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로는 충분하지 않다 - 트럼프의 충격 정치에 저항하고,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얻는 법
나오미 클라인 지음, 이순희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캐나다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나오미 클라인은 북미 지역의 대표적인 사회참여적 시민운동가로서의 이름이 알려져 있는데요. 특히 그녀의 몇몇 저서들은 이미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고 진보주의 운동과 관련해서도 꽤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그녀에게 지극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노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이 책 역시 나오미 클라인의 중요한 관심과 연구에 놓여 있는 글이라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트럼프로 대표되는 ‘선동정치가’와 ‘우익 포퓰리즘’을 배경으로 미국 정치와 경제를 분석하고 있지만 큰 틀에서는 ‘약탈적 자본주의’와 이를 뒷받침하는 미국의 보수 정치의 일관된 폐해를 알리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싶습니다. 관련된 주장들은 명확하고 일관되어 있으며 특히 번역의 질이 매우 훌륭하여 독자들에게 정확한 의미 전달을 하는데 몇박자가 갖춰진 글이라고 여겨집니다.

우선 미국 정치 무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은 여러모로 정치경제적인 전면적인 후퇴를 내포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의미 부여를 내릴 수 있을듯 보입니다. 미국이 세계 민주주의를 차지하는 위상으로 봤을 때, 트럼프와 같은 거대한 선동주의 정치인이 본무대에 등장한 것은 여러모로 반동 정치의 현실화로 봐야겠죠. 저자는 이에 ‘공직을 이용해 엄청난 수익을 뽑아내는 정치’라고 트럼프 정치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트럼프 자신의 직계 가족을 포함한 자신의 사업 구상과 확대에 시민이 부여한 권력을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과거 미국 정치에서 어떠한 사례도 찾아볼 수 없는 현재 유일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트럼프의 장녀인 이방카와 그의 남편 쿠슈너의 일련의 사례들로 매우 부정적 파급 효과가 큰 왜곡된 직계 정치 행위이고, 선거를 통한 선출된 관료나 임명된 관리가 아니라 대통령의 자녀가 아무런 검증없이 무자격으로 현실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미국 민주주의에 있어서 안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트럼프 본인의 본심이 뭔지 의심될 정도로 회자되는 파행적 정치 언어와 많은 시민들이 ‘역겹다’고 말할 정도로 인종주의적 편견, 아무런 근거 없는 여성차별적인 입장 등이 미국의 정치 상황에 얼마나 시한폭탄이 되고 있는지 근래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오히려 트럼프 만의 국한된 문제라기 보다는 과거 오바마 대통령이 2008년 뉴욕발 금융위기 이후 관련된 금융인들을 기소하지 않은 점과 미국 시민들에 대한 안보상의 이유로 일어날 수 있는 불법적인 통화 도청과 같은 것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보이는 등의 과거 행정부 시절의 이해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동일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신자유주의’가 힘을 잃은 것이 아니라 아직도 그 영향력은 유효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약탈적 자본주의’와 날로 강화되는 소득 불평등의 사회 가치적 분열과 왜곡을 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저자의 해석은 매우 지당하다고 볼 수 있는데요. “강경한 보수파가 기후 변화를 부인하는 이유는 기후 행동 때문에 잃을지 모를 수조 달러의 부를 보호하는 것을 넘어서서 훨씬 더 귀중한 이데올로기적 프로젝트, 바로 신자유주의를 방어하기 위해서다’라고 통찰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결국 한때의 ‘월가 점령 운동’이 정치 기득권과 기존의 경제 세력에 대해 충분한 교훈이 되지 못한 것이 이러한 보수 정치권의 근본적인 신자유주의적 가치 보호에 있습니다. 주도적인 정치경제 이데올로기는 끊임없는 비판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결국 과거 행정부가 신자유주의에 일종의 면죄부를 주었고 그러한 배경에는 저자가 판단한 대로 보수 (기득권) 정치 세력이 금권 정치에 기반한 영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에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트럼프가 보이는 인종 위계적 정치 행위, 이미 무효임으로 판명된 ‘낙수 효과’를 맹신한다든지 자유 무역의 가치를 앞세운 기존의 TPP를 ‘미국을 겁탈하는 행위’라고 판단하는 등의 정말로 미국을 대표하는 정치 수반의 언행과 사고라고 믿을 수 없는 왜곡 정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자의 다른 말로 ‘이미 미국 정치의 주도권이 상당 부분 진보에서 우파에게 넘어갔다’는 판단으로 귀결되며, 여기에서 또 광범위하게 논하기는 어렵지만 바로 진보 세력의 유명 무실이 이러한 ‘미국의 우익 사이비 포퓰리스트’를 잉태하게 만든 진정한 원인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우파 만의 정치 집중이 아니라 여기에 극단적인 포퓰리즘이 가세한 것으로 봤을 때 정말 진보주의 운동에 있는 사람들의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즉, 이러한 현실 정치 왜곡의 해결로 저자는 ‘정당 없는 정치’를 제시하고 있는데요. 이는 금권 정치의 산실로 여겨지는 수많은 이익 단체에 의한 로비 정치를 제한하는 형태로 시민들이 기존의 정당주의 없이 자발적인 기초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그 틀을 잡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더해야 될 살이 있어야 하지만 이것을 순진한 도덕정치적 입장으로만 몰아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전에도 정치학자인 존 던, 로버트 달 등이 비슷한 논리를 우리에게 보인적이 있습니다. 사실상 지금 필요한 것은 더욱더 많은 민주주의의 확대이고 시민의 자발적인 정치 의식 개조와 대중을 선동하는 포퓰리즘적 정치인들이 발을 붙일 수 없도록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이 요구되지 않나 싶습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원론적인 입장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시급한 ‘시민 강령’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나오미 클라인의 이 책을 일독하면서 그녀의 오늘날 정치 상황에 대한 탁월한 분석과 반대의 유용한 결과물에 대해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러한 배경의 주무대가 미국과 그녀의 모국인 캐나다인 것이 우리 정치와는 해석상의 차이가 있는데요. 이를테면 미국에서 빈자 계층의 실질적인 투표 제한을 위해 사진이 들어가 있는 신분증을 요구한다는 것에는 우리와의 현실 차이가 있어 보였습니다. 정부의 합법적인 신분 상태에 있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미국에는 많다는 점이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이죠. 애초에 우리는 일반 선거에서 스스로의 신분증 제시를 명확한 것으로 인지하고 있으니까요. 다소 이런 점을 제외하면 우리 역시 정치와 경제를 위해 반면 교사로 삼을 만한 유익한 것들이 적지 않게 있지 않나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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