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이후 (반양장) - 제도와 전략적 억제 그리고 전후의 질서구축
G. 존 아이켄베리 지음, 강승훈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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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정치학과 국제관계론을 가르치고 있는 G. 존 아이켄베리는 미 국무부와 브루킹스 연구소를 거쳐 현재 로버트 코헤인과 함께 많은 인용과 관심을 받고 있는 국제정치학자입니다. 저는 아이켄베리를 과거 한스 모게소와 같은 비슷한 인식을 가진 학자로 이해하고 있는데요. 다만 약간 상이한 점은 모겐소와는 달리 아이켄베리는 국제환경과 국제정치에 대해 다소 자유주의적 시각에 따른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는 부분입니다. 마찬가지로 헨리 키신저와도 사뭇 비교되는 점이라 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이 ‘승리 이후’라는 글은 바로 제도와 타협을 통한 세력균형적 억제와 전후 질서를 만들기 위한 역사와 이론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인식하고 또 이러한 가치들이 세계 안정과 평화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는 것도 꽤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글 도입에 관련하여 아이켄베리가 논의하고 있는 여러 국제정치질서 즉, 세력균형과 패권, 입헌형태 등을 소개하고 최종적으로 전후질서에 대한 안정적인 요건을 구축해 특히, 제도적으로는 일종의 입헌주의적 형태로서 여기에 참여하는 국가들의 공통적인 합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정적으로 패권에 준하는 정치 주도국을 따라 포용 내지는 추종국들의 관계를 현실주의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적극적 이상주의의 모습과 같이 적절한 체계로 설명하고자 하는 아이켄베리의 의도가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비엔나 체제,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베르사유 체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테헤란과 얄타 회담에서의 전후 논의 및 냉전 종식 이후 세계의 체제 전환적 구축을 역사가 가미된 국제정치적 분석을 하고 있는데요. 이는 어떻게 하면 불협을 넘어 각국의 억제와 질서를 재정립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실질적인 방안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혼란한 전후의 질서를 정상적으로 바로잡기 위해 주도국의 역할과 그만의 행적들을 되짚어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유용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1.2차 양차대전 이후의 질서 구축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이해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는 점도 분명히 이 책의 장점입니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전 유럽의 질서와 관련하여 특히 오스트리아와 영국은 전쟁으로 종결될 것이 아니라 당시 나폴레옹을 통한 합의에 준하는 종식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역사는 그것과는 다르게 나폴레옹이 두 차례의 좌절을 겪고 나서야 소위 ‘구체제의 회귀’라는 비엔나 체제가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유럽 제일의 혹은 세계 제일의 패권국이었던 영국은 자신들이 유럽에 물리적인 군을 파견하면서까지 질서 구축에 나서기는 원하지 않았고, 다만 영국,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로이센에 이르는 동맹을 통해 이후 이들 국가의 야심과 욕망을 적절하게 제어하고 나폴레옹의 프랑스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노력을 영국 스스로 기울여 왔다고 서술합니다. 즉, 이것은 점차 드러나고 있던 러시아 황제의 팽창주의적 영토 야욕에 이르러 적절히 개입이 되었고 이어 프랑스가 이 4국 동맹에 참여함으로써 이 전제주의 동맹이 결과적으로 전후 질서에 불안전하지만 도움이 되었다고 아이켄베리는 다소 제한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후에 프랑스가 비스마르크에 굴욕을 당함으로써 이러한 체제는 그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1차대전 이후, 베르사유 체제는 “미국이 유럽에 제공하는 자산이 아니라 독일과 조기 단독강화를 맺을지 모른다는 유럽국가들의 우려”가 전제된 꽤 의심스런 질서 체제였습니다. 더욱이 우드로 윌슨의 그 끝도 모를 이상주의적 견해와 희망적인 에단은 전후 복구와 질서를 위해 영국을 비롯한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수동적인 합의는 이끌어 냈지만 윌슨의 세계연맹의 그림, 자결주의와 같은 당장 실현하기 힘든 정치적 입장이 결국 느슨한 질서 유지에 그쳐 후에 독일의 굴욕에 따른 파탄을 간접적으로 초래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윌슨은 스스로 “민주주의 세계혁명과 제도적 약속이행을 반드시 실현하겠다”는 다소 뜬금없는 이상주의적 태도와 목적을 갖고 있었고, 반대로 “유럽의 동맹국가들은 미국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새로운 정세를 인식했으며, 전후의 경제부흥을 촉진하고 유럽 대륙에서 대국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해 미국이 전후 유럽에 계속 관여할 것을 요구했으나” 이들의 희망대로 미국의 보증은 다소 애매했는데 그것의 전제 조건이 “강화에 참여하는 유럽 국가들이 민주주의와 주권재민의 원칙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차대전 이후 각국의 황제를 비롯한 전제정권이 강제로 붕괴하고 그 짧은 시기에 민주주의적 국가체제를 이행하기란 사실상 힘들었습니다. 특히나 동유럽 부근은 민족자결적 원칙에 따라 “민족국가들”로 쪼개져 이들 신생국가들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우드로 윌슨이 주도하는 유럽 질서는 마찬가지로 한계가 명백했습니다

