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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현대 사회 - 인간과 철학
찰스 테일러 지음, 송영배 옮김 / 이학사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옥스포드 대학에서 수학한 후, 캐나다의 명문대학이라고 평가받는 몬트리올 맥길 대학의 철학 및 정치학 교수로 있는 찰스 테일러의 명저 ‘불안한 현대 사회’를 읽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 찰스 테일러는 현대 도덕 철학과 정치 철학에서 영향력을 갖고 있는데요. 엄밀히 비교 대상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라인홀드 니버와 비슷한 업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저는 이 책을 중고책으로 구했는데요. 2009년에 4쇄인걸 보니 인문학이 점차 사장되고 있는 한국 춢판 시장에서 꽤나 판매고를 올린 것으로 여겨집니다. 아마도 그만큼 저자의 명성과 글이 한몫을 한 연유겠죠.
찰스 테일러는 그 특유의 예리한 분석으로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3가지 불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삶의 의미의 상실, 둘째로는 삶의 목표의 소멸, 마지막으로 자유 및 자결권의 상실로 소개하는데요. 저자의 솔직한 답변으로 이 책은 첫번째 불안에 대해 책의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고 밝히지만 제가 볼때는 이 3가지의 문제들이 큰 틀에서는 함께 분석되고 있는 듯 합니다.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자본주의가 심화 발전됨에 따라 사회 각각의 개개인들에게 도구적 이성이 명백하게 자리잡게 되었다고 다소 부정적으로 언급합니다. 즉, 여기서 도구적 이성이란 “우리가 주어진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을 어떻게 하면 가장 경제적으로 응용해 낼 수 있을까 계산할 때 의지하게 되는 일종의 합리성”으로 결론적으로는 이러한 도구적 이성이 개인의 파편화에 일조하고 약간의 확대 해석을 통한다면 현대 사회에서의 개인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에 있어서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한데요. 이러한 도구적 이성을 합리화하는 상대주의는 잘못된 것이며, 나르시즘에 기대어 소위 사회적이고 자본주의적 성공을 목표로 한 것은 결국 좋은 삶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중립성의 자유주의적 측면에서는 좋은 삶이란 개개인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추구하는 것일뿐이라고 심히 옹호하지만 “젊은이들이 자신의 이해를 초월하는 대의 명분들에 대하여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겠는가?”에서와 같은 뼈아픈 질문은 자기 만족에만 기반하는 나르시즘적인 태도와 서구의 대표적인 당대 문화라고 여겨지는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도취적인 것들에 대한 강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찍이 알렉시스 토크빌은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서만 갇혀있는” 그런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에서는 자기 정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과 이처럼 개개인들이 원자화되어 극도로 개인주의화되는 것을 경고해 왔는데요. 저는 앞서 평가한대로 이러한 자본주의적 물질적 성공에만 매몰되는 것은 사회 전체적인 불안의 측면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 있어서도 일종의 악영향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즉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테일러는 ‘자기 진실성’ 요청되며, 이러한 자기 진실성은 매우 본질적인 것이므로 각각의 개인들의 개성으로 표현되는 정체성과, 타인들의 인정과 관련한 논의를 세밀하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자기 진실성에 기반하거나 그 배경이 되는 타인들의 인정이 정체성의 기준에서 건전한 민주 사회의 적절한 양태인 것은 아니지만, “나의 정체성들을 규정해주는 관계들은 원칙상 없어도 되거나 다른것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질 수 없다”고 점진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도구적 이성과 자기 진실성이 여기에서 완벽히 대립되는 구조라 볼 수는 없지만 방관자적인 중립성의 자유주의와 주관주의들로부터 왜곡되는 사회 구조를 설명하고 이를 개선시켜주는 개념화에 있어서는 양자를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물질적 성공과 지위를 위한 노력들이 무조건 적으로 해롭지는 않다고 주장하는 사상적 흐름도 분명히 존재하며, 거의 이런 주장들을 하는 부류가 우파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흐름이 막바지에 귀결되는 것은 점차 사회와 정치를 불신하는 개개인들의 행태를 조장하는 기득권들의 숨은 의도를 충족시킨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사회 내에서 개개인들의 심각한 파편화가 진행되는데에 숨어있는 본질들은 오로지 성공만을 위한 인간관계에 집착하게 만들거나 대의적인 가치가 쓸모없고 시대착오적인 것이라 주장하며 악용하는 자들의 손아귀에 있다는 것이겠죠. 테일러는 이와 관련하여 의도하지 않은 해체주의적 입장에 있는 지식인들과 사상가들에게 이런 측면의 정보를 알려주는데요. 사실 더 불행한 측면은 도구적 이성이 개인들에게 도저히 저버릴 수 없는 유혹을 하고 있고, 자본주의 사회의 일방적인 측면이 이미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불평등이 만연한 현재 민주주의의 병페에 더 부채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사실 저도 테일러의 이 책을 보면서 느낀바가 컸는데요. 개인적으로 약간의 생업과 더불어 이렇게 많은 책들에게만 파묻혀 지내면서 많은 병폐를 포함한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몸소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 책은 현대 철학과 관련하여 많은 대학들에서 교재로 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는데요. 많은 젊은이들이 이 책을 깊고 진지하게 일독해 봤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약간의 논외지만 글 본문에 ‘대한민국 훈장’이라는 몇줄의 문장이 등장하는데요. 저자인 테일러가 한국인 독자들을 위해 대한민국 운운하는 문장을 넣었을리는 없고, 그 앞뒤 문장에 한국이 언급될만한 어떤것도 없습니다. 만약 역자가 원문의 어떤 나라를 대한민국으로 임의로 바꾼것이라면 이건 문제가 아닌가 싶은데요. 아.. 여기에 써봤자 출판사 피드백은 힘들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