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상태 What's Up 6
조르조 아감벤 지음, 김항 옮김 / 새물결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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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국내에도 이름을 알리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철학자인 조르지오 아감벤은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미학이론의 선구자였던 발터 벤야민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유명한데요. 이탈리어판 벤야민 전집 편집자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고, 자크 데리다 등과 사상적 교류를 통해 철학자로서의 사유를 깊이 한 바가 있습니다. 바로 그의 이 책은 이탈리아어 판을 토대로 번역한 글인데요. 역자인 김항씨는 이탈리어에 대한 어려움이 있어서 여러 언어 판본을 대조하여 참고했다고 후기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도서출판 새물결의 What’s up 기획물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크게 6장으로 되어 있는데요. 1장은 법률적 차원의 의미인 예외 상태와 이것을 개념화한 카를 슈미트의 해석 전반에 대해 다루고 있고, 2장은 카를 슈미트의 ‘정치 신학’에 대한 진정한 논의와 자크 데리다의 ‘법률의 힘’과 관련된 해석과 3장은 로마 시대의 유스티티움 (법의 정지)에 대한 논의를 4장은 발터 벤야민이 친히 ‘파시스트 공법학자’로 지징한 카를 슈미트의 예외 상태 개념과 독재, 폭력 및 비폭력에 대한 논쟁과 이견, 해석차이 등을 담고 있고, 5장은 최고 권력과 주권자 및 주권 관계에 대한 해석과 논의, 6장은 권위와 권한에 대한 분석으로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감벤의 글은 처음 접하는 것이었는데요.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간략한 메시지에 심오한 자신의 개념들을 풀어내고 있는데요. 흔히 자신을 사전적인 철학자라고 여기는 지는 모르겠지만 철학의 본질은 그 하나만으로 사유해서는 통찰에 이르기 어렵다는 버틀란드 러셀의 말대로 정말 다방면의 지식과 숙고를 통해야만 우리 세계와 인간의 삶의 진실을 맞닥뜨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감벤의 사유가 바로 이와 같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의 글은 아마도 ‘파시스트 공법학자’ 카를 슈미트의 ‘예외 상태’에 대한 아감벤의 고유한 해석이라 볼 수 있겠는데요. 일단 저는 자신의 입으로 ‘반유대주의자’라고 말했던 카를 슈미트의 저작들을 평가절하하지 않고 그 법철학 분야의 성과만으로 판단해야 될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슈미트는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의 법학자들로부터 수없이 인용되고 있고 1933년의 나치 독일을 주권 독재 상황에 있는 것으로 보고 그것을 일종의 예외 상태로 규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어떠한 기준을 갖고 있던 간에 히틀러와 관련된 과거 나치 독일에 대한 이와 같은 슈미트의 판단은 ‘인간적인 반감’을 저절로 일으키게 됩니다. 제가 이 정도의 반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먼저 밝히고 싶군요.

이런 예외상태에 대해 아감벤은 “공법과 정치적 사실의 불균형점”이라 시사하고 이것과 비슷한 긴급 사태 등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와 관련해 “정치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라는 질문에 적절한 답을 해보고자 이 글을 내보내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의 헌법 등에 보장된 기본적인 자유를 누릴 권리가 시민에게 있다고 전통적인 헌법의 시민의 권리에 대한 보장을 열거하고 이 특수한 예외상태가 계엄, 전시상태, 혁명 등에 법의 공백과 같은 성격으로 사실상 많은 민주주의 국가가 이 예외상태를 언급하고 받아들이면서 일정 부분 시민의 주권적 권한까지 침해하는 문제 상태로 여겨집니다. 여기에 한술 더떠서 아감벤은 민주주의 제도하에 전통적인 삼권분립이 행정부의 과도한 예외상태 부여로 입법부의 본질이 퇴색되었고, 미국의 링컨 대통령과 윌슨의 사례를 예로들며,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고자 하는 유럽과 미국의 정치권이 자기 모순에 빠진 것이라고 일침을 가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예외상태가 법질서 바깥에 있는 것도 안에 있는 것도 아닌’ 자기 모순에 빠져 있는 것은 긴급 사태에도 법률을 갖지 않는 것과 동일시되며, 이러한 해석 불가의 예외상태를 어떻게 견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필요성이 요구된다고 느낍니다. 여기에 소개된 이탈리아 헌법은 “공권력이 헌법에 보장된 권리와 기본적인 자유를 누릴 권리를 침해할 경우 억압에 저항하는 것은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이다”라고 명시하는데요. 독일 연방 공화국 헌법 또한 “자유 민주 헌정 질서를 파괴하려고 하는 모든 이에 맞서 모든 독일 국민은 다른 시정 수단이 없을 경우 저항권을 갖는다”라고 나옵니다. 예외 상태와 비슷한 혁명은 ‘규정상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반법률적이다’라는 주의도 특히 우리에게는 매우 의미심장한데요. 최근의 전직 대통령의 이 ‘예외 상태’ 권한 실행 여부가 미디어에 온갖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죠.

그리고 벤야민과 슈미트의 예외 상태 뿐만 아니라 폭력의 전반적인 의미에 대한 지면 논쟁과 데리다의 법률의 힘에 대한 의미. 법의 적용에 대한 해석, 법이 힘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의미 등 법 자체에 대한 저자의 다층적인 해석을 볼 수 있습니다. 권력이 일찍이 뒤르켐이 밝힌 아노미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에 대한 분석 또한 흥미로웠습니다. 로마 시대부터 법과 아노미 사이에는 은밀한 제휴가 있었다는 사례들을 열거하고 있고, 규범과 아노미, 법률과 예외 상태를 묶어 법과 생명의 관계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때가 왔다고 일종의 ‘의미 전개의 확장’에 도달하면서 법과 인간사회의 관계를 규명하기 위한 저자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결국 여기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카를 슈미트의 ‘독재론’과 ‘정치 신학’ 과 벤야민의 몇가지 시론, 국내에 아직 번역되지 않은 여러 법학자들의 글도 필요한데요. 특히 카를 슈미트의 ‘독재론’은 절판이 된 상태라 아쉽습니다. 좀 더 기회가 된다면 아감벤의 다른 글도 찾아 읽어보고 싶은데요. 어떻게 될지는 정확히 모르겠군요. 결국 이 책의 의의는 권력과 정치인들이 시민의 권한을 다소 제한하고 법을 일종의 ‘조정적인 상태’에 두려는 예외상태에 대한 개념을 독자들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법철학적인 해석도 다분하게 들어 있어서 이해의 폭이 어려울 수는 있으나 적당한 배경지식과 정독으로 해결하실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짐작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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