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유럽의 시민들? - 세계화와 민주주의의 재발명
에티엔 발리바르 지음, 진태원 옮김 / 후마니타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오늘날 세계 지성계에 자크 랑시에르와 더불어 인정받고 있는 에티엔 발리바르의 국민, 시민권, 이주문제, 국가를 광범위하게 면밀히 분석한 ‘우리, 유럽의 시민들?’을 읽었습니다. 발리바르의 이 책은 특히 요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데요. 요즘 제주에 입도한 예맨 난민들의 처리 문제와 관련된 국내 여론에 대한 것인데요. 지금 유럽이 목도하고 있는 각 지역내의 ‘제2국민들’ 과 관련된 인식과 문제를 함께 고찰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가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이 책은 크게 3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1장에선 동서 냉전이 첨예화된 시기의 의미일 수 있는 ‘국민’과 ‘국민 국가’를 짚어보고, 이들이 오늘날 어떻게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멸의 입장에 이르렀는지에 대한 나름의 분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부는 공산주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유럽과 그 이후의 유럽과 전세계에 닥친 거대한 ‘세계화의 파고’와 그로인해 파생된 여러 문제들 중, ‘저렴한 노동력’의 수입 차원의 이민 유입 문제와 전통적인 유럽의 공화주의와 기본적인 시민권의 입장에서 이들 ‘새로운 민족’에 대한 분석을 역사 분석적이고 전통적인 정치 관념적인 부분에서 평가와 예측을 하고 있고, 마지막 3부는 ‘유럽의 아파르헤이트’의 시도라는 측면에서 도래하고 있는 배타적 인종주의의 분위기에서 유럽의 시민과 시민권의 장래를 그려보는 것으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미리 결론을 지어 보면, 발리바르 역시 “이런 상황에 대한 명백하게 이상적인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는데요. 여러가지 정치적인 측면의 틀에서 과거 ‘국민’에 대한 개념이 임의로 설정된 국경이라는 범주안에 거주하고 있는 국민국가론적인 시민 해석의 틀이 독일의 통일과 이후 구소련의 붕괴, 그리고 유럽의 통합 모색 등으로 현재의 유럽에서 앞의 ‘국민국가’라는 의미가 급변하게 되었고, 이제 인종주의적 구분으로 유럽의 각 국가에 뿌리를 내린 ‘검은 피부의 이방인들’에 대한 시민권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발리바르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는데요. 사실 그가 이렇게 판단하게 된 연유에는 단순히 노동시장에서의 단순 노동력을 해당 지역에 제공하는 것으로 ‘이민 인구’의 단순한 시민권 부여가 아니라고 보고 있는데요. 즉, 거침없는 레이건과 대처의 신자유주의와 그로인한 세계화가 ‘2등국민’ 이라는 계급을 만들었고, 이러한 상황은 이익을 위해 ‘분명한 착취’가 필요한 자본의 비인간성이 초래한 결과라고 보고 있는 듯 했습니다. “특히 시민권의 개념과 사회적 권리의 인식은 과잉 착취와 지배의 가능성을 제한했기 때문에, 자본이 자신의 수익성을 감소시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일으켰다” 고 보고, “이러한 거대 자본의 이해는 ‘세계화된’ 시대의 각각의 행위자들에게 그 어느때보다 더 경제구조가 정치를 강하게 결정하도록 만들었다”는 세심한 통찰력을 발리바르는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좀 더 단순하게 풀어보면, 이들 이민의 유입이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해 해당 국가와 자본 양자가 이득을 얻었다는 측면에서 특히 유럽의 정부가 이들 ‘검정 피부의 2등 국민들’에게 이제 정당한 시민권 부여에 대한 논의를 해야한다고 판단하는 것이죠.

사실, 이러한 차별받는 비유럽 사람들에 대한 문제는 제1차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식민주의적 이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과거 제국주의 유럽으로부터 비롯되었고, 오늘날 성공적인 이민 사회 국가로 여겨지는 미국 조차도, 과거 내전이었던 남북전쟁 이후에 흑인들에 대한 권리를 비롯한 기본 권리가 헌법의 재해석으로 가능해졌지만, 실제적으로 아직도 인종주의적이고 비합리적인 차별이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유럽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외부의 이민 후손들’의 근본적인 기원이 단지 몇십년의 제한된 시기의 문제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또한 “동서 냉전 이후, (동유럽 등의) 각 국가의 시장 편입, 유고슬라비아의 내전이 이 지역을 갈갈이 분열시킨 배경”에 서유럽이 있다는 것은 다소 명백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 독일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주의적 물결’은 과거의 국민국가로의 회귀나 다수의 2등 국민들을 국외로 추방하는 것을 정치적 목표로 삼고 있는데요. 민주주의 체제에서 민족주의가 과연 양립할 수 있느냐는 별개로 삼는다 하더라도 유럽에서 민족주의가 어떤 식으로 발현되었는지는 남아있는 충분한 역사가 있으며, 이렇게 배제시키고 제외시키는 방법 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고, 정말로 국경이 점차 허물어지는 ‘세계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고 유럽 스스로가 평가한다면 좀 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런 측면에서 미래의 유럽의 민주주의와 민주주의체제에 대한 발리바르의 전망이 이 책의 후반부에 실리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즉, 정치체와 시민권의 형태와 목표를 다시 사고하고 시민과 활동가, 투사들의 접합을 다시 사고하여 전국민적 관점에서 관점을 확대시키는 것에 ‘유럽의 민주주의의 장래’가 달려있다고 발리바르처럼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유명한 정치학자인 허시먼은 “민주주의가 갈등으로 먹고 산다”고 표현했는데요. 저는 앞서 익히 경험한대로 발리바르의 이 글은 충분히 많은 사상가들과 이론가들을 인용하고 있고, 특히 한나 아렌트가 피력한 시민권에 대한 소개를 담고 있는 것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는데요. 자크 랑시에르와 프랑스의 공화주의 및 프랑스 대혁명과 유럽 이민의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들을 인지하고 있어야 발리바르의 전체적인 사고의 틀을 이해하는데 기본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저의 짧은 머리로도 숙달되지 않는 부분도 있어서 많은 페이지를 정독에 따른 집중에 쏟아부어야만 했습니다. 다행히 역자가 발리바르가 고안한 몇가지 개념에 대해 해제를 첨부했는데요. (경계와 국민사회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또한 적지않은 분량으로 발리바르에 대한 해석을 담고 있어 저 역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대략 3일간에 14시간 이상을 이 책을 읽는데 소모했는데 아직도 이해가 미진한 것 같아 매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아무래도 나쁜 머리를 탓해야겠죠. 끝으로 난민이나 저개발국가의 이민 문제를 바라보는데 세계 민주주의 체제의 입장에서 살펴보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유럽의 상황은 우리와는 다소 다르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다른 아시아 각지역에서 유입된 불법체류자들을 감안한다면 이 ‘짧은 역사의 민주주의 국가’ 가 어떻게 관련된 잠재적 문제를 해결하는지에 대한 약간의 바로미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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