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도시를 살다 - 동아시아 발전주의 도시화와 핵 위험경관
이상헌 외 지음, 서울대학교 SSK동아시아도시연구단 기획 / 알트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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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의 SSK동아시아연구단이 기획하여 출판한 이 책은 ‘핵발전과 그로인한 위험경관(riskscape)’을 주제로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대만의 핵발전 도입과 후쿠시마 사태 이후 변화된 핵발전소에 대한 인식 문제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의 이 글을 일독하고 나서 느낀 점은 핵발전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위험성을 많은 자료를 통해 깊게 분석하고 이를 통해 가시적인 설득력을 보이고 있다는 긍정적인 소감이었습니다. 일본 후쿠시마 사태 이후 핵발전에 대해 쓰여진 글 가운데에서 정말 심도있는 기획이 아닌가 합니다.

1부는 우리의 위험경관이라는 주제로 한국의 핵발전소의 도입과 핵발전의 위험성과 관련하여 거버넌스적 접근 및 이를 통한 한국 사회의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해 논하며, 2부는 일본의 핵발전 도입과 원자력복합체 (nuclear industrial complex)에 대한 분석과 후쿠시마 이후 정부와 주민간의 해당 주거지 복귀와 관련하여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와 일본 정부의 파행적인 정책, 중국 광둥성 쟝먼의 핵연료공장 반대에 나선 시민들의 행동을 담고 있으며,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거의 최초로 핵발전소 건설 동결에 나선 대만의 정치적 결단과 시민 사회의 움직임을 상세히 적고 있습니다.

이 글의 큰 해석 수단이자 주제인 위험경관 (riskscape)은 “복수의 행위자들에 의해서 생산되는 위험에 대한 상징들과 구체적인 결과물들이 복잡하게 나타나는 것”이라 정의하고, 이것의 이론적 틀에는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이론’을 잠정적으로 바탕에 두고 설명에 나섭니다. 특히 이 위험경관을 극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요즘의 핵발전 및 핵발전소 건설 이슈일텐데요. 이것과 관련하여 여기에 수록된 글들은 핵발전이 초래할 수 있는 환경적이고 기술적 문제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그러한 개발이익을 독점하는 원자력 카르텔에 대한 정치사회적 분석이 주요한 부분이라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이런 위험경관은 이익을 손에 쥐고 있는 원자력 카르텔과 관련된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모습으로서 이 부분을 과연 우리 시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 책 스스로가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소개되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핵발전 역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핵무기 개발 시도가 계기가 된 것으로, 애초에 정치군사적인 비밀 계획과 같은 개념으로 이것이 오늘날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측면의 모습보다는 한국의 원자력 마피아 내지는 카르텔의 정보 독점과 비밀화에 앞선 시기의 특수성이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부분을 인정하고 옹호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즉, 자신들만이 특수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는 해당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의사협회’와 같이 스스로 전문가 집단을 자처하는 특수적 요인을 배경 삼아 원전 건설과 시공에 소수의 대기업들이 과점 상태의 시장을 공유하며 이러한 이익을 원자력 업계가 기득권으로서 오랫동안 유지 및 보호해왔다는 것을 책의 1부에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판단의 유사한 사례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드러난 여러 본질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한국의 원자력 업계가 정보 폐쇄성과 원자력이라는 특수한 문제를 사실상 제한된 범위에서 다뤄왔다는 점이 우리나라와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소 허용되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여기에 소개된 프랑스와 영국, 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시민에게 정보 공개는 기본임에도 이러한 점을 마치 국가 운영에 필요한 특수한 정보라고 여기는 듯한 업계의 폐쇄적 태도가 일본에서 재앙으로 나타난 후쿠시마 사태 이후에도 별 변화가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이에 여기에 참여한 학자들은 거버넌스적 해법 즉, ‘정부의 규칙과 과정을 넘어서는 새로운 의사결정구조로서 비정부 행위자들을 포함시키는’ 등의 방법과 삼척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더욱 강화하여 적절하게 원자력 업계를 민주주의적 소통의 틀 안으로 편입하게 하는 등의 수단을 밝히고 있습니다. 동일한 사례는 아니겠지만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정부를 상대로 막각한 로비력과 자금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는 데, 금권 정치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원자력 업계가 전자의 정도 만큼 물리적인 영향력이 있다고 단정하지는 못하겠지만 분명 카르텔 수준의 견고한 이해관계는 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2부에서는 일본의 현상황이 원자력복합체와 정치인과 관료, 금융기관, 건설업체로 구성된 철의 삼각구조 (Iron Triangle) 시스템이 과거 일본의 토건국가 발전론과 연계하여 꽤 견고하게 시스템이 구축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 후쿠시마 사태 때, 내각의 수반인 총리인 간 나오토를 ‘바지사장’으로 만들 만큼 도쿄 전력의 위세는 이미 드러난 바가 있으며, 일본 정부가 절차적 민주주의와 공개적이고 투명한 여론 태도를 거의 수용하지 않고 후쿠시마와 그 주변 지역의 세슘을 비롯한 방사선 물질의 피해 규모와 실제 상태를 (실제적으로 그대로) 공개하지 않는 것은 일본 시민의 동요에 기대기 보다는 일견 정보 폐쇄로 얻는 일본 원자력 업계의 이익과 근본적으로 핵발전은 매우 안전하고 자연친화적이다라는 기존의 반복된 입장을 이 구축된 시스템 안에서 부정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애초에 우라늄을 정제해 발전용 옐로우 케이크를 만드는 것 자체가 환경에 좋지 않은데 고준위 방사선 폐기물 문제를 자꾸 수면 아래로 가라 앉히려고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막대한 이익이 이들 집단에 연계되어 있기 때문일겁니다. 핵발전 자체가 발전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기간 산업을 비롯한 제조업에 충분한 도움이 된다는 것은 표면적인 이유인 것이죠.

