은 휴대폰과 연결성을 너무 과소 평가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아마도 과잉가시성과 소셜미디어로 연결된 전지구의 수많은 사람들이 벌이는 나르시시즘에 저자는 치를 떨고 있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위키피디아를 비롯한 ‘집단지성’이 우리의 민주주의에 어떠한 희망이 될지 기대하고 있는 많은 학자들을 도외시하는 경우라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양가적 측면이라고 도식적으로 말하기 보다는 분명 희망적인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페이스북과 트위터닷컴을 비롯한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수많은 회원들의 빅 데이터로 말미암아 막대한 기업 가치를 불리고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대중들의 현실 기피는 심각한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소셜미디어가 자발적 참여의 공간이 아니라 우리를 영속적인 가입자 신분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주장이나, “우리가 소셜미디어의 상품이 되어가고 있는 형국”으로 보는 시각도 위의 인식과 동일선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조로프의 법칙처럼, 소셜미디어가 민주화되지 않은 이란, 시리아, 중국과 같은 국가들에서 비밀 경찰들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주장은 소셜미디어의 극명한 어두운 부분을 드러내는 것인데요. 반대로 미국의 CIA가 이제는 미행을 붙이거나 도청을 하지 않더라도 이 ‘나르시시즘 시대’에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올린 개인 정보들을 살짝 보기만 해도 위치정보를 비롯한 갖가지 정보를 취합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른 것은 또한 괴상할 정도로 획기적인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따라서 앤드루 킨의 결론은 이러한 소셜미디어의 이행화가 “고독하고 분열적인 개개인이 모인 군중시대”로 귀결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그와 같은 변형된 제러미 벤담의 ‘사회적 효율성과 중앙계획이 변조된 방식’을 비판하면서, 사회적 파편화에 대해서도 경고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고 있습니다. 몇가지 대안으로 존 스튜어트 밀의 점진적인 디지털 자유론을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크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 시대의 문제 의식은 공감할 만하나 이를 위한 논증이 매우 산만하고 꽤 감정적이기까지 해서 개인적으로는 일독 후에 큰 아쉬움이 남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전문적인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은 아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약간의 비관의 태도로 우리의 세태와 이용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는 것은 충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우리 개인의 정체성이 완성되고 완벽하며 종결된 총체적인 모습으로 통합된 부분들의 조직적 결합이 아니라 사실 계속 움직이고 변화하며 불완전한 무엇보다도 최종 상태가 아니라 언제나 새로 시작하는 어떤 것이라 불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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