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의 창조 - 인간다운 삶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마사 누스바움 지음, 한상연 옮김, 이양수 감수.해제 / 돌베개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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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 누스바움은 미국 뉴욕 출신으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철학자로 명성을 얻은 바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법학과 고전, 윤리학에 있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녀는 현재 하버드대와 브라운대를 거쳐 미국 시카고 대학의 석좌교수로 있으며, 특이한 점은 자신의 특출난 경험을 통해 유대학과 여성학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여성학 및 젠더학과 관련해서도 적지 않은 글을 출판했으며, 국내에도 그녀의 여러 저서가 번역 출판되어 있는데요. 이 책의 제목인 ‘역량의 창조’는 지난 2013년 출간된 것으로 원제는 ‘Creating Capabilities : The Human Development Approach’ 입니다. 국내에는 지난 2015년에 번역 출판 되었습니다.

책의 제목이자 글의 중요한 주제인 ‘역량 Capabilities’는 최종적으로 ‘인간 자유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라 규정하고, 이 자유의 영역은 아마도 정치적 자유주의적 개념으로 사람이 스스로 가장 인간답게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범위 내지는 가능성을 뜻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여기에 나와있는 ‘역량’의 측정과 역량의 증진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인도 출신의 아마티아 센과의 공동 작업으로 전체적인 개념과 이론이 탄생한 것으로 여기에 누스바움은 센과의 작업에서 ‘동물권’의 개념을 제외한 나머지에서 서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누스바움은 센과 달리 고유한 동물의 권리인 동물권을 인정하는 편입니다. 한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 내지는 국민이 그들 스스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를 설명하고 분석할 전반적인 지표로서, GDP 접근법이 오랫동안 학계를 포함해 정치권에서까지 통용되어 왔는데요. 누스바움은 이 GDP 접근법에 대해 발전경제학에서 말하는 외형적인 수준의 이 경제지표가 개개인의 시민의 삶의 수준과 만족도를 설명하기에는 이미 충분한 한계를 보여왔으며, “이러한 발전경제학으로 얻게 되는 수출 증대와 투자에 따른 이익이 우선적으로 엘리트와 기득권들에게 먼저 제공된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또한 그녀는 우리가 흔히 말해온 신자유주의 시대의 낙수 효과가 이와 다를바 없는 개념이라고 평가하면서 외부에는 ‘잠재능력’이라는 말로도 해석되는 이 ‘역량 접근법’을 앞선 새로운 해석의 수단으로 삼아 경제와 정치, 문화, 사회의 측면에서 유용한 도구로 다루고 있습니다.

즉, 여기에는 핵심적인 10대 역량이 있는데 그것은 생명, 신체건강, 신체보전, ‘감각,상상,사고’ , 감정, 실천이성, 관계 인간 이외의 종, 놀이, 환경 통제 등으로 열거하고 “위의 10대 항목을 모든 시민에게 최저 수준 이상으로 광범위하게 보장해줘야 한다”고 누스바움은 주장합니다. 단순하게만 보면 외적인 경제 성장의 지표인 GDP 접근법을 한 국가의 외형적인 자료가 그 국가의 시민들의 삶을 온전히 분석하고 측정하기란 어렵고, 역량 접근법을 포함해 중요한 점은 “각각의 삶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지표로 담아낼 수 있는가”에 대한 좀더 가까운 대답이라고 볼 수도 있어 보입니다. 저 역시도 전자인 GDP 접근법의 한계는 분명하다고 느끼고 있고 근래 읽었던 다이앤 코일의 ‘GDP 사용설명서’에서도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듯이 그 한계는 익히 명확해 보입니다.

다만, 누스바움은 남편으로부터 시작해 사회로부터 외면받아온 인도의 한 여성을 통해 이 역량 접근법을 새롭게 조명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오늘날 인도가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이긴 하지만 아직도 카스트 제도의 잔재가 너무나 뿌리깊게 남아있고 인도 국민의 최고의 가치인 힌두교에 따른 율법 체제로 인도가 범상한 민주주의 국가로 인식되는 것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인도 여성의 뿌리깊은 차별과 외면이 인도 민주주의 제도의 불완전한 완비 때문이 아니라 앞서 제가 설명한 바와 같이 전통적이라면 전통적이고, 비타협적인 관습법이 지배하는 현상황이 제거되지 않은 것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부분은 인도 정치권과 시민이 해결해야 되는 문제인데, 이걸 또 그녀가 말한대로 과거 영국 식민지 치하의 잔재로서만 해석하는 것도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사회계약론에 따른 사회보장의 의미로서 이 ‘역량’을 추적하고 공리주의를 비롯한 문화적인 상대성, 정치체제적인 차이 등의 다면적인 차원의 분석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꽤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이들 가운데 “공리주의 접근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계층이 극심한 고통을 겪더라도 대다수가 잘살면 국가 정책의 평균 효용이나 총효용은 높아질 수 있다고 보는 것”에 비판을 가하고 있고 이를 통해 복지와 사회보장과 관련된 무분별한 애매한 공리주의적 해석에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현실적으로도 매우 중요해 보였습니다. 더욱이 “핵심 역량과 국가의 기본 정치구조로서의 정부 사이에는 개념적인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과, “오늘날 비정부기구가 정직하고 효율적이고 현명하다 해도 민주주의를 웃도는 책임을 지지는 못한다는 것과 시민 전체가 아니라 시민 개개인을 위해 선을 증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은 복지와 최소한의 사회보장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이론적 근거로 인용될만하다고 여겨졌습니다.

끝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품위있는 사회라면 부의 추구를 목표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의 정치사회학이 미시로서도 거시로서도 많은 발전을 거듭해 왔음에도 사회보장과 사회안정장치와 관련해서는 개인의 자유의 침범 내지는 다른 사람의 권리 약탈로까지 배척당해 왔는데요. 우리가 이념적 구분으로 이러한 최소한의 안전 장치를 소모적인 논쟁으로 지금까지 이끌어 왔던 것을 많은 시민들이 자신 스스로의 삶을 위해 깊은 공감대를 확장시켜 나가야만 한다고 또한 누스바움의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국내에서 누스바움은 일부 남성들에 의해 협소한 여성학 내지는 페미니즘 운동가로 오역되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인식은 너무 성급하고 한정된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사회 정의와 인간다운 삶, 사회 보장과 같은 실제적인 시민들 삶의 증진에 높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점을 인지하고 이 글을 보신다면 앞선 주장들에 대해 큰 도움을 받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역량접근법은 무엇이 사회적 선인지 알려주는 포괄적 견해가 아니라 구체적인 권리에 관한 부분적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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