이런 후쿠시마 사태 이후로 강력한 권위주의 국가 중국에서도 광둥성의 쟝먼 핵연료공장 반대 시위를 흥미롭게 읽었는데요. 중국에서는 핵발전 자체가 정부 방침과 다름없어서 이것을 반대하는 것은 거의 이적행위와 다름없음에도 해당 주민들이 반대에 나선 것은 핵발전 위험성이 시민들에게 인지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만과 같은 경우는 현재 건설중인 핵발전 2기에 대한 반대에 나선 것은 실로 의미있는 일인데요. 독일, 스위스와 더불어 핵발전 반대 움직임에 큰 기여를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현재 동아시아 지역의 핵발전 반경 30Km내외에 3,341만명이 거주하고 있다는 삽입된 지도는 원전의 유사사태 발생시 인명피해가 어느 정도 일지 가늠할 수 있는 자료라고 여겨집니다. 또한 중국 산둥반도의 건설중인 하이양 원전은 자연 재해로 인한 원전 붕괴시 직접적으로 우리 나라의 서울과 수도권, 충청권을 편서풍으로 직격된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런 부분인데요. 원전의 안전 확보를 해당 국가에 희망적으로 기대야만 한다는 점은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정부를 과연 우리가 신뢰할 수 있겠느냐의 이 원초적 질문과 동시에 공기와 설계를 비롯한 건설 전반을 밀도있고 적법하게 할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본격적인 산업 고도화 시기에 들어선 중국의 국내적 상황으로 봤을 때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여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기란 정말 요원한데요. 그래서 눈에 바로 보이고 손에 잡히는 쉬운 수단인 핵발전으로 석탄과 석유를 비롯한 수많은 화력 발전을 대체하겠다는 것은 미세먼지가 (안전을 답보할 수 없는) 방사능으로 바뀐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할 만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 점은 울리히 벡의 위험도시 이론과 연계된 산업사회의 불안전한 환경 문제와 시민 안전과 관련되어 주장할 수 있는 것으로 현재의 중국 원전 건설 사례가 매우 전자의 이론과 유사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끝으로 관련 학자들의 심도있는 논문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인 제가 보기에도 꽤 수월하게 글이 이해되었습니다. 더욱이 주제들간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설득력이 있어서 핵발전과 원자력 카르텔에 대해 좀 더 이해를 원하는 분들은 이 책을 일독하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여러 논의들이 마음에 와 닿았지만 특히 우리 원자력 업계의 이 특수한 폐쇄성이 박정희 시대에 핵개발 역사의 유산이라는 해석을 보니 뭔가 마음이 답답해졌습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이 비밀에 핵 재처리 기술을 비롯한 무기화 개발에 나섰을 때, 미국 정부가 북한의 핵개발 시도에 불을 지필 수 있다는 것으로 반대했는데 이미 핵무기 개발 연원이 오래된 북한의 핵개발 역사를 미국 정부가 몰라서 그리 말한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단지 돌이킬 수 없는 강력한 반대를 하기 위해 북한을 판 것인지는 양자 어떤 것이 되었든 간에 뒷맛은 씁쓸합니다. 핵무기 개발을 못해서 씁쓸한 것이 아니라 아마도 우리나라의 이 올가미 같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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