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죄 - 국가의 죄와 과거 청산에 관한 8개의 이야기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권상희 옮김 / 시공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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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는 ‘책 읽어주는 남자’의 작가로 유명한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본디 독일에서 저명한 법학자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는 훔볼트 대학과 뉴욕 에시바 대학의 법학전문대학원의 객원 교수를 역임했습니다. 저는 떠로 ‘책 읽어주는 남자’를 접해본 적은 없지만 특히 과거사 문제의 해법과 화해와 용서에 대해 나름 의미를 갖고 글을 써왔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전자의 소설과 지금 소개하는 이 책 또한 그런 의미적 관련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약간의 철학적 담론으로까지 느껴지는 이 글은 크게 ‘독일 제3제국에 의한 역사 문제와 과거 청산 및 마찬가지로 독일 헌법에서도 금지하고 있는 소급효금지 문제의 개정에 대한 문제, 동독과 서독의 통일 이후 동독 국가안보국의 과거 범죄에 대한 판단 등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 자신도 과거 이스라엘에 방문했을 때, 자신의 조국에 의한 범죄에 피해를 본 유대인들을 생각하노라면 수치감이 들었다고 하는데요. 오늘날 통일된 독일이 번영을 누리는 가운데, 과연 과거 히틀러의 제3제국이 자행한 유대인 학살 문제와 그와 관련된 제반 사항에 대해 소급효금지에 대한 개정과 그런 3제국에 부역했던 부모와 가족을 둔 후손들이 느끼는 여러 상황 문제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1945년 베를린이 항복함으로써 전범재판과 더불어 연합국에 의한 과거 청산 작업이 있긴 했습니다. “일상적 죄개념을 근거로 한다면, 1933년에서 1945년 사이에 범죄를 저질렀거나 범죄에 포함했던 사람들 이외에도 저항하고 반대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들도 죄를 지은 사람과 동일시된다”고 언급하며, 이러한 죄개념은 기독교 원죄설이 관철된 것이 아니라 로마법의 수용과 계몽주의 시대의 성장과 번성을 통해 발달된 것이라 저자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기원인 게르만 민족들이 그들의 여러 관습법을 통해 사회를 유지와 안정에 기여했듯이 어쩌면 오늘날 독일 사회가 합리적 이성을 토대로 두길 원한다면 이러한 과거 청산이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그러한 수단에는 개인의 인권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과거에 행한 죄에 대한 단절’을 포함한 헌법의 ‘소급효금지’를 어떤식으로 개정해 과거 역사 문제를 단죄하기 위해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토론이 필요하다는 점과 ‘법에 의한 과거 청산’ 이 일정 부분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받아들이고 있는데요. 지금도 일부 신나치주의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부모와 조상들이 저지른 유대인들에 의한 전쟁 범죄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과거 청산을 위해 독일 내에서 이러한 헌법 개정 논의와 같은 의견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이웃나라와 비교하면 천지 차이의 양상이라 볼 수 있겠는데요.

뿐만 아니라, 통일이 저자가 언급한 대로 ‘동독 엘리트들이 차지한 권력을 서독 엘리트들의 평화로운 교체’ 라고 단적으로 설명한 바대로 동독 시절의 여러 관련 법 증거들과 자료들에 대해 소각하거나 봉인하지 않고 유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과거 동독 정권에 부역한 동독 국가보안국 관련자들과 철의 장막을 뚫고 자유진영으로 탈탈하는 수많은 동독인들에 총격을 가한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한 문제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과거 독일 3제국에 의한 범죄와 과거 동독의 주요 권력층에 있던 인물들에 의한 감금과 고문, 인권 유린에 대한 단죄에 대해서 저자는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과거 청산이란 없다. 과거에서 자유로워지는 현재의 질문과 감정을 가지고 의식 있게 사는 삶은 있다.”고 단언하며 단순히 과거의 문제과 법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차원의 부분도 함께 있다고 여기는 듯 합니다. 그러한 과거의 어두운 편린들까지 후세의 세대가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점과 더불어 그것을 통해 독일인들이 한발자국 나아가는 것이 자신들에게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과거와 현재를 통해 합리적이고 희망적인 미래로 나아가려는 진실된 태도라 볼 수 있겠죠.

독일 사법부가 두 과거사 청산을 위한 노력에서 때로 소극적인 면을, 때로 적극적인 면을 보이기는 했으나, 원칙적으로 과거 범죄에 대한 책임, 반성, 청산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거의 피해자들만이 용서를 할 수 있다는 점은 정말 명백한 것입니다. 어쩌면 미래의 통일된 한반도 또한 독일이 시행착오를 통해 겪은 과거의 경험과 유사한 것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특히 국가에 의한 범죄를 어떤 식으로 처리할 지에 대한 독일의 전체적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번 이러한 글들을 보면서 느끼는 점입니다만, 과거를 제대로 직시하고 과오를 반성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화해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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