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9년 여행일지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문예총서 4
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 지음, 김대권 옮김 / 인터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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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는 당시 독일의 신학자이자 철학자, 교육자였던 사상가로서, 주변국인 프랑스와 달리 낙후된 독일 문학을 위해 헌신했고, 교육자로서 소년들과 청년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전수하기 위한 노력들을 기울였던 인물입니다. 근래 국내에서 괴테와 비교되며 문단을 비롯한 학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운좋게도 숭실대학교 독어독문과 김대권 선생이 국내에서 처음 번역한 이 책을 알게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제목에서 나타나듯 1769년은 서유럽에서 꽤 의미있는 해였는데요. 사실상 영국에서의 산업혁명이 시작된 해이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헤르더가 몸담고 있던 리가는 1721년부터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도시였습니다. 한자 동맹의 주축 도시이기도 했고, 지금도 그렇지만 이때에도 러시안들과 라트비아인 독일인들이 서로 부대끼며 살고 있었는데요. 헤르더는 리가에서 처음엔 교인이자 신학자로 지내다가 총독으로부터 한 학교의 교장으로 권유를 받으면서 부임 중간의 공백을 이용해 리가에서 헬싱괴르, 영불 해협, 낭트를 거쳐 파리에 도착하게 됩니다. 헤르더가 거쳐간 경유지를 잠깐 소개해드렸지만, 여기 이 책은 괴테나 로렌스 등의 기행문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기획된 계획서 같은 성격의 글이라 볼 수 있겠는데요. 주변 풍광이나 도시에서의 인상 등은 거의 없고, 마지막 파리에서의 도착도 언급이 되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독일과 주변 국가들의 관계에서의 지리학, 철학, 언어, 역사, 교육, 종교를 담은 헤르더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서유럽 전체에서 농노가 사라지며 사회 개혁이 마무리되고 있는 시점에서 리가와 자신의 조국인 독일 지역은 아직도 농노제를 유지하고 있는 수준의 미개함을 갖고 있었고, 이런 정치사회적인 후퇴 뿐만 아니라 언어, 문화적으로도 독일과 독일 민족이 일종의 계몽이 되어 있지 않다고 헤르더는 판단합니다. “모든 계몽은 목적이 아니라 항상 수단이다.”는 자신의 궤변을 늘어놓지만, 프프랑스어에 대한 예찬과 히브리어의 실용적인 측면을 언급하며 아직도 구태연연한 라틴어 중시를 하고 있는 독일과 그 주변 국가들을 비판하는데요. “프랑스어는 유럽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꼭 필요한 언어이며, 최고의 교양 언어이다” 라고 극찬한 반면, “라틴어는 용기와 힘, 그리고 모든것에 대한 전망을 앗아간다”며, 라틴어만 교육하는 것은 옳지 않고, 특히 프랑스어와 히브리어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과 그런 프랑스어로 시작된 프랑스 문화 전반의 높은 평가를 헤르더는 하고 있습니다. 볼테르와 루소를 배우고 답습하자고 주장하고, “몽테스키외의 정신으로 봐야하고, 루소의 정열적인 펜으로 써야하며, 볼테르가 누리고 있는 행운처럼 충언을 들어줄 왕이 있어야 한다. 우리 세기가 이때다.” 라며 독일 문화와 정신의 도약을 전망하고 있는데요. 지금에야 문화 상대주의에 입각해 다소간의 정신의 부족이나 문화의 결핍과 같은 것이 무조건 배격의 대상은 아니지만 헤르더가 살던 이 당시에는 소위 선도하는 선진 문화에 대한 평가가 어떠한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가 독일과 프랑스를 비교하여 양자의 우월을 명확히 구분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객관적으로 헤르더의 주장을 살펴보더라도 당시 문화 선진국의 전반적인 것을 답습해 독일 문화의 증진으로 삼자는 주장은 약간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이런 측면의 입장으로 헤르더가 칸트를 비판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논의를 시작한 것은 독일인들의 교육으로 넘어가서 파리 방문을 마치고 돌아갈 리가에서의 학교 운영과 교육 방침에 대한 자기 자신에게 하는 다짐들과 소년들과 청년들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교육에 대한 철학적인 공모를 하게 되는데요. “아름다운 젊은이는 올바른 느낌만을 가져야 하고, 자신에게 아직 적합하지 않는 모든 이념을 지녀서는 안 될 것이다.” 라는 등의 주관과 자신이 몽테스키외와 루소에게 영감을 받았듯이 비슷한 측면에서 청년들이 가져야 할 신념과 포부에 관해 여러 사상가들의 저작 등을 논하며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책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 “책을 읽게 되고 갖게 될 생각에 흥분되고, 얼마간 책 없이 지내야 한다” 는 등에서 그가 얼마나 독서와 글쓰기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글 초입에서는 “마지막으로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저술가로서의 활동이다.”라고 짤막하게 언급하고 있지만, 꽤 역설적이고 반어적인 표현을 좋아했던 것이 아닌가 약간의 실소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파리에서의 기대를 마지막으로 글은 대충 마무리 되는데요. 괴테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살던 지역에서 잠시 탈출해 지난 시간을 돌아보거나, 앞으로의 계획을 재충전하는 시기로 여행을 꼽았던 것처럼, 헤르더에게도 이처럼 자신과 독일인들에 대한 염려와 기대, 앞으로 만나게 될 소년들에 대한 교육, 철학과 언어학, 자신이 접했던 당대 사상가들의 역작을 우리에게 소개하며 그가 스스로 얼마나 문자와 책에 집착하고 몰두한 인문주의자였는지 간접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약간의 논외지만, 글 곳곳에 러시아인들에 대한 비하가 보였는데요. 오늘의 시각으로 보면 다소간 인종 차별처럼 느껴질 만큼 어리석고 무지하고 구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헤르더의 이런 시각을 지배적인 관습적 시각으로 치부해야하는지에 대한 난감함이 있었는데요. 이런 비범한 인문주의자가 얼마간의 ‘편견’을 안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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