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희망의 네트워크 - 인터넷 시대의 사회운동 분노와 희망의 네트워크 (반양장본)
마누엘 카스텔 지음, 김양욱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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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의 교수이며 커뮤니케이션학, 사회학, 세계화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세계적 석학 마누엘 카스텔은 위키피디아가 밝힌 사회과학인용색인의 2000-2014년 조사에서 사회과학 학자 중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이 인용되었다고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커뮤니케이션 연구와 관련해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권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마누엘 카스텔 교수에 대해 언급하고 싶은 것은 최근 번역된 ‘개인주의 신화’의 피터 칼레로 교수와 비슷하게 꽤 사회참여적인 지식인이라는 점입니다. 이것과 관련해 이 글의 5장 스페인 인디그나다스와 관련해 이 네트워크 운동에 직접 참여한 경험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또한 서문에서도 사회학자가 조금이라도 사회에 유익한 기여를 해야한다는 취지로 이 책의 목적과 학문의 태도를 밝히고 있습니다. 거의 1세기 전에 프랑스 철학자인 쥘리앙 방다는 지식인들을 혹독하게 비판한 바가 있는데요. 오늘날 경제학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학자들이 여러 권력에 기대어 있는 것으로 봤을 때 카스텔 교수의 학문과 현실참여의 태도는 꽤 존경 받을 만하다고 여겨집니다. 이 책은 그에게 많은 명성을 가져다 준 ‘네트워크 사회’에 대한 사회적 후술과도 같은 성격이라 보여집니다. 원제는 ‘Networks of Outrage and Hope’이고 초판은 2012년에 이후 개정판은 2015년에 출간되었습니다. 국내 번역된 판은 2015년 개정판을 베이스로 하고 있습니다.

우선 본격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카스텔 교수가 밝히는 네트워크혹은 네트워크 시대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그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와 인터넷을 비롯한 컴퓨터 관계망을 대체적으로 민주주의의 기회라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한 세계적 실례로 튀니지, 이집트, 스페인, 미국의 월스트리트 에서의 네트워크가 기본이 된 시민들의 ‘직접 민주주의적 참여 운동’을 새로운 변화된 모습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나타난 이 네트워크 시대의 미래와 이상적 형태에 대한 충고와 당위성 등을 또한 밝히고 있습니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의 중동 민주화 운동을 설명하면서 카스텔 교수는 한가지 필요한 전제 조건을 말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권력은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이 당시 권위주의적이고 부패한 권력과 정부에 대해 촉발된 튀니지와 이집트의 민주화 요구에는 이러한 권력을 두려워하는 감정을 뛰어넘는 각 개인들의 ‘분노’가 이것을 극복하는데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분노들은 전인구의 40%가 빈곤층이라는 이집트인들의 분노, 한 젊은 노점상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촉발된 튀니지인들의 분노가 그러합니다. 다만 이러한 시민들의 분노가 폭력적인 상태로 나아가지 않고 국가와 사회의 변혁의 요구,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욕구, 권력 기관의 부패와 탄압의 종식을 수많은 개인 네트워크를 이용해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그동안 역사에서 보여왔던 시민혁명과는 다른 형태였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집트 군부에 현금 지원을 하면서 현상 유지에 힘썼던 미국이 뒤에 있었고, 이는 이집트-이스라엘의 우호 관계를 압박하면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중동 지역의 안보와 질서를 위해 관여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중동에 있는 이슬람인들이 미국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와 같은 비정상적이고 비민주적인 권위주의 정부를 자신들의 이익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직간접적으로 지원해 왔다는 부분입니다. 사실 외교와 국제관계에서 이상주의를 주입하는 것은 다소 의미없는 일이나 문제는 이러한 미국의 이중적 태도(자신들은 민주주의를 신봉하면서, 비민주주의 정부나 권력을 지원하는 행태)가 현지인들의 불만을 초래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뒤이어 스페인의 광장 점거 운동인 ‘인디그나다스’의 요인은 스페인 국내의 살인적인 실업률과 PIIGS 로 지칭되는 경제적 구조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국가들의 사회경제적 불안입니다. 스페인이 바로 이에 속하고 있는데요. 더불어 자신들의 유사 민주주의 상태를 진정한 민주주의로 변화시키는 것으로 요구되고 있는데요. 특히 스페인과 미국의 사례는 “전 세계 시민 대부분에게 직업 정치인 집단은, 투표하고 보수를 주는 민중을 대변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들의 기득권에만 신경 쓰는 듯한 계급으로 인식된다”는 저자의 해석과 궤를 같이 합니다. 경제 엘리트들의 금권과 적극적으로 융합해 변질된 정치 엘리트들 그리고 한나 아렌트의 나레이션과 흡사한 “형식만 새로운 대의 민주주의와 삶의 의미가 없는 경제적 합리성만 남은 꼴”이라는 비판은 이러한 세계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실한 희망을 갖고 기대한 전임 대통령 오바마의 무능으로 직접적으로 도덕적 해이에 빠진 경제 엘리트들과 시스템에 대항한 시민 운동인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도 앞선 이유가 강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중동과 스페인을 거쳐 미국에 도달한 이 시민들의 현실 참여 운동은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정치적 지도부가 없는’ 순수한 직접 민주주의의 형태인데요. 마누엘 카스텔 교수도 이렇게 달리 어떤 지도부가 없이 시민들 각자가 끊임없이 토론하고 협의하는 민주적 에너지에 큰 감명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브라질과 미국의 사례에서 일반적인 정치 지도자 및 정치 엘리트들은 이러한 시민들의 참여 운동을 꽤 불신하는 것으로 나오고 자신들이 배제된 정치적 흐름이 문제라고 보는 듯 합니다. 이 네트워크의 시민 참여는 진정 정치적일 수 밖에 없고, 자신들의 요구를 정부와 권력에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민주주의 본연의 정치적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일전에 루소는 공화주의에서 시민은 정부를 갈아치울 권리를 갖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지요.

끝으로 중동에서 촉발된 쟈스민 혁명은 이집트에서의 잠정적 실패, 시리아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관리가 지역 전체의 민주화를 가로막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에 대한 프랑스의 적극적인 개입이 중동 유일의 동맹을 잃을 수도 있다는 푸틴의 우려를 불러일으켰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보호자를 자처한 이란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중국의 행태도 비슷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슬람교에 의한 샤리와와 같은 속세에 대한 개입과 아직도 견고한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 체제의 정권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아프리카-중동 지역은 아직도 갈길이 요원한 것 같습니다. 그 외 서구와 민주주의 국가들에게서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는 다소 희망적으로 느껴집니다. 여기에서 관건은 중국과 같은 거대 네트워크 규제 정부나 온라인이나 공공 장소에서 시민들의 정치 토론을 금지한 베트남과 같은 선례들을 정치인들이나 정치엘리트들이 왜곡 이용하지 못하도록 시민들이 끊임없이 견제하는 것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선 민주 정부에서는 앞선 두 개의 사례가 큰 문제는 되지 않습니다만 카스텔 교수도 우려하고 있듯이 이 시민 참여 운동이 반대의 기득권적인 권위주의 정부의 강경 진압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은 ‘권력의 두려움’이 어떤 것인지 잘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고도화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은 샹탈 무페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비슷해 보입니다. 과연 우리가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대에 들어섰는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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