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는 불평등한가 - 탐욕스러운 1%가 99%의 삶을 파괴한다
척 콜린스 지음, 이상규 옮김 / 이상미디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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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척 콜린스는 미국 뉴 헴프셔 대학 출신으로 정책연구소(IPS)의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미국의 불평등과 부유한 개인들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연구를 지속해 온 전문가입니다. 검색으로 나오는 그의 논저들이 대부분 위의 주제들과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데요. 다만 국내에 이 책이 번역 출간되었을 때, 큰 호응을 받지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저도 역시 국내에 소개된 뒤 한참 뒤에서야 책을 손에 쥐게 되었네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나 논증이 꽤 단순하고 명료하고 글의 가독성도 나쁘지 않은데, 요즘 같은 거대한 불평등의 화두의 시기에 어떻게 관심을 끌지 못했는지 꽤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저의 사견입니다. 원제는 ‘99 To 1 : How Wealth Inequality Is Wrecking the World and What We Can Do about I’으로 2012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 소개된 연도도 마찬가지로 동일합니다.

이 책의 간략한 주제는 “부와 권력의 극심한 불평등은 민주주의 체제와 국민의 신뢰를 좀 먹는다”는 한줄의 문장으로 설명될 만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다소 과격한 논법으로 1% vs 99% 의 대결과 같은 계급투쟁을 암시한다는 주변의 평가를 담고 있습니다만 특별히 그것에 개의치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식으로든 부의 집중과 불평등 문제는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로서, 크게는 민주주의와 우리의 정치에 있어서 작게는 시민의 안정된 삶을 위해 그 당위성을 고취시키고 있습니다. 약간의 이 글의 장점은 막대한 부의 계층을 비판하는데 그치지 않고 몇가지 해결을 위한 상세한 대안들을 결론에 도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경제적인 측면의 대안을 위해 재건 은행을 만들다던가, 부유층의 자본소득세와 배당세 및 금융거래세 등을 부과해야 한다는 관점 등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대안들에 대해 마땅히 충분한 근거와 설득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만, 월스트리트를 당장 없애자와 같은 주장에는 개인적으로는 동의하기 힘들었습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미국 은행법이 지난 오바마 정부에 들어서 다소 규제책이 만들어지긴 했습니다만 더욱더 강력하게 일반 은행과 투자 은행의 분리를 확실히 하는 것으로 시작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저자는 미국 내에 만연된 불평등과 관련해 “미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역사적으로 불평등을 상당히 너그럽게 생각해 왔다”고 인식하면서, 국내적인 요건들에 대해서도 그렇고, “미국인들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세계적인 규칙 변화에 어떤 방식으로 협력했는지 살펴볼 책임”이 있다는 확대된 주장도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세계 경제를 조정해 온 미국 정부와 그것을 지지해 온 미국 시민들에 대한 일정한 책임론으로 이해 되었는데요. 충분히 공감을 가질만한 내용입니다.

우선 이 탐욕스러운 1%들에 대해 특히 민주주의적 과세주의에 반하는 조세피난처에 자산을 숨기는 광범위한 조세 포탈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들이 일종의 ‘게임 조작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경제적 힘과 정치적 힘을 전략적으로 사용한다’는 해석과 이를 통해 막대한 정치 자금을 정치권에 투입해 사실상 미국 의회를 자신들의 영향력 안에 두고 있다는 엄중한 현실 판단을 독자들에게 인식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과 관련하여 저자의 통찰력을 느끼는 동시에 근본적인 의문이 생기게 되었는데요. 그것은 부자들은 우익에 돈을 투입한다 라는 저자의 설명이었습니다. 단순히 부유층과 우익의 이해 관계가 일치한다고 봐야 하겠지만, 정말로 우익들은 장 지글러의 언급대로 정말 민주주의를 마뜩치 않아 하는 걸까요. 우리와 같은 많은 시민들은 “보다 더 평등하고 경제적으로 안정화 된 사회에서 살고 싶어 합니다”라는 평가는 부유층과 우익들의 이해와 정말 달리 하는 것인지, 그런식으로 이해 대립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어려운 부분입니다. 더군다나 여기에 언급되는 많은 최상위 부유층들은 자신들에 대한 부의 집중이 사회에 대한 공공선으로 실현될 것이라는 당위성을 갖고 있었는데 이 점이 이들의 명확한 가치 체계라면 정말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많은 경제학자들이나 부유층 및 기업인들이 결국 이제 와서 계급 투쟁을 하자는 것이냐고 볼멘 소리를 합니다만 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체제 자체를 정언으로 여기는 시민들에게는 당면한 심각한 불평등 문제가 다수의 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굳이 제레미 벤담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일찍이 토크빌 역시 이러한 관점을 초기 민주주의 역사에서 피력한 바가 있습니다. 더욱이 자유 시장주의자들이 신봉하는 애덤 스미스 조차도 노동자들이 시스템의 부품화가 되는 것에 큰 우려를 보였죠.

2008년 이후 미국의 기초 경제 기반은 중산층과 아프리카 계 가정들이 막대한 자산 상실을 시작으로 일반적인 부유층과 최상위 부유층에 대한 부의 집중으로 미국이 극심한 불평등의 시기에 놓여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저자는 비교 대상으로 북유럽 국가들의 ‘사회 이동성’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며 부의 재분배를 강조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의문은 과연 부자들이 주도하는 금권정치를 과연 어떻게 해소할 것이며, 이미 기울어진 부유층과 일반 시민들의 권력 격차를 또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지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이 먼저 다가왔습니다. 결론에 이르러 ‘우리의 연대’를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저자는 보고 있습니다만 이해 관계의 지배권을 되찾고 앞선 이들이 민주주의 체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해소시키는 등의 대안을 달성하는 것은 민주주의 가치를 믿는 많은 시민들의 행동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대략적으로는 ‘시민 연합 vs 기업의 힘’ 으로 구도가 그려지기도 합니다만 단순한 의미 부여라기보다, 정치적 불안을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부유층이라면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만연된 불평등 문제에 자신들도 손을 보태 개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 대책없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완전 무결성 먼저 내려놓고, 민주주의가 잘 굴러가야 시장 역시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는 인식을 가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글의 끝머리에서 깊이 고민해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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