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과 의심의 정치학
마이클 오크쇼트 지음, 박동천 옮김 / 모티브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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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출신으로 영미 학계에 전후시기 위대한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는 마이클 오크쇼트는 캠브리지와 런던정경대에서 강의하고 특히 헤겔의 관념론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사상가이자 학자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는 냉전시기의 당시 영국 대처 정부와도 거리를 둘 만큼 현실 정치와는 거리가 있었는데요. 이 ‘신념과 의심의 정치학’이라는 일종의 정치철학적 논저 역시 그의 이러한 사상적 본질과 궤를 같이 하는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정치철학적 주제와 질문들이 ‘권력은 과연 누가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쓰여져야 하는가’와 유사한 일종의 인간 본연의 정치 사상을 다루는 것이라 생각되는데요. 사후 발견된 이 글의 논고가 출판이 되지 않고 지인들의 손에 의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어쩌면 그의 고민을 짐작할 만합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Politics Of Faith And The Politics of Scepticism’으로 1996년 출판되었고, 국내에는 지난 2015년에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우선 책 제목과 동일하게 오크쇼트는 ‘신념의 정치학’과 ‘의심의 정치학’을 철학적이고 도덕적인 접근으로 해석해 양자를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독자들은 이 두 주제가 다소 대립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는데요. 논증이 이어지는 책 중반부에 “의심 정치를 단순히 신념 정치의 반대로만 보는 것은 불완전한 이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럼 먼저 신념 정치 혹은 신념의 정치학의 태동은 아마도 12세기 중반 십자군 전쟁이 별 소득 없이 종료 되고 난 이후의 근대 유럽의 태동이 시작되었던 시점부터 15세기 말 16세기에 이르는 기간에 유럽 각국의 정부들은 신민들의 활동과 운명을 통제할 권력을 획득해 나간 시기로 저자는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단어들 중 가장 빈도수가 높은 것이 ‘모호성’과 ‘다스림’입니다. 전자의 모호성은 정치철학을 넘어 인간 본질의 근원, 사물의 이치 등이 단순한 어휘로 설명되는 것은 어려운 부분이며, 동시에 정치에 있어서도 이 모호성이 행위와 이념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존재해 왔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아마도 오크쇼트가 헤겔의 관념철학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요. 저의 이러한 해석을 차치하더라도 정치의 본질이 다소 모호하게 나타나는 것은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다스림’과 관련해서도 오크쇼트는 권력에 대한 주권의 개념 및 앞선 신민들에 대한 통제력과 관련하여 이 다스림을 해석하고 있고, 전반적으로 통제, 개입, 조절 등의 의미들과 맞닿은 이해를 보이고 있습니다. 즉 이러한 논증 과정에서 ‘신념의 정치학’은 일종의 인간 완성의 형태로 정치를 바라보는 듯 하며, 행위자와 피행위자와의 경계라든지 일반적인 정치적 이념에 대한 뚜렷한 정의를 내세워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인간 완성의 형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어떠한 높은 가치 등으로 이 신념의 정치학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이를테면 프랜시스 베이컨을 이 관념의 사도이자 생부로 이해시키고 있습니다.

‘의심의 정치학’은 도덕적 회의주의를 기반으로 루소의 공화주의가 태동하는 시기 이전부터 오늘날 대의적 정부들의 견제, 분립, 대응 등의 가치관과 공유하는 형태의 정치로 나타납니다. 정치를 명백히 회의적인 것으로 인식했던 홉스와 스피노자를 필두로 앞선 베이컨의 대항마로 존 로크를 대칭시키고 있습니다. “도덕적 승인이나 거부는 정부의 직무에 속하지 않는다”는 보편적 대의에서 의심의 정치학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명백하게 보입니다. “올바르다고 간주되는 단일한 행동 유형을 신민에게 강요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라고 여기는 발상을 중세적 사고”라고 밝히는 부분에서도 의심의 정치학의 단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앞선 신념의 정치학이 종교적인 부분과도 연관이 있다면 이 의심의 정치학은 종교적 및 도덕적인 가치에는 일정 부분 선을 긋고 있습니다. 더욱이 기계적 장치와 유사하게 권력 분립 또한 전체를 지탱하는 부속으로 여기는 등 의심의 정치 자체는 꽤 억측과 이상적이고 낙관적인 현실을 배제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배제라기 보다는 객관성을 제일의 가치로 해석한다고 봐야하겠죠. 즉 기계 공장의 필수적인 부품들이 전체적인 균형과 운동성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법치주의라든지, 분립, 시민, 정부 등을 하나의 균일한 정치적 부속으로 바라보는 것이 이 의심의 정치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오크쇼트는 이 신념의 정치학과 의심의 정치학 모두 자기 파괴적 속성을 갖고 있으며, 의심의 정치학은 신념의 정치학과는 달리 그 파괴성이 명백하지는 않지만 자기 파괴를 네메시스로 치환시키고 이들중 하나만이 홀로 득세하는 것이 양가적인 측면에서도 좋지 못하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회의적 스타일의 정치학은 결코 무정부주의가 아니라는 측면에서 이 의심의 정치학이 신념의 정치학과 다른 점이라고 전제합니다. 결국 이 양자의 정치학은 서로 꽤 합리적으로 균형있게 존재해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겠는데요. 저자가 이 합리성을 생전에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결론에 이르러 밝히고 있는 ‘균형자’의 개념은 실로 절묘하다고 여겨집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정치철학 및 정치학에서 이 ‘균형자’의 개념은 쓸모가 많을 것으로 파악되는데요. 플라톤의 중용을 기반으로 ‘지식과 판단을 갈구하는’ 이 균형자들의 범람이 시민 사회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사회 전반에 ‘논쟁은 있지만 증오는 없는’ 실용적인 가치를 추구하는데 조력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의심의 정치학에서도 다루는 관행의 면모를 어떤 식으로 일신해야 될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며 신념과 의심, 양자의 가치를 어떻게 균형적으로 이뤄 나갈지에 대한 현실적인 방안이 모색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이 글을 전부 일독하고 나서 찬찬히 오크쇼트의 일생을 설명한 기록들을 웹에서 검색해 보았는데요. 한때 노동당 정부를 비판한 것이나 대처 정부와 거리를 두고 라스키의 후임으로 런던정경대에 임용된 것으로 봐도 그의 사상적 삶이 얼마나 치열했을까 잠시 가늠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글이 나오게 되었고, 자기 확신의 태도 보다는 좀 더 스스로에게 객관적이었던 것이 아닐까하는 추측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이 시대의 많은 정치인들이 이 책을 손에 쥐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로 해보게 되었습니다.

“정치에서 극단을 한번 껴안은 사람들은 오로지 극단의 정치만을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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