1차대전 이후의 전후체제가 교훈이 되었는지 2차대전 이후 처칠의 영국은 미국의 직접적인 유럽에 대한 지속적 개입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처칠과 루즈벨트의 커넥션은 대체로 견고했고, 독일을 무장해제 시킨 후에 서유럽 전체에 대한 제도적 질서에 영국이 대체로 동의함으로써 ‘대서양 헌장’과 같은 전제 조건이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칠은 영국의 제국주의적 질서에 미련을 갖고 있었습니다만 미국의 계획은 전후 질서가 민주주의적 입헌 질서에 따른 체계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처칠이 총선에서 패배하지 않고 퇴장하지 않았더라도 이러한 처칠의 숨겨진 희망은 아마도 달성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미국-(부분적인) 서유럽 관계의 대서양 동맹이 후에 NATO로 연결되었고 전후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영미 양국의 협력은 긍정적이었습니다.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은 색다른 전후구축을 탄생시켰는데 최종적으로 소련과의 냉전에 따른 봉쇄질서와 세력균형과 핵억지, 정치 및 이데올로기의 경쟁이 수반되는 혼재 양상의 체제였습니다. 이 2차대전 이후의 구축 체제는 미국과 서유럽을 경제 및 군사로서 잠정적인 하나로 묶고, 미국이 세계 패권국으로서 원만한 민주주의적 추종국들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세계 시스템의 기초를 마련한 것이 큰 기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켄베리도 인정하듯이 미국 스스로 패권에 의한 강요를 서유럽 동맹국에 가하지 않음으로 이어지는 냉전시기에도 이들 자유진영의 노골적인 불협화음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모델이 과거와는 달리 패권국의 새로운 형태였지만, 거대한 민주주의 국가, 뒤를 따르는 제도적 민주주의 국가들의 자유진영 연합이 물론 산적한 문제도 있었지만 세계 안정에 기여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냉전 이후의 상황도 프랜시스 후쿠야마식의 극적인 장면은 아니었지만 러시아에 맞선 NATO체제의 확대, 통일 독일의 문제 그리고 경제적으로 NAFTA와 APEC의 출범이 이념 대결의 끝의 혼란을 종식 시키는데 기여했고 특히 NATO의 확대에 따른 러시아의 묵인은 후에 러시아의 양보로까지 여겨지고 러시아 측에서는 이를 미국과 서유럽의 술책으로 받아들여지는 정도의 러시아를 향한 신대결구도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현재로서도 NATO가 러시아를 향하고 있는지는 불명확하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및 공업국가 연합이 오늘날 중국의 부상에 직면해서도 힘의 분배가 적절하게 이뤄지고 있는 셈입니다. 바로 그것의 기반이 아마도 미국의 전통주의적 고립추구를 제어하고 유럽과 세계에 대한 지속적인 개입이 바로 미국 이익에 기반한다는 의견을 확대시킨 결과로도 또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아이켄베리는 이러한 결과의 배경에는 중요한 ‘제도적 합의’ 및 민주주의 국가들간에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선험의 인식을 중요하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패권의 지위에 이른 미국이 스스로 민주주의 체제를 신봉하고 있고 그러한 바탕으로 각국 간의 관계에서 제도와 입헌적 가치 체계를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미국 패권의 아마도 생산적인 부분일 겁니다. 현실적으로도 미국이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경제적으로 비상한 권위주의 체제 국가들의 대두에도 일정의 제어력이 되지 않을까 감히 예측해봅니다.

과거 소련은 거의 비등한 동유럽 세력을 갖고서도 미국이 주도하는 서유럽 및 대서양 민주주의 연합에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념적 대결이 경제적 부흥의 차이로 종식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적 공업국가의 결합이라는 우월성이 안보와 경제적 측면에서 서로간의 제도적 합의를 전제하게 되었고 꼭 직접적인 위압과 물리력이 아닌 대화와 타협으로 이러한 안정적 질서 체계의 번영을 보장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이 책 자체의 기본 골자가 기존 체제의 신흥 주도국의 정치적 개연성 등을 다루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앞선 나폴레옹 전후 및 1차대전의 전후 체제의 완만한 최종적 실패가 미국으로 대변되는 신흥 주도국의 학습효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안정적인 세력 균형을 통한 질서 안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이것을 어떤식으로 달성하느냐가 과거에 중요했고 꼭 일련의 일어나는 주도국에 의한 약간의 불확실성의 동반되는 안정이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성공적인 주변 억제와 질서 구축이 그 자체 만으로도 미국의 이익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2차대전 중 독일과 일본의 공동경영권의 자급자족 권역을 미국이 심각한 위협으로 여겼듯이, 오늘날의 자유시장 경제 기조와 자유 민주주의 체제의 발전이 여러 국가들에게 혜택이 되었던 것도 분명합니다. 물론 미국의 과도한 냉전적 안보를 위한 불법적이고 불행한 타국의 개입들이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 점은 망각하지 말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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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빈 2022-05-09 2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겐소와 미 재무부 장관이었던 헨리 모겐소 주니어를 혼동하신 건 아닌지요.

베터라이프 2022-05-10 19:47   좋아요 0 | URL
오 감사합니다 한스 모겐소인데 오타였네요. 전적으로 저의 착오입니다. 곧 수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