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이란 무엇인가 - 차별은 언제 나쁘고 언제 그렇지 않은가
데버러 헬먼 지음, 김대근 옮김 / 서해문집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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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릴랜드 대학의 헌법학 교수로 있는 여성 법학자인 데버러 헬먼의 이 책은 지난 2008년 “When is Discrmination Wrong? 라는 원제로 출간되었던 것을 서해문집에서 2016년에 소개되었는데요. 이 책의 저자 데버러 헬먼은 발표한 논문과 글이 대부분 ‘차별’에 관한 주제인데, 개인적으로는 오랫동안 같은 분야의 연구로 천착해온 학자가 내는 글들은 항상 기대를 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의 저자가 주장하는 차별에 대한 정의는 간단히 설명하면 “비하가 수반되어 도덕적으로 불합리하고 부당한 것을 뜻합니다. 원칙적으로 합당하다는 평가를 받는 ‘구별’과는 구분해서 해석하는 것을 권유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구별은 비하나 부당한 평가와는 상관없는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체의 구분같은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여기에 많은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지만 가장 일례인 것은 학교에서 아이들의 이름을 알파벳으로 구분하여 강당에 분류해 놓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특히 “이러한 분류 행위가 비하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특정 맥락에서 특정한 구별을 짓는 사회적 또는 관습적 의미에 따라 좌우된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는데요, 저자가 속해있는 미국이라는 국가에서는 아주 대표적으로 흑인에 대한 차별 문제가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래 미국의 건국과 더불어 성립된 초창기 헌법이 사실상 “백인 남성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이후 토크빌이 언급했듯이 “토지 보다 노동력이 더 높은 비용으로 차지했던 미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노예의 수입에 대한 필요불가결성”은 오랫동안 미국 사회에서의 흑인의 지위 문제를 야기했고, 지금도 흑인들에 대한 백인들의 인종적 편견은 대체로 심각한 편입니다. 얼마전에 제가 이곳을 통해 리뷰했던 제임스 Q. 위트먼의 ‘히틀러의 모델, 미국’에서도 이러한 실제적인 모습을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즉, 미국법에 있어서의 인종 분리와 관련된 규정이죠.

미국 사회에 있어서 흑인들과 관련된 관행이 관습법적으로 흑인에 대한 교묘한 ‘인종 분리’에 법적 근거가 되었고, 이것을 차별로 인식하고 이론적으로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이 법학계 내에서 시작된지는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차별을 규명하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은 차별의 인식적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 ‘비하’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는데요. ‘비하가 평등의 문제인가?’ , ‘정말 비하만으로 충분한가’ , ‘모든 비하는 부당한가’ 등으로 면밀한 관찰을 하고 있는데요. 다만, 실제 범죄자를 법적인 처벌로 인한 교도 시설에의 구금이 그걸로 끝나지 않고 시설 내의 다른 죄수들에 의한 폭행과 강간 등을 용인함으로써 범죄자를 비하한다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처벌 자체로는 범죄자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등의 사례들을 인용하며 약간의 예외적인 측면들도 소개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차별과 관련된 사례들은 대부분 흑인과 여성에 대한 것으로 할애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법과 관행이 어느 정도인지 저와 같은 독자들은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겠더군요.

이렇게 앞선 1부가 차별에 대한 여러 사례와 해석이었다면 2부는 맹목적인 차별들에 대한 대안으로 소개하고 있는데요. 여기 내용들에서 상당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차별 금지법’과 관련하여 대체로 올바르게 금지되는 합리적 차별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데, 위의 차별 금지법은 이러한 합리적 차별까지 금지한다는 측면에서 저자는 부정적으로 보는 듯 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무엇보다 객관성의 입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자는 일정 부분 평등의 가치를 깊이 인식하지 않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부당한 차별을 어떻게 정확히 객관화 시킬 것인가는 문제도 어려운 부분이고 관행적으로 이어져 내려온 흑인들에 대한 인종적 편견인 “지적 능력이 떨어지고 도덕적으로 덜 통제되며, 더 폭력적이고,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관점을 지지하는데 사용되어 왔다면 이것에 대한 부당성의 측면에서 실제 법과 현실의 괴리를 전면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더 중요할텐데요. 이것을 일일이 흑인들이 비하를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를 따져서 차별의 유무를 따지자는 것은 물론 개념적으로는 그렇게 해야하지만 그것이 사회 전반에 어떠한 실제적 효력을 가질지는 저로서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유색 인종과 같은 소수자의 자녀들이 학과 공부와 관련된 차별과 소수자의 입학을 고의로 낮추는 것에 대한 비판 등은 꽤나 인정할만 했습니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앞선 이 합리적 차별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그 경계를 정확히 설정해 설명하는 것이 설득력을 높일 수 있는데 이 부분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전체적으로 이러한 차별의 의도가 사회적으로 고착화되고 파급효과가 큰 것임에도 객관성의 문제나 각 개인의 비하 여부, 의도와 확인 등을 따져서 가려보자는 것과 같은 것은 인종적이고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거나 계급적 차별 의식을 갖고 있는 반대에 있는 다수의 경종을 올리기에는 미흡해보이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사회의 다수 의견이 법이 부당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사법 체계가 그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법관들과 법 자체의 정당성을 신봉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초래하는 ‘법의 판단이 곧 옳다는 측면’의 집단인식을 너무 과소 평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공동체가 비판이나 모욕 등에 쉽게 동요하지 않는 것을 시민 도덕으로 삼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저자의 인식과 마찬가지로 좀 더 우리가 법앞의 평등을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고 일상화 된 차별 의식을 무비판적으로 여기는 것을 반성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또한 차별의 당사자가 느끼는 비하에 대한 좀 더 상세한 분석과 실례가 있어야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이론적으로는 그 각각의 전개가 충분히 설득적이긴 합니다만 앞에서 “객관성에 대한 고려가 시급해 보인다”고 저자가 밝힌대로 추후에 논의를 보강한 글을 저자가 냈으면 하는 이기적인 바람을 가져봅니다. 끝으로 편집상의 문제인지 1곳의 오탈자가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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