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힘 우리 시대의 고전 16
자크 데리다 지음, 진태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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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들어 많은 인용과 연구를 불러온 자크 데리다는 현대 철학에서 해체론을 창시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좌파 사상가들의 많은 영감을 안겨주었고, 특히 탈식민주의와 인권, 민주주의에 큰 관심을 갖고 많은 저작과 논문을 쓴 것으로도 유명하죠. 지금 소개해드릴 이 책 ‘법의 힘’은 지난 1994년 초도 출간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1990년 미국에서 있었던 데리다의 강연을 토대로 출판이 된 것으로 아마도 영어와 불어로 동시에 나오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개인의 자유’를 등한시 않았음에도 이와 관련하여 법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있어서 법의 필요성을 인지한바 있습니다. 더욱이 공리주의에 입각한 사상가들은 법은 그 중요한 ‘공리적 의미’로 인해 인간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평가했는데요. 민주주의와 법의 양자관계는 이를 보는 여러 사람들에 의해 엄밀한 관계이냐, 혹은 무관하거나 상호침탈적인 관계로까지 해석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칸트의 의도대로 ‘힘이 없이는 법도 없다는 것을 매우 엄밀하게 환기’ 시키고 있는데요, 폭력과 강제를 동시에 수반하는 법의 의미에 대해 ‘근원적 고찰’과 분석을 하는것이 바로 이 책의 1장입니다. 뒤이어 나오는 2장은 특히 문학에서 많은 영향력을 발휘한 발터 벤야민의 1921년 텍스트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해 ‘벤야민의 특별한 법 사상’ 에 대해 데리다의 분석이 외형상 주된 내용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1장 2장은 데리다의 통찰력과 엄밀한 해석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요. 특히 2장에서 저로서는 발터 벤야민이 왜 그렇게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했는지에 대해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약간의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데리다는 몽테뉴의 입을 통해 법이 과연 정의와 동일시 될 수 있느냐고 질문을 던지는데요. 그는 “우리는 법들이 정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권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에 복종한다”고 언급하며 앞서 제가 말씀드렸듯이, 법이 폭력과 강제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측면에서 법의 권위가 존재하는 것이고, 여기에 법 자체가 공리적 측면을 유지하고 있어야 법의 존재의 정당성이 답보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많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입법을 담당하는 의회와 법을 집행하는 사법과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고 상호 보완적이기에 뒤에 2장에서 벤야민이 경고한대로 “산업 민주주의 국가들과 고도의 정보 통신 기술을 이용한 이 국가들의 군산 복합체의 치안적 현실에 대한 분석 원칙을 지지하는 것”으로 이는 아마도 은밀한 경찰력으로 앞에 나와 있는 것처럼 빈틈없는 정보 기술로 사회 통제에 나서거나 이를 우회하거나 무력화하여 시민들의 자유를 제한할 가능성에 대한 경고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벤야민이 소위 법집행기구인 경찰 집단을 불신하고 현존하는 민주주의 체제가 벤야민에게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개선 가능성이 시급한 것으로 여긴것으로 볼때, 벤야민 스스로 이에 관해 이상주의적 시각을 갖지 않았나 싶습니다. 더불어 ‘개인들간의 관계에서 충분히 (법없이) 비폭력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과 같은 ‘인간에 대한 이상적 관점’이 벤야민의 비극적 자살의 매개가 되지 않았나 짐작해봅니다.

즉. 이러한 법의 시행 배경에서 데리다는 “규칙적이면서도 규칙이 없어야 하며, 법을 보존하면서도, 매 경우마다 법을 재발명하고 재정당화하기 위해, 적어도 그 법의 원칙에 대한 새롭고 자유로운 긍정과 확증 속에서 이를 재발명할. 수 있기 위해 법에 대해 충분히 파괴적이거나 판단 중지적이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특유한 해석이 요구되는 판결 상황에 그렇지 못하다면 “판사는 계산 기계가 되고 만다”고 음울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법의 본질이 사전적으로 이해되는 공리적 목적과 (많은 부분에서) 정의로워야 한다면, 더 안쪽의 법은 ‘법이 힘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과 ‘법과 권력’의 관계를 어떻게 많은 개인들을 유익하게 만드는 것으로 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데리다의 고심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오직 결정만이 정당하다”, “정당한 판결이었다”고 주장하며 법의 판결에 어떠한 의구심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많은 사법 당국들의 경직성에서 어떤 측면에서는 법은 공리에 기여하며, 또한 한편으로는 폭력적이고 개선 불가능한 원천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우리 시민이 해결해야되는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초월적 존재인 신이 스스로 무소불위의 정당성으로 인간들을 도덕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매우 당연하게도 국가와 시민들속에 법은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벤야민은 20세기 초, 의회주의는 권위와 폭력에, 그리고 이상의 포기에 있으며, 그것은 말과 토론, 비폭력적인 토의, 요컨대 자유 민주주의를 작동시킴으로써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 실패한다고 단정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우리나라에도 의회의 부패는 심각하다고 봐야하지만 의회를 배제한 사법만의 사회 통치나 의회의 역할을 대신할 어떠한 ‘기구’를 다시 고안해 내는 것은 어쩌면 지난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4세기 르네상스 이후 개인의 자유가 꽃피운 이래로 우리 인류가 사회 공리를 위해 몇세기의 시간을 소모해 만든것이 모두에 의한 정치인 민주주의였습니다. 법을 모조리 제거하고 나서 우리의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저는 그 뒤의 결과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많은 국가들에서 사법부의 관료들이 고도화된 엘리트 계층이고, 이것을 선출된 이들로 바꾸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그 한계가 극명했던 것은 여러 정치학에 다루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사법을 선출된 권력으로 바꾸는 것에 찬성하지만 이와 관련해 많은 연구가 수반되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데리다도 법에 있어서 정당화와 정의와 관련된 논의들을 이 책을 통해 하게 된 큰 범위로서의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았나 싶군요. 그래서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글이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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