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
에릭 포너 지음, 박광식 옮김 / 알마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역사학부 종신 교수이자 남북전쟁사와 관련하여 미국 내 최고 권위자 중 한사람이며 여러 역사 단체의 회장을 역임한 에릭 포너의 이 글을 일독했습니다. 어느 대학의 종신교수라는 직함은 그가 얼마나 학문적 노력과 연구를 해 왔는지에 대한 증거라 볼 수 있겠는데요. 미국 학계에서는 에릭 포너와 관련하여 극심한 호불호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쌓아온 학문적 업적은 이념을 떠나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휘몰아치기 전 학자로 유명했던 포너의 부친과 숙부가 해당 교수직에서 해임당하고 후임으로 왔던 리차드 호프스태터 지도 아래 저자는 학업을 이어갑니다. 리차드 호프스태터는 일찍이 사회적 다윈주의와 반지성주의와 관련하여 혹독한 비판을 가했던 학자로 미국 내에서 진보주의적 학자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그 리차드 호프스태터의 이력과 사상을 짧은 에세이 형식으로 담은 도입 장과 뒤이어 미국의 건국 이념으로 주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자유주의’에 관한 담론, 러시아와 남아공에서의 짧은 강의 기간과 두 국가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글, 그리고 미국 헌법체계에서 말하는 평등, 그와 관련된 흑인의 인권과 기본권 및 평등권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담아내고 있습니다.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비교적 짧은 삶에도 적지 않은 저작 활동을 통해 당시 미국 사회에 만연된 매카시즘이 미국인들의 뿌리깊은 반지성주의의 근원이 있다는 분석과 계급적 엘리트주의와 기득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적극 차용한 ‘생물학적 열등성을 들먹이는’ 사회학적 다윈주의에 대해서도 통렬한 비판을 했는데요. 사람은 누구나 능력적으로 불균등하게 태어났고 능력이 있는 자가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쥘 수 밖에 없다는 사회적 다윈주의는 배타적 계급주의를 가혹하게 심화시키고 사회를 모순 상태에 처하게 하는 위험이 있습니다. 이 양자는 포퓰리즘과 결합할시에 극적으로 파시즘에 이르게 되는 결말이 있는데요. 자신이 진보주의 학자로 여겼던 포너 역시 이러한 배경에서 호프스태터와 같은 입장으로 특히 많은 감화를 받았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글 곳곳에 호프스태터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습니다.

뒤이어 고르바초프가 통치했던 구소련 시절과 넬슨 만델라가 갓 정권을 잡은 남아공에서의 경험을 쓰고 있는데요. 그가 목도한 두 나라의 정치적 전환이 적지 않은 인상으로 회상되고 있다는 것과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될 기본적인 인권과 평등에 관한 일관된 입장, 미국이 오히려 그들만의 ‘자유주의’로 인해 다소 배타적인 상황에 이르렀고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에 관해 그것이 주된 흐름이 되었지만 많은 국가들이 무조건적으로 옹호하지 않았다는 시각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갓 독립한 미국이 일반적인 플랜테이션을 받아들여 거기에 소용되는 인력들을 노예로 받아들이고 나서 일종의 자가모순적 상태에 빠졌으며, 그의 조상들이 말하는 미국의 자유주의가 노예를 통해 경제적 번영을 누리는 것을 목도하고 과연 영국보다 더 나은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하고 있습니다. 같은 인간을 노예 상태에 떨어트리고 얻는 그 반대급부가 과연 정의로운가라는 질문과 당시에 많은 미국인들이 마땅히 이성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야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링컨의 ‘순수하지 않은’ 정치적 결단이 노예해방으로 이뤄졌지만, 유럽의 프랑스는 이미 “어떤 노예든 식민 본국의 땅을 밟으면 해방시켜 주던 ‘자유공기’ 원칙을 대영제국보다 훨씬 앞서 존중했다”고 언급하며 이를 비판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에도 미국의 연방에서 탈퇴를 시도했던 몇몇 주들의 사례에서 연방의 탈퇴는 모두가 인정해야 시도할 수 있는 특별한 경우지만, 반대로 이러한 노력은 미국의 정치 체제가 얼마나 불안하고 모순에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백인들만의 국가라고 오랫동안 자임해 왔던 전통의 미국은 헌법의 예와 최근 흑인을 비롯한 유색 인종의 투표권 문제 등에서 아직도 인종주의적 편견이 지배하는 불평등 국가이라는 점을 포너는 인정하고 있는데요. ‘흑인은 자유를 영유하는데 적당하지 않다’는 남북전쟁기의 지독한 편견이 최근에 ‘흑인은 게으르다, 흑인은 직업적 책임감이 없다’ 등의 선입견들이 인종주의적 입장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사람을 지도자로 뽑기에 이르렀습니다. 트럼프는 연방 대법원 판사 임명과 관련하여 ‘히스패닉 판사가 정당한 판결을 할 리가 없다’는 식의 말을 주절거릴정도로 익히 편견에 휩싸인 인물입니다. 앞선 노예제에 대한 선명한 입장과 흑인들에 대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의견 등이 앵글로 색슨이라 불리우는 기득권 백인들에게 미움을 받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식 자유민주주의’가 최선이라 여기는 식의 서술보다는 이렇게 이성적인 인식의 글이 저로서는 더 감명이 깊었습니다. 또한 사회학과 역사학과 관련하여 여러 인용들이 함께하고 있어 뒤에 따로 찾아 읽어볼 글들을 갈무리 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 책이 절판된 상태라 그 점이 매우 아쉽습니다. 에릭 포너의 글은 번역된 것이 현재 이 책 한권 뿐인데, 미국의 자유의 유래와 관련된 몇몇 책은 조만간 번역되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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