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 - 욕망과 무지로 일그러진 선거의 맨얼굴
리처드 솅크먼 지음, 강순이 옮김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굵직한 국제적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폭스뉴스와 CNN에 단골로 시사 해설가로 출연하고 방송계의 퓰리처상이라 불리우는 에미상을 수상했으며 스스로는 자유주의적 언론가라 자임하고 있는 리처드 솅크먼의 ‘우리는 왜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를 일독했습니다. 솅크먼의 이 책은 얼마 전 리뷰했던 트론토의 ‘돌봄 민주주의’에 인용이 되어 구해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현재 미국의 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적나라한 리포트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이를테면 ‘오만한 선동 정치인들과 무지한 대중의 민주주의’가 글의 요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찍이 미국의 소위 ‘건국의 아버지들’은 소수에 의한 권력 독점과 투표에 의한 유산계급에 대한 몰수 등’을 가장 두려워했던 것으로 솅크먼은 판단합니다. 미국의 건국 초기 워싱턴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무대와 오늘날 케네디와 닉슨, 카터와 레이건이 거쳐간 정치 무대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저자는 인식하고 어떻게 보면 이들 건국의 아버지들이 우려했던 소수에 의한 권력 독점이 이상한 방향으로 금권 정치와 마크 트웨인이 그의 작품에서 밝혔던 ‘도금 시대’와 같은 수준의 정치적 위기라고 시종일관 피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기에는 정말 많은 대중에 대한 무지와 선동 정치인의 사례가 적잖이 들어가 있는데요. 특히 2001년 9. 11 사태를 이라크 후세인에 의한 범행이라고 아직도 믿고 있는 다수의 미국인들과 이를 이용하여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주장으로 개입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선동 정치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사례가 무지의 대중과 선동 정치인의 결합이라는 실체적인 왜곡된 정치 모델을 보여준 사례라고 여겨집니다. 이후 9.11 사태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안보 이슈를 최우선으로 삼는 혹은 (삼는척) 으로 국내의 모든 이슈를 진공 청소기처럼 빨아들여 오로지 국가 안전과 안보에 그는 몰빵을 했는데요. 이처럼 부시의 사례는 시민의 투표로 당선된 통치자가 시민들을 위해 일하기 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일에 몰두했다는 측면에서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시민들이 이슈와 상황에 대한 명확한 현실 인식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결과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외에도 솅크먼의 이 책은 진실을 외면하거나 진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일면으로 크게 부각된 정치인의 신화에 더 큰 점수를 준다던지, 이슈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해보지 않은채 정치인들이 더욱더 몰입하는 이미지 정치에 편승하여 정치 무대 자체를 비생산적으로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는 등의 대중들의 많은 무지에 대해 저자는 언급하고 있습니다. 앞선 시대의 존 듀이는 특유의 통찰력으로 “집중을 방해하는 오락거리들에 둘러싸인 소비 사회를 사는 유권자들이 시민의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 몹시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을 한 바가 있습니다. 실로 절묘하게도 오늘날 현대사회의 우리의 상황과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미디어와 더욱더 왜곡적으로 결합해 생산적 정치가 되지 못하고 이른바 ‘쇼무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네트워크 시대가 도래한 이 시점에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떤 식으로 또 변하게 될지에 대해 조심스런 시선을 갖고 있는 것은 일전의 ‘미디어에 의한 실패’가 한 몫 했을 것입니다. 솅크먼도 보수주의자들이 대부분 민주 정치에 대한 지극한 회의를 품고 있으며 허버트 스펜서가 꼬집은 바와 같이 보수주의자들이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하지 않는 상황이 무지한 대중과 적극적으로 영합하여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거두려고 하는 것이 더 손쉬워서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우리가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계몽주의 시대의 초기 보수주의자들은 이러한 민주 정치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 정치인들과 사적 이익에 매우 민감해 하는 대중들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을 우려했는데요. 오늘날의 보수주의자들은 전자와는 매우 다른 상황입니다.

현재의 미국 정치는 명목상으로 공화당 대 민주당의 양자 대결 구도이긴 하지만 좀 더 엄일히 말하면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의 대립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4년에 낙태 이슈를 끌어들여 모든 다른 정치적 문제들을 사멸시킨 조지 W. 부시의 사례를 봤을 때도 현실 정치와는 다소 관련이 없는 종교적 혹은 도덕적 이슈들을 이데올로기적 다툼으로 편파가 되는 행태가 자주 있어 왔습니다. 정치인들이 진실을 말하되 전부 말하지는 않는다는 고언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미국의 이런 상황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선출되지 않은 강고한 기득권들이 더욱 반기는 현실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금권 정치와 수많은 이익 단체가 범람하여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고 있는 많은 국가에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이겠죠. 물론 저는 동의하지 않고 있지만 중국 출신의 저명한 학자인 장웨이웨이와 엔쉐퉁이 이들 국가의 민주주의를 ‘저열한 민주주의’라 말한 것도 일정 부분 원인이 있겠죠.

물론 저자는 이런 미국의 정치적 상황을 비관주의적인 접근으로만 오도하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해결책은 각급 교육기관과 미국 시민에 대한 공민학 교육과 우리 자신들의 무지를 냉엄하게 직시하고 이를 개선시키기 위한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크게 주장합니다. 다만 미국의 상황과 우리의 그것은 ‘자신의 상황에 맹목적으로 몰입하여 사회, 정치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끊어버린 많은 대중들’을 어떻게 정치로 다시 끌어들인가가 중요한데, 이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로서 앞으로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되는 문제라